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시그널>로 본 희대의 3대 사건 재조명

드라마가 꺼낸 X파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드라마 <시그널>의 열풍으로 드라마 속 사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아 납치 살인사건부터 집단 성폭행 사건까지 드라마로 인해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과거와 현재가 상호작용하며 변화해 간다는 콘셉트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은 tvN에서 16부작으로 제작된 범죄 스릴러물이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물을 넘어 모두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드라마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충격적 유괴·살해]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

<시그널>의 에피소드 중 ‘김윤정 유괴사건’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유괴, 살해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유명한 사건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희생 아동의 이름과 살해자의 특이한 신분 때문에 더욱 사회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다.

1997년 8월30일 당시 27세였던 살해범 전현주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영어학원을 나서던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인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유괴하는데 성공하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경찰의 신분 검색에 걸린 그녀는 판단력을 잃고 박양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미 용의선상에 있었던 터라 경찰은 그녀의 자택 주변을 수사 중에 있었고 이를 의아해한 전씨의 아버지의 신고로 전씨는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결국 전씨는 9월12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당했다.


검거 당시 전씨는 임신상태였으며 그해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낭비벽이 심했던 그녀는 결혼 후 늘어난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해 3000만원의 빚을 진 상태였고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괴한 이유도 2000만원의 빚을 갚기 위함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범죄를 남편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사건 재연 때 “현주야 아니지? 네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말해줘”라며 울부짖는 듯한 남편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생생하게 들리기도 했다.

[3대 미제 사건]
[화성 연쇄살인]

일종의 소시오패스 끼가 있던 그녀는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검찰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그녀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결국 무기징역으로 판결됐다.

결국 범인 전현주는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대가로 4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교도소 수감 중이다. 이 사건 이후로 길거나 눈에 잘 띄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한동안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시그널>은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극으로 한국의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에게 모두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1988년 9월에 일어났던 8차 사건은 범인이 체포됐으나 8차 사건의 범인은 다른 사건의 범죄를 모방해 벌인 모방범 이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나머지 9명을 살해한 범인은 수수께끼이며 미제 사건으로 남아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이 사건은 18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수사를 받는 등 국내 살인 사건 수사 분야에서는 최대의 인력이 동원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 사건을 다뤘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각색된 부분이 많다. 영화에서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범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나 6가닥의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을 정도.

에피소드 모티브 실제 사고들 재부상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그때 그 사건

영화에서 나왔던 범인처럼 전문적이고 완벽한 살인자는 아니었다는 뜻인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대부분이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발견됐다. 바람에 증거들이 알아볼 수 없게 변질된 경우가 많았고 아닌 경우에는 빗물에 씻겨내려 간 적도 있었다. 증거를 수집해도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인력도 장비도 노하우도 부족했다.

기껏 증거로 채취한 정액도 유력한 용의자와 일치하지 않는 등 수사는 말 그대로 난항을 거듭했다.

강간과 살인이 짧은 시간에 이뤄졌고 속옷을 안면 부분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엽기적인 범행 수법을 보인 범인에게 국민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화성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줬고 공포에 떨게 했다. 당연히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며 여론에 떠밀려 경찰은 엄청난 숫자의 용의자를 잡아들였지만 범인을 골라내지는 못했다.

사건 용의자들과 수사 담당자 상당수가 이상하게 죽어가자 이른바 ‘화성 괴담’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던 중년의 차모(38)씨는 1990년 3월 화성시 태안읍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991년 4월에는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던 장모(32)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9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현장 검증 도중 범행을 부인했던 19세 청년은 1997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 7차 사건의 용의자 박모씨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여기에 심령술사의 제보로 붙잡힌 4, 5차 용의자 김모씨도 고문 후유증의 스트레스로 사망하고 유일하게 범인을 잡은 8차 사건에서 범인 추적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일 계급 특진한 최모 순경은 1999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화성 수사본부 관계자 중에서도 최모 치안감, 장모 수사과장, 송모 서장 등은 모두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도한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숨졌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풍수가 좋지 않다고 해서 경찰서 위치를 옮겨보기도 하는 등 별별 수를 다 써봤지만 헛수고였다.

SNS 통해 재수사 청원
경찰 나설까…반응은?

‘비 오는 날 밤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인다’는 괴담이 돌아 붉은 옷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비 오는 날에 외출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비 오는 날에 일어난 사건은 단 2건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과학 수사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사건이 됐고 서서히 제대로 된 과학 수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결국 공소시효까지 끝나버렸다.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은 “화성살인범이 죽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그널>의 여파로 인터넷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사건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 ‘인주 여고생 사건’으로 재구성됐다.

2004년 12월 한국 밀양지역에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밀양지역 유지들의 자식들인 고교생(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 밀성고등학교, 밀양 세종고등학교)들이 여중생 자매를 1년여 동안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형이라는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누리꾼들의 힘으로 사건을 수사한 남부경찰서가 피해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인권위원회 등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 가해자 41명 중 처벌을 받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산지검이 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20명 중 10명이 소년부로 송치됐고 그중 5명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사실상 전과가 남은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재학 중이던 대부분의 고등학교도 가해자들을 징계 조치하지 않았고 2개 학교에서만 ‘3일간 교내 봉사활동’과 같은 가벼운 벌을 내렸을 뿐. 이후 정상적으로 고교를 졸업한 가해자들은 현재 사회인이 돼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시 논란 중심에]
[밀양 집단강간 사건]

반면 피해자는 사건 후 서울로 이사해 전학을 시도했지만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학교로부터 전학을 거부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전학을 허락받아 간신히 다니게 된 어느 고교에는 한 가해자 부모가 아들의 처벌완화를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며 피해자의 교실로 무작정 찾아왔다. 학교에 성폭행 피해자란 사실이 알려질까 늘 두려워하던 피해자는 이 일로 학교를 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 가해자 부모들이 알코올중독 상태인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미끼로 합의를 종용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친권을 근거로 서울에서 정신과 치료 중이던 피해자를 다시 울산에 데려와 가해자 측과 합의할 것을 강요했다.

이처럼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사회적 편견과 법적 무관심 속에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하던 피해자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수사 과정 중 피해자들에게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놨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겁난다’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를 피의자와 직접 대질시켜 범인을 지목시키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실명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경찰의 일련의 대처가 인권 침해 등의 문제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가해 고교생들은 4개 고교에서 결성한 속칭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서클 소속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실제 조사를 받은 41명 외에도 75명이 더 있어서 최대 116명이라는 설이 있다.

밀양 지역 교육감들이 사태를 덮기 위해 경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항간에는 이들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이라서 쉽게 풀려났다는 의혹이 돌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 신상 및 최근 사진’ 등이 나돌고 있다. 한 네티즌이 이들의 최근 근황과 SNS 주소, 학력 및 현재 직업 등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을 올려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정보의 정확성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게시물이 확산되자 일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SNS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해자의 한 친구는 사건 당시 고등학교 때 자신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현재 현직 경찰 신분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흥행을 이어온 <시그널>은 지난 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그널>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물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줬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언급됐던 사건들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회자됐고 이는 곧 장기 미제로 남아 있는 각종 사건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런 국민적인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영화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 네티즌 수사대와 제보 등이 이어지곤 했다. 다만 아쉬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꾸준한 관심 필요]
[적극적 협조 관건]

나중에 같은 주제로 또다시 언급되면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볼 수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관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장기 미제 사건의 경우 특히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생존해있는 경우 관련된 사건이 다시금 언급되는 건 2차 피해를 입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심스러운 접근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 전체에서 SNS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정보를 알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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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