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새누리당' 여권발 정계 개편 시나리오

갈라선 친박-비박 분당이냐 창당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제 갈라서는 일만 남은 걸까. 친박-비박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지 오래다. 전국위를 무산시킨 친박계의 움직임에 비박계는 혀를 내두르는 상황인 반면, 친박계는 비박계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성토한다. 이래서 내년 대선까지 함께 갈 수 있겠냐는 성토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지사. 한 지붕 아래서 원수가 되어버린 두 계파의 이야기를 <일요시사>가 담아봤다.

“새누리당은 노답입니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의 이 넋두리는 작금의 당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위시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통해 총선 동안 빚어진 계파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비대위·혁신위 추인을 위한 전국위가 열리는 날, 대다수의 친박계 인사들은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비박계는 즉시 친박계를 겨냥하고 나섰다.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한지붕 아래
원수로 으르렁

앞서 17일 새누리당은 제4차 전국위 개최를 예고했다.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의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1시간가량 지연된 전국위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상임전국위원 52명 중 20명도 채 참석하지 않아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국위가 무산되자 회의장에서는 “그러니까 새누리당이 욕먹지!” “이게 뭐냐! 국민들 앞에 부끄럽지도 않나”라는 당원들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현장에 있던 비박계 참석자들은 즉시 친박계를 비난했다. 전국위를 무산시키기 위해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무산 직후 정 원내대표 측에서는 “친박계의 자폭 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는 성토가 나왔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동네 양아치들도 아니고… 아무 명분이 없다. 이런 패거리 집단에 있어야 되나”라며 친박계 인사들에 대해 맹비난했다.

당일 혁신위원장 추인을 받을 예정이었던 비박 인사 김용태 의원은 전국위가 무산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지난 17일) 전국위가 무산됐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나의 거취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국민과 당원께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지난 이틀간 우리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세 번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은혜를 주신 국민과 당원들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 나는 혁신위원장을 사퇴한다. 국민에게 무릎을 꿇을지언정 그들(친박계)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이혜훈 비대위 내정자는 참담한 심정과 동시에 친박계를 향해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무산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이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빠졌다”며 “(새누리당이) 바뀌지 않으면 정권을 주지 않겠다고 (국민이) 강력히 경고했는데 이를 무시한 채 한 달이 지났다. 국민들이 다시 저희를 기다려주실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 내정자는 전국위가 무산된 이유를 ‘계파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제(지난 16일) ‘친박계가 누구(정 원내대표)를 밀어줬는데 왜 (비대위원 자리를) 우리한테 하나도 안 주냐’며 (친박계 초·재선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 내정자의 말처럼 친박계 초·재선 의원 20명은 전국위가 열리기 전날 ‘정직석 비대위·김용태 혁신위’ 출범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비대위·혁신위의 인적 구성이 비박계에 치우쳐 있다고 진단한 그들이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김선동·김태흠·박대출·이완영·이장우 의원 등은 모두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성명서를 발표한 현장에서 김태흠 의원은 “계파 갈등의 부정적 인식을 씻을 수 있는 중립적인, 당내 인사가 아닌 외부인사 중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일부 비대위원은 총선 과정에서 실무 책임을 맡아 공천 파동의 책임을 면키 어려운 분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장우 의원은 “당내 의견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인선했다는 데 문제가 있고, 그동안 당내서 편향적 시각으로 일부 계파에 앞장섰던 사람을 중심으로 했다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TK-PK 충돌
주도권 쟁탈

이들의 성토는 친무(친 김무성)계와 친유(친 유승민)계가 비대위원이 되는 것에 대한 작심발언이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이번 비대위 인선에서 정 원내대표는 친무계로 분류되는 김영우 의원과 친유계인 김세연·이혜훈 의원 등을 내정했다. 앞서 김 의원이 말한 ‘공천파동’과 이 의원이 말한 ‘일부 계파’는 결국 김무성·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말이란 해석이다.
 

이장우 의원은 같은 날 CBS라디오에서 “지난 총선 패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지만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당을 총 지휘한 당 대표”라며 “당 대표의 최측근들이 대거 (비대위에) 배치됐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총선에 정무적인 판단을 잘못해서 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선거 승리를 이끌지 못한 모든 책임은 당대표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해 김 전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총선 참패 정신 못차리고…"네탓" 공방
전국위 무산 결국 김용태 혁신위 사퇴

그렇다면 친박계는 왜 출범도 하지 않은 비대위·혁신위 행보를 우려하고 나선 것일까. 전국위 무산이라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비박계를 압박한 이유는 앞서 정 원내대표와 내정된 비대위원들이 ‘당 정체성’에 위배되는 말들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정 원내대표는 비박계 인사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해당 비대위는 회의를 통해 유승민 의원 등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필요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를 마친 비대위원들은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유 의원을 포함한 무소속 당선자들에 대한 복당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된다”고 일제히 말했다.

이러한 부분이 당 정체성을 현저히 훼손했다는 게 친박계의 주장이다. 전국위를 무산시킨 후 친박계 의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총선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친박계가 주장하는 ‘당 정체성’은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을 비춰봤을 때 친박계는 정 원내대표와 그가 내정한 비대위원들이 해당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분당 불가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새누리당이 ‘정신적 분당’을 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공천 막바지에 유승민 의원에 대한 배제 압박이 한창일 당시, 친박계 내에서는 “의석수가 줄더라도 정체성이 통일된 당이 돼야 박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연장선에서 지금의 122석보다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통제 가능한 당을 만들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늦춰야 한다는 논리까지 온 셈이다.

길잃은 새누리
새판짜기 시작?

최근 강성 발언을 내고 있는 김태흠 의원은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난다”며 “정당은 이념이나 목표의 방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 대목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결국 비대위·혁신위를 무산시킨 친박계는 정 원내대표 사퇴카드를 들고 나왔다. 김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내 본인의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한 본인(정 원내대표)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 사퇴를 말하는 데는 친박계의 배신감도 한몫한다. 알려진 것처럼 정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지지를 업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그럼에도 친박계를 비대위 인선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이다. 정가에서는 과거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오버랩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정 원내대표는 사퇴 압박에 한때 칩거에 들어갔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던 그는 KTX로 귀경 도중 지역구인 공주서 돌연 하차했다.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그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집권 여당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큰 충격을 받았다”며 “전국위 무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구가 안 보인다”
심화되는 계파 갈등

친박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 원내대표는 반면, 비박계에게는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원내대표단을 친박계 인사 위주로 뽑았다며 ‘친박계의 새로운 하수인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를 털어내고 입장을 같이 하는 모습이다.

비박계 중진 정병국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새누리당의 주인이 누군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위임받은 사람들이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청산의 대상,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원내대표를 누가 지명하거나 임명을 했나. 몇몇 사람들이 그런 소리(정 원내대표 사퇴)를 한다고 해서, 또 어떤 세력(친박계)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독려했다.

친박-비박의 끝을 알 수 없는 갈등의 이면에는 과거 3당 합당 때 있었던 TK·PK의 정서 충돌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즉 갈등의 기저에서 TK를 중심으로 한 패권주의와 PK의 민주화 정서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의 모체는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민자당)이다. 합당 당시 민자당에는 크게 민주정의계(민정), 통일민주계(민주), 신민주공화계(공화)의 3개의 계파가 생겨났다. 당이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지속·발전하면서 이들 계파도 함께 명맥을 이어왔다. 즉 지금의 친박-비박이란 계파 속에도 민정·민주·공화계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비박계 내에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PK 세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 대표적으로 김무성 전 대표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이 공화·TK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와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것이 지금의 계파 갈등이라고 정가는 관측한다.

과거를 보면
답이 보인다

갈등의 원천은 단순히 TK·PK라는 지역 기반이 아니다. 이들은 정서 상 큰 차이를 보인다. ‘부마항쟁’에서 알 수 있듯 PK 인사들에는 야성이 있다. 그런데 공화·TK가 패권주의를 내세우며 당을 지배하려 들자 반기를 든 것이란 해석이다. PK 인사들이 TK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익명의 새누리당 관계자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TK·PK 갈등에 대해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 앙금이 남아있을 수 있다”며 “TK가 워낙 수구 쪽으로 가니 (PK에서) 정서적인 반감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용태의 작심발언

제4차 새누리당 전국위원회가 무산되자 혁신위원장에서 자진 사퇴한 김용태 의원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그는 성경 시편 1장 1-6절을 인용해 친박계를 비판하고 나섰는데, 이들을 사실상 ‘악’으로 규정한 모습이다.

그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라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적었다.

이어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덧붙였다. 자진사퇴를 밝힌지 하루 만에 올라온 글이라는 점에서 친박계를 직접 겨냥한 맹비난으로 보인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