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봉 옥중 기행> 고위공직자 협박편지 파문

'함바게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끝은 어딜까. 유상봉 함바비리 사건이 터진지 벌써 5년이 흘렀다. 하지만 수사는 현재진행중이다. 유씨는 자신과 친분을 맺었던 고위 공직자들에게 “돈을 달라”는 내용으로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검찰에 폭로하겠다는 말로 관계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일요시사>가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들을 입수했다.

함바는 일제강점기에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숙식을 하도록 임시로 지은 건물을 가리킨다. 함바는 본래 일본어 ‘한바〔飯場〕’에서 온 말로 한자어 그대로 하자면 ‘밥을 먹는 장소’를 뜻한다.

현직 구청장
전직 관료에

함바집은 건설 사업장이 생기면 그 현장 직원과 인부들이 먹는 식사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개설되는 순간 이익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보장되는 이권사업 중 하나로 꼽혔다.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건설사 현장 소장이나 고위층과 인맥이 주로 활용된다. 확실한 수익 때문에 이 운영권은 일종의 뇌물로 제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함바 운영권을 한때 400여 개 이상 거머쥐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유상봉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함바 사업에 뛰어들어 로비와 화려한 인맥을 동원해 손쉽게 함바 수주를 성공시켰다. 그러다가 2011년 함바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유씨 입에서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의 이름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전남 순천시의 한 야산서 농림부장관을 역임했던 임상규 순천대 총장이 자살했다.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도 구속되는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유씨는 최근 몇 년간 수감생활과 출소를 되풀이했다. 사기로 수감 중인 그는 최근에 함바 운영권을 따도록 해주겠다고 꾀어 수억원을 받았다가 추가로 다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고위 공무원들에게 “함바 운영권을 따게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거액을 건넨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유씨는 교도소에서 편지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전에 거액의 뇌물을 건넸던 고위 공직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주로 “내가 이전에 당신한테 줬던 돈을 되돌려 주지 않으면 뇌물을 받은 사실을 검찰에 폭로하겠다”는 내용이다.

수감·출소 되풀이…현재 사기죄 수감중
평소 친분 맺었던 주변인들에 “돈 달라”

최근 유씨의 편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씨가 자신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며, 복수의 고위공직자들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들 피고소인들은 하나 같이 “유상봉에게 수 차례 편지를 받으며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는 유씨가 고위 공직자에게 “돈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협박성 편지를 입수했다. 편지 내용은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온 한 광역자치단체의 A구청장과 청와대 출신 중앙정부 전직 관료이자 현재 수도권 소재 유명사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B씨에게 배달된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옥중편지1 = 존경하는 A청장님께. 며칠 전에 편지했던 유상봉입니다. OOO은 그동안 저에게 청장님을 비롯한 10여명에게 충분한 인사를 하면 저에게 건설현장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2억4000만원을 받아 이를 편취했습니다. 현재 저는 서울의 공직자 비리 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송갔습니다.

제가 청장님께 편지한 것은 OOO과 그의 지인인 OOO가 서로 짜고 저에게서 2억4000만원을 받아 편취한 사실에 대해 합동범죄수사단에 진정서를 접수했으며…(중략) 분명히 말씀 올리지만 늦어도 이번주 금요일까지 OOO이 처리해주도록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정서에 나타나 있는 공직자가 10여명이나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없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2015년 2월24일)


하루 7∼8통씩
계속 보내기도

▲옥중편지2 = A청장님께 드립니다. 지난번 편지 했던 유상봉입니다. 제 처가 병원에 있어 당장에 면회 온 사람이 없어서 이곳 생활하기가 정말 어렵고 힙듭니다. 무엇 때문에 OOO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에 사무장을 통해서 선거비용으로 지불했던 200만원을 반환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환해주세요. OOO이 주소를 전부 바꿔 버려서 현재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OOO을 비롯한 OOO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검찰에 고소는 했습니다만 검찰에 고소했다고 지금 당장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극한 어려움에 처해져 있는 제 입장을 헤아려 주시고 OOO 통해서 받은 200만원을 편지 받은 죽시 우체국에 가셔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3894번 유상봉 앞으로 꼭 영치금으로 송금해주시기 바랍니다.(2015년 6월22일)

▲옥중편지3 = 존경하는 A청장님께 드립니다. 벌써 몇 차례 글드렸습니다만 입금이 되지 않아서 다시 한번 글드리옵니다. 2014년 5월31일 일요일 OOO을 통해 청장님 선거 사무실 사무장께 드린 200만원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3894번 유상봉 앞으로 영치금으로 우체국에 가서 보내주시던지 제 처 OOO 농협 000-00-000000번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중략) 꼭 필요한 절실한 금액이오니 편지 받으신대로 급히 도와주시기 바라옵니다. 저에게는 절대 피해가 없게 해주세요. 정말 꼭 부탁드립니다. 하시는 일과 가정에 늘 복이 함께 하시길 충심을 다해 기원드립니다.(2015년 6월25일)

유씨의 편지내용은 ‘A구청장의 지인 OOO을 통해 돈을 줬으며 자신의 처지가 어려우니 다시 돌려달라’는 것이다. 또 유씨는 ‘검찰에 이러한 내용을 진정했다’며 구청장들을 압박하는 내용도 있다. A구청장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씨에게 총 35통의 협박성 편지를 받았다. 다음은 유씨가 B교수에게 보낸 협박 편지의 일부를 발췌했다. B교수도 오랫동안 협박 편지로 시달렸다.

“선거 자금
돌려주세요”

▲옥중편지4 = 존경하는 B님께 드립니다. 바쁘신 업무에 얼마나 고초가 많으시옵니까? 정말 진실이 통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하는데 진심으로 제가 원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지금 당장에는 제 말뜻을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OO현장 급식 운영권 수주를 위해 OOO 사장님과 만남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OO지구에서 LH가 발주한 OO건설현장 급식 운영권에 대해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OOO 시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OO와 계약했던 건설현장 급식 운영권이 계속 유효하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도와주시길 바라고 OOO을 급히 좀 만나주세요.(2013년 11월25일)

▲옥중편지5 = B님께 드립니다. 부산구치소에서 수용생활하다가 합수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구치소에 있다가 인천지검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주시기로 했던 4000만원을 급히 제 처 김OO 농협계좌 001-12-15XX XX로 1억원을 보내주십시오. 서로간의 좋은 만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이오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동안 많이 기다렸고, 여러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모든 예의를 다 갖춰 드렸습니다. 정말 많이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2015년 4월1일)

▲유상봉 옥중편지6 = B님께 드립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1억원만 도와주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습니다만 이미 저에게 8000만원을 주었으니 이번주까지 1억원만 더 해 주세요. 저도 이제 B님과의 모든 관계를 이것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제 처 김OO 농협계좌 001-12-15XXXX로 1억원을 보내주십시오. 입금하시고 010-9XXX-5XXX로 전화주시면 모든 진정서는 취하하겠습니다. 꼭 이번주까지 부탁합니다.(2015년 5월3일)

B교수는 2013년 4월 처음으로 유씨를 만났다. 이후 B교수는 급전이 필요해 유씨에게 1900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그해 7월 빌린 돈을 유씨에게 갚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씨는 끊임없이 B교수에게 협박편지를 보냈다. B교수는 “돈을 내놓으라는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려 정신병을 얻을 정도였다. 대학교수직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B교수 역시 유씨에게 30여 차례 협박 편지를 받았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유씨는 지금까지 감옥에서 수백 통의 협박 편지를 측근과 공직자에게 보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유씨의 편지 119통에는 약 34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 3급 이상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가 92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씨의 편지에는 이 사람들에게 뇌물을 줬다거나 편의를 제공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의 수법은 먼저 편지를 보내 돈을 요구한다. 이걸 거절하면 유씨는 ‘서운하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등 신경질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것도 되지 않으면, 유씨는 ‘공직 생활 끝나게 만들겠다’는 등의 협박성 편지를 보냈다. 그는 감옥에서도 하루에 7∼8통의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망쳤다.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쫒기고 시달려 힘들고 지쳤다. 더 이상 수치도 감당할 수 없다. 모두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만남에서 비롯됐다. ‘잘못된 만남’을 주선한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 유서에는 ‘악마의 덫에 걸렸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물론, 유서 속 악마는 유상봉씨였다.

유씨는 정관계 인맥을 총동원해 수주경쟁에서 매번 승자로 군림했다. 검은 거래는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유씨 입에서 하나 둘 관료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 마다 수많은 공직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급 인사들이 유씨의 폭로에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이러다 경찰 조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장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당시 정권의 실세 소리를 들었던 공기업 사장, 정부부처 산하기관장도 무사하지 못했다.

사건은 전직 장관이자 한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임 총장. 유씨의 정관계 인맥을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 그는 한때 대한민국 예산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자리에 있었다. 유씨는 그를 배경으로 자신의 함바 왕국을 만들어 갔다. ‘악마의 덫’에 걸렸다는 그의 마지막 절규와 결말은 비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바 게이트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여전히 함바왕
운영권 쥐락펴락

‘악마의 덫’은 여전히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다. 감옥으로부터 배달된 유씨의 편지. 구속 수감된 직후부터 최근까지 써 내려간 이 편지에 수 많은 전현직 공직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유씨는 측근들에게도 ‘악마의 덫’을 준비하라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함바 게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제2막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금도 누군가의 이름을 편지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