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죽이고' 아동학대 백태

아동학대공화국 대한민국 "왜들 이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전국 각지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아이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폭행을 일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부모도 있다. 모두를 경악시킨 아동학대 사건들을 유형별로 살펴보도록 한다.

아동학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속보치)을 보면, 작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9209건이었으며 이 중 1만1709건이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받았다. 발생하는 아동학대 가운데 20∼30%만이 관계기관에 신고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는 훨씬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젓가락으로 찍기]
[다리미로 지지기]

1998년 세상에 알려진 영훈이 남매 학대사건. 발견 당시 영훈이는 6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체격·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고 등에는 다리미로 지진 화상 자국이 남아있었다. 발등은 쇠젓가락으로 찍혀 퉁퉁 부어있었으며 2주가량 굶어 위장에는 위액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 조사결과 영훈이의 누나는 이미 아사해 마당에 암매장된 상태였다.

학대의 주범은 계모. 계모는 전처가 낳은 남매에겐 잔혹한 학대를 저질렀지만, 자신이 낳은 친자는 공주처럼 키워온 사실이 밝혀져 국민의 공분을 샀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은 ‘아동학대’에 대한 의식 자체가 부족해 가해자에 대한 양형 판결에서 불협화음을 겪었다. 결국, 계모는 징역 15년을 확정받았으며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동복지법 관련, 아동학대 신고전화 24시간 개통, 전문기관 운영, 보호 격리 등의 조항이 생겼다. 또 아동 상담 및 지원, 치료, 격리, 신고의무자 등의 개정 조항이 추가되고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기도 했다.

[소아암 방치해]
[아이 “죽여줘”]

1999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진 신애 사건. 당시 9살이었던 신애는 희귀 소아암을 앓아 몸이 비쩍 마르고 배는 누가 보아도 심각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있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신애는 카메라맨에게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 “치료받고 아이들과 뛰놀고 싶다”고 말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신애의 부모는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구원받게 되어 있다”며 신애를 내버려두고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에 수많은 국민은 “부모를 당장 예수 곁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면서 병원비를 모금했고, 신애는 수술을 받아 다행히 정상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모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신애의 병은 재발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부모의 ‘방치’와 ‘무관심’ 역시 아동학대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양주 먹이고]
[성추행까지]

2003년에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 부부가 한인 17세 소녀를 입양한 뒤 온갖 학대를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부부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골프채, 홍두깨, 구둣주걱, 밀대 등으로 폭행을 저질렀다. 부부는 딸에게 억지로 독한 양주를 먹이고, 발가벗긴 채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가혹 행위는 이웃 프랑스 여성이 현지 경찰에 고발하면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는 부부를 국내로 강제 송환해 혐의 조사에 착수했으며, 국민들은 “국제적 망신이 따로 없다”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본 사건은 외국에서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입양아를 대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각심을 일으켰다.

[토한 음식물]
[핥아 먹게도]

2005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9억원의 유산을 받은 여중생 조카를 학대한 사건도 있었다. 삼촌과 숙모는 조카를 입양한 뒤 허벅지를 둔기로 때리고, 옷을 모두 벗긴 채 키친타월을 입에 구겨 넣고, 토한 음식물을 핥아 먹게 하는 등 잔학행위를 일삼았다.

이 사건은 학대행위를 보다 못한 외사촌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됐다. 그들은 9억원의 유산 중 6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탕진했다. 아동학대죄와 횡령죄가 적용되긴 했지만, 친족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면제된다는 조항(친족상도례)이 존재한 탓에 형량이 줄어들어 논란이 일었다.

[멍 없애려]
[물에 담가]

2011년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사건은 계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9살 딸이 숨진 사건으로, 계모는 딸이 ‘2000원을 훔친 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딸의 머리와 가슴 등을 10차례 때려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계모는 범행 직후 “딸이 목욕탕 욕조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고 경찰에 허위신고를 했지만, 부검 결과 양쪽 갈비뼈 16개가 골절돼있던 등 폭행 사실이 드러났다. 딸을 욕조에 빠트린 이유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멍이 빨리 사라진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전국 각지서 경악 사건들 잇달아 터져
장난감처럼 폭행…사망 숨기려 엽기짓

1심 공판에서 검찰은 계모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판사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눈치 없는 계모는 항소를 했고 이에 2심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 3년을 추가한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계모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교도소에 갇혔다. 딸의 친부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역시 항소장을 제출했다가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배설물 묻힌]
[휴지 먹이기]

2013년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진 사건이다.

계모는 자매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청양고추를 억지로 먹였으며, 밥을 안 먹는다는 이유로 이틀을 굶겼다. 또 밤새 잠을 재우지 않거나, 실신할 정도로 목을 조르기도 했다. 자매가 집에서 생리를 하면 배설물을 묻힌 휴지를 먹이기도 했으며, 세탁기에 자매를 넣어 돌리고, 물고문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사건이 특히 손가락질을 받은 이유는 부모들이 철저한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작은딸이 사망하자 부모는 12살 큰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었으며, 실제로 큰딸은 폭행치사 혐의로 소년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큰딸의 극적인 폭로로 계모의 범행은 낱낱이 드러났고 결국 계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큰딸이 판사에게 ‘계모를 사형시켜 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로부터 더욱 더 공분을 샀다.

[날아갈 정도]
[머리통 강타]

2015년 인천 송도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은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살 여자아이를 때린 사건으로 당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이 특히 화제가 된 이유는 CCTV에 아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긴 덕분이었다.

영상을 본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일부 부모들은 충격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보육교사는 급식 판을 치우는 과정에서 여아가 음식을 남기자 남은 음식을 먹게 했고, 아이가 김치를 뱉자 오른손으로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다. 조사결과 해당 보육교사는 예전부터 가혹 행위·폭행 의혹을 받아 왔으며 이에 대해 ‘훈육 차원’이라고 발뺌해왔다.

가해 보육교사는 재판부에 36차례나 반성문을 써냈지만 결국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전국 어린이집의 학대 사례가 줄줄이 적발됐으며, 모든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깡마른 몸으로]
[배관 타고 탈출]

2015년 또 한 번 세상을 발칵 뒤집히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 11살 여아 아동학대 탈출 사건. 온라인 게임에 빠진 친아버지와 동거녀는 상습적으로 딸을 폭행하고,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며, 음식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결국, 딸은 2층 가스 배관을 타고 스스로 집을 탈출했으며 인근 상점에서 빵을 훔치다가 상점 주인에게 붙잡혔다. 상점 주인은 여아가 한겨울에 얇은 반바지와 반소매 티를 입고 나온 점, 11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왜소한 체격을 지닌 점을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2015년 말, 가뜩이나 크고 작은 아동 사건·사고가 잇따라 보도된 상태에서 국민의 인내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특히 부부가 기르던 개는 딸과 달리 포동포동 건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눈치 없는 친할머니는 ‘내가 손녀를 키우겠다’며 양육권을 주장하다가 “기르던 개나 집어가라”며 대국민적 욕을 먹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대한민국 아동범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적발해냈다.

[시신 훼손하고]
[냉동고에 보관]

2016년 부천 초등생 아동학대·사체훼손 사건이 그것이다. 초등생 아들을 학대·살해한 뒤 시신을 여러 토막 내 3년 동안 냉동실에 보관한 이 사건은 초기 조사 당시 부부는 아들이 목욕탕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사고)고 주장했지만, 체포된 지 3일 만에 부부 둘 다 학대 치사를 저지르고 사체훼손까지 공모했음을 자백했다. 자식의 시신을 토막 내고 그걸 3년 동안 냉동실에 보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던졌다.

작년 1만9209건 신고
20∼30%만 접수 심각

‘11살 여아 사건’을 통한 전수조사가 없었으면 영원히 잊혀질 수도 있던 사건이었다. 실제로 두 부부는 밖에서는 지극히 정상인처럼 살았고, 작은딸은 극진한 관심과 사랑으로 키웠다는 주변인들의 소문이 전해졌다. 해당 지역 공무원들은 아이가 별안간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이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지역사회의 아동학대 감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현재 국민들은 얼마 전 일어난 ‘원영이 사건’으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다. 지난 7일, 평택의 한 모텔에서 한 부부가 7살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학대를 당했다는 아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계모는 2월, 술을 마신 채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공개수사 이틀 만에 계모는 아들 원영이를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다. 사망한 지 40일 만에 발견된 원영이의 시신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이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소변 흘렸다고]
[온몸에 락스칠]

지난 14일 평택 원영이 사망사건의 현장검증에서는 수백 명의 주민이 모여들어 살인죄 적용을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계모는 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해 벌을 주기 위해 알몸에 찬물을 끼얹고 20여 시간이 지난 다음 날 보니 아이가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끔찍한 학대,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동안 아이가 머물렀던 곳은 다름 아닌 욕실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욕실에 머물렀던 원영이. 사망하기 5일 전에는 아이가 소변을 변기 바깥에 흘렸다는 이유로 욕실에 무릎을 꿇리고 온몸에 락스를 뿌리기도 했다.

원영이의 시신을 본 계모와 아빠는 아이를 이불에 말아 열흘 동안 세탁실에 보관했다. 하지만 아이가 사망한 다음 날부터 부부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원영이가 잘 있는지, 뭘 먹었는지 확인하는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물론,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원영이를 위해 가방과 신주머니를 샀다. 지난 4일, 아빠는 아이가 실종됐다며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이를 찾기도 했다. 모두 경찰 조사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철저한 계산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그 어느 해를 막론하고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발각됐다. 겉으로는 심각하지 않고, 체감되지 않는 사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피해 아동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삶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한 아동센터 관계자는 “경찰·사회복지사가 아닌 이상 적극적으로 학대 아동을 구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동학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시사하고, 주변 아동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정도의 관심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