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8·9전대> 서청원 '맏형 리더십' 재조명

“최대 위기…큰형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의 바로미터,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후보로 거론되던 인사들은 저마다 출마를 저울질 중이다. 친박 좌장 서청원 전 대표도 그 중 하나. 최근 정가에 퍼진 서 전 대표의 출마 소식에 반응은 엇갈린다. 무리한 출마라는 주장과 전대 흥행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해석이 부딪친다. <일요시사>는 서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과 전대 유불리, 그리고 당선 후의 행보를 분석해봤다.

8·9 새누리당 전당대회(이하 전대)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앞서 김용태, 이정현, 이주영 의원의 출마 러시가 있었다. 나경원, 정병국, 홍문종 의원도 곧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선 참패로 ‘독이 든 성배’가 되어버린 당권과 이에 마땅한 후보조차 거론되지 않던 시절보다는 진일보한 상태.

독이 든 성배
균열 막는다

그러나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후보는 많아진 데 비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물급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전대 흥행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알맹이가 빠진 전대”라며 “흥행은 물 건너 갔다”고 말했다.

최경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흥행적인 면에서 새누리당에게 악재였다. 최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전대에 출마하지 않겠다”라며 “오직 평의원으로서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출마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정가에 돌았지만, 결국 불출마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불출마 선언 직후 당 핵심 관계자의 입에서는 “정말 요즘 (당이) 잘 안 되려나 보다”라는 푸념 섞인 말도 나왔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했다. 한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사람들 중에 ‘아! 이 사람이다’하는 사람이 없다”라며 “한두 명을 제외하면 다들 무난하게 의원 생활해 오신 분들이라 흥행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계파를 떠나 흥행몰이 측면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정가에 퍼진 서 전 대표의 출마 소식은 이러한 ‘흥행 실패론’을 바꿔놓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서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대두된 날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분(서 전 대표)이 합류한다면 화제성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당의 큰 어른인 만큼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갑윤, 조원진, 김명연, 김태흠, 박대출 등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10여명은 최근 서 전 대표의 의원실을 연이어 방문해 출마를 독려한 바 있다.

“당의 큰어른
중심 잡는다”

핵심 친박 중 한 명인 조원진 의원은 “당 상황을 볼 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분이 서 전 대표”라고 말했고 김태흠 의원은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루는 데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당시 서 전 대표는 참석자들의 출마 권유에 “이 나이에 무슨 전대에 출마하겠느냐”라며 “좋은 후배들이 많으니 잘하겠지”라고 고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서 전 대표는 최근 마음을 바꿔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정가 소식에 밝은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서 전 대표가 전대에 출마할 계획”이라며 “곧 공식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의원들의 출마 독려가 서 전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서 전 대표 의원실에서는 해당 소식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서 전 대표의 출격 가능성에 앞서 출사표를 던졌던 후보자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체로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경계’하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했던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서 전 대표를 향해 “뜸 들이지 말고 하루빨리 전대에 출마해 당원과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며 “최 의원이 출마를 접으면서 지난 총선에서 책임을 지고 나름대로 친박 패권이 자숙하고 새누리당의 미래를 위해 뒤로 물러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친박 패권이 새누리당을 더 이끌어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이는 것 같아서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자고 내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후보들도 반응이 유사하다. 이주영 의원은 같은 날 새누리당 당사에서 출마 선언 직후 ‘서청원 의원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완주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오늘 출마 선언을 했다. 출마는 경선에 나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출마를 저울질 중인 홍문종 의원은 “서 전 대표께서 (출마를) 고민하고 계시는데, 서 전 대표가 절대 나와서 안 된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고 견제하기도 했다.

이에 교통정리가 어떻게 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서 서 전 대표 ‘추대론’이 나오면서 후보들이 경계심을 보이는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서 전 대표가 추대되면 같은 친박계인 이정현·이주영·홍문종 의원의 방정식이 복잡해진다. 자칫 완주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출마하기로 가닥 “좌장이 나선다”
흥행 우려 새누리 출마 소식에 반색

그러나 추대론은 당내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행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주영 의원은 일각에서 이는 추대론에 대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당원과 국민의 뜻을 묻는 것이 민주주의 정당의 원칙”이라고 일축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추대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무조건 경선으로 갈 것이며 그게 당원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전대룰을 확정하면서 후보들 간 유불리에 관심이 모아진다. 비대위는 지난 7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서 선출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이하 단일지도체제) 개편안에 최종 의결했다. 또한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컷오프(예비경선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논란이 됐던 모바일투표는 결국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지상욱 대변인은 “당 지도체제는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선거를 하고 대표 권한을 강화하지만 ‘공천권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의결했고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컷오프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며 “모바일투표는 의총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고 이견이 있었다. 선거룰은 합의가 안 되면 채택하기 어렵다는 게 비대위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전대룰 결정
누가 유리하나

단일지도체제는 친박계에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상대적으로 후보자 수가 많아 표가 분산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그러나 최근 비박계 후보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면서 어느 한 계파에게만 불리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한 모바일투표가 시행되지 않는 점은 상대적으로 지지층의 연령대가 높은 친박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전대룰에 있어서 서 전 대표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 전 대표 출마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전해진다. 하반기 국회의장이 거의 확정적임에도 당선이 불투명한 전대에 모험을 걸 이유가 있냐는 지적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본 기자와의 대화에서 “자칫 낙선이라도 하게 될 경우, 서 전 대표가 받는 정치적 타격은 클 것”이라며 “괜한 모험이 아닐지 심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판 커진 전대 “신구가 조화롭다”
당선 후 ‘옥석가리기’ 시작할 듯

서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총선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비박계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중이다. 만약 당선되더라도 내년 대선까지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당적이 없으며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국회의장직이 정치 인생의 대미로써 더 나은 선택 아니냐는 해석이다. 또 서 전 대표의 출마가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구태정치’로 비쳐질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실제 서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박근혜정부를 위한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고 정가 관계자들은 말한다.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레임덕의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박근혜정부 입장에서 서 전 대표의 존재는 달가울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에서 있었던 새누리당 의원 전원과의 오찬 이후 “전대 시그널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찬에 참석한 모 의원은 “전대와 관련해 특별히 언급된 것들은 없었다”고 했다.
 

서 전 대표의 당선은 정치 고수들의 ‘킹메이커’ 대전을 불러올 수 있어 흥미롭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의원과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연륜과 경력 면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이다. 만약 서 전 대표가 이에 합류한다면 1940년대 초반 생들의 전성시대가 정치권에서 펼쳐질 것이다(김종인 1940년 7월11일생, 박지원 1942년 6월5일생, 서청원 1943년 4월3일생). 이들은 여느 40, 50대에 뒤지지 않는 활동량을 자랑한다.

정치 고수들의
킹메이커 대전

당선 이후의 행보는 대선 주자들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에 맞설 경쟁자가 마땅히 보이지 않아 당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1년 넘게 남은 대선까지 가기에 반 총장 한 명만으로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서 전 대표의 당선 후 행보는 김무성, 남경필, 오세훈, 유승민, 원희룡 등 여당이 가진 원석들을 만나 반 총장의 경쟁 상대를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더민주 김종인 의원이 최근 박원순·안희정 등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잇따라 접촉하고 있고,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안철수 대표의 상대로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선주자가 많을수록 입지가 확고해지는 킹메이커의 정치적 이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과연 서 전 대표의 큰 그림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유권자들은 이번 전대를 통해 대략적인 스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청원에 맞선 나경원 전략은?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이 전당대회(이하 전대) 출마를 시사했다. 서청원 전 대표의 등판 가능성에 대한 비박계의 응수로 풀이된다. 나 의원은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서 전 대표가 전대에 나온다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할 것”이라며 “친박 핵심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민심에서 그만큼 멀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 의원은 서 전 대표의 총선 책임론을 거론했다. 해당 오찬 자리에서 그는 “서 전 대표는 총선 때 당 최고위원이었다. 총선 패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친박계 최경환 의원의 출마설이 나올 당시 “최 의원이 출마하면 나도 나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도 나 의원은 서 전 대표가 나설 경우 다른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서 전 대표의 낙선을 위해 실력행사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는 서 전 대표의 출마가 본격화될 경우 나 의원의 당대표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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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