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당첨' 불행한 이야기

돈과 행복, 당신의 선택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로또'하면 인생역전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타 복권보다 높은 당첨금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당첨 금액이 많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로또는 인생역전의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당첨된 행운아들이 있지만 이들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들 중 당첨이라는 행운과 동시에 불행도 함께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로또 1등 당첨자는 인생 역전 주인공이 되어 행복할 것으로 보인다. 비 당첨자들이 보기엔 부럽기만 한 상황이다. 그러나 당첨자 일부는 나름의 사정으로 불행한 결말을 맞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생긴 돈에 가족과 지인을 잃고 인생을 낭비하게 된 사연들을 소개한다.

[노모 방치]
[그리고 외면]

지난 5일, 경남 양산시청 현관 앞에서 A 할머니와 딸2명이 “패륜아들을 사회에 고발합니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로또 40억원에 당첨된 아들이 엄마를 버렸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이 시위 사진은 SNS에도 올라가 화제가 됐다. 당시 A 할머니는 “집에 찾아간 엄마를 주거침입죄로 고발했다. 손자·손녀를 키워줬는데도 엄마를 버렸다”고 억울해했다.

A 할머니의 아들 B씨는 지난달 23일,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됐다. 총 당첨금은 40억원으로 세금을 제외한 27억3000여만원을 수령했다. B씨는 이를 여동생 등에게 알린 뒤 부산에 거주하는 어머니의 집으로 내려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B씨에게는 누나 1명과 여동생 3명이 있다. 이들 남매는 어머니의 봉양 문제를 논의했는데 여기에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A 할머니의 딸과 사위는 어머니의 봉양을 B씨에게 요구했다.


B씨는 이혼 후 혼자여서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다며 양로원에 보낼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에 화가 난 B씨는 가족에게 행방을 말하지 않은 채 양산으로 이사한다. 한편에선 B씨가 당첨금을 제대로 나눠주지 않은 것이 갈등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가족들은 B씨의 행방을 수소문해 그를 찾아갔다. 집을 찾아가도 B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열쇠수리공을 불러 도어락을 강제로 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도어락이 부서졌다. B씨가 A할머니 등 가족을 주거침입죄로 경찰에 고발하자 A 할머니 등 가족들은 양산구청과 아파트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게 된다.

[무려 189억원]
[5년만에 소진]

A 할머니는 부산에서 단독주택 방 2칸을 얻어 보증금 500만원에 월 임차료 20만원을 내며 어렵게 살고 있다. A 할머니의 사위 C씨는 “장모가 지난 6월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딸들이 병원 수발을 했지 B씨는 하지 않았다. 장모를 모셔간다 해놓고 내팽개쳤다”고 주장한다. A 할머니 가족은 그동안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봐줬기 때문에 최소한 아들이 집은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십억이라는 당첨금으로 인해 한 가족의 파탄 난 셈이다.

지난 2014년에는 국내 로또 사상 역대 두 번째로 큰 당첨금을 받은 행운아가 경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당첨금은 총 242억원으로 알려져 있어 진정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라는 말도 나왔다. 지난 2003년 로또 1등에 당첨된 A씨는 세후 당첨금 189억원을 받았다.

그가 모든 당첨금을 소진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당첨금을 수령한 A씨는 곧바로 서초구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2채를 샀다. 당시 이 아파트는 한 채당 20억으로 40억을 들여 자신의 집을 마련했다.

꿈만 같던 인생 역전? 이내 인생 반전
가족끼리 분쟁…남보다 못한 사이로


후로 그의 수중엔 149억원이 남았다. 지난날 특정 직업 없이 주식 소액투자로 생활하며 사업가의 꿈을 꾼 그는 병원 설립 투자금 40억원을 지출한다. 지인에게 20억을 맡겼지만 뒤통수를 맞아 돈을 잃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중엔 89억이 남았다.
 

그는 다시 주식으로 눈을 돌린다. 소액투자로 생활하던 그에겐 충분히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전후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주식에 돈을 넣었던 A씨는 돈을 탕진하게 된다. 심지어 병원 설립에 투자한 40억원도 서류상의 문제로 돌려받지 못했다.

수중의 돈이 전부 사라졌지만 A씨에겐 여전히 아파트 2채가 남아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담보삼아 주식투자에 다시 도전한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아파트는 넘어가고 1억3000만원이라는 빚도 생겼다. 당첨금을 수령한지 5년 만에 억소리나는 빚까지 생기고 만 것이다.

이에 A씨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 등에서 자신을 ‘펀드 매니저’라고 소개하며 상담을 시작한다. A씨는 채팅을 통해 알게 된 B씨에게 접근해 로또 당첨금 원천징수영수증과 아파트의 매매계약서 등을 보여주며 선물투자를 권유했다. 선물투자는 상품의 미래 가치를 예측해 투자하는 것으로 상품이 앞으로 생산될 것으로 믿고 투자하는 방식이다.

B씨는 선물투자가 손실 위험성이 큰 만큼 망설였지만 A씨가 자신에게 돈이 있는 만큼 손실이 나더라도 손해보지 않게 해주겠다고 하며 1억22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A씨는 오히려 빚을 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A씨는 B씨로부터 돈을 돌려달라는 독촉을 받자 ‘민사소송서 이기면 15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속여 2600만원을 더 챙기기도 했다. B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A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A씨는 잠적하게 되고 부동산중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경찰에 체포된다. 그렇게 A씨의 로또 인생역전은 초라하게 마무리됐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복권에 당첨된 이후 가족들과도 떨어져 혼자 살았다”며 “피해금액을 갚으면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지만 김씨가 계속 갚을 수 있다고 주장만 할 뿐 실제로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집 배달원]
[폭행 전과자로]

지난 2011년, 중국집 배달원이 로또 1등에 당첨돼 19억원을 손에 쥔 일도 있다. 배달부 A씨는 당첨금을 수령한 뒤 일하던 중국집에 200만원이 넘는 오토바이를 쾌척하고 직원과 주인에게 돈을 준 뒤 떠나 미담을 뿌리기도 했다. 그는 형제들에게도 당첨금을 나눠주며 베푸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 2012년 A씨는 경찰서에 폭행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그는 아내가 자신 몰래 1억원을 썼다는 이유로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아내는 돈을 헤프게 쓰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A씨가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녔다. 술집 탁자에 100만원을 꺼내 놓고 (술집)여자들을 다 불러서 노는 등 비슷한 행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에 돈이 사라지게 되자 돈을 빼돌렸다며 자신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A씨가 몸을 묶고 담뱃불로 지지거나 칼로 찌르기까지 했다고 증언한다.

프로그램 제작진에 따르면 A씨의 주장은 다르다. A씨는 아내가 돈을 빼돌린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을 자극해 폭력 전과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A씨를 체포했던 경찰은 A씨가 매우 피폐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어떻게 네가 날…]
[아내가 들고 튀어]

로또 당첨으로 인해 20년간 같이 산 아내에게 배신당한 사례도 있다. 소금장수 A씨의 이야기다. A씨는 소금을 트럭에 싣고 전국을 누비며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는 어느 날 로또를 사서 아내에게 당첨번호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맞힌 번호는 1등에 당첨됐다. A씨는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이 당첨된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당첨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이후 아내는 A씨에게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고 이혼신청을 한다. 이에 A씨는 재산분할과 양육권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A씨는 아내의 통장을 확인하게 되고 아내가 당첨금을 수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1년간 그에게 당첨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다.

아내가 당첨금 빼돌려 도주
오래가지 못한 일가족 몰락

A씨는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끼긴 했다고 한다. 집안일만 하던 아내가 성형수술을 하거나 명품 가방을 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밤에 나가서 아침에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오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물어보니 누구랑 나갔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아내와 결별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가 됐다.

A씨의 아내는 10억이 넘는 오피스텔의 주인이 되어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내는 더 이상 A씨를 만나려 하지 않고 지쳐버린 A씨는 모든 소송을 포기한 상태다. A씨는 자신이 돈을 넉넉하게 가져다주지 못해 로또에 당첨된 후 이런 일이 생겼다며 자책했다.

1등 당첨금 25억원가량을 받은 A씨가 지난 2012년 한 대중목욕탕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A씨는 주점사업을 하고 있던 영세업자로 지난 2007년,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주점을 접었다. 그가 수령한 액수는 세후 18억원으로 A씨는 일부를 가족에게 건네고 나머지 금액을 사업에 투자했다.

[빚까지 떠안고]
[목욕탕서 목 매]


주식투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가 시도한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천만원의 빚까지 떠안았다. 이어진 생활고로 가정불화가 심해져 아내가 떠나고 자녀와도 떨어져 혼자 사는 처지로 전락했다.

결국 A씨는 상황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자살한 시점은 점심시간으로 목욕탕에는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출입문을 잠그고 준비한 노끈으로 목을 맸다. 유서는 따로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A씨의 유족은 “당첨금을 모두 날린 A씨는 가족들에게 돈을 빌릴 만큼 어려운 처지였다”며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고 빚더미에 오르자 우울증세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어린 나이에 당첨 돼 씀씀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탕진한 뒤 절도범이 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06년 로또 1등에 당첨된 A씨의 이야기다. 그는 당시 미혼에 20대 중반으로 우연히 로또를 샀다가 당첨됐다. A씨가 수령한 금액은 세금을 제한 약 13억원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첨금을 수령하자 유흥주점과 강원랜드를 돌며 흥청망청 돈을 썼다. 카지노서 많게는 하루에 3억원을 잃기도 했다. 결국 A씨의 행복은 4년이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됐다.

A씨는 지난 2010년 돈이 떨어지자 절도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는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휴대폰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당시 시가 300만원이던 최신 스마트폰 2대를 들고 맞은편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쓰자며 거짓말을 한 뒤 달아났다. 다른 매장에서는 종업원에게 사장과 전화연결을 해달라며 휴대폰을 넘겨받은 뒤 도망가기도 했다.

[“당첨 안 됐으면]
[평범하게 살았다”]

그는 훔친 휴대폰을 장물업자를 통해 돈으로 교환했다. 신형의 경우 최대 100만원, 중고일 경우 최소 3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A씨가 훔친 휴대폰은 시가 1억3000만원에 달한다. A씨는 지난 2010년 절도와 사기혐의로 지명수배되자 도피에 들어갔다. 그는 도피를 하며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과 대포차량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도피 중에도 로또와 스포츠토토 등 복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4년만에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그는 경찰에서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당첨 이후 당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우울증 약물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찾아가지 않은 로또 당첨금은 얼마?

지난 3년간 로또 당첨자가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아 모인 금액이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6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로또에 당첨되고도 찾아가지 않은 당첨금은 지난 2013년 504억400만원, 2014년 441억6500만원 2015년 437억6800만원 등 총 1383억3700만원이었다.

미수령 당첨금의 대부분은 5등에서 나왔다. 당첨금이 5000원인 5등 미수령금은 지난 3년간 884억1400만원으로 전체 미수령 당첨금의 63%를 차지했다. 당첨자수는 1768만여명으로 집계됐다. 당첨금이 5만원인 4등의 경우도 미수령 당첨금의 12%를 차지했다. 4등 미수령액은 166억3600만원에 달한다. 놀랍게도 1등 미수령 당첨자도 꽤 있다. 지난 2013년엔 6명 2014년은 3명이나 된다. 지난해인 2015년엔 4명이 당첨금을 받아가지 않았다.

로또 당첨금은 당첨 이후 1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끝난다. 당첨자가 찾아가지 않은 당첨금은 정부 기금으로 편입돼 사회 소외계층 지원사업에 활용된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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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