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문재인 동상이몽 내막

시한부 관계…불편한 동거 언제까지?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는 정권교체의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주체'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선이 1년 6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이 둘의 불편한 공생관계는 과연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지난 3일 김 전 대표는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북 민심이 신뢰할 수 있는 대선 주자를 준비해야 한다”며 “다수의 대선 주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대선 후보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는 더민주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주체에 대해서는 단정짓지 않았다.

편치 않은 둘
당내 갈등 심화

김 대표는 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를 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 속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민주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전북 1석, 전남 2석에 그쳐 호남에 철저히 외면 받았다. 지난달 8일, 문 전 대표가 “호남에서 지지를 거두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김 대표의 전북에서의 발언은 문 전 대표까지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 “호남 민심이 더 나빠진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호남 유세를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총선 승리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라는 것이 호남의 절대적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후 총선 결과를 놓고 김 대표의 셀프공천으로 인한 호남 참패라는 이른바 ‘김종인 책임론’이 친노 진영에서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 간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됐다. 이후 김 대표가 문 전 대표를 흔드는 이유는 총선 과정에서의 앙금이 남아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총선 이후에 독대 자리에서 김 대표의 거취를 놓고 수시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지난 4·13 총선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계속 대표를 맡도록 하는 이른바 ‘합의추대론’이 거론됐지만 당내에서 민주적 정당의 모습에 맞지 않다는 비판론이 일면서 차갑게 식었다. 이에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문 전 대표가 ‘합의추대론’과는 정면 배치되는 당 대표 경선에 나설 것을 권유하면서 김 대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지날 달 22일 배석자 없이 만난 회동에서 발언 내용이 각자 엇갈리면서 진실공방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4일 당 대표 대신 수권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는 문 전 대표 측의 주장을 언론플레이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문 전 대표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총선 후 책임 공방…당권 놓고 입씨름
전대 앞두고 갈등 가능성 높다는 분석

이후 김 대표는 “낭떠러지에서 구해놨더니 문 전 대표와 친문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엉뚱한 생각을 한다”라며 자신의 거취에 대한 불쾌감도 함께 드러냈다. 당내 세력이 부족한 김 대표 입장에서는 합의추대를 이끌어내 당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 했지만 문 전 대표의 반발에 막힌 모양새다.

또한 당내서는 김 대표 체제를 빠르게 종식시키는 ‘조기전대론’이 떠오르면서 김 대표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반면에 김 대표 측에서 ‘전대연기론’을 들고 나오면서 비대위 체제를 연장시키고자 했다. 전대가 연기되면 자연스럽게 김 대표는 정기 국회가 끝나는 12월까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노·친문직계로 분류되는 홍영표 의원은 지난달 27일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 체제는 과도기적 체제이고, 임시적으로 했기 때문에 이제 정상화하는 것이 맞다”며 “여러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비대위 체제를) 연장하자는 건 당내 또 다른 갈등과 분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해 김 대표를 압박했다.

더민주는 지난 3일 당선인·핵심당직자 연석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전대를 오는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 열기로 결정했다. 김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된 모습이다. 또한 조기전대론과 전대연기론의 절충안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밖에 당무위원회 회의에서 경제비상대책기구를 설치하기로 하고 김 대표에게 구성 권한을 위임키로해 김 대표의 체면을 세워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절충안은 친노계가 다시 한 번 친노 패권주의로 흐를 경우의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앞으로 김 대표 체제가 약 4개월간 유지되면서 내년에 있을 대권에도 적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직을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김 대표가 임명하게 되면 대권 판도에 악영향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친문계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핵심 요직
김 대표 손으로

지난 11일 김 대표는 당 정책위의장에 변재일 의원을 임명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내비쳤다.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 사무총장과 함께 당 3역으로 불리는 요직이다. 이렇기 때문에 문 전 대표를 대권 후보로 내세우려는 친문계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변재일 신임 정책위의장은 중도온건 노선으로 계파색도 옅어 당내 거부감이 크지는 않다. 친문계에서는 변 의장이 4선의 중진이고 정책위의장과 민주정책연구원장 등 정책 분야를 두루 역임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치고 받고…
화합은 없다?

김 대표는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의 후임에 대한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민주정책연구원장은 대선 전략을 기획하는 주요 기관으로 당내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현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의 임기는 오는 8월7일까지다. 때문에 8월말에서 9월 초까지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권을 쥐고 있을 김 대표가 2년 임기의 민주정책연구원장을 임명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물러나는 당 대표가 요직을 인선하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일단 더민주가 전대 일정을 잡고 김 대표의 입지를 확인시켜줬기 때문에 김 대표도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 대표가 4개월 뒤 당 대표에 물러나 당내 경제비상대책위원회를 맡기로 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내 주류에게 패권이 넘어가는 상황도 예측 가능하다. 어찌됐건 문 전 대표가 친문계를 앞세워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가 문 전 대표를 압박할 카드는 손학규 전 고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김 대표와 손 전 고문이 ‘전략적제휴’를 한다면 손 전 고문의 복귀 시점이 앞당겨 질 전망이다. 또한 전당대회를 4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김 대표와 야당 내 거물인 손 전 고문의 제휴는 친노·친문을 견제할 가장 현실성 있는 대항마라고 볼 수 있다. 더민주 전체 123석 중 손 전 고문계로 분류되는 인물은 20여명에 달한다. 친노·친문계에 이어 두 번째 큰 규모다.

김, 손학규와 손잡고 문 치나?
뜨는 우상호 역할론…불편한 김

현 비대위 체제에서 8명의 비대위원 중 4명은 손학규계다. 김 대표가 비대위 2기 인선을 하면서 손학규계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손학규계와 손을 잡고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손 전 고문에 대한 김 대표의 평가도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도개혁 성향에 호남 민심이 우호적이라는 측면에서다. 김 대표가 지난 2013년 손 전 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송년아카데미 강연자로 참석한 바가 있을 정도로 둘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문 전 대표의 의중이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를 적절한 시점에서 2선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성공시켰다. 이제 본인이 해결해야 할 것은 야권 내 대권주자를 견제하는 것과 호남에서 지지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4월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문 전 대표는 총선 다음날인 지난달 14일 “호남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며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호남의 지지가 없이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계은퇴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소통·대화 부족
전기 마련될 수도

이후 5월 들어 칩거에 들어간 문 전 대표는 호남 민심 잡기에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전주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천이두 전 원광대 교수를 병문하면서 총선 후 두 번째 호남방문을 시작했다. 천 교수는 호남 문단의 원로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승수 전주시장을 다음날에는 군산·익산 일대를 순회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이번 방문에 대해 “예전부터 미뤄온 개인적 일정 때문에 전북에 온 김에 다른 일정도 함께 소화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호남 민심 달래기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한편 우상호 의원이 지난 4일, 신임 원내대표에 오르면서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사이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86그룹(19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대표격으로 범친노·친문계로 분류되는 인사다.

앞서 김 대표가 줄곧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표면상 둘의 관계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와 선을 그은 상황에서 우 원내대표가 문 전 대표를 대놓고 지원할 경우 친노 패권주의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우 원내대표 당선을 두고 “호흡이 안 맞는 사람이 어딨나”며 짧게 답했다. 우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가지 당 관련 보도를 보면 당내 지도자 사이에 소통과 대화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든다”면서 “소통이 내 전공분야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사이에서 내가 중재를 시도해보겠다”고 말했다.

우 원내 대표의 의지에 따라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사이에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김 대표의 전략적 제휴자로 꼽히는 손 전 고문도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는 18일 제36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그 다음날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또 손 전 상임고문은 오는 7월 창립 10주년을 맞은 동아시아미래재단 행사 등 각종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8∼9월에 예정된 전대를 앞두고 정계 복귀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만약 손 전 고문이 전대를 앞두고 정계 복귀를 한다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김 대표와 친문계의 수장인 문 전 대표간 알력 다툼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매년 5·18만 되면…
또 ‘임을 위한 행진곡’논란

5·18 광주민주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또 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야당이 기념자 제정, 제창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에 보훈처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12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11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이 문제를 말했고 13일 청와대 회동에서도 대통령께 말씀을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 수석부대표도 방송 인터뷰에서 “기념곡 지정 문제는 여야가 합의해 (지정촉구 결의안을) 의결까지 했는데 정부가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국회에 대한 존중의 모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념곡 지정을 미루는 정부에 대해 여권에서는 국정조사까지 언급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하태경의원은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훈처가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잇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기념곡 지정 문제는) 나의 선을 넘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훈>
 

<기사 속 기사> 본회의장 자리 재배치 득과 실
섞어 앉다 보면 친해진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본회의장 자리배치 변화를 제안했다. 정 원내대표은 지난 9일 “과거처럼 여야가 나뉜 벽돌 구조로 갈 게 아니라 여야가 섞여서 실질적으로 바로 소통하고대화할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좌석 재배치를 제안했다.

지금 까지 국회 본회의장 의석은 제1당이 중앙을 차지하고 제2당이 1제당의 오른쪽, 그 외 소수 정당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했다. 정 원내대표는 소속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앉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수(選數)에 따른 의석 배치의 변화도 제안했다. 앞쪽부터 초선, 재선, 다선의원 순으로 앉았던 구조를 손 본다는 의도다. 좌석에 당색의 구분이 사라지면 원내지도부가 의원들을 상대로 지시를 내리기 어렵고, 당론 투표도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정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섞여 앉으면 가뜩이나 서로 색이 다른 새누리당 의원들을 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며 "좋은 아이디어지만 막상 하다보면 (정 원내대표가) 후회하실 것이다. 나중에 좀 해봐야겠다"고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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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