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이 노리는 신동혁 미스터리 추적

“유엔·국정원 탈북자에 놀아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북한은 2014년 10월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을 시작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 탈북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공개해왔다. 북 정권이 공개한 영상 중 가장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북한인권운동가 신동혁씨다. 지난 9년간 증언활동을 통해 인권운동계의 스타로 떠오른 신씨에 대해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출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영상 공개 직후 신씨는 의혹과 논란 속에서 활동을 중단했으나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신씨를 둘러싼 진실을 추적했다. 
 

신씨는 개천수용소(이하 14호) 완전통제구역에서 나고 자라 탈북한 유일의 생존자라고 주장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증언활동을 펼쳤다. 그는 유엔(UN)과 미 백악관 및 국무부에도 들어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수용소 출신 아닌가
아버지 경험 진술?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 속에 등장한 그의 아버지는 “우리는 정치범수용소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직후 신씨는 영상 속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가 맞다고 시인했다. 얼마 후 그는 14호 관리소(완전통제구역으로 이뤄진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났지만 6세 때 18호 관리소(형사범수용소)로 이감됐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논란과 의혹 속에서 신씨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의회에서 증언했다. 9월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 주재 북한인권토론회에 방문하려 했으나 가지 않았다. 신씨가 가지 않은 것은 유엔 측의 만류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과 북한인권결의안 유엔총회 채택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신씨에게 보인 태도로선 확연히 달라진 것이었다.

10월엔 해리티지재단이 운영하는 뉴스사이트 데일리 시그널(The Daily Signal)에 북한의 인권상황과 탈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해리티지재단은 미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보수주의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지난 13일엔 캐나다 헬리팩스시에서 열린 테드엑스(TEDx) 강연회에 초청받아 연설했다.

이렇듯 신씨가 수많은 논란과 증언 번복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재개한 가운데, 그가 “14호는 물론이고 18호 수용소 출신도 아니다”라는 국정원 측의 진술이 나온 것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지난 2008년께 국정원 소속 직원이 모 북한인권운동가에게 “신씨는 수용소 출신이 아니다. 북한에 가면 동창이 많이 있다. 본명은 신인근”이라고 귀띔했다.

신씨가 직접 밝힌 본명과 국정원 직원이 알려준 이름이 같았기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긴 이 활동가는 “지금이라도 신동혁 파일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국정원 직원은 응하지 않았다. 해당 활동가는 신씨를 만나 그러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차분히 대답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씨를 믿었다. 이 활동가는 신씨의 증언 번복 이후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3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취재 결과, 국정원 직원이 언급한 ‘동창’은 한모(36)씨로 신씨와 봉창인민학교를 함께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한씨는 현재 경상도의 한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통일부 발간 문서에 의하면, 신씨가 졸업한 봉창인민학교는 북창관리소(1995년 폐쇄, 이하 18호)가 존재하던 시절엔 봉창리의 관리성원구역(수용소 관리자 거주 구역)에 있는 4년제 초급학교였다. 기본적으론 보위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지만, 사면자들도 다닐 수 있다.

또 다른 동문 최모씨(35)의 존재도 확인됐다. 최씨는 신씨의 중학교 1년 후배로, 졸업 후 대동강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했다. 최씨는 2012년 합신센터 조사 때 신씨의 책 <세상 밖으로 나오다>(2007)속 저자 사진을 보고 “수용소 출신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최씨는 북창군 출신 탈북자 모임에서도 “책 내용은 다 거짓”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한 외신기자가 최씨에게 연락했으나 최씨는 “이용 당하는 것이 싫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탈북 후 해외서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
완전통제 개천수용소 유일 생존자 주장

신씨가 나고 자란 북창군 지역은 과거에 18호 관리소가 있었던 지역이다. 18호는 인민보안부(남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치안조직)가 관리했던 수용소로, 보위부가 관리하는 여타의 정치범수용소와 성격이 다르다. 18호는 형사범이 ‘추방령’에 의해 사회와 격리돼 거주하는 곳이었다. 공민권도 유지할 수 있고 형식상으론 노동당 입당도 규제하지 않는다.

통일부 발간 문서와 탈북자 복수 증언에 의하면, 18호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형사범과 월남자 가족을 ‘당의 배려’라고 선전하면서 사면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낙인이 찍힌 이들로 출신지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18호 내의 사면자 구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사면이 시작돼 단계적으로 85년, 88년, 90년에 대규모 사면이 일어났다. 1995년 폐쇄 때까지 전체 5만명 중 4만명을 사면했다. 18호 폐쇄 후 정식명칭은 ‘득장탄광연합기업소’가 됐다.

신씨를 잘 안다는 북한이탈주민 A씨는 “18호는 1982년부터 점점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밖에도 자유롭게 다니고, 초소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군대도 철수하고, 새벽 5시 인원점검도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이어 그는 “95년까지가 끝이다. 그 후엔 관리소가 아니다”라며 “내가 나올 땐 여기서 있었던 일을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손도장, 발도장까지 찍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떼죽음하면서 관리소가 붕괴됐다”고 덧붙였다. A씨와 신씨는 2006년 신씨가 남한에 입국해 다음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알고 지냈다.

북에 동문들 존재
남한에도 동창 있어

A씨는 또 “동혁이 때는 수용소가 아니다”라며 “동혁이는 14호가 아니라 평북 운산군 광산에서 살다온 애다. 북한이 주장했듯이 11년 무료교육을 다 받았다. 봉창학교와 득장학교 (사면자구역인 득장로동자구에 있는 6년제 중학교) 나왔다는 것이 다 맞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북한이탈주민 B씨는 “동혁이 엄마와 잘 알고 지냈다. 당시엔 아들이 둘 있다는 것만 알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수안갱과 부흥광산에서 일한 것이 맞냐는 질문에 “맞다. 학교를 졸업하면 집 주변 탄광에 배치를 한다. 동혁이가 수안에 사니까 수안갱에 배치한 것”이라고 답했다.

B씨는 1970년대 부모와 함께 18호에 수감된 후 어린 시절부터 탄광에서 일했다. 사면 받은 후 지난 2000년대 초 북한을 탈출했다.

그렇다면 신씨는 어떻게 수용소 실상에 대해 알고 9년 동안이나 국제무대에서 증언을 했던 것일까. 그는 탈북민은 물론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에게도 거의 의심 받지 않았다.

북한이 공개한 <신동혁 자료>에 의하면, 신씨는 1980년 평남도 북창군 석산리에서 출생했다. 탈북자 박옥순씨의 수기 <악으로 버틴 10년 북창수용소>에 의하면 18호의 별칭이 ‘석산리’라고 한다. 이로 볼 때 신씨가 수용소 내에서 수감자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신씨의 아버지가 1970년대 말에 가족과 함께 18호에 수감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통일부 발간문서에 의하면, 1985년에 ‘마당해제’라고 불리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다. 북한정권이 공개한 신씨의 6세 사진으로 볼 때, 신씨 일가도 이때 사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아버지와 삼촌 및 동네 어른들로부터 북창군이 수용소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힘든 노동을 견뎌야 했던 탄광 노동자 출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희태 북한인권선교회장은 “탈북자들이 6살 때 찍은 사진 속 옷이 김일성 생일 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옷 선물은 사면 됐으니까 받은 것”이라며 “1985년 이전에 사면자로 산 것”이라고 봤다.

과거 행적 의문투성이…거짓 증언 의혹
“국정원은 알고 있었다” 침묵으로 일관

신씨가 여타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을 제치고 국제적인 명사가 된 것은 ‘완전통제구역 유일의 생존자’라는 희소성 때문이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뉜다. 전자는 정신개조가 됐다고 판단되면 출소가 가능하지만 후자는 닫힌 구역으로 불리며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수용소다.
 

신씨를 제외한 수용소 생존자들은 모두 혁명화 구역이나 추방지구 출신이다. 신씨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씨에게 연설 요청이 쇄도했고 각종 인권상을 수상했다. 그의 반생이 영화화됐고, 캐나다의 한 대학에선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강연을 들은 독지가들이 북한인권운동에 써달라며 큰 돈을 기부했다.

부시 전 대통령, 케리 국무장관,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과도 교류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저술가 블레인 하든과 함께 쓴 수기 <14호 수용소 탈출>(2012)은 27개국에서 출판됐고 인세도 반씩 나눠가졌다. 신씨는 자연스럽게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의 핵심 증언자가 됐다.

신씨의 거짓 증언은 신씨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정원은 신씨의 신상에 대해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허술한 탈북자 관리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위 측은 사태가 불거지자 “신씨는 수많은 증언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사안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신씨와 수기를 함께 쓴 블레인 하든은 북한이 영상을 공개한 직후 서울로 와서 지난해 3월까지 여러 달 동안 북창군 및 수용소 출신들을 만나 인터뷰 했음에도 언론에 책을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출판사 측과의 마찰 및 소송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유엔 북한인권위와 하든은 그를 엄격히 검증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사실 북한인권과 관련한 ‘거짓 증언’ 논란은 이전에도 다수 있었다. 한 여성은 14호에서 쇳물을 부어 기독교도를 죽인다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강제송환을 4번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은 조선족으로 밝혀졌다.

허벅지에 깊은 흉터가 있는 한 여성은 그것이 불고문의 흔적이라고 주장했으나 골수염 수술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자극적인 증언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으면 그것이 유명세와 후원으로 이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북한인권운동이 ‘비즈니스’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거짓 증언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실제 수용소 생존자의 진실된 증언이 피해를 볼 여지가 크다.

인권결의안 통과
중요 역할했는데…

신씨는 “수용소에서 당한 고문의 상처가 내 몸에 있다”며 “북한인권운동을 아무 사심없이 진심으로 해왔다. 내가 숨기고 싶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내 자유라고 착각했었다. 날 안다는 사람들을 난 모르겠다.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퍼뜨리는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동혁 탈북 스토리

지난 2007년, 신씨는 자신이 14호 관리소에서 표창결혼을 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엄마와 먹을 것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고 증언했다.

가끔 만나는 아버지가 먹을 것을 숨겨놨다가 줬고 13세 때 모친과 형의 탈출 모의를 신고했다가 두 사람은 공개처형 당하고 자신은 14호 지하감옥에서 6개월간 불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평양서 온 정치범 박영철을 만나 그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14호를 탈출했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월엔 8년 만에 증언을 번복했다. 자신이 6살 때 어머니, 형과 함께 14호에서 강 맞은편 18호로 옮겨졌다고 수정했다. 어머니와 형의 탈출계획을 밀고했고 둘의 사형집행을 목격한 것도 18호에서였다고 번복했다.

1999년과 2001년에 탈출을 시도했었다고 새롭게 증언하기도 했다. 2001년엔 중국까지 갔지만 넉 달 만에 붙잡혀 북송됐고 처음엔 18호로 갔지만 곧 더 가혹한 곳인 14호로 갔다고 주장했다. 고문을 당한 것도 13세 때가 아니라 두 번째 탈북 실패 후 14호에서였다고 번복했다. 그가 증언을 번복한 것도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지인들이 “신씨가 수기내용과 다른 얘기를 한다”고 블레인 하든에게 전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떠들썩한 논란 뒤에도 신씨는 지난해 2월 중순 페이스북을 통해 “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