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상' 태영호 귀순 후폭풍

‘김정은 정보’ 들고 넘어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지난달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다. 태 공사는 부대사로도 불리는 등 주영대사관의 2인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 최고위층이 느끼는 동요가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16일, 북한의 태영호 주영 공사가 제3국 망명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방송에 따르면 주영 북한대사의 부관인 태 공사가 가족과 함께 10년 동안 영국에 거주해왔고, 아내 등과 함께 대사관이 있는 런던 서부서 몇 주 전에 자취를 감췄다. BBC방송은 태 공사가 북한의 이미지를 영국인들에게 홍보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미지 선전
가신의 배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가 외부서 오해를 받고 잘못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고도 했다. 태 공사는 한 연설에서 영국인들이 지배계층에 세뇌됐다고 주장했다가 관중의 비웃음을 샀다고 전했다. BBC 방송은 태 공사가 북한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었음에도 그 직무에서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나간 직후인 지난 17일 통일부는 “최근 영국 주재 태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의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에서 “이들은 현재 보호 하에 있으며 유관기관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대변인은 “태 공사가 탈북 동기를 ‘김증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 공사는 서유럽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평가받는다.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마흔 살이던 그의 북한 내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탈북한 외교관들도 태 공사를 북한 외무성서 손꼽히는 서유럽 전문가로 거론했다.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북한체제서 해외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특권에 가까웠다.

그가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 태 공사의 아버지였다.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의 근무 기간은 통상 3년이지만 태 공사가 주영 북한대사관서 10년 동안 근무한 것은 출신 성분이 좋기 때문”이라며 “태 공사의 아버지는 김일성 전령병으로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와 학업에 함께한 이들이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 허담(1991년 5월 사망) 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등도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이었다.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 가족과 망명
한국 입국해 국정원 요원들이 보호

태 공사는 중국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태 공사는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태 공사는 곧 귀국해 EU 담당과장을 거쳐 10년 동안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됐다.


태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의 일가로 알려졌다. 오씨는 오백룡의 아들인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인 것으로 알려졌다. 빨치산 가문 부부가 탈북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씨는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수행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하던 요원으로, 홍콩 근무를 거쳐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태 공사가 올 여름, 본국 소환을 앞두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탈북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태 공사의 큰 아들은 영국에 거주하면서 현지 한 대학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으며,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막 고교를 졸업한 19세로 임피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태 공사를 알고 지낸 BBC 방송의 스티브에번스 서울·평양 특파원은 지난 16일 ‘내친구 탈북자’란 글에서 “태영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런던 서부 액턴의 인도 식당서 커리를 먹고 있었다”며 그에 대한 기억을 소개했다. 당뇨병 위험이 있어 탄수화물 섭취를 자제하라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혁명집안 출신
서유럽 전문가

에번스 특파원은 태 공사가 말쑥하고 보수적이며 전형적인 영국 중산계층으로 보였다고 했다. 태 공사는 테니스 클럽의 신규 회원 모집 광고를 보고 가입해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원래는 골프를 좋아했는데 아내가 “골프와 나 중 택일하라”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가겠다”고 하자 테니스로 종목을 바꿨다고 한다.

최룡해, 오일정 등과 함께 빨치산 2세대인 태 공사의 한국행은 북한 엘리트층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 핵심 엘리트층에서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태 공사는 지금까지 탈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으로 꼽힌다. 지난 1997년 주 이집트 장승길 북한대사의 경우 한국행을 택하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만큼 그의 탈북 및 귀순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이번 태 공사의 망명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다. 전문가들은 태 공사의 귀순에는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제재 강화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생활도 궁핍해진 현실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이 가뜩이나 열약한 본국의 경제로 외국생활이 쉽지 않은 가운데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자 더욱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은 최고 엘리트 계층으로 거론되는 태 공사의 귀순에 대해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이 어려워진 현실이 망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최근의 잇단 제재 강화 이전부터 북한 외교관들의 상황이 넉넉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태 공사는 2013∼2014년 영국의 한 강연서 북한의 해외 공관들이 무일푼 신세로 외교관들이 불법적인 방식을 포함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받는다면서 돈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발등 찍힌 김
진짜 열받았다


이 영상에서 태 공사는 본국의 친구들이 자신이 한달에 1200파운드(한화 173만원)로 수영장과 사우나를 갖춘 궁전에 사는 줄 알지만, 현실은 침실 2개에 비좁은 부엌이 있는, 대단할 것 없는 아파트라며 영국의 물가에 대한 푸념 섞인 유머를 던졌다.

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면 ‘혼잡통행료는 어떻게 하나’ 생각해야 한다”고 씁쓸하게 말하기도 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은 런던 서부의 주택가에 있는 한 주택을 대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택가에 있는 까닭에 평소에는 대사관임을 알리는 국기를 외부에 게양할 수 없다. 북한 대사관 주재원 다섯 가족은 대사관 건물에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도 태 공사의 귀순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세계 각지의 북한대사관은 북한의 외화벌이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북한 외교관들이 금, 담배, 코뿔소 뿔, 헤로인 등을 밀수하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북한 활동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면서 북한 외교관들이 밀수 등의 할당량을 채우기 어렵게 됐다.

<뉴욕타임스> 역시 국제사회 대북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갈수록 북한 외교관들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이들이 북한의 압박을 받기보다는 망명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북한 연구자인 크리스토퍼 그린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태 공사 귀순을 두고 “북한 체제가 붕괴 직전이라는 의미일까? 절대 아니다”라며 “다만 체제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북내 대표적인 금수저가…
빨치산 1세대 태병렬 아들


이외에도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이어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가장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계층의 이탈은 김정은 체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앞으로 태 공사처럼 북한 고위 계층의 ‘탈북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결과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균열을 방증하기도 한다.

태 공사는 북한 내 최고위층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망명한 북한의 최고위급 외교관이다. 김정은과 북한 권력층 내부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갖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태 공사는 지난해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 당시 현장을 찾은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가 김정은 일가와 관련한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빨치산 가문 부부가 탈북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진 만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 내 이너서클 관련 정보가 나올지 주목된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인 황장엽(2010년 작고)씨도 지난 1997년 망명 이후 각종 저술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바 있다.

태 공사가 고위 인사인 데다 핵심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가정보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조사 후 탈북자 사회정착시설인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로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북 체제 불안
도미노 탈출?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들은 보통 유관기관의 탈북 경위 조사를 받은 이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게 되지만, 국정원장의 신변보호 결정이 내려지면 하나원에 가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서 교육 절차를 거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