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맨’ 강만수 수사 막전막후

MB 턱밑까지 칼날 겨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대우조선해양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과 대우조선해양 전 경영진의 유착고리를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 수사가 대우조선해양 경영 비리 및 회계 사기에 이어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금융 당국의 비호 의혹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강 전 회장이 이명박정부의 실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검찰 수사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턱밑까지 겨눴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강만수 전 회장이 이명박정부의 실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검찰 수사가 그를 포함한 MB정부 핵심 인사들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남상태,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등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한 검찰이 강 전 회장을 겨냥한 것은 당시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앞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깡통 회사가
갑자기 성장

강 전 회장은 이명박정부 경제정책의 ‘브레인’으로 불렸던 실세였다. 강 전 회장은 2008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를 거쳐 초대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거쳐 산업은행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그는 이명박정부의 출범과 함께 초대 기획재정부장관을 맡는 등 ‘MB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렸다.

강 전 회장은 1945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왔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경제 관료로 성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1981년 소망교회서 처음 만났다. 장로인 이 전 대통령은 소망교회 창립 때부터 활동했는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강 전 회장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전신)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다.


강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아 정책 책사 역할을 맡았다. 대선 과정에서는 일류국가비전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책조정실장을 맡아 공약을 총괄 정리했다. 강 전 회장은 7·4·7 구상과 4대강 사업, 규제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구상했다.

MB노믹스 이끈
모피아의 대부

이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 뒤 정권의 실세로 우뚝 선 강 전 회장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를 거쳐 2008년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2009년 개각 때 기재부장관 자리서 물러났다. 장관으론 고작 1년을 재임했지만, 대통령 임기 내내 신뢰를 받았다. 이 때문에 정권의 실세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또 2008년 강 전 회장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이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임에도 조문을 와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강 전 회장은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를 일컫는 말인 ‘모피아’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다. 재무부 3대 요직으로 불리는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을 모두 역임한 유일무이한 관료인데다 현업에 종사하는 모피아 출신 중 최고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강 전 회장은 산업은행 시절 김승유(하나금융)·어윤대(KB금융)·이팔성(우리금융) 회장 등과 함께 금융권 ‘4대천왕’으로 불리며 금융당국 위에 군림할 정도였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지난 2일, 강 전 회장의 서울 대치동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강 전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투자자문사 P사 등도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거래 계약서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 지인들이 운영하는 지방의 중소건설업체 W사와 바이오에너지 개발업체 B사도 함께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경영비리 수사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은행장 시절 직무와 관련해 수사할 필요성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사정 불똥 산업은행으로
회장직 시절 친인척 회사에 특혜 의혹

검찰은 강 전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부실과 경영진의 비리 등을 눈감아 주는 대신 지인들의 업체에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투자를 하도록 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미 구속 기소된 남, 고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재임 시절과 겹친다.

먼저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외형을 성장시킨 W사도 주목하고 있다. W사는 2012년부터 대우조선해양건설로부터 일감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1년 13억원에서 강 전 회장의 재임 기간에는 연간 30억∼40억원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현재는 80억원 수준이다. W사 대표는 강 전 회장과 동향 및 종친으로 사실상 인척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공무원으로 의제되는 산업은행장이 부당하게 대우조선해양에 일감을 W사에 몰아주도록 한 것으로 보고 강 전 회장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B사는 2009년 1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됐으며, 여러 차례 대표이사 변경을 거쳐 2010년 11월 경제신문 기자 출신인 김모(46)씨가 대표에 취임했다. 김씨는 강 전 회장과 서울대 동문으로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이 산업은행장 직위를 이용해 대우조선해양이 B사에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B사는 이 돈의 수억원만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전용했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이 이 회사에 자금을 대기 시작한 2011년은 아직 B사가 손실만 12억원을 내던 사실상 ‘깡통회사’였다. 이 회사 주주와 친분이 있는 강 전 회장이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해 B사를 지원했고, B사는 이 자금 중 최소한만 연구개발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돈이 어디로 새어 나갔는지 회계자료를 분석 중인 검찰은 강 전 회장에게도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남 전 사장 시절인 2011년 9월 B사에 5억원을 투자해 지분 4.3%를 확보했다. 대우조선해양은 B사에 수십억원대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게이트 열리나
칼끝은 어디로

강 전 회장을 겨냥한 수사는 대우조선해양 내부 비리를 밝히는 데 집중했던 검찰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수뇌부의 유착 의혹 규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49.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대우조선해양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하는 등 경영감독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 왔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사태가 터지자 산업은행의 ‘관리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수년간 자행된 각종 비리를 대주주가 묵인했거나 공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 전 사장 시절의 회계 사기와 관련해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인 김갑중(61) 대우조선해양 전 CFO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번 수사로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는 산업은행 수뇌부로 확대되게 됐다.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민유성·홍기택 전 회장 등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민 전 회장, 강 전 회장이 대표적인 MB맨인 만큼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MB정부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이다.

비리 눈감고 입김 불었나?
일감 몰아주기 지시 의혹

2006년 취임한 남 전 사장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3월 연임에 성공했으나 로비 의혹에 휩싸였다. 대우조선해양이 협력업체 임천공업에 지급한 돈 중 수십억원을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했고 남 전 사장이 이를 이용해 MB정권 실세들에게 ‘연임 로비’를 펼쳤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였다.

로비 창구로 지목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구속되며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가 밝혀지는 듯 했으나 검찰의 수사결과는 제기된 의혹과 달랐다. 검찰은 천 회장을 개인비리로만 기소했고 남 전 사장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았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남 사장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등의 폭로가 있었지만 수사로 이어지진 못했다. 더불어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부장 정희원)는 성진지오텍 특혜 지분 거래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민 전 행장을 배임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이외에도 홍 전 회장 역시 고 전 사장 재임 시절 분식회계 부정을 방치 또는 동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연임로비까지 미칠 경우 이 전 대통령의 다른 핵심 측근들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번 산업은행에 대한 수사를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의 2라운드로 본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칼을 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명박 측근들
줄줄이 구속?

강 전 회장은 MB의 경제정책을 상징한다. 그동안 MB의 정치적 후원자 격인 친형 이상득 전 의원 등이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적은 있었지만 강 전 회장의 뇌물수수가 밝혀지면 전 정부의 정책적 도덕성까지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MB기업 수난사 

현 정권은 지난해 4월부터 MB를 겨눈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첫 번째 수사가 ‘자원외교’였다. 당시 자원외교 수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전 정권을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직전 로비 리스트를 남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친박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로 방향이 틀어졌지만, 어쨌든 MB 정권을 정조준한 수사였다.

지난해 포스코 비자금 수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재판에 넘겼다. 사실상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측근이 운영하는 3개 회사에 26억원의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았다.

현재 수사에 불이 붙은 롯데 수사도 사실상 ‘MB 수사’라는 시각이 다분하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에서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비리 의혹의 핵심인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모두 MB 정부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 전 사장은 지난달 13일 출국 금지됐다,

장경작 전 호텔롯데 총괄사장이 롯데그룹 내 핵심 MB라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 2005년 롯데그룹은 장 전 사장을 호텔롯데 사장으로 영입했다. MB 정권이 탄생한 2008년에는 호텔롯데 총괄사장을 맡았다. 이는 호텔과 면세점, 롯데월드 등의 사업부를 이끄는 자리로, 롯데그룹 측이 장 전 사장을 위해 신설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 외에도 현 정부는 ‘친MB기업’에게도 사정드라이브를 걸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당시 증권가 정보지에 CJ, 효성, 포스코, 롯데 등을 일제히 검찰 수사 대상 기업들로 지목했다. 이들 기업이 이명박 정부에서 급성장한 수혜기업인 만큼 기업 사정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난무했다.

그런데 실제로 정보지에 언급됐던 기업들이 현 정부에서 하나같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현 정부 집권 1년차였던 2013년 5월에는 CJ그룹을 쳤다. 검찰은 CJ그룹 본사와 경영연구소를 시작으로 2개월간 전면 수사를 벌였다. 수사에 착수한 지 40일 만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 전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고령·건강악화 등으로 법정구속은 면했지만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징역 3년, 벌금 1365억원 실형을 선고받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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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