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친노 끌어안기' 플랜 실체

청와대·JP까지 나서는데 아니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선에 나올까요?” 그의 출마 여부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이 불붙었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던 앞선 사례들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좀처럼 방한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반 총장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최근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과 만남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일요시사>는 분명해지고 있는 그의 권력 의지를 진단해봤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남은 임기를 생각해본다면 총장의 지위로는 마지막 모국 방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반 총장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대망론’을 넘어 ‘조기 등판론’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출마는 기정사실이고 그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이전 대망론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반 총장이 보여주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출마를 선언한 사람과 진배없다.

이전과는 다른
반기문 행보

반 총장은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을 초청해 좌담을 가졌다. 그의 발언 중 특히 4가지 부분이 주목받았다. 첫 번째는 ‘내년 1월1일’이라는 발언, 두 번째는 국내 정치권에 대한 비판, 세 번째는 북한과의 관계에서의 역할론, 네 번째는 나이와 체력에 대한 어필이다.

반 총장은 대권 도전 질문을 받자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했으니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며 “내년 1월1일이면 유엔 여권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나를 그때 결심하겠다.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국내 정치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반 총장은 “아주 좁은 커뮤니티 인터레스트(community interest), 파티 인터레스트(party interest) 등을 갖고 (정치를) 하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다”라고 평가했다. 여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파 갈등에 대해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남북 간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 간에 그래도 유일 대화채널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내가 유일한 것 아닌가”라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출국 후에도 계속되는 ‘반기문 대망론’
이해찬과 회동 불발, 친노·부산 노렸나

나이와 체력을 우려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언급한 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모두 70대라는 사실을 거론했다(반 총장 72세, 힐러리 클린턴 후보 70세, 빌 샌더스 후보 76세).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직설 화법에 정치권은 놀랐다. 앞서 지난해 4월경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며 “은퇴 후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손자, 손녀를 돌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난해 5월경 송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나를 대선 주자 여론조사 대상에서 빼달라”고 말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스스로 ‘권력 의지’를 내비쳤다는 게 중론이다.

시간이 2주나 흘렀음에도 여파는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사라졌던 권력 의지가 이번에는 영속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뉴욕으로 돌아간 후 국내 언론에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이해찬 의원과의 만남 소식이 전해졌다. 대상이 친노계 좌장이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가 커 보였다. 더욱이 반 총장 측에서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고 전해지면서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화해의 제스처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계산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화해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반 총장이 노무현정부 시절 인사와 만나는 것이 취임 이후 9년 만이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멀어진 관계 회복에 방점을 뒀다는 해석이다.


“내년 1월1일
결정하겠다”

알려진 것처럼 반 총장은 노무현정부 시절 외교부장관을 역임했었다. 또한 그의 재임 기간인 지난 2006년 총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의원은 반 총장이 유엔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반 총장과 이 의원의 관계 또한 멀어졌고 이후 반 총장이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더욱 안 좋아졌다. 때문에 퇴임을 앞두고 반 총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 총장이 이 의원을 만나려 한데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 대권 행보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방한 당시 김종필(JP) 전 총리를 만나 충청대망론을 키우고, 안동을 방문해 TK 민심을 확인한 반 총장이 이번엔 친노계와 부산 민심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몇 가지 점에서 근거가 존재한다. 이 의원 측에서 먼저 만남을 취소했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이 의원의 미국 방문을 주관한 노무현재단은 지난 8일, “이 의원은 반 총장과의 면담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재단 측은 “당초 비공개 일정으로 차 한 잔 하기로 한 만남의 성격이 변화 돼 최종적으로 면담을 취소키로 결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단 측은 면담 일정이 먼저 언론에 공개됐다는 점, 반 총장이 먼저 만남을 제안했음에도 사실과 다르게 이 의원이 먼저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간 점, 그리고 반 총장 측에서 면담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온 점을 들어 만남의 성격이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이 이번 만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장외 설전’도 면담이 무산되는 데 일조했다. 이 의원은 면담이 취소되기 전인 지난 5일 재미 동포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외교관은 국내 정치와 캐릭터가 안 맞다”며 “갈등이 심한 정치에 외교관 캐릭터는 맞지 않다.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 건너가야 하는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너간다”고 지적했다. 다분히 반 총장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반기문-이해찬
장외 논쟁 발발

이어서 이 의원은 “그동안 외교관을 많이 봐왔지만,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며 “(외교관들은) 외교 차원의 정치는 하지만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외교 이외의 영역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깊지 않다. (반 총장도) 국내 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세간에서 도는 반기문 대망론을 평가 절하했다. 외교관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그는 “반 총장을 야권 (대선) 후보로 생각하는 야당은 없는 것 같다”고 쐐기를 박았다. 반 총장을 여당 대선주자로 한정시키는 발언이었다.

반기문 측은 즉시 불쾌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반 총장의 측근들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외교관들이 국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반 총장 만큼의 지위에 올라간 외교관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만남 이전에 나온 발언치고 수위가 높았다는 말도 나왔다. 장외 논쟁이 발발한 후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반 총장과 이 의원의 만남은 한국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 나왔고 결국 노무현재단은 면담을 거절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최고위원은 면담 무산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반 총장의 광폭 행보에 이 의원이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이 최고위원은 “반 총장은 노무현정권이 애써 배출한 사무총장이다. 그러니 노무현정권 사람들 입장에선 반 총장이 새누리당으로 가버리니 ‘월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그는 반 총장이 JP를 예방한 것과 관련해 “지난 방한 기간 보여준 행보는 완전히 정치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기가 막혀” 친박 후보 프레임에 발끈
청와대 개각설에 충청-TK 연대설 솔솔

또한 반 총장은 최근 자신을 두고 친박 후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만남에 어떤 노림수가 숨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중이다. 계파를 초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친박계에서 반 총장을 원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친박계 핵심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최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이를 분명히 했다. 그는 반 총장과 이 의원 간 만남에 대해 “많은 분들이 그(반 총장)가 (대권) 플랜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냐”며 “아마 출마 의지를 상당히 굳혀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상수란 말씀도 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홍 의원은 반 총장 출마에 대해 “변수 아닌 상수”라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은 친박계 후보설에 선을 긋고 있다. 앞서 관훈 클럽에서 ‘반 총장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홍 의원이 주장하고 다닌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나는 홍 의원을 알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전화 한 통화 한적 없다”고 답했다. ‘친박 후보설’에 대해선 “너무 확대 해석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일이 기가 막히다”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선 “박 대통령을 자주 만나냐고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그랬고 어느 대통령이건 다 만났다”며 “(박 대통령을) 7번 만났다고 하는데 다 공개된 장소이고, 회의가 있어서 가니 사진이 찍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친박 후보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친박 후보설
적극 차단


또 다른 노림수로 부산 민심을 잡으려는 시도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새누리당은 부산 민심이 돌아서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부산 지역 5석을 야당에 내주면서 심상치 않은 야풍이 불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대권을 잡기 위해선 부산 민심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과 맞물려 반 총장이 이 의원과의 만남을 진행했을 것이란 관측이 전해진다.

청와대가 수석비서진을 개편하면서 충청대망론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김재원 정무수석을 새로운 당청 소통 창구로 임명했다. 김 수석은 이완구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내며 충청대망론을 지척의 거리에서 지켜보는 등 충청과 정치적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 지역 의원이면서 친박계 인사인 이장우(대전 동구), 김태흠(충남 보령 서천)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김 수석과 함께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임명된 것도 결국 충청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이 실장은 충북 제천 출신이다. 그 외 김용승 교육문화수석(대구), 이준원 농림부차관(충남 아산)과 이정섭 환경부차관(충남 보령) 등 충청·TK 출신들이 두루 기용됐다.

이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 ‘충청·TK’가 힘을 합친다는 ‘충청-TK 연대설’이 정치권에 제기되고 있다. 오는 9월을 기점으로 청와대가 개각에 나설 수 있는데 이번 수석비서진 개편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는 곧 반기문 대망론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반 총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출입기자단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선 출마와 관련해 “사무총장으로서 임기 마지막까지 저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을 것이다”고 말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사무총장 업무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비판은 지나치고 불합리하다”고 셀프 변호했다. 그러나 같은 날 JP는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반 총장이) 단단히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고 말해 엇박자를 보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 구성 승패 공방
새누리 승? “남의 떡이 커”

상임위 배분 결과를 두고 과연 승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정치권에 던져졌다. 일각에서는 실리를 챙긴 새누리당의 승리라고 진단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국회의장을 가져간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가 이겼다고 분석한다.

새누리당은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비록 당초 밀어붙였던 국회의장직은 사수하지 못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와 성과가 크다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있었던 새누리당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필요한 상임위는 빼놓지 않고 지켜냈다”며 “책임을 지는 보수정당, 집권여당으로서 확실히 가치를 지켜야 될 상임위들은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특히 법사위와 미방위를 가져온 것에 대해 “나름대로 큰 소득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법사위는 사실상의 상원으로 통하며 상임위의 꽃으로 불린다. 앞으로 국회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은 해당 상임위를 거치게 된다. 미방위는 내년에 있을 종편 심사 등 중요 쟁점 사항이 발발할 수 있는 지점이다.

새누리당이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에 더민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CBS라디오에 출연한 우상호 원내대표는 주요 상임위를 새누리당에 내줬다는 평가에 대해 “남이 가진 떡이 크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 상임위는 원래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가지고 있었다”며 “의장까지 양보받은 입장에서 상임위원장 한 두 석 때문에 국회를 공전시킬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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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