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메갈리아·워마드> 혐오 사이트 전쟁 '막전막후'

지역감정은 옛말…갈라진 사이버 민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혐오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사회를 뒤덮었는지 그 시작은 명확하지 않지만 지난해부터 폭발력을 가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 밑에서 집단화된 사이트끼리 강대강으로 부딪쳤던 전쟁이 현실 세계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 번화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혐오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가해자였던 30대 남성 A씨는 화장실에서 범행 대상을 고르다가 20대 여성 B씨가 들어오자 칼로 여러 번 찔러 살해했다. A씨와 B씨 사이에 아무 접점이 없었기에 묻지마 범죄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경찰 조사에서 A씨가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왔다는 진술을 하면서 여성 혐오 범죄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김치녀와 한남충

이후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운동이 시작됐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젊은 나이에 살해 당한 B씨를 추모했다. 10번 출구에 모인 이들은 포스트잇을 통해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 공유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언행으로 추모의 의미를 변질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충돌했던 집단이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이 있다.

2010년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진 일베는 201218대 대선을 즈음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일베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바일 뷰, PC 접속자 수, 모바일 방문자 수 부문에서 상위권에 위치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 접속자 수가 14730명(지난 13일 저녁 8시 기준)으로 15000여명에 육박하지만,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게시글을 볼 수 있는 사이트 특성상 실제 이용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베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다양한 문제도 함께 불거져 나왔다. 공중파 뉴스에 들어가는 사진에 일베 로고가 합성돼 그대로 방송에 나오거나,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오뎅에 비유한 이용자가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부정하는 등 정치적 극우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망설 유포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베라는 통로를 통해서 발생하면서 대중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베에서 사회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잦아지자 이를 사회현상으로 보고 연구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일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성은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시선이다. 일베에서는 ‘김치녀’ ‘삼일한’ 등의 단어가 일상 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김치녀는 여성을 남성 기준에서 비하하는 용어로, 예를 들면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개념녀와 비개념녀로 나누고 비개념녀를 지칭하는 용어다.

삼일한은 여자는 삼일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말을 줄인 것으로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줘야 한다’는 속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 언론사가 데이터 전략 컨설팅 회사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일베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김치녀라는 단어의 언급 빈도가 군대, 군가산점 등보다 훨씬 많이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치녀가 여성의 비하 단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강남역 사건 추모 의미 변질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상황

일베에서 촉발된 여성 비하, 혐오 발언 등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다 2015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되는 여혐혐(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혹은 남성혐오 집단이 생기게 된다. 바로 ‘메갈리아’의 등장이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매우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메르스가 국내를 강타한 여름, 홍콩행 비행기에 탄 한국 여성이 격리 조치를 거부해 메르스를 전파했다는 루머가 발생했다. 루머는 순식간에 SNS로 퍼져나갔고 해당 여성을 나라 망신시킨 무개념녀, 김치녀 등으로 부르는 등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루머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며 반전이 일어났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의 여성 유저들이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루머로 자신들을 싸잡아 비난한 남성들을 향해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을 반전시킨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대 스스로를 메갈리안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메갈리아의 경우는 탄생 비화만큼이나 대응 방식도 독특하다. 이들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거울에 비추는 듯한 방식인 '미러링'을 이용한다. 김치녀의 대응어는 한남충이 됐고, 여성의 가슴 크기에 대한 발언은 남성의 성기 크기에 대한 발언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메갈리아는 최근 지향하는 바에 따라 워마드, 레디즘 등으로 분화된 상태다.

메갈리아로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이 진행되면서 페이스북 등 온라인상에서 남성과 여성의 충돌이 잦아졌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남성 혐오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최근 워마드 측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의 희생을 ‘고기파티’라는 표현으로 조롱하면서 남성 혐오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워마드 익명게시판에는 “내일 6·25 대한민국 최대 고기파티 났던 날 아니노”라며 “내일 한국전 때나 베트남전 때 남한군들이 했던 만행 같은 거 올리는 거 어떻노”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SNS 등을 통해 해당 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6·25 비하 발언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국가보훈처와 언론사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가 도를 지나쳤다고 분석했다. 시작은 일베 등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를 미러링 방식으로 비판하면서 신선하게 출발했지만 결국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보는 대중들의 시선도 차갑기 그지없다.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일베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메갈리아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함께 금지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두 집단을 동일시해서 배척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셈이다.

또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이 초반에는 폭발력을 지닐 수 있지만 그게 지속되면서 보는 이들이 피로감을 느껴 이를 외면하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두 집단의 싸움으로 의미가 축소되면서 사회적인 환기가 필요한 이슈가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혐오의 악순환이다.

그렇다 해도 섣불리 이들의 실패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오프라인으로 혐오 이슈가 드러나면서 변화의 분위기가 미약하게나마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 등은 지난해 잡지 <맥심>에서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케 하는 사진을 표지로 쓰자, 강력 항의하면서 사과를 받아낸 일이 있었다. 생리대 제조업체가 생리대 가격을 올리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성향별로 뭉쳐

생리대에 빨간 물감을 묻혀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강렬한 방식으로 요구 사항을 드러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는 Y(35)씨는 “극단적인 방식은 지속성이 없다”면서 “과격함을 줄이고 대중의 시선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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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