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정보사 대북 정보전쟁 내막

2중3중 스파이와 긴밀한 커넥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중접경지역에서 국정원 등 국내 정보기관이 다양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현지사정에 밝은 정보원을 이용해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 조선족, 한국인 등 민간인이 희생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북한 측도 인민군 보위사령부, 통일전선부, 정찰총국 등 대남공작기관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 김일성정권 시절처럼 활발하게 공작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뒤쳐진 것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고 대남활동보다는 ‘내부 단속’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북중관계가 좋지 않아 중국에 나와 활동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최대한 공안과의 마찰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작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한 상황이다.

포섭 정보원
자주 속는다

북한 정보기관들은 공작활동보다는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이 남한에 입국했는지 여부를 상시적으로 추적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이들은 화교나 조선족 정보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보위부 장교를 직접 중국이나 동남아로 파견해 탈북자를 체포하거나 탈북자가 한국이나 제3국에 입국했는지 여부를 정탐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보위부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대략적인 명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남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남한 정보당국은 비교적 활발하게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다. 대북소식통에 의하면 국가정보원, 국군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등의 정보기관이 자기들이 포섭한 탈북자와 조선족 출신의 정보원에게 속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정보기관 측이 “2중 스파이여도 상관없다. 정보만 가져와라”라고 요구하면서 돈을 매개로 한 ‘오염된’ 정보가 판치게 되는 것이다. 정보원들이 사례를 받기 위해 부정확하고 의심스러운 첩보를 넘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청와대가 여러 개의 기관으로부터 같은 주제로 보고를 받아 교차확인 하는 방식으로 첩보를 검증하기도 한다.    


국정원 등이 요구하는 정보는 주로 관리소(수용소)나 교화소(교도소) 내부 영상, 군부 등 권력집단의 추악한 유흥생활, 북한 내부 지하교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예배 영상, 공개처형 영상 등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촬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보원들이 실제로 구해오는 것은 장마당 거리 영상이나 물가,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 동향 정도다. 이밖에도 북한의 달력, 교과서, 대학교재, 개정법률책, 마약, 위조 달러 지폐 등을 구해온다고 알려졌다.

해외방첩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소위 ‘블랙요원’은 보통 정보원을 최대 12명까지 쓸 수 있다고 한다. 각각의 정보원은 또 자신의 망원을 거느린다. 국정원이 망원에게 직접 자금을 대거나 접선하진 않지만 이들의 신상은 대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블랙요원 한 명이 대체적으로 100명이 넘는 정보원을 거느린다. 이들은 선교사·목사 등의 종교인, 한국교민, 보따리 무역상(다이궁), 화교, 탈북자, 조선족 등으로 국적과 직업도 다양하다.  

두 기관 북중접경지역서 정보수집 활동
북 사정 밝은 정보원들 돌려 소스 모아

지난 김대중정권 시절 중국에서 활동하던 고위급 국정원 요원이 중국의 국가안전부(정보기관)에 체포됐다. 당시 우리 정부는 동북 3성에 있는 국정원의 블랙요원을 모두 철수시키는 조건으로 해당 요원의 석방을 성사시켰다. 당시 120여명이 추방 형식으로 중국을 나와야 했다. 이들 블랙요원 중엔 모 항공사의 센양지사장도 포함돼 있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 지사장은 국정원에게 포섭돼 여러 해 동안 비밀리에 주요 인사들의 한국 입국을 도왔다.

국정원 측은 정보원을 이용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파견 나온 고위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사진 촬영을 하면 발각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도록 해 인상착의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런 일엔 중국 현지사정에 밝은 탈북자 등이 동원된다.

국정원 정보원이 북한 위조지폐를 중국과 국내에서 쓰다가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한 정보원은 국정원 측의 요구로 북한에서 제작된 위조지폐 1만달러를 구해 국정원에 전달했다. 그는 약간의 달러를 남겨 중국의 유흥가에서 썼다. 국내에도 가져와 지인에게 기념으로 약간의 달러를 줬는데 이것이 강남 유흥가에서 떠돌다가 술집 종업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재판에 넘겨진 이 정보원은 최근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당시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다.


블랙요원은
12명까지 둔다

북한 달력이나 서적, 장마당 영상 등은 단둥 등의 북중접경도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때로 정보기관 측이 푼돈을 미끼로 어렵고 위험한 임무에 이들 민간인을 끌어들여 희생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가장 유명한 것이 ‘동까모(동상을 까부시는 모임)’에 연루된 전영철씨 사건이다. 지난 2012년 함경북도의 국경도시 회령(북한명칭 김정숙시)에 한 탈북자가 북한 내부 영상 촬영을 목적으로 잠입하려다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탈북자 전영철씨가 청진에 사는 친척에게 돈과 카메라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주민인 밀수업자 김모씨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 와중에 보위부에 발각되면서 중국서 납치됐다.   
 

당시 전씨는 중국 공안에게 한화 2000만원을 지불하고 다이너마이트 격발기 5개를 구했는데 이 정보가 북한 당국에 들어가 중국 용정시 삼합에서 붙잡혔다. 2012년 7월 조선중앙TV에 출연한 전씨는 남한 정보당국과 <조선일보> 기자의 제안으로 동까모에 참여해 김정숙 동상을 폭파하려고 북한에 잠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주민들이 남한 종편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을 촬영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씨를 포함해 관련자 3명이 사형을 당했다. 전씨가 정보당국으로부터 약속 받은 돈은 20만달러였으며, 실제로 착수금조로 800만원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단둥에서 탈북자들을 돌보던 김모 선교사도 지난 2011년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는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독극물이 든 주사에 찔려 즉사했다. 중국인으로 가장한 허위 여권을 발급받아 신의주로 들어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가 신의주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북한 내부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으나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김 선교사는 북한 지하교회의 예배 모습을 찍은 영상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상영했다. 이 일로 큰 주목을 받았고 기부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영상을 본 한 조선족이 “저긴 북한이 아니라 우리 마을”이라고 알리면서 단둥 근처 마을에서 연출된 가짜 영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사망하고 검찰은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브롬화스티그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국정원 보고서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에 제출해 그의 사망원인을 공식화한 바 있다. 김 선교사의 사망 후 관련 영상들이 정보당국의 요구로 촬영된 것이라는 설이 떠돌았으나 정확한 것은 밝혀진 바가 없다.

최근 <일요시사>가 만난 A씨도 남한 정보당국의 정보원으로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대중정권 시절인 1990년대 말, 김씨는 우연한 기회에 같은 탈북자인 김모(67)씨의 소개로 대성공사(국정원의 옛 명칭) 일을 해주게 됐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대성공사와 북한사람을 연결해 주는 안전판”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아는 북한주민 중 고급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을 설득해 대성공사에 연결해 주는 일이었다.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씨는 이 일을 3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보수에 대한 욕심보다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갑작스럽게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그는 “자신을 감추는 법, 1분 이상 통화하면 추적 당하는 것, 은어로 말하는 것 등을 대성공사에서 배웠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에 머무르며 망명신청 중인 탈북자 B씨도 정보당국의 협조 요구를 거절하자, 여러 가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익을 겪으면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B씨는 한국에서 살 수가 없어서 유럽으로 건너갔다”면서 “탈북자들은 국정원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남한에서 살기가 어렵다”고 귀띔했다. 


목숨 걸고
위험한 일

B씨는 북한에서 소위 말하는 ‘출신성분’이 좋은 엘리트 계급이었다. 그 자신도 핵심기관에서 일했고 친인척들도 중요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요직에 배치돼 있었다. 국정원 측은 B씨에게 지속적으로 북한의 친인척에게 연락해 정보를 달라고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탈북으로 인해 친인척들이 요직에서 밀려나는 등 곤란을 겪었음을 잘 아는 B씨로서는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그는 웬일인지 각종 수당에서도 배제됐고 한국을 떠나기 위해 신청한 여권도 어렵게 발급 받아 겨우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탈북자나 조선족 정보원을 거느리는 이들 정보기관의 ‘기강 해이’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보안경찰 4명이 3박4일 일정으로 단둥으로 출장을 나왔다. <뉴스타파>는 이들이 단둥에서 지낸 3일 내내 KTV(중국식 단란주점)에 갔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마사지를 받거나 짝퉁 명품시장을 방문하는 등 수사 이외의 유흥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출장비 내 통역 및 가이드, 렌트 비용 등으로 책정된 400달러를 해당 비용에 지출하지 않고 조선족 가이드를 개인적으로 고용해 50달러를 주고 나머지를 유용했다. 이들을 따라다닌 조선족 정보원에겐 사례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와 버렸다. 정보원의 눈에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당국이 이들 정보원에게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맡기고 보수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다는 제보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해 탈북자 C씨는 기자에게 “국정원에 정보를 넘겼는데 ‘국가에 봉사한 셈 치라’며 돈을 안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C씨에 의하면, 해당 정보는 원래 일본 언론이 눈독을 들여서 2개의 일간지와 1개의 방송사가 경쟁이 붙어서 가격이 5000만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외국 언론보다 국가에 먼저 연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C씨가 국정원에 연결했는데도 국정원 측이 아무런 사례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C씨는 또 “탈북한 지 얼마 안됐을 때 보위부에 들어가 어렵게 구한 고급정보를 국정원에 넘겼는데 60만원을 받았다”면서 “목숨을 걸고 구한 정보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탈북자 등 이용하고 나몰라

한 북한전문가에 의하면, 탈북자 D씨가 보위부 내부정보를 국정원에 넘겼으나 D씨 역시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했다. 풀이 죽고 실망한 D씨가 이 북한전문가에게 “당신에게 정보를 넘겼더라면 사례는 받지 못했어도 북한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당국 입장에선 해당 첩보의 가치가 낮다고 판단됐을 수도 있으나 이 북한전문가 입장에선 꼭 구하고 싶은 귀중한 자료였고, 입수했다면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만한 자료였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이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내 방송사 등 언론사에 넘겨 보도될 수 있도록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 해당 방송사는 정보원에게 따로 금품 제공이 아닌 여타의 방식으로 사례를 한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북한전문가는 “국정원 측이 적으나마 사례는 했을 것”이라며 “보수를 안 줬다기보다는 막상 현장에서 공작에 착수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금액이 더 많이 들어 추가분을 재청구했는데 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물어다 준
정보로만 보고

이렇듯 정보기관과 탈북자 등이 서로 간의 커넥션이 긴밀한 것이 확인되는 가운데 정보기관이 탈북동포를 길들이고 이용하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험한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원한 북한전문가는 “국정원 일을 해주고 말로가 좋은 사람은 본 일이 없다”며 “북한 내부 영상도 기껏해야 회령, 온성 등의 장마당 정도가 촬영된다. 남한사람들은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해도 이런 일에 나서지 않지만 북한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그들에겐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률은 낮다. 정보기관이 탈북자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남한사회에서 자립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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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