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발 정계개편 시나리오

기존판 뒤흔들 새로운 카드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새누리당이 계파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야권발 정계개편 움직임이 포착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오르고 국민의당이 정계개편에 성공해 원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정계개편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상황. 야권에 기존 판을 뒤흔들 새로운 카드가 등장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지난 4·13 총선에서 분출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담아낼 그릇에 금이 갔다”며 “새 그릇을 만들기 위한 정치권의 각성과 헌신, 또 진정한 노력을 담아내는 새판이 짜여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정 주도할
새판을 짠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광주 5·18묘역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에 참석해 “5·18의 뜻은 각성의 시작이자, 분노와 심판의 시작, 또 용서와 화해의 시작”이라며 “지금 국민들이 모든 것을 녹여내는 ‘새판짜기’를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 들어 새 그릇, 새판 등을 언급하면서 독자세력화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손 전 고문이 당적을 두고 있는 더민주는 일단 그의 당 복귀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환영한다는 입장를 밝혔고, 능력 있고 소중한 인재라고 평가했다.

그와 함께 5·18묘역을 참배했던 더민주 이개호 의원도 손 전 고문의 복귀에 대해 “그분께서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우리 당에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고 또 우리 당에서 그 분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손 전 고문에 힘을 실어줬다.


더민주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라는 강력한 대선주자 곁에 손 전 고문과 같은 건전한 경쟁자가 많아야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당 안팎에서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에 대해 비판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손 전 고문이 총선 전 더민주의 지원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계복귀 자체에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또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을 차지한 상황에서 뒤늦게 숟가락을 올리려 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울러 지난 2014년 7월30일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은퇴를 했고, 총선이 일단락 됐기 때문에 정계개편의 동력으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슬슬 움직이는 손학규
흐름 주도하는 박지원

타당에서도 손 전 고문 행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의 복귀 타이밍이 늦었다고 본다”며 “복귀할 생각이 있었다면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기 전에 정계복귀해서 정리를 했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학규-문재인-천정배가 당내에서 존재감을 보였다면 안 대표는 혼자서 탈당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손 전 고문의 독자세력화에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손 전 고문은 독자 세력화에 나설 만한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성품이 훌륭하기는 한데 그래서 자기 계파를 요란하게 챙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손 전 고문이 세력화에 나설 경우 더민주나 국민의당을 탈당해 따라나설 인사가 별로 없을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김 대표가 8월 말∼9월 초 임기가 끝나는 점과 그가 문 전 대표와 함께 갈 생각이 없는 점에 비춰볼 때 손 전 상임고문을 끌어들여 당내에서 2012년 대선 경선의 리턴매치 국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당시 손 전 상임고문은 문 전 대표에 뒤진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친노(친 노무현)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당내 손 전 고문의 측근을 비롯한 비노(비 노무현) 의원들이 똘똘 뭉친다 해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손 전 고문은 국민의당에 와서 안 대표와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래도 안 대표는 친노와 달리 열린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손 전 고문의 정계개편 움직임과 관련해 ‘손학규 영입론’이 제기되고 있다.

“함께 하자”
손에 러브콜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손 전 고문)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정치에 기여할 바가 있을지 모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새판짜기에 대해서도 “정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박 원대대표는 정계개편 정국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 손학규 전 고문, 합리적인 새누리당 비박(비 박근혜)계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 박 원내대표는 “우리는 안 대표가 이미 말한대로 열린 정당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분들 같으면 함께 해서 판을 키워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호남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국민의당이 단독집권을 위해서 본격적 세 불리기에 나선 셈이다. 또한 정의화 전 의장이 창당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이고 손 전 고문도 새판짜기를 언급했기 때문에 이 둘의 세력을 국민의당이 흡수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계개편 정국에서 국민의당 안 대표도 박 원내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이미 정계개편을 통해 원내 제3당에 오른 안 대표 입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정계개편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안 대표는 5·18 기념식에 앞서 가진 지역언론사 대표들과 조찬간담회서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없다”고 못박았다.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안 대표는 다만 새누리당에서 합리적인 성향의 인사가 온다면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대표는 광주에 이어 전남 고흥의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때 편가르고 정치공학적으로 뭔가를 더 얻겠다고 하면 안 된다"며 "정당을 만들 때부터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와 함께 합리적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전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뽑는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는 등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간 내홍이 확산된 상황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외연확장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손 전 고문의 정계개편 논의가 수면에 떠오르면서 야권내 차기 대권 후보자들도 대권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충남지역 20대 총선 당선인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대의 요구가 있을 때 준비가 안 된 건 군대조직으로 치면 장수의 문제이고,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는 건 가장 큰 죄”라며 대권 도전의지를 내비쳤다.

안 지사는 또 “지난번 도지사 선거 때도 열심히 준비하고 실력을 쌓아 기회가 되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겠다고 약속 드렸었다”며 지금도 같은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안 지사가 확정적으로 대권 도전을 하겠다는 의사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언 중 ‘부름에 응답’ ‘정치 지도자’ ‘슛을 쏘겠다’ 등을 해석하면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안 지사는 손 전고문이 “새 판을 짜겠다”며 최근 잇달아 정계 복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굳게 입을 닫았다. 정계개편 구도와 관련한 기자들의 잇단 질문에도 “지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정계에서는 안 지사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인적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차기 대선의 돌풍의 핵이 될 수도있다는 평가다. 다음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나와야 한다는 이른바 ‘충청대망론’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안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대선 앞두고
잠룡들 시동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친노계인 만큼 문 전 대표의 대선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그것은 잘못된 분석 같다”며 “문재인은 문재인, 안희정은 안희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두분이 같은 가문은 맞지만 한 가문에서 한 명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4·13 총선 이후 더민주 내 대권 잠룡인 박원순 시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데 이런 박 시장이 본격적인 ‘호남 챙기기’에 나선 모습도 대권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12일 광주에서 “광주는 늘 내 생각의 뿌리이자 가치관이었다”며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 나도 뒤로 숨지 않겠다”라고 말해 호남 챙기기와 더불어 대권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최근에는 박근혜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24일 국회서 “11년째 국민소득은 2만 달러대로 정체되고 창조경제를 내걸었던 박근혜정부에서조차 성장 동력은 식어버린 상황”이라며 “일자리 문제도 중앙집권적인 성장고용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최근 일련의 광폭행보가 야권 내 잠룡들의 급부상과 연관됐다고 분석한다. 총선 결과 친노계로 분류되는 ‘안희정계’의 상당수가 국회에 입성해 안 지사는 물론 문 전 대표의 입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에 박 시장은 지자체장이라는 핸디캡으로 총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기 어려웠고 ‘박원순계’가 대거 낙선하면서 대권행보에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시큰둥한 안희정
광폭행보 시작한 박원순

최근 박 시장의 행보에 대해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바로 대권 행보로 이어진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 박 시장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서울시민의 안녕과 생활에 더 보탬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국회의원 선거 때는 직책 때문에 역할이 제한됐지만 원래 서울시장은 행정가이면서 정치가”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도 견제구를 날리면서 여야 가리지 않고 대권주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박 시장은 25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유엔 결의문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여러 나라의 기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원국은 사무총장에게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 되며 사무총장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의문 대로한다면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 시장은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및 간부로서 여러 국가의 비밀 정보를 많이 알게 되지 않았나”라며 “그런데 특정 국가의 공직자가 되면 이를 활용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이 있어 직책의 공정성 담보하고자 (이러한 결의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박 시장은 야권 잠룡들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최근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가 “더민주는 이미 문재인 대표로 다 정해져있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 “그런 절차가 있었나”라며 “정치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최종의 심판자 국민이 보고 알고 계신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5월 이후 정계개편 화두를 던지면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손 전 고문에 대해서는 “총선이 지금 얼마 전에 끝났는데 갑자기 정계개편이 될 리 없다”라며 “모든 일은 국민이 결정하는 바”라고 말했다.

불안한 중진들
여기저기 견제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선 이후 정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 정계개편 예선전이 펼치고 있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서야 정계개편이 실현되겠지만 어느 정당이든 민생경제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할 때야 비로소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거론되는 개헌론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가에서 개헌론이 떠오르고 있다. 개헌론은 1987년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헌론의 핵심 주장은 87년 때 제정된 헌법이 오늘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헌론은 대통령의 임기, 선출 방식, 내각제, 양원제 등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판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개헌론은 1997년 ‘DJP연합’이 내각제 카드로 뭉쳤지만 대선이후 각종 논란 속에 무산됐다.

김대중 정부 4년 임기 대통령 중임제를 공론화 했었고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주기가 맞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개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로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분권형 개헌론’을 제기했지만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자 철회했다.

최근에는 결선투표제를 둘러싸고 야권 곳곳에서 개헌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 25일 퇴임한 정의화 전 의장도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개헌논의부터 해야한다”며 “낡은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의 틀 역시 바꿔야 한다.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라고 주장했다. 개헌론은 매번 정치권에 주요 쟁점 사항으로 떠오르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 속에 국면전환용에 머물렀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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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