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이 노리는 신동혁 미스터리 추적

“유엔·국정원 탈북자에 놀아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한은 2014년 10월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 탈북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공개해왔다. 북 정권이 공개한 영상 중 가장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북한인권운동가 신동혁씨다. 지난 9년간 증언활동을 통해 인권운동계의 스타로 떠오른 신씨에 대해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출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영상 공개 직후 신씨는 의혹과 논란 속에서 활동을 중단했으나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신씨를 둘러싼 진실을 추적했다. 
 

신씨는 개천수용소(이하 14호) 완전통제구역에서 나고 자라 탈북한 유일의 생존자라고 주장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증언활동을 펼쳤다. 그는 유엔(UN)과 미 백악관 및 국무부에도 들어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수용소 출신 아닌가
아버지 경험 진술?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 속에 등장한 그의 아버지는 “우리는 정치범수용소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직후 신씨는 영상 속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맞다고 시인했다. 얼마 후 그는 14호 관리소(완전통제구역으로 이뤄진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났지만 6세 때 18호 관리소(형사범수용소)로 이감됐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논란과 의혹 속에서 신씨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의회에서 증언했다. 9월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 주재 북한인권토론회에 방문하려 했으나 가지 않았다. 신씨가 가지 않은 것은 유엔 측의 만류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과 북한인권결의안 유엔총회 채택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신씨에게 보인 태도로선 확연히 달라진 것이었다.

10월엔 해리티지재단이 운영하는 뉴스사이트 데일리 시그널(The Daily Signal)에 북한의 인권상황과 탈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해리티지재단은 미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보수주의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지난 13일엔 캐나다 헬리팩스시에서 열린 테드엑스(TEDx) 강연회에 초청받아 연설했다.


이렇듯 신씨가 수많은 논란과 증언 번복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재개한 가운데, 그가 “14호는 물론이고 18호 수용소 출신도 아니다”라는 국정원 측의 진술이 나온 것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지난 2008년께 국정원 소속 직원이 모 북한인권운동가에게 “신씨는 수용소 출신이 아니다. 북한에 가면 동창이 많이 있다. 본명은 신인근”이라고 귀띔했다.

신씨가 직접 밝힌 본명과 국정원 직원이 알려준 이름이 같았기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긴 이 활동가는 “지금이라도 신동혁 파일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국정원 직원은 응하지 않았다. 해당 활동가는 신씨를 만나 그러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차분히 대답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씨를 믿었다. 이 활동가는 신씨의 증언 번복 이후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3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취재 결과, 국정원 직원이 언급한 ‘동창’은 한모(36)씨로 신씨와 봉창인민학교를 함께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한씨는 현재 경상도의 한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통일부 발간 문서에 의하면, 신씨가 졸업한 봉창인민학교는 북창관리소(1995년 폐쇄, 이하 18호)가 존재하던 시절엔 봉창리의 관리성원구역(수용소 관리자 거주 구역)에 있는 4년제 초급학교였다. 기본적으론 보위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지만, 사면자들도 다닐 수 있다.

또 다른 동문 최모씨(35)의 존재도 확인됐다. 최씨는 신씨의 중학교 1년 후배로, 졸업 후 대동강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했다. 최씨는 2012년 합신센터 조사 때 신씨의 책 <세상 밖으로 나오다>(2007)속 저자 사진을 보고 “수용소 출신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최씨는 북창군 출신 탈북자 모임에서도 “책 내용은 다 거짓”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한 외신기자가 최씨에게 연락했으나 최씨는 “이용 당하는 것이 싫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탈북 후 해외서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
완전통제 개천수용소 유일 생존자 주장


신씨가 나고 자란 북창군 지역은 과거에 18호 관리소가 있었던 지역이다. 18호는 인민보안부(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치안조직)가 관리했던 수용소로, 보위부가 관리하는 여타의 정치범수용소와 성격이 다르다. 18호는 형사범이 ‘추방령’에 의해 사회와 격리돼 거주하는 곳이었다. 공민권도 유지할 수 있고 형식상으론 노동당 입당도 규제하지 않는다.

통일부 발간 문서와 탈북자 복수 증언에 의하면, 18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형사범과 월남자 가족을 ‘당의 배려’라고 선전하면서 사면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낙인이 찍힌 이들로 출신지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18호 내의 사면자 구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사면이 시작돼 단계적으로 85년, 88년, 90년에 대규모 사면이 일어났다. 1995년 폐쇄 때까지 전체 5만명 중 4만명을 사면했다. 18호 폐쇄 후 정식명칭은 ‘득장탄광연합기업소’가 됐다.

신씨를 잘 안다는 북한이탈주민 A씨는 “18호는 1982년부터 점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밖에도 자유롭게 다니고, 초소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군대도 철수하고, 새벽 5시 인원점검도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이어 그는 “95년까지가 끝이다. 그 후엔 관리소가 아니다”라며 “내가 나올 땐 여기서 있었던 일을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손도장, 발도장까지 찍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떼죽음하면서 관리소가 붕괴됐다”고 덧붙였다. A씨와 신씨는 2006년 신씨가 남한에 입국해 다음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알고 지냈다.

북에 동문들 존재
남한에도 동창 있어

A씨는 또 “동혁이 때는 수용소가 아니다”라며 “동혁이는 14호가 아니라 평북 운산군 광산에서 살다온 애다. 북한이 주장했듯이 11년 무료교육을 다 받았다. 봉창학교와 득장학교 (사면자구역인 득장로동자구에 있는 6년제 중학교) 나왔다는 것이 다 맞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북한이탈주민 B씨는 “동혁이 엄마와 잘 알고 지냈다. 당시엔 아들이 둘 있다는 것만 알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수안갱과 부흥광산에서 일한 것이 맞냐는 질문에 “맞다. 학교를 졸업하면 집 주변 탄광에 배치를 한다. 동혁이가 수안에 사니까 수안갱에 배치한 것”이라고 답했다.

B씨는 1970년대 부모와 함께 18호에 수감된 후 어린 시절부터 탄광에서 일했다. 사면 받은 후 지난 2000년대 초 북한을 탈출했다.

그렇다면 신씨는 어떻게 수용소 실상에 대해 알고 9년 동안이나 국제무대에서 증언을 했던 것일까. 그는 탈북민은 물론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에게도 거의 의심 받지 않았다.

북한이 공개한 <신동혁 자료>에 의하면, 신씨는 1980년 평남도 북창군 석산리에서 출생했다. 탈북자 박옥순씨의 수기 <악으로 버틴 10년 북창수용소>에 의하면 18호의 별칭이 ‘석산리’라고 한다. 이로 볼 때 신씨가 수용소 내에서 수감자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신씨의 아버지가 1970년대 말에 가족과 함께 18호에 수감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통일부 발간문서에 의하면, 1985년에 ‘마당해제’라고 불리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다. 북한정권이 공개한 신씨의 6세 사진으로 볼 때, 신씨 일가도 이때 사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아버지와 삼촌 및 동네 어른들로부터 북창군이 수용소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힘든 노동을 견뎌야 했던 탄광 노동자 출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희태 북한인권선교회장은 “탈북자들이 6살 때 찍은 사진 속 옷이 김일성 생일 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옷 선물은 사면 됐으니까 받은 것”이라며 “1985년 이전에 사면자로 산 것”이라고 봤다.

과거 행적 의문투성이…거짓 증언 의혹
“국정원은 알고 있었다” 침묵으로 일관


신씨가 여타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을 제치고 국제적인 명사가 된 것은 ‘완전통제구역 유일의 생존자’라는 희소성 때문이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뉜다. 전자는 정신개조가 됐다고 판단되면 출소가 가능하지만 후자는 닫힌 구역으로 불리며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수용소다.
 

신씨를 제외한 수용소 생존자들은 모두 혁명화 구역이나 추방지구 출신이다. 신씨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씨에게 연설 요청이 쇄도했고 각종 인권상을 수상했다. 그의 반생이 영화화됐고, 캐나다의 한 대학에선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강연을 들은 독지가들이 북한인권운동에 써달라며 큰 돈을 기부했다.

부시 전 대통령, 케리 국무장관,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과도 교류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저술가 블레인 하든과 함께 쓴 수기 <14호 수용소 탈출>(2012)은 27개국에서 출판됐고 인세도 반씩 나눠가졌다. 신씨는 자연스럽게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의 핵심 증언자가 됐다.

신씨의 거짓 증언은 신씨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정원은 신씨의 신상에 대해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허술한 탈북자 관리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위 측은 사태가 불거지자 “신씨는 수많은 증언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사안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신씨와 수기를 함께 쓴 블레인 하든은 북한이 영상을 공개한 직후 서울로 와서 지난해 3월까지 여러 달 동안 북창군 및 수용소 출신들을 만나 인터뷰 했음에도 언론에 책을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출판사 측과의 마찰 및 소송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유엔 북한인권위와 하든은 그를 엄격히 검증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사실 북한인권과 관련한 ‘거짓 증언’ 논란은 이전에도 다수 있었다. 한 여성은 14호에서 쇳물을 부어 기독교도를 죽인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강제송환을 4번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은 조선족으로 밝혀졌다.


허벅지에 깊은 흉터가 있는 한 여성은 그것이 불고문의 흔적이라고 주장했으나 골수염 수술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자극적인 증언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으면 그것이 유명세와 후원으로 이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북한인권운동이 ‘비즈니스’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거짓 증언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실제 수용소 생존자의 진실된 증언이 피해를 볼 여지가 크다.

인권결의안 통과
중요 역할했는데…

신씨는 “수용소에서 당한 고문의 상처가 내 몸에 있다”며 “북한인권운동을 아무 사심없이 진심으로 해왔다. 내가 숨기고 싶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내 자유라고 착각했었다. 날 안다는 사람들을 난 모르겠다.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동혁 탈북 스토리

지난 2007년, 신씨는 자신이 14호 관리소에서 표창결혼을 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엄마와 먹을 것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고 증언했다.

가끔 만나는 아버지가 먹을 것을 숨겨놨다가 줬고 13세 때 모친과 형의 탈출 모의를 신고했다가 두 사람은 공개처형 당하고 자신은 14호 지하감옥에서 6개월간 불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평양서 온 정치범 박영철을 만나 그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14호를 탈출했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월엔 8년 만에 증언을 번복했다. 자신이 6살 때 어머니, 형과 함께 14호에서 강 맞은편 18호로 옮겨졌다고 수정했다. 어머니와 형의 탈출계획을 밀고했고 둘의 사형집행을 목격한 것도 18호에서였다고 번복했다.

1999년과 2001년에 탈출을 시도했었다고 새롭게 증언하기도 했다. 2001년엔 중국까지 갔지만 넉 달 만에 붙잡혀 북송됐고 처음엔 18호로 갔지만 곧 더 가혹한 곳인 14호로 갔다고 주장했다. 고문을 당한 것도 13세 때가 아니라 두 번째 탈북 실패 후 14호에서였다고 번복했다. 그가 증언을 번복한 것도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지인들이 “신씨가 수기내용과 다른 얘기를 한다”고 블레인 하든에게 전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떠들썩한 논란 뒤에도 신씨는 지난해 2월 중순 페이스북을 통해 “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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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