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더민주 새리더 추미애

뚝심 있는 여장부 추다르크가 떴다!

[일요시사 안재필 기자 = ‘추다르크’ 추미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야당 최초의 영남출신 대표로 지역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지역감정에 맞서 영남에서 야당 지지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얻어졌다. 뚝심 있는 여장부 추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를 맞이한 야당에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여당 텃밭의 영남 출신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지난날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노동조합법 개정 논란이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추 대표는 이에 맞서 여장부의 이미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세탁소집 둘째 딸
소신 있는 판사로

추 대표는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1958년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과 4년 기숙사 사용을 보장받으며 입학했다. 지난 1982년엔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5년까지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지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와 결혼해 법조인 부부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초년 판사 시절엔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신대로 판결해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추 대표가 약 10년간 입던 법복을 벗고 정계로 진출한 것은 지난 1995년 새정치국민회 창당을 준비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내세울 인재를 영입 중이었다.


추 대표가 정계 입문을 수락하자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대표는 그렇게 야당의 여성 부대변인 1호로 정치에 입문해 이듬해인 지난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서 서울 광진구 을 새정치국민회 후보로 출마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자는 이기기 힘들다며 외면 받은 일화도 있었다. 추 대표는 돈 안쓰는 선거를 선언하고 오직 진심 하나로 당원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떠났던 당원들은 그녀의 노력에 마음을 열고 돌아왔다. 노력을 증명하듯 선거에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 추 대표는 서울 지역구 소선거구 최초의 여성국회의원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할 영남출신 첫 야당 대표
“우선은 정권교체” 당내 계파 청산 숙제

그녀는 자신을 ‘세탁소집 둘째 딸’로 소개하며 “구멍가게 둘째 딸로 태어난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병을 고쳤듯이 세탁소집 둘째 딸이 한국의 썩은 정치를 세탁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추 대표는 유세단장을 맡았다. 지역주의가 극심했던 당시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이면서 야당인 김 전 대통령의 유세를 했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녀의 별명 ‘추다르크’는 이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다.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노 대통령의 행보에 앞장서며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줬다.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 사업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후보 교체를 위한 후보단일화 압박이 있을 때도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수용하는 일이 일어났다. 추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이 갈라서는 것은 이 시기부터다. 특검 수용 이후 친노(친 노무현) 의원들은 새천년민주당서 분당, 열린우리당을 만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추 대표는 분당 사태에도 새천년민주당에 남아야 한다며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분당에도 반대 입장을 보였다.

DJ 따라 정계 입문
노 정권 때 부침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였던 조순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했을 때, 추 대표는 ‘이성계의 3불가론’으로 탄핵에 맞섰다. 그녀의 3불가론은 첫째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둘째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어 현혹되면 안되며, 셋째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추 대표의 행동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당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며 탄핵에 맞선 그녀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손을 들게 된다.

당시 추 대표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된다. 숯댕이가 검댕이를 나무랄 수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

그러나 탄핵은 부결됐고, 역풍이 되어 새천년민주당에게 돌아갔다. 추 대표도 탄핵 유탄을 맞았다. 탄핵 찬성이라는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추 대표는 삼보일배를 통해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에 반해 열린우리당은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서 제외된다.

이후 지난 2007년 추 대표는 제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다. 2008년엔 제 18대 총선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광진구 을에 재도전 해 5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다. 또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다.

당선 이후 삼성그룹 특검 시 삼성그룹 내부 문건에 로비를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분류돼 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추 대표는 삼성그룹 특검서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다. 재선을 앞둔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한 뒤 사무실에 오니 비서가 삼성에서 골프가방을 주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안에는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현금이 있었는데 추 대표는 골프가방을 받지 않고 삼성에 돌려줬다.

이후 지난 2010년 추 대표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생긴 ‘노조법’ 분쟁이 원인이 돼 다시 한번 굴곡을 겪는다. 노조법의 복수노조금지 및 노조전임자급여지급 규정에 대한 개정과 관련돼 비판을 얻었다. 개정과 관련해 여야의 대립이 계속되자 추 대표는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그녀의 개정안에 야당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한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했다. 당 내부에선 추 대표에 대한 징계도 논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여당 의원들과 함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추 대표는 2개월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고 당내 입자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야당의 출입을 막아 날치기 통과의 오명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추 대표의 이 결정이 당원이 아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서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도 돌았다.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서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전임자급여지급이 금지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는 의견이다. 그들은 추 대표가 반대표를 던진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후 추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같은 해 있었던 제 18대 대선서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 선거 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 의원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게 된다.

탄탄한 인지도
5선 여성 의원

당시 새정치는 비노(비 노무현)가 끊임없이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 비노와 친노의 대립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은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로 비노계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으나 추 대표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던 모습과 함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 덕분인지 올해 있던 20대 총선서도 48%라는 득표율을 얻어 5선 여성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지진부진 했던 17대를 제외하고 도전한 모든 총선서 당선돼 탄탄한 인지도를 증명한 셈이다.
 

총선 이후 추 대표는 지난 7월28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활동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두 개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추 대표는 지난달 12일 CBS라디오 <심현정의 뉴스쇼>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상곤 후보가 지난 2004년 고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을 문제 삼자 “진심으로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아무리 사과한다 해도 어디 그게 갚아지겠나? 그 당시 삼보일배로 사죄도 국민께 드렸다”며 “정치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사과했다.

노무현 탄핵·노조법 날치기 통과
치명적인 2개 약점 어떻게 극복?

이어 “그 후로 제가 정치와 절연한 채 멀리 떠나 있을 때 대통령님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장관직을 제의하셨다”며 삼보일배를 한 것에 대해서도 “'무릎 아프지 않냐 괜찮냐. 언제 돌아올 거냐'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탄핵이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친분을 계속 유지한 것을 부각한 것이다.

이후 2009년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켜 ‘2개월 당원 정지’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문제로 거론되자 “다자 협의체에서 논의한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렇게 추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두 가지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서 당 대표 투표 결과가 나왔다. 과반수가 넘는 추 대표의 압도적인 승리로 투표는 마무리됐다. 총 득표율은 54%라는 과반수 확보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고, 현장 대의원 투표는 51% 권리 당원 투표는 61%를 받았다. 당원 여론조사와 국민 여론조사에선 각각 51%와 61%의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김상곤 후보는 22.08%, 이종걸 후보는 23.89%를 얻는 데 그쳤다.

추 대표가 더민주 당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여야 양쪽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모양새가 됐다. 신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야당 텃밭인 호남출신으로 여당의 대표가 됐고, 추 대표는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야당의 대표가 돼 지역갈등이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무너졌다는 환호도 나온다.

추 대표는 당 대표 선출 이후 수락연설과 기자회견서 대선주자 이름을 부르며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며 제안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관해선 “누가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지 민생 처방을 들고 나와 설득할 때 정권교체 가능성이 생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류와 비주류, 친문과 비문이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며 당 대표로서의 각오를 다짐했다.

추 대표는 강한 야당을 기조로 행보에 나섰다. 그녀는 지난달 29일, 서울 현충원에 방문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 뿐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3년 연속으로 불참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박근혜정부 8년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제주 4·3 추념식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취임 직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당론화를 거론, 시작부터 여당과 충돌이 예상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추 대표가 개인소신보다 전체 의원들의 중론을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강한 야당 강조
시작부터 충돌

지난달 31일 예정됐던 전문가 좌담회도 오는 5일로 연기됐다. 일각에선 그간 더민주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뒤집을 명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드 반대 당론을 밀어봤자 득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anjapil@ilyosisa.co.kr>

 

[추미애 대표는?]

▲1958년 대구 출생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인천·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제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노무현대통령 당선자 특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

 

<기사 속 기사> 추미애 남편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동기동창이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서 변호사의 편지로 변화를 맞이한다. 서 변호사는 추 대표보다 3살 많지만 서 변호사가 3년 늦게 학교에 입학을 해 법대 동기생으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연인관계가 된 후 추 대표는 대학을 나서 집까지 걸어가며 공중전화가 나타날 때마다 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연애에 집중하다 보니 사법시험서 낙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 변호사는 사고를 당해 아직까지도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으로 당시 영남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추 대표의 부모님은 서 변호사의 장애와 출신을 보고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서 변호사의 진솔한 모습에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호남 출신의 남편을 둬 추 대표는 자신을 ‘호남의 며느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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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