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친박계 배후조종설’ 진상

제2의 이한구? 드러나는 '친박본색'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와 친박(친 박근혜)계의 공조가 심상치 않다. 소통과 화합을 전면에 내건 정 원내대표는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때마다 친박계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이에 정 원내대표의 행보가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과 닮아간다는 평도 정치권에서 들려온다. 체질 개선에 나서도 부족한 시간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친박 패권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정치권 전문가들은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갈등을 보였지만 두 계파 모두 ‘정권 재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했다는 측면에서 패권주의로 단정 짓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계파의 이익만을 쫓는 모습이 친박계 내에서 보여 패권주의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지도부로 선출된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진석-이한구
완벽한 닮은꼴

정 원내대표는 부인한다. 최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친박계 핵심이 정 원내대표에게 입김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며 질문하자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그는 당내에서 친박계로 통한다. 정 원내대표 자신도 이를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다. 취임 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전원이 친박이 되어야 한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에 당의 운영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 가소롭다”고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 공천권을 행사했던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과 닮아있다는 게 당내 시선이다. 이 전 위원장 역시 자신이 친박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치면서도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공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해당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천이 한창 진행 중이던 날 당사로 출근하는 길에 누군가와 통화하며 “저 남구(지역)에 그러면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기준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요. 예. 실망 안 시킬 테니까”라고 말해 배후 세력을 의심케 했다.

공관위원이었던 홍문표 의원은 언론에 “(이한구 위원장이) 회의를 하다가도 갑자기 무슨 연락을 받거나 자기 생각이 뭐가 있다 싶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그만입니다’라고 (회의를) 그만뒀다”고 말해 의혹을 제기했다. 배후 의혹은 공천 중 이 전 위원장이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서울 모처의 호텔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더욱 불거졌다.

친박계 대표단
물 건너간 혁신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의 공천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귀결됐다. 친박계가 ‘책임론’에 휩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책임론은 친박계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선출직 지도부에 대한 하마평이 나올 때마다 책임론은 비박계의 주된 레퍼런스가 됐고, 친박계는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당권 욕심이 있는 친박계 입장에서 책임론은 반드시 잠재워야 할 요소다.

앞서 원내대표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도 친박계 주류 쪽에서 먼저 책임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자숙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심’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자숙하자”며 스스로 손발을 묶었다. 총선 후 친박계의 운신 폭이 좁아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정 원내대표가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총선 참패는 ‘친박 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책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지만, 책임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친박계 책임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에 친박계 의원이 70∼80명 정도인데 모두가 (총선 참패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친박계가) 떼로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했느냐. 덤터기를 씌워선 안 된다. 친박계 전체를 책임론으로 등치하는 것, 이를테면 ‘친박=책임’이라는 등식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내가 중립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친박과 비박 다 책임이 있는 것이지, 어느 계파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정 원내대표가 서서히 ‘친박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정 원내대표 당선 이후 친박계가 서서히 본인들의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단적인 예로 최근 친박계 내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거론되는 상황인데, 지난 원내대표 경선이 있을 당시 마땅한 후보조차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을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원내대표단 친박인사로 전격 물갈이
비대위 겸직 두고 혁신위 무용론 대두

거론되는 후보들에는 이정현·이주영·홍문종 의원 등 직·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내비친 사람뿐만 아니라 원유철 의원(전 원내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4일 첫 당대표 경선 후보로 등록한 친이(친 이명박)계 심재철 의원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특히 원유철·이정현·홍문종 의원 등은 친박계 핵심에 속한다.
 

원내대표단이 꾸려질 때부터 계파 편향 얘기가 나왔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를 포함한 13명의 원내부대표단 당직 인선을 발표했다. 강석진 의원은 최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코레일 사장 출신의 비례대표인 최연혜 당선인 또한 친박으로 통한다. 원내대변인에 추가 선임된 민경욱 당선인의 경우, 자타가 공인하는 진박 후보로 공천 당시 유승민계 민현주 의원을 경선에서 꺾고 공천권을 따냈다. 이러한 대표단 인선을 두고 하태경 의원이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원내대표단 인선”이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원내대표단은 자신들의 계파색 논란에 반발하고 있다. 수석부대표가 된 김도읍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사회자가 ‘이번 원내대표단 인선에 대해 친박 일색이다라는 비판이 나오더라. 어떻게 받아들이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 정 원내대표께서 탈계파를 선언하면서 당선됐고, 우리 부대표단들도 보면 초선 의원들의 지역이라든지 전문성을 배려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꼭 친박계로 꾸려졌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기 어렵다.”

정진석 체제
친박 뜻대로

비대위 구성 문제는 친박-비박이 서로 이견을 보인 지점이다. 친박계는 ‘관리형’ 비대위를 내세운 반면 비박계는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했다. 물리적으로 전대까지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형 비대위가 세워진들 바꿀 수 있을 건 없다는 친박계의 현실론과 지금과 같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선 외부 인사를 데려온 혁신형 비대위 뿐이라는 비박계의 당위론이 서로 부딪혔다.

결국 정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현실론을 받아들였으며 비대위원장까지 겸임하게 됐다. 정진석 체제는 이제 앞으로 있을 전당대회(이하 전대) 실무를 준비하는 일을 맡게 된다. 친박계의 당권 장악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문조사까지 간 끝에 나온 결과였다. 지난 10일 비대위 구성에 관한 당내 총의를 모으기 위해 정진석 지도부는 당선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뒷말이 많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문조사가 의견을 모으기 위한 목적이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지에는 ▲관리형 비대위 ▲관리형 비대위+별도 혁신위 ▲진단형 비대위 ▲혁신형 비대위 ▲기타까지 총 5개의 보기로 이중 하나를 고르는 5지선다형이었다.

불만이 터져 나온 이유는 해당 설문조사가 사실상 친박계가 원하는 관리형 비대위로 가기위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항목 중 ‘혁신형 비대위’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항목이 사실상 같다는 것이다.

“전대 늦춰라” 8월 연기 지시 있었나?
당·대권 결합론 부상…친박으로 통일?

즉 ▲당 지도체제 개편 ▲원외 당협위원회의 정비 등 지도부 시스템을 손봐야 함에도 혁신형을 제외하면 혁신의 주체가 차기 지도부 또는 비대위가 구성한 혁신위로 같다. 다시 말해 외부 인사 영입이 없는 나머지 3개 항목은 행위가 주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다.

불만이 터져 나온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밀이 아닌 실명 공개를 전제로 한 설문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관리형 비대위를 찍도록 유도했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일고 있다. 이는 특히 입지가 튼튼하지 못한 초·재선 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혁신위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기자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최근 새로운 원내대변인으로 취임한 민경욱 대변인과의 질의에서는 몇몇 기자들이 과거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맡았던 보수혁신위원회처럼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민 대변인은 “새로 선출되는 당대표에게 혁신위에서 결정한 문제를 다 받아들이도록, 수용하도록 하자는 그런 구체적인 방법까지 논의는 됐지만 결정된 건 없다”고 답해 부분 수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혁신위원장으로는 김용태 의원이 선임됐는데, 이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소통과 화합을 위해 비박계인 김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앉힌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획기적인 혁신안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김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은 비박계에게 덤터기를 씌우기 위한 술수라는 견해도 있다.

결과적으로 혁신위가 ‘유명무실’해 질것이란 비관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행권한이 없는 특별기구의 성격이라서 정진석 체제의 입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친박계 핵심의 입을 통해 혁신위의 지위를 격하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총선 당선 직후 차기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이정현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비대위와 혁신위는 문제 진단과 전대 관리의 역할로 한정하고 새 지도부가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자가 ‘혁신안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냐’고 질문하자 “그렇다”고 답했다.

유명무실
혁신위원회

이처럼 혁신위의 지위와 역할에 의문부호가 달리자 정 원내대표는 수습에 나섰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혁신위는 단순히 이번 총선 패배에 대한 미봉책을 땜질하는 기구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향후 비대위·혁신위에서 정해질 ▲전대 날짜와 ▲당권·대권 결합 여부가 계파전의 새로운 뇌관이 될 전망이다. 또한 친박계의 입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도 이때를 기점으로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전대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앞서 예상됐던 7월보다 한 달가량 늦은 8월에 열리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확한 날짜가 잡히지 않았지만,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전대 시기가 늦어지면 질수록 ‘친박 책임론’이 잠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권·대권 결합론도 친박계 내부에서 얘기가 나온 만큼 향후 불씨가 될 예정이다. 새누리당 당헌에는 ‘차기 대선주자는 대선 1년6개월 전에 모든 선출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당권·대권을 분리시켜 놓은 규정이다.

이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는 친박은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음을 근거로 내세운다. 즉 인력난을 겪고 있으니 당권·대권을 함께 가져가 강력한 1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박계는 그 1명이 당내 과반을 넘긴 친박계에서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나오는 최고위원회의 폐지론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지금과 같이 9명(당대표 1명+원내대표 1명+정책위의장 1명+최고위원6명)이 정하는 집단식 의사결정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니 이를 당대표에게 몰아줘 과거 총재 시절의 강력함을 되살리자는 취지다.

‘범친박계 당직 장악→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전대 연기’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분명 친박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과연 친박계의 의중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혹을 받는 정 원내대표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총선 참패 후 한 달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새누리당에 혁신의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철우의 최고위 해체론

현재 새누리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최고위원회의다. 선출직 4명+지명직 2명에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까지 9명으로 구성된 이 기구는 과거 당 총재의 독단적 결정을 제어하기 위해 지난 2002년 탄생했다. 지금까지 당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지만 반대로 많은 사공으로 인해 배가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중진으로 올라선 이철우 의원은 최고위원회의를 해체하는 수준으로 당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선자 총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런 식으로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안 된다. 차기 당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비대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최고위를 해체해야 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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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