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 새누리 당권 전쟁 중간점검

‘친박 vs 비박’ 누가 잡아도 쪼개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권을 두고 후보자간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향방은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앞서의 전대가 기싸움이라면 지금의 전대는 철저한 눈치싸움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이하 전대)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13총선 참패는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을 고취시켰다.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당내에서 들려온다. 누가 당권을 잡느냐는 이런 ‘대선위기론’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요시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전대를 점검해봤다.

대선위기론
전대에 영향

전당대회준비위원회(이하 전준위) 구성을 마친 새누리당은 본격적인 전대체제에 돌입했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이하 혁신비대위)는 앞서 회의에서 오는 8월9일 열리는 전준위 구성을 의결했다. 위원장에는 박명재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그 과정에서 친박-비박은 한차례 격돌했다. 권성동 당시 사무총장의 사퇴를 두고 비박(비 박근혜)계는 “친박(친 박근혜)계가 무리하게 (권 사무총장)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친박계는 “비박계가 모든 걸 친박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권 당시 사무총장이 자진사퇴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불똥은 새로운 곳으로 튀었다. 권 전 사무총장이 자신의 사퇴 조건으로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의 동반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비박계에서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당내 여성 최다선이자 비박계인 나경원 의원은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권 사무총장 사퇴가) 국민의 생각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권 사무총장 사퇴 같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아직도 새누리당이 정신 못 차렸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무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부총장(김태흠 의원)이 대행하는 체제는 맞지 않다”며 “빨리 후임 사무총장을 인선하고 한 달 동안 전대를 잘 치르는 수순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강성으로 분류되는 김 부총장이 전대를 준비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결국 김 부총장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앙금은 남아있었다. 김 부총장은 사퇴를 알리는 입장문을 통해 “내가 부총장직을 유지함으로 전대 준비 과정에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당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부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면서도 “전대 일정, 지도체제 개편 등의 핵심 사안들을 당내 비대위원들 주도로 결정해놓고 모든 것에 친박계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몰고 갔다. 이는 이율배반적”이라고 쏘아붙였다.

권성동·김태흠
동반 사퇴하기로

두 사람의 동반 사퇴로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뇌관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체제’와 ‘모바일 사전투표’가 오는 6일 의총에서 논의될 예정이어서 갈등이 재점화될 여지를 남겨뒀다.

지도체제는 당권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요소다. 현재 비박계는 ‘단일지도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친박계는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집단지도체제는 당대표보다 최고위원회의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시스템이다. 당대표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 4·13 총선을 통해 드러났듯 ‘봉숭아학당’ 식의 파행을 거듭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단일지도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이에 혁신비대위는 단일지도체제를 의결했는데, 친박계는 최근 수용불가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박계는 이런 친박계를 두고 전대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단일지도체제로 전환될 경우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가 분리돼 시행된다. 당원들의 투표권도 1인1표가 된다. 다수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친박계 입장에서는 그만큼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해당 단일지도체제는 이미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 정진석 원내대표,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가 모여 합의를 본 사항이다. 앞서 지난 5월 말 세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의총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정 원내대표가 말을 꺼내자 최 의원은 “맞다. 그거(집단지도체제) 고쳐야 된다. 나도 그거 고치는 것에 찬성”이라고 했고, 김 전 대표도 “그거(집단지도체제) 손 봐야 되겠다. 지금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전준위원장에 박명재 임명전대 가시화
‘단일’이냐 ‘집단’이냐 지도체제 두고 논란

그러나 최근 최 의원을 위시로 친박계에서 입장을 선회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최 의원과 유기준, 홍문종, 정우택, 한선교 의원 등 친박계 중진 5인,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회동을 갖고 현행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최 의원의 당대표 출마가 이러한 공감대를 불러온 핵심요소라고 보고 있다. 즉 최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는 주장이다.

최 의원은 아직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당초 출마가 유력했으나 최근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총선 책임론에 대한 당내 여론이 좋지 못하다는 게 이유다. 최근 사석에서 불출마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러한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고 있어 언제든 출마할 수 있다고 정치권은 내다본다.
 

만약 최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면 기존의 이정현, 이주영 의원과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또한 홍문종 의원이 최근 TBS라디오에 출연해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데 정치인이라는 게 자기가 출마 의사를 갖는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실행에 옮겨지는 건 아니다”라며 “아직 선언을 못하고 있지만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해 구도는 더욱 복잡해졌다.

최경환·홍문종
물밑협상 있었나?

이와 관련해 최 의원과 홍 의원간 진로에 대한 대화가 있었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다시 말해 홍 의원이 당권 도전 의사를 보였으니, 최 의원은 대권 도전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에 최 의원이 홍 의원의 당권을 위해 물밑에서 전폭적 지원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중이다.

비박계도 상황이 복잡해졌다. 앞서 정병국 의원 단일 후보로 의견이 모아지는 듯 했으나, 김용태 의원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 의원은 최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수직적 당청관계를 근본적으로 고치겠다”며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와 당헌·당규를 훼손하는 외부 또는 당내 특정 세력의 자의적 당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당대표 후보군 가운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인사는 김 의원이 처음이었다.

김 의원은 연일 혁신의 메시지를 던지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다. KBS라디오에 출연해 “(권 전 사무총장은) 사실 교체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특정 계파가 당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친박계를 겨냥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 전대에서 당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부터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고 공당으로서의 면모를 복원하는 것, 그것을 혁신의 1호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친박 후보 난립…최경환 시그널 기다리나
기존 정병국에 김용태 가세 “판 커졌다”


비박계 후보군 중 또 다른 한 축인 정병국 의원은 곧 출마를 공식화할 것임을 알렸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 개최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최종 세미나’에 참석한 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전대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돼 있고 뜻도 모아졌다 생각한다”며 “다만 전대 일정과 룰이 확정되는 시점에 이야기하겠다”고 전했다.

김 의원과의 교통정리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정 의원은 “전대는 누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각과 가치관이 같다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해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놨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전 대표가 정 의원의 당선을 위해 전폭적 지원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양상은 최 의원의 지원을 받는 홍 의원과 김 전 대표의 지원을 받는 정 의원간의 양자 구도로 전개될 수 있다.

최근 모바일 사전투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오는 의총에서 해당 투표 도입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계파간 유불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젊은 당원의 투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박계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해석이 많다. 대리투표를 사전에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가가 최대 논쟁거리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에 유리한
모바일 사전투표

그러나 아직까지 친박계가 당 주류라는 측면에서 우세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석수 129석 중 70여석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지난 공천과정에서 비박계 의원들이 상당수 탈락해 원내를 기준으로 보면 비박계가 열세인 게 사실이다.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70여석 중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의 비중이 높아 투표권을 갖는 대의원, 당원들을 끌어 모으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또한 친박계 내에서도 ‘진박 마케팅’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 판세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정부가 임기 말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표심이 미래 권력으로 향할 수도 있다. 결국 당권 후보들이 남은 한 달 동안 어떤 리더십을 보이느냐가 승패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정현 ‘보도 개입’ 논란
“비판 보도 빼 달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때 아닌 복병을 만났다.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KBS 보도에 이 의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전화 통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에 대한 언론단체 입장’이라는 자료에는 이 의원이 김 국장에게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 “하필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KBS를 봤으니, 내용을 바꿔 달라”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이 의원의 당권 행보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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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