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승부수 띄운 ‘위기의 남자’ MB 속내

‘설 민심’ 떠보고 괜찮으면 그대로 밀어붙여!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서민 희망 3대 예산을 올해 핵심과제로 편성했고 중산층까지 보육료 전액을 국가가 책임지며 다문화 가정 보육료도 전액 지원한다”라는 정책을 공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정된 국가 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면서 “복지 포퓰리즘은 재정 위기를 초래해 국가의 장래와 복지 그 자체를 위협한다”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신년 연설 통해 ‘박근혜 복지’ 손 들어준 MB
꺼져가는 ‘개헌 불씨’ 보다 못해 직접 살려

이명박 대통령(MB)이 신년특별연설에서 ‘맞춤형 복지’를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MB는 연설에서 “개인이 태어나 노후까지 생애주기에 맞게 자아실현과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해야된다. 맞춤형 복지로 촘촘히 혜택을 드리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강조했다.

신정 때 내가 도와줬으니
구정 때 나 좀 도와줘~

이 같은 MB의 복지 발언은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형 복지’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0일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 공청회에서 “전 국민에게 각자 평생 단계마다 꼭 필요한 것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생애주기에 따라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시 MB가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추후 뭔가를 주고받기(Give&Take) 위한 포석이었다는 이유에서다.

MB가 무엇을 받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옹호했나에 대한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현재로서 가장 큰 무게가 실리는 쪽은 바로 ‘개헌’이다.
개헌과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참 기막히다. 청와대가 개헌을 강하게 들고 나서자니 야당 측 역풍이 부담스럽고,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팔짱끼고 지켜보자니 개헌 바람이 점차 소멸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하는 개헌에 대한 MB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개헌에 대한 소신은 분명하다고 전해진다.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20년 넘게 시간이 흐른 만큼 헌법에도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야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원 포인트 또는 투 포인트식 개헌은 곤란하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개헌은 국회가 직접 나서야 된다는 것이 MB의 생각이다. MB는 실제로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도 “국회가 직접 나서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청와대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MB가 지난달 23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회동 말미에 “청와대는 일절 개헌에 대해 얘기를 꺼내지 말라”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3년여 국정 경험을 통해 지난 헌법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지만 “직접 나서면 될 일도 안 될 수 있다”라는 것이 MB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직접 나서자니 애매하고
팔짱 끼고 보자니 답답하고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9차례 개헌 중 6차례가 청와대 주도였다. 하지만 이승만(두 차례)·박정희(세 차례)·전두환(한 차례) 정부 등 당시 개헌은 권위주의 정부였기에 청와대의 조정이 가능했다. 1987년 이후의 대통령들은 개헌을 추진했거나 개헌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다.

다시 개헌론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당·청 회동 직후인 지난달 23일 이후다. MB의 개헌 소신과 아이디어가 여당 지도부에 전달된 바로 그 시점이다. 그 전까지는 대통령 ‘특별임무’를 담당하는 이재오 장관만 홀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청 회동 시점 이후 친이계를 중심으로 개헌 토론회가 마련됐고, 구정 연휴 직후 시점으로 개헌 관련 의원총회 일정(2월8~10일)도 잡혔다. 결국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면 이 대통령이 입을 뗀 후 모든 일들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헌법 개정이 발의돼 국회 의결을 통과해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최종적으로 ‘개헌’이 확정된다. 결국 국민 지지 없이 개헌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오랜 숙성 기간이 필요한 만큼 집권 초 개헌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치권 시각이다. 하지만 MB는 집권 3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과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으며 개헌 추진의 적절한 시기를 놓친 측면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개헌과 관련된 질문에 “개헌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면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개헌이 아닌 ‘복지’라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이계 쪽의 ‘박근혜 떠보기’ 시도에 쉽사리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MB의 현재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손을 들어줘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는 모양새가 최선이다. ‘국민 여론’만 편승되면 박 전 대표도 결국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청와대쪽 분위기고, 실제 박 전 대표측과 협상 여지도 ‘없지 않다’고 판단하는 상태다.
이 같은 생각의 청와대와 친이계는 이번 구정 연휴 기간 동안 ‘설 민심’을 ‘개헌 민심’쪽으로 묶어 두기 위한 사전 행보에 일찌감치 돌입했다. 지난달 23일 당·청 회동을 통해 청와대 쪽에서는 큰 틀에서 개헌 이슈를 던진 상태다.

개헌 최종관문 ‘국민투표’
정치권보다 국민 설득해야

친이계 측에서도 이에 질세라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개헌에 대한 긍정적 여론 확산을 위해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회동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사단법인 ‘푸른한국’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헌법은 시대정신의 반영이고 시대 흐름에 따라 법도 고쳐져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사흘 뒤 한나라당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에서 개최한 ‘개헌 토론회’에 참석, 30분 가까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개헌 추진 반대 목소리도 함께 나오며 논쟁은 다시금 강하게 번져 나갔다.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을 이 시점에서 굳이 논의하겠다는 것은 몇몇 사람들이 자기들이 맡은 소임을 다하려는 것”이라며 “이 문제로 인해 당내, 여야, 국민 내부에서 의견이 나눠지게 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지금 (개헌) 시기를 이미 상실했다”라고 반기를 들었다.

‘개헌 종결’은 ‘국민투표’ 결국 여론 편승해야
설 연휴 통해 여론 올라타고 박근혜 설득?

당내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 21’ 간사 김성태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개헌 같은 국가적 현안을 다룰 때는 그 목표와 비전, 일정 등을 분명히 정한 다음 야당과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하는 것”이라며 “현재 정치권이 자가 발전 개헌론에 국민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MB와 이 장관이 생각하는 개헌 논의 가능 시점은 2011년 상반기다. MB의 임기중 개헌이 추진되려면 각종 진행 절차를 감안했을 때 상반기가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이다. 친이계 측에서는 설 연휴 지나고 당에서 추진하는 개헌 의총을 진행한 뒤, 개헌 논의의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박 전 대표측과 논의가 불발될 경우, 결국 청와대와 친이계가 야권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야당 일부에서는 애당초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기 때문에 개헌 공론화 과정에서 이견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기 내 추진 최후 시점
‘박근혜’ 안되면 야권으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개헌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한 상태고,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개헌을 통해 ‘강소국 연방제’를 꿈꾸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범야권 인사들도 일부 있는 상태다.

현재 ‘분당을’ ‘김해을’‘순천’을 제외한 296석의 의석 분포를 대략적으로 나눠보면 ‘친이계(90)’ ‘친박계(50)’ ‘한나라 중립(30)’ ‘민주(86)’ ‘선진(16)’ ‘미래희망(8)’ ‘기타 정당 및 무소속(16)’석이다. 지난해 8월 MB가 이 장관에게 ‘특별 임무’를 부여할 당시보다 친이계 의석수는 20여석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친이계의 줄어든 의석수는 중립 지대와 친박계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헌안 의결을 위해서 198석의 의석이 필요하다.

개헌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결국 설 연휴 기간을 통한 ‘민심 설득’ 수순으로 넘어갔다. 개헌을 확정 짓는 마무리(국민 투표)를 하는 것도 국민이고,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를 진지하게 벌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결국 최고 권력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국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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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