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언니 발목 잡은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동생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구설수에 올라 언니 박근혜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박 전 이사장을 사기 혐의로 고발해 수사 중이다. 계속 물의를 빚고 있는 박 전 이사장의 행적을 되돌아봤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1억원대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재 형사8부(부장검사 한웅재)가 맡고 있다. 특별감찰관법에 따르면 감찰 대상자는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이다. 이로 인해 박 전 이사장은 또 다시 박 대통령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

또 다시 구설
눈엣가시 존재

박 전 이사장은 지인에게 부채가 많아 생활이 어려우니 자금을 융통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1억원을 빌렸다가 6000만원은 갚고 나머지 원금에 대해 이자를 내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가족을 관리하지 못한 우병우 민정수석의 과실이라는 책임론으로 언니인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단순히 개인 사건에 불과하다며 반박에 나섰다. 박 전 이사장과 박 대통령 두 자매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0년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고 있던 육영재단 운영권에 대한 갈등이 심화되면서 벌어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박 전 이사장을 지지하는 ‘숭모회’라는 단체가 재단 고문을 맡고 있던 고 최태민 목사의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숭모회 측은 고 최 목사가 박 대통령을 조종, 재단 운영을 전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이사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그 자리는 박 전 이사장이 물려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까지 이어져 박 대통령에 대한 흑색선전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 2008년엔 18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서 친이(친 이명박)계의 ‘친박(친 박근혜)계 공천학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강하게 반발하며 대응에 나섰다. 극심한 계파갈등 속에서 박 전 이사장은 언니의 반대편인 친이계와 손을 잡고 한나라당 충북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렇듯 박 전 이사장은 박 대통령의 행보에 걸림돌이 돼왔다. 벌어진 두 자매의 관계는 같은 해 있었던 박 전 이사장과 14살 연하의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의 결혼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박 대통령은 박 전 이사장의 결혼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선 자유선진당 후보로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공천을 신청, 언니를 자극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은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박 전 이사장에 대한 공천을 취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 대통령과의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특별감찰관, 1억대 사기혐의 고발
“사기는 무슨…순수하게 빌린 돈” 반박

앞서 박 전 이사장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 사이의 차녀로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위로 박 대통령, 아래로 주식회사 EG 박지만 회장을 두고 있다.

본래 이름은 박근영으로 알려져 있으며 40세에 들어 박서영으로 개명했다. 지금의 박근령이라는 이름은 지난 2004년 두 번째로 개명한 이름이다. 박근혜정권 출범 이후 박 전 이사장의 잇단 돌출 행동은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박 전 이사장이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지 18년이 되는 지난 2008년, 육영재단의 운영권은 동생 박 회장에게 넘어갔다. 지난 2001년엔 운영상의 여러 비리를 이유로 성동교육청은 박 전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다. 박 전 이사장은 이에 불복해 소송도 냈다. 그러나 항소심서 패소하자 박 전 이사장 측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사장직이 유효하다며 재단 운영에 개입했다.


당시 노조 측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 2007년 재단에 빌려준 3억4200만원에 대한 차용증을 앞세워 임시이사회를 만들고, 재단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박 전 이사장은 사무 직함으로 출근 투쟁을 벌이며 재단 운영권을 놓고 알력다툼을 했다.

흑색선전 소재로
대권행보 걸림돌

임시이사 측은 박 전 이사장이 부동산 개발과 관련해 부적절한 수익사업을 벌였고, 지난 2001년 이후 성동교육청의 정기감사를 수차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장이 재직하는 동안 회계비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박 전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동교육청이 재판과 관련된 다수의 공·사문서를 허위로 꾸민 사실을 확인했다”며 “법원이 동생의 신청에 9명을 재단 임시이사로 선임한 것도 관련 법규가 없고 절차상 문제가 많아 무효”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 “동생이 육영재단 폭력 강탈의 배후에 있다”며 “동생과 동생의 비서실장은 지난 2007년 용역과 한센인 100여명을 동원해 저와 간부들을 쫒아냈고 측근을 사무국장으로 앉히는 등 재단을 폭력으로 접수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운영권보다 재산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어린이회관 재개발과 관련한 이익 문제로, 어린이회관이 재개발될 경우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회관의 면적은 약 13만2000㎡(4만평)으로 인근 건국대 야구장을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면서 남긴 5000억원보다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계의 판단이다.

당시 노조는 3.3㎡(1평)당 최저 2500만원으로 잡아도 1조원의 수익이 남는다고 했지만 부동산업자들은 3.3㎡당 8000만원으로 계산해 3조원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임시이사회가 꾸려진 이후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 실측에 들어갔다”며 “이를 개발하기 위해선 의결기관이 필요한데 이번에 꾸린 임시인사회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간에선 이전까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던 두 남매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박 전 이사장이 신 전 교수와 만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지난 2009년 신 전 교수가 박 대통령의 미니홈페이지에 비방글을 40여차례 올리면서 이슈화됐다.

이 비방글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박 대통령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신 전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약혼 이후 박 회장의 측근인 정용희씨와 박 대통령의 5촌 조카 박용철씨는 같이 중국 칭따오에 갈 것을 제안했다. 신 전 교수는 박용철씨와 함께 중국으로 갔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 회장의 비서실장이던 정용희씨가 박용철씨에게 신 전 교수를 중국에서 죽이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며 그 배후엔 자신과 박 전 이사장의 결혼을 막으려는 박 회장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칭따오 한국 영사관은 신 전 교수가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돼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외교통상부에 보고했다. 조사에서 석방된 신 전 교수는 당일 밤 호텔방에서 속옷만 입은 채 창문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었다.

이후 이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으나 재판부는 신 전 교수가 주장하는 살인 교사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주자가 박 회장이라는 증거를 대지 못한 것이다. 결국 신 전 교수는 2심에서 무고 혐의로 구속된다. 구명줄이던 증인 박용철씨는 사촌에 의해 피살돼 아무런 증거·증인도 제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신 전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사람이 살해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수사결과 경찰은 사촌이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박근혜정부 출범 뒤에도 박 전 이사장은 박 대통령을 찌르는 가시가 됐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일본 언론과의 대담에서 박 전 이사장이 했던 발언이다.

당시 박 전 이사장은 일왕을 천황 폐하라는 극존칭으로 부르는 등 국민정서에 맞지 않은 행동으로 큰 공분을 샀다. 박 전 이사장의 발언은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일본과 담을 쌓으며 펼친 반일외교를 한마디에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박 전 이사장은 일본의 포털사이트 ‘니코니코 동화’와 인터뷰에서 “일본 역대 총리와 천황 폐하의 거듭된 사과에도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도움으로 한국이 자립 경제를 마련하는 기반이 됐다”고 한 뒤 “이웃을 끊임없이 질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이 책임지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보상과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문제로 불거졌던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의 비난은 내정간섭이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조상을 모시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야스쿠니 참배를 비난 하는 한국 여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해당 발언은 일본의 니코니코 동화서 기획하고 BBC가 배급하는 다큐멘터리 <The Ties That Bind: Japan and Korea>의 후기에 포함되어 있다.

박 전 이사장은 귀국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100년 전 조상들이 한 일이 잘못됐다고 해서 조상을 찾아가지 않고 참배도, 제사도 안하겠다는 것은 동양권에선 안 된다. 후손으로서 혈손으로서 그것은 패륜”이라며 해당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육영재단 소유권서 시작된 불씨
자매 관계 이미 오래전 틀어져

야당의 화살은 박근혜정권으로 날아갔다. 당시 새정치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박 전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일제침략으로 수많은 민족선열이 희생당하고 탄압받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동생이 가질 수 있는 역사관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전병헌 최고위원도 “이것을 친일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하겠냐”며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불가피해졌다. 박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전 이사장의 행동은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도 떨어뜨렸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당시 40%대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위안부 문제와 신사참배 관련 발언 논란이 불거지면서 37.5%로 하락했다. 지난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호응을 얻어 올라갔던 지지율이 동생의 발언으로 도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박 전 이사장의 돌발행동은 지난 2011년에도 일어났다. 그녀는 지인 2명과 함께 ‘육영재단 주차장을 임대해줄 테니 선금을 달라’고 요구하며 계약금 명목으로 7000만원을 가로챘다. 이에 박 전 이사장은 사기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1심에서 박 전 이사장에게 벌금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 전 이사장은 이사장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사장 복귀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계약을 체결했다. 피해자가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툭 돌발행동
전과 기록도

지난 2013년엔 박 전 이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음원사이트가 음원을 불법으로 유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음원사이트는 음원 권리자들과 계약을 맺지 않고 유통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심지어 시범 서비스임에도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친인척 비리사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꾸준히 재연됐다. 최근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의해 사기 혐의로 고발돼 화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지난 1988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을 지내며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사촌 박철언 전 의원은 지난 1994년 슬롯머신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는 지난 1997년 두양그룹 등으로부터 돈을 받고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도 빠지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지난 2002년 이용호 로비 사건과 관련해 여러 기업에서 이권 청탁 대가 등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삼남인 전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스포츠토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청탁과 돈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세종캐피탈 사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를 받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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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