<메디안 쇼크> 공포의 화학물질 CMIT/MIT '대해부'

가습기에 놀란 가슴, 치약 보고 더 놀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 큰 충격이 일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이 살인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시스템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대책이나 규제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그 와중에 시중에 유통 중인 치약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 성분이 발견돼 식약처에서 회수 조치하는 일이 일어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 소속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인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과 MIT(메칠이소티아졸리논)가 메디안, 송염 등 치약에 함유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아모레퍼시픽이 미국 식약청에 일반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와 제품리스트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원료를 미원상사로부터 납품받았다.

가습기 공포
치약까지 번져

문제가 된 치약제품은 메디안 후레쉬포레스트 치약, 메디안 후레쉬마린 치약, 메디안 바이탈에너지 치약,본초연구잇몸 치약, 송염본소금 잇몸시린이 치약, 그린티스트 치약, 메디안 바이탈액션 치약, 메디안 바이탈클린 치약, 송염청아단 치약플러스, 뉴송염오복잇몸 치약, 메디안 잇몸 치약 등 11종이다.

CMIT/MIT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살균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곰팡이나 박테리아 증식을 억제하는 보존제로도 쓰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치약용으로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환경부에서도 2012년 유독물로 지정했다.


CMIT/MIT는 샴푸나 비누, 면도크림, 섬유유연제 등 생활용품에 허용된다. 이 용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물에 완전히 씻어내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생활화학용품 함유 유해화학물질 건강영향 연구Ⅱ>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의 원료인 CMIT/MIT는 변기 세정제·페인트 용도로 사용시 공기 중으로 노출돼 알레르기성 피부염, 안면발진, 비염, 기침 및 호흡곤란 증세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 물질의 치약 제품 사용을 금지한 이유는 삼켰을 때 폐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생산·판매업체가 제품에 들어가는 성분의 위해성을 몰랐다는 사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치약과 구강세척용으로 들어가는 화학제품인 MICOLIN S490을 생산하는 미원상사가 방부제로 사용된CMIT/MIT를 치약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미원상사뿐만 아니라 치약을 생산하고 판매한 아모레퍼시픽 역시 이 사실을 몰랐다고 꼬집었다.

식약처 뒤늦게 문제 제품들 회수
안일한 대처 허술한 관리 시스템

앞서 식약처는 지난달 26일 문제가 된 아모레퍼시픽 치약 제품 11종을 회수한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에서는 CMIT/MIT가 0.0022∼0.0044ppm 검출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CMIT/MIT 사용에 제한이 없으며 유럽에서도 위해평가 결과에 따라 구강점막 등에 사용하는 씻어내는 제품류에 15ppm까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회수된 제품 내에 잔류될 수 있는 양은 0.0044ppm으로 유럽 기준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

또한 유럽소비자과학안전위원회(SCCS)의 위해평가 결과에 따르면 치약에 CMIT/MIT가 15ppm 함유돼 있을 경우, 하루 치약 사용량 중 잔류량이 모두 흡수되더라도 인체에 안전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식약처는 미국, 유럽 등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메틸 및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 3종만을 규정하고 있어 아모레퍼시픽 제품이 법규 위반 품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회수 조치를 하게 됐다고 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허가된 물질 외에 다른 성분이 첨가되면 약사법 등에 의해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식약처는 미원상사의 원료를 사용한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이 의원은 미원상사가 CMIT/MIT물질이 함유된 12개 제품을 치약,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으로 제작해 국내외 30개 업체에 납품했다고 밝혔다.

이에 식약처는 화장품, 의약외품 등 씻어내는 제품에는 15ppm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식약처는 미원상사의 공급내역을 근거로 제조업체에 대한 추가적인 법규 위반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아울러 문제가 된 제품은 구매시기, 사용여부, 영수증 소지 여부 등에 상관없이 가까운 대형마트 또는 아모레퍼시픽 고객상담실을 통한 교환과 환불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은 공식사과문을 내고 진화 조치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원료사로부터 납품받은 소듐라이룰셀페이트(SLS) 내에 CMIT/MIT 성분이 극미량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며 “원료 매입 단계부터 철저히 관리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원료를 사용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제품에 대해 원료 관리를 비롯한 생산 전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식약처와 아모레퍼시픽의 해명·사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수천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생산·판매업체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행법 위반
인체에 무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기도 손상, 호흡 곤란, 기침, 급속한 폐손상(섬유화) 등 폐손상증후군이 일어나 영유아, 아동, 임신부,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출시된 것은 1990년대지만 그로 인한 폐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망사건은 2011년 4월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폐섬유화를 동반한 호흡부전을 주 증상으로 하는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들이 입원했다.

폐섬유화는 여러 가지 원인을 통한 염증 과정을 거치면서 호흡을 담당하는 폐세포가 호흡할 수 없는 상처조직(섬유조직)으로 변해버린 상태를 말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고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에 신고, 조사를 요청했다.

3개월 뒤인 8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손상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질본은 최종 인과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출시를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복지부와 질본은 11월이 돼서야 역학조사와 동물흡입실험 결과,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흡입 독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복지부와 질본은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서 파는 6가지 제품 수거에 나섰다.

이후 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내용의 ‘의약외품 범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고 12월 의약외품으로 분류했다. 복지부의 행정예고 전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 정부 관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면 식약처의 허가·관리를 받아야 한다.


2012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유통한 업체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제조·판매업체에 대해서는 제조물 책임법을, 국가를 상대로는 국가배상법에 근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같은 해 2월 질본은 동물실험 결과 CMIT/MIT 성분은 폐 손상의 원인이 아니라는 결과를 내놓는다. 이 때문에 이를 주성분으로 한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는 검찰수사 대상서 제외됐다.

살균제 사태
여전히 진행형
 

복지부에 의해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이 확인되고 제품 수거 명령 및 판매 중단 조치가 내려졌지만 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는 미미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한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4곳에 과징금 5000여만원을 부과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롯데마트는 과징금 없이 경고 조치만 했다.

그러자 2012년 8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이 살균제 제조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고발 대상은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17개 업체였다.
 

정부 차원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구체화된 건 2013년 6월에 이르러서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지원하는 피해구제기금을 설치하고 환경부에 피해대책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논란 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다.


같은 해 8월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부담이 큰 의료비를 정부가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원인 제공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다.

2013년 12월에는 당시 환경부 윤성규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유감이며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 2011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진 이후 주무부처인 환경부 장관이 피해자를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호흡부전에 급속한 폐섬유화
영유아·임신부·노인 치명적

이후 2014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국내에 유통한 업체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1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일부 유해한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은 인정되지만 국가가 이를 미리 알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해 9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레킷벤키저사 영국 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검찰은 올해 4월이 돼서야 사망 원인이 된 폐 손상을 유발하는 제품군을 4개로 압축해 해당 제품의 제조·유통업체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수사팀은 연구 및 조사를 통해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옥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롯데마트PB),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홈플러스PB),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등 4개 제품이 폐 손상을 유발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옥시레킷벤키저 인사 담당 상무를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제조사 임원에 대한 첫 소환조사였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뒤늦게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롯데마트는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은 피해자 여러분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관련 보상 재원으로 100억원 정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홈플러스는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검찰 수사 종결 시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의 경우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책임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레킷벤키저 최고경영자 라케시 카푸어는 영국 본사를 방문한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들과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서 사과와 함께 이같이 밝혔다.

카푸어 CEO는 “이번 일로 인해 많은 가정에 아픔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초래한 것을 인정하며 특히 영유아 피해자들과 부모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감에 대해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옥시 레킷벤키저의 배상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사과했지만…
피해 보상은?

지난달 29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첫 형사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2부는 수뢰 후 부정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수의과대학 조모 교수에게 징역 2년과 벌금 2500만원, 추징금1200만원을 선고했다.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짓 내용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만들고, 옥시 측을 통해 수사기관에 유리한 증거로 내게 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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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