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 재단 스캔들> 미르·K스포츠 실체 추적

각출로 포장된 760억 앵벌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미르·K스포츠 두 재단법인을 둘러싸고 이른바 ‘청와대 비선 실세 배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에 이어 청와대에는 구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도대체 미르·K스포츠 재단이 뭐하는 단체기에 이리도 시끄러울까.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들만 들여다보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K스포츠와 미르는 ‘샴쌍둥이’와 다를 바 없다. 현재 이들 재단의 핵심 의혹은 수상한 설립 배경과 모금 과정이다. 그리고 이 의혹의 배후에 청와대 비선 실세가 관여했다는 것. 먼저 이들 재단의 수상한 설립 배경을 짚어봐야 한다.

재단 허가증
하루만에 나와

K스포츠는 지난 1월13일 설립됐다. K스포츠는 창조문화와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는 사시를 내세우고 있다. ‘창조’는 박근혜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울 때 쓰는 핵심 키워드다. 이 재단의 정관에 나와 있는 또 다른 목표인 ‘국민행복’도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국위선양’ ‘인재 양성’ ‘남북 체육 교류’ 등 공익 사업을 하겠다는 재단의 설립 과정과 배경, 주체, 인적 구성 그리고 운영에 이르기까지 숱한 의혹을 낳고 있다.

먼저 설립 절차가 수상하다. K스포츠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설립 신청 하루 만인 1월12일 허가증이 나왔다. 신청에서 허가까지 최소 일주일, 길게는 수십일씩 걸리는 통상적 절차에 비춰보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신청 서류도 이상하다. 불과 두 달 반, 앞서 출범한 재단법인 미르와 신청서류가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미르는 글로벌 문화 교류 행사와 문화 창조 기업 육성 등의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공익 법인이다. 서로 설립 시기와 주체가 전혀 다른 재단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두 재단의 정관은 거의 유사했다.


재단의 성격을 드러내는 정관의 목적 또한 판박이다. 미르의 정관 설립 목적에 따르면 “문화라는 매개”라고 기재한 것을 K스포츠는 “체육이라는 매개”라는 표현으로 바꾼 정도라고 전해진다.

두 재단의 창립 총회 회의록은 회의 장소와 안건을 비롯해 회의 순서, 문구, 분량 심지어 회의에 등장하는 상당수 인물까지 판박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의록은 정관과 함께 설립을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중요한 서류다. 그런데 두 재단의 회의록은 일부 인물과 출연금 액수 등에서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K스포츠가 미르의 회의록을 베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더 황당한 것은 이 회의록이 가짜로 판명났다는 점이다. 실제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회의록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참석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회의장을 이용했다고 하는 날짜에는 대여된 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법인 둘러싸고 비선실세 배후 정황
수상한 조합…설립과 모금에 관여 의혹

신청 서류도 이상하다. 불과 두 달 반 앞서 출범한 재단법인 미르와 신청서류가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미르는 글로벌 문화 교류 행사와 문화 창조 기업 육성 등의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공익 법인이다.

미르 역시 초고속으로 설립 절차를 밟았다. 2015년 10월26일 허가 신청서를 낸 다음날 허가증이 나왔다. 놀라운 사실은 허가증이 나온 바로 당일에 현판식가지 열렸다는 것. 문체부 소관인 인허가 날짜가 재단 관계자들의 예상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K스포츠와 미르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이들 재단은 설립된지 채 1년도 안 됐다. 즉 국가 중요 행사를 맡을 만큼의 실적도 신뢰도도 쌓지 못한 재단들이다. 그런데도 이들 재단은 오래된 민간단체나 공신력 있는 공공기관을 제치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나란히 동행했다. 두 재단에 대한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이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점은 두 민간단체가 박 대통령과 연결돼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신생 재단이
대통령과 순방

지난 5∼6월 초 박 대통령은 10박12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3개국 및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다. 대통령은 6월3일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한불 융합요리 시식 행사에 참석한다. 여기에 미르가 등장한다. 이때 미르는 프랑스 국립 요리학교인 페랑디와 함께 시식회를 주관했다.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우간다 등에서 선보인 케이밀 사업에도 미르는 빠지지 않았다. 케이밀은 푸드트럭을 활용해 아프리카 현지 주민에게 쌀가공품을 제공하고 한식을 소개하는 이동형 농식품 개발협력사업을 한다.
 

K스포츠 또한 출범 이후 이른 시기에 대통령 순방에 동참한다. 대통령이 양국 수교 이래 정상으로 처음 방문한 이란에서 K스포츠는 중요한 행사를 떠맡는다. 지난 5월2일 한·이란 문화 공감 공연의 하나로 치러진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을 K스포츠가 주최한 것이다.

K스포츠가 1월 중순 출범한 지 불과 석달 남짓 됐을 때의 일이다. 5월 말께 박 대통령이 아르피라 케냐·에티오피아 등을 방문했을 때도 K스포츠가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몇 달 전부터 미리 준비해야 하는 해외 순방 행사의 성격으로 보아 갓 출범한 스포츠재단에 행사를 맡긴다는 게 석연치 않다.

미르와 K스포츠의 돈줄도 수상하다. 먼저 이들의 출현 모금이 똑같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앞세워 두 재단은 각각 19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대부분은 국내 대기업들이다. 삼성, 현대차, 롯데, 포스코, 한화, GS, SK, LG 등이 두 재단에 모두 출연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출연금
억지로 뜯겼나

당시 이들 기업은 미르엔 469억원, K스포츠엔 269억원을 내겠다고 회의록에서 밝혔다고 한다. 두 재단이 실제로 거둬들인 돈은 이보다 많다. 미르가 국세청을 통해 공시한 자료에는 출연금 468억원에 이른다. K스포츠 또한 지난 8월 말 기업들로부터 288억원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출연금은 기업 규모별로 비례했다. 삼성 79억원, 현대차 43억원, SK 43억원, LG 30억원, 롯데 17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재계 순위가 높을수록 출연금도 컸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출연했는데 정작 기업들은 재단 운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기업들은 이런 사실을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이 두 재단은 모든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을까. 두 재단은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대기업들에게 돈을 내도록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윗선(청와대)의 누군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여론의 시각이다.

권력형 대형 게이트 사건?
전두환의 일해재단과 유사


현재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단 모금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안 수석은 이에 대해 ‘전경련이 그렇게(모금) 한다고 이승철 부회장한테 들어서 관심을 가졌지만 개입하진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챙기지 않으면 굳이 전경련 부회장이 일개 민간 재단 모금 문제를 청와대 수석에게 말했을지 의문이다.

이번 의혹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야권은 지난 21일 미르, K스포츠 재단을 두고 전두환정권의 일해재단에 빗대며 특별 검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서 “터질 것이 터졌다”며 “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에서 청저히 파헤칠 것이며 지금처럼 청와대가 발뺌을 하고 솔직히 밝히지 않으면 국정조사 또는 검찰 고발, 특검으로 가서 정권 말기에 있는 권력 비리에 대해 철저히 국민 앞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제2의 일해재단이고 ‘박근혜 일해재단’이라고 덧붙였다.

우상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최고위회의서 진상규명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권력 실세, 비선 실세 문제로 시작해 대기업의 거액 자금 출연, 불투명한 자금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권력형 비리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력 실세들에게 내는 수백억의 돈이 과연 자발적 모금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 일파만파
청와대 묵묵부답

청와대는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수석비서관회의서 “비상시기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는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는 답변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의혹 자체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두 재단 내사하다?
맞춰지는 이석수 퍼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감찰했다가 직을 내려놓은 대통령 직속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모금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감찰관에 대한 청와대의 ‘국기문란’ 공격이 시작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당시 내사 지시는 이 감찰관이 했고, 지시를 받은 감찰반원들이 실제 출연한 몇몇 기업들에 찾아가 출연 이유와 과정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이는 특별감찰관법에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제5조)의 ‘비위행위’(제2조)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감찰실 관계자는 “조사를 나간 감찰반원들이 한 기업체 임원에게 ‘왜 그 재단에 출연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못 하고 먼 산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더라’는 보고가 있었다. 대부분 기업의 반응이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감찰관이 수사기밀 유출 의혹 등에 휘말려 사표를 제출하면서 더 이상의 내사는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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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