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정보사 대북 정보전쟁 내막

2중3중 스파이와 긴밀한 커넥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중접경지역에서 국정원 등 국내 정보기관이 다양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현지사정에 밝은 정보원을 이용해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 조선족, 한국인 등 민간인이 희생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북한 측도 인민군 보위사령부, 통일전선부, 정찰총국 등 대남공작기관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 김일성정권 시절처럼 활발하게 공작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뒤쳐진 것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고 대남활동보다는 ‘내부 단속’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아 중국에 나와 활동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최대한 공안과의 마찰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작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한 상황이다.

포섭 정보원
자주 속는다

북한 정보기관들은 공작활동보다는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이 남한에 입국했는지 여부를 상시적으로 추적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이들은 화교나 조선족 정보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보위부 장교를 직접 중국이나 동남아로 파견해 탈북자를 체포하거나 탈북자가 한국이나 제3국에 입국했는지 여부를 정탐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보위부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대략적인 명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남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남한 정보당국은 비교적 활발하게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다. 대북소식통에 의하면 국가정보원, 국군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등의 정보기관이 자기들이 포섭한 탈북자와 조선족 출신의 정보원에게 속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정보기관 측이 “2중 스파이여도 상관없다. 정보만 가져와라”라고 요구하면서 돈을 매개로 한 ‘오염된’ 정보가 판치게 되는 것이다. 정보원들이 사례를 받기 위해 부정확하고 의심스러운 첩보를 넘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청와대가 여러 개의 기관으로부터 같은 주제로 보고를 받아 교차확인 하는 방식으로 첩보를 검증하기도 한다.    

국정원 등이 요구하는 정보는 주로 관리소(수용소)나 교화소(교도소) 내부 영상, 군부 등 권력집단의 추악한 유흥생활, 북한 내부 지하교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예배 영상, 공개처형 영상 등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촬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보원들이 실제로 구해오는 것은 장마당 거리 영상이나 물가,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 동향 정도다. 이밖에도 북한의 달력, 교과서, 대학교재, 개정법률책, 마약, 위조 달러 지폐 등을 구해온다고 알려졌다.

해외방첩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소위 ‘블랙요원’은 보통 정보원을 최대 12명까지 쓸 수 있다고 한다. 각각의 정보원은 또 자신의 망원을 거느린다. 국정원이 망원에게 직접 자금을 대거나 접선하진 않지만 이들의 신상은 대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블랙요원 한 명이 대체적으로 100명이 넘는 정보원을 거느린다. 이들은 선교사·목사 등의 종교인, 한국교민, 보따리 무역상(다이궁), 화교, 탈북자, 조선족 등으로 국적과 직업도 다양하다.  

두 기관 북중접경지역서 정보수집 활동
북 사정 밝은 정보원들 돌려 소스 모아

지난 김대중정권 시절 중국에서 활동하던 고위급 국정원 요원이 중국의 국가안전부(정보기관)에 체포됐다. 당시 우리 정부는 동북 3성에 있는 국정원의 블랙요원을 모두 철수시키는 조건으로 해당 요원의 석방을 성사시켰다. 당시 120여명이 추방 형식으로 중국을 나와야 했다. 이들 블랙요원 중엔 모 항공사의 센양지사장도 포함돼 있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 지사장은 국정원에게 포섭돼 여러 해 동안 비밀리에 주요 인사들의 한국 입국을 도왔다.

국정원 측은 정보원을 이용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파견 나온 고위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사진 촬영을 하면 발각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도록 해 인상착의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런 일엔 중국 현지사정에 밝은 탈북자 등이 동원된다.

국정원 정보원이 북한 위조지폐를 중국과 국내에서 쓰다가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한 정보원은 국정원 측의 요구로 북한에서 제작된 위조지폐 1만달러를 구해 국정원에 전달했다. 그는 약간의 달러를 남겨 중국의 유흥가에서 썼다. 국내에도 가져와 지인에게 기념으로 약간의 달러를 줬는데 이것이 강남 유흥가에서 떠돌다가 술집 종업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재판에 넘겨진 이 정보원은 최근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당시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다.

블랙요원은
12명까지 둔다

북한 달력이나 서적, 장마당 영상 등은 단둥 등의 북중접경도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때로 정보기관 측이 푼돈을 미끼로 어렵고 위험한 임무에 이들 민간인을 끌어들여 희생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가장 유명한 것이 ‘동까모(동상을 까부시는 모임)’에 연루된 전영철씨 사건이다. 지난 2012년 함경북도의 국경도시 회령(북한명칭 김정숙시)에 한 탈북자가 북한 내부 영상 촬영을 목적으로 잠입하려다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탈북자 전영철씨가 청진에 사는 친척에게 돈과 카메라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주민인 밀수업자 김모씨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 와중에 보위부에 발각되면서 중국서 납치됐다.   
 

당시 전씨는 중국 공안에게 한화 2000만원을 지불하고 다이너마이트 격발기 5개를 구했는데 이 정보가 북한 당국에 들어가 중국 용정시 삼합에서 붙잡혔다. 2012년 7월 조선중앙TV에 출연한 전씨는 남한 정보당국과 <조선일보> 기자의 제안으로 동까모에 참여해 김정숙 동상을 폭파하려고 북한에 잠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주민들이 남한 종편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을 촬영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씨를 포함해 관련자 3명이 사형을 당했다. 전씨가 정보당국으로부터 약속 받은 돈은 20만달러였으며, 실제로 착수금조로 800만원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단둥에서 탈북자들을 돌보던 김모 선교사도 지난 2011년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는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독극물이 든 주사에 찔려 즉사했다. 중국인으로 가장한 허위 여권을 발급받아 신의주로 들어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가 신의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북한 내부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으나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김 선교사는 북한 지하교회의 예배 모습을 찍은 영상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상영했다. 이 일로 큰 주목을 받았고 기부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영상을 본 한 조선족이 “저긴 북한이 아니라 우리 마을”이라고 알리면서 단둥 근처 마을에서 연출된 가짜 영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사망하고 검찰은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브롬화스티그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국정원 보고서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에 제출해 그의 사망원인을 공식화한 바 있다. 김 선교사의 사망 후 관련 영상들이 정보당국의 요구로 촬영된 것이라는 설이 떠돌았으나 정확한 것은 밝혀진 바가 없다.

최근 <일요시사>가 만난 A씨도 남한 정보당국의 정보원으로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대중정권 시절인 1990년대 말, 김씨는 우연한 기회에 같은 탈북자인 김모(67)씨의 소개로 대성공사(국정원의 옛 명칭) 일을 해주게 됐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대성공사와 북한사람을 연결해 주는 안전판”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아는 북한주민 중 고급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을 설득해 대성공사에 연결해 주는 일이었다.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씨는 이 일을 3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보수에 대한 욕심보다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그는 “자신을 감추는 법, 1분 이상 통화하면 추적 당하는 것, 은어로 말하는 것 등을 대성공사에서 배웠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에 머무르며 망명신청 중인 탈북자 B씨도 정보당국의 협조 요구를 거절하자, 여러 가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익을 겪으면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B씨는 한국에서 살 수가 없어서 유럽으로 건너갔다”면서 “탈북자들은 국정원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남한에서 살기가 어렵다”고 귀띔했다. 

목숨 걸고
위험한 일

B씨는 북한에서 소위 말하는 ‘출신성분’이 좋은 엘리트 계급이었다. 그 자신도 핵심기관에서 일했고 친인척들도 중요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요직에 배치돼 있었다. 국정원 측은 B씨에게 지속적으로 북한의 친인척에게 연락해 정보를 달라고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탈북으로 인해 친인척들이 요직에서 밀려나는 등 곤란을 겪었음을 잘 아는 B씨로서는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그는 웬일인지 각종 수당에서도 배제됐고 한국을 떠나기 위해 신청한 여권도 어렵게 발급 받아 겨우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탈북자나 조선족 정보원을 거느리는 이들 정보기관의 ‘기강 해이’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보안경찰 4명이 3박4일 일정으로 단둥으로 출장을 나왔다. <뉴스타파>는 이들이 단둥에서 지낸 3일 내내 KTV(중국식 단란주점)에 갔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마사지를 받거나 짝퉁 명품시장을 방문하는 등 수사 이외의 유흥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출장비 내 통역 및 가이드, 렌트 비용 등으로 책정된 400달러를 해당 비용에 지출하지 않고 조선족 가이드를 개인적으로 고용해 50달러를 주고 나머지를 유용했다. 이들을 따라다닌 조선족 정보원에겐 사례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와 버렸다. 정보원의 눈에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당국이 이들 정보원에게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맡기고 보수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다는 제보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해 탈북자 C씨는 기자에게 “국정원에 정보를 넘겼는데 ‘국가에 봉사한 셈 치라’며 돈을 안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C씨에 의하면, 해당 정보는 원래 일본 언론이 눈독을 들여서 2개의 일간지와 1개의 방송사가 경쟁이 붙어서 가격이 5000만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외국 언론보다 국가에 먼저 연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C씨가 국정원에 연결했는데도 국정원 측이 아무런 사례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C씨는 또 “탈북한 지 얼마 안됐을 때 보위부에 들어가 어렵게 구한 고급정보를 국정원에 넘겼는데 60만원을 받았다”면서 “목숨을 걸고 구한 정보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탈북자 등 이용하고 나몰라

한 북한전문가에 의하면, 탈북자 D씨가 보위부 내부정보를 국정원에 넘겼으나 D씨 역시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했다. 풀이 죽고 실망한 D씨가 이 북한전문가에게 “당신에게 정보를 넘겼더라면 사례는 받지 못했어도 북한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당국 입장에선 해당 첩보의 가치가 낮다고 판단됐을 수도 있으나 이 북한전문가 입장에선 꼭 구하고 싶은 귀중한 자료였고, 입수했다면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만한 자료였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이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내 방송사 등 언론사에 넘겨 보도될 수 있도록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 해당 방송사는 정보원에게 따로 금품 제공이 아닌 여타의 방식으로 사례를 한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북한전문가는 “국정원 측이 적으나마 사례는 했을 것”이라며 “보수를 안 줬다기보다는 막상 현장에서 공작에 착수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금액이 더 많이 들어 추가분을 재청구했는데 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물어다 준
정보로만 보고

이렇듯 정보기관과 탈북자 등이 서로 간의 커넥션이 긴밀한 것이 확인되는 가운데 정보기관이 탈북동포를 길들이고 이용하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험한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원한 북한전문가는 “국정원 일을 해주고 말로가 좋은 사람은 본 일이 없다”며 “북한 내부 영상도 기껏해야 회령, 온성 등의 장마당 정도가 촬영된다. 남한사람들은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해도 이런 일에 나서지 않지만 북한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그들에겐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률은 낮다. 정보기관이 탈북자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남한사회에서 자립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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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