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더민주 새리더 추미애

뚝심 있는 여장부 추다르크가 떴다!

[일요시사 안재필 기자 = ‘추다르크’ 추미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야당 최초의 영남출신 대표로 지역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지역감정에 맞서 영남에서 야당 지지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얻어졌다. 뚝심 있는 여장부 추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를 맞이한 야당에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여당 텃밭의 영남 출신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지난날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노동조합법 개정 논란이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추 대표는 이에 맞서 여장부의 이미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세탁소집 둘째 딸
소신 있는 판사로

추 대표는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1958년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과 4년 기숙사 사용을 보장받으며 입학했다. 지난 1982년엔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5년까지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지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와 결혼해 법조인 부부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초년 판사 시절엔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신대로 판결해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추 대표가 약 10년간 입던 법복을 벗고 정계로 진출한 것은 지난 1995년 새정치국민회 창당을 준비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내세울 인재를 영입 중이었다.


추 대표가 정계 입문을 수락하자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대표는 그렇게 야당의 여성 부대변인 1호로 정치에 입문해 이듬해인 지난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서 서울 광진구 을 새정치국민회 후보로 출마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자는 이기기 힘들다며 외면 받은 일화도 있었다. 추 대표는 돈 안쓰는 선거를 선언하고 오직 진심 하나로 당원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떠났던 당원들은 그녀의 노력에 마음을 열고 돌아왔다. 노력을 증명하듯 선거에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 추 대표는 서울 지역구 소선거구 최초의 여성국회의원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할 영남출신 첫 야당 대표
“우선은 정권교체” 당내 계파 청산 숙제

그녀는 자신을 ‘세탁소집 둘째 딸’로 소개하며 “구멍가게 둘째 딸로 태어난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병을 고쳤듯이 세탁소집 둘째 딸이 한국의 썩은 정치를 세탁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추 대표는 유세단장을 맡았다. 지역주의가 극심했던 당시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이면서 야당인 김 전 대통령의 유세를 했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녀의 별명 ‘추다르크’는 이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다.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노 대통령의 행보에 앞장서며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줬다.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 사업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후보 교체를 위한 후보단일화 압박이 있을 때도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수용하는 일이 일어났다. 추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이 갈라서는 것은 이 시기부터다. 특검 수용 이후 친노(친 노무현) 의원들은 새천년민주당서 분당, 열린우리당을 만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추 대표는 분당 사태에도 새천년민주당에 남아야 한다며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분당에도 반대 입장을 보였다.

DJ 따라 정계 입문
노 정권 때 부침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였던 조순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했을 때, 추 대표는 ‘이성계의 3불가론’으로 탄핵에 맞섰다. 그녀의 3불가론은 첫째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둘째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어 현혹되면 안되며, 셋째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추 대표의 행동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당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며 탄핵에 맞선 그녀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손을 들게 된다.

당시 추 대표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된다. 숯댕이가 검댕이를 나무랄 수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

그러나 탄핵은 부결됐고, 역풍이 되어 새천년민주당에게 돌아갔다. 추 대표도 탄핵 유탄을 맞았다. 탄핵 찬성이라는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추 대표는 삼보일배를 통해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에 반해 열린우리당은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서 제외된다.

이후 지난 2007년 추 대표는 제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다. 2008년엔 제 18대 총선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광진구 을에 재도전 해 5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다. 또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다.

당선 이후 삼성그룹 특검 시 삼성그룹 내부 문건에 로비를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분류돼 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추 대표는 삼성그룹 특검서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다. 재선을 앞둔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한 뒤 사무실에 오니 비서가 삼성에서 골프가방을 주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안에는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현금이 있었는데 추 대표는 골프가방을 받지 않고 삼성에 돌려줬다.

이후 지난 2010년 추 대표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생긴 ‘노조법’ 분쟁이 원인이 돼 다시 한번 굴곡을 겪는다. 노조법의 복수노조금지 및 노조전임자급여지급 규정에 대한 개정과 관련돼 비판을 얻었다. 개정과 관련해 여야의 대립이 계속되자 추 대표는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그녀의 개정안에 야당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한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했다. 당 내부에선 추 대표에 대한 징계도 논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여당 의원들과 함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추 대표는 2개월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고 당내 입자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야당의 출입을 막아 날치기 통과의 오명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추 대표의 이 결정이 당원이 아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서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도 돌았다.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서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전임자급여지급이 금지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는 의견이다. 그들은 추 대표가 반대표를 던진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후 추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같은 해 있었던 제 18대 대선서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 선거 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 의원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게 된다.

탄탄한 인지도
5선 여성 의원

당시 새정치는 비노(비 노무현)가 끊임없이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 비노와 친노의 대립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은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로 비노계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으나 추 대표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던 모습과 함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 덕분인지 올해 있던 20대 총선서도 48%라는 득표율을 얻어 5선 여성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지진부진 했던 17대를 제외하고 도전한 모든 총선서 당선돼 탄탄한 인지도를 증명한 셈이다.
 

총선 이후 추 대표는 지난 7월28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활동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두 개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추 대표는 지난달 12일 CBS라디오 <심현정의 뉴스쇼>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상곤 후보가 지난 2004년 고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을 문제 삼자 “진심으로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아무리 사과한다 해도 어디 그게 갚아지겠나? 그 당시 삼보일배로 사죄도 국민께 드렸다”며 “정치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사과했다.

노무현 탄핵·노조법 날치기 통과
치명적인 2개 약점 어떻게 극복?

이어 “그 후로 제가 정치와 절연한 채 멀리 떠나 있을 때 대통령님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장관직을 제의하셨다”며 삼보일배를 한 것에 대해서도 “'무릎 아프지 않냐 괜찮냐. 언제 돌아올 거냐'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탄핵이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친분을 계속 유지한 것을 부각한 것이다.

이후 2009년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켜 ‘2개월 당원 정지’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문제로 거론되자 “다자 협의체에서 논의한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렇게 추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두 가지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서 당 대표 투표 결과가 나왔다. 과반수가 넘는 추 대표의 압도적인 승리로 투표는 마무리됐다. 총 득표율은 54%라는 과반수 확보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고, 현장 대의원 투표는 51% 권리 당원 투표는 61%를 받았다. 당원 여론조사와 국민 여론조사에선 각각 51%와 61%의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김상곤 후보는 22.08%, 이종걸 후보는 23.89%를 얻는 데 그쳤다.

추 대표가 더민주 당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여야 양쪽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모양새가 됐다. 신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야당 텃밭인 호남출신으로 여당의 대표가 됐고, 추 대표는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야당의 대표가 돼 지역갈등이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무너졌다는 환호도 나온다.

추 대표는 당 대표 선출 이후 수락연설과 기자회견서 대선주자 이름을 부르며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며 제안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관해선 “누가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지 민생 처방을 들고 나와 설득할 때 정권교체 가능성이 생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류와 비주류, 친문과 비문이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며 당 대표로서의 각오를 다짐했다.

추 대표는 강한 야당을 기조로 행보에 나섰다. 그녀는 지난달 29일, 서울 현충원에 방문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 뿐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3년 연속으로 불참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박근혜정부 8년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제주 4·3 추념식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취임 직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당론화를 거론, 시작부터 여당과 충돌이 예상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추 대표가 개인소신보다 전체 의원들의 중론을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강한 야당 강조
시작부터 충돌

지난달 31일 예정됐던 전문가 좌담회도 오는 5일로 연기됐다. 일각에선 그간 더민주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뒤집을 명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드 반대 당론을 밀어봤자 득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anjapil@ilyosisa.co.kr>

 

[추미애 대표는?]

▲1958년 대구 출생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인천·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제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노무현대통령 당선자 특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

 

<기사 속 기사> 추미애 남편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동기동창이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서 변호사의 편지로 변화를 맞이한다. 서 변호사는 추 대표보다 3살 많지만 서 변호사가 3년 늦게 학교에 입학을 해 법대 동기생으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연인관계가 된 후 추 대표는 대학을 나서 집까지 걸어가며 공중전화가 나타날 때마다 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연애에 집중하다 보니 사법시험서 낙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 변호사는 사고를 당해 아직까지도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으로 당시 영남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추 대표의 부모님은 서 변호사의 장애와 출신을 보고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서 변호사의 진솔한 모습에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호남 출신의 남편을 둬 추 대표는 자신을 ‘호남의 며느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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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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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