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시그널>로 본 희대의 3대 사건 재조명

드라마가 꺼낸 X파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드라마 <시그널>의 열풍으로 드라마 속 사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아 납치 살인사건부터 집단 성폭행 사건까지 드라마로 인해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과거와 현재가 상호작용하며 변화해 간다는 콘셉트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은 tvN에서 16부작으로 제작된 범죄 스릴러물이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물을 넘어 모두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드라마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충격적 유괴·살해]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

<시그널>의 에피소드 중 ‘김윤정 유괴사건’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유괴, 살해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유명한 사건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희생 아동의 이름과 살해자의 특이한 신분 때문에 더욱 사회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다.

1997년 8월30일 당시 27세였던 살해범 전현주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영어학원을 나서던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인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유괴하는데 성공하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경찰의 신분 검색에 걸린 그녀는 판단력을 잃고 박양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미 용의선상에 있었던 터라 경찰은 그녀의 자택 주변을 수사 중에 있었고 이를 의아해한 전씨의 아버지의 신고로 전씨는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결국 전씨는 9월12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당했다.


검거 당시 전씨는 임신상태였으며 그해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낭비벽이 심했던 그녀는 결혼 후 늘어난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해 3000만원의 빚을 진 상태였고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괴한 이유도 2000만원의 빚을 갚기 위함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범죄를 남편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사건 재연 때 “현주야 아니지? 네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말해줘”라며 울부짖는 듯한 남편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생생하게 들리기도 했다.

[3대 미제 사건]
[화성 연쇄살인]

일종의 소시오패스 끼가 있던 그녀는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검찰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그녀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결국 무기징역으로 판결됐다.

결국 범인 전현주는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대가로 4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교도소 수감 중이다. 이 사건 이후로 길거나 눈에 잘 띄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한동안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시그널>은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극으로 한국의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에게 모두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1988년 9월에 일어났던 8차 사건은 범인이 체포됐으나 8차 사건의 범인은 다른 사건의 범죄를 모방해 벌인 모방범 이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나머지 9명을 살해한 범인은 수수께끼이며 미제 사건으로 남아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이 사건은 18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수사를 받는 등 국내 살인 사건 수사 분야에서는 최대의 인력이 동원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 사건을 다뤘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각색된 부분이 많다. 영화에서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범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나 6가닥의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을 정도.

에피소드 모티브 실제 사고들 재부상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그때 그 사건

영화에서 나왔던 범인처럼 전문적이고 완벽한 살인자는 아니었다는 뜻인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대부분이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발견됐다. 바람에 증거들이 알아볼 수 없게 변질된 경우가 많았고 아닌 경우에는 빗물에 씻겨내려 간 적도 있었다. 증거를 수집해도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인력도 장비도 노하우도 부족했다.

기껏 증거로 채취한 정액도 유력한 용의자와 일치하지 않는 등 수사는 말 그대로 난항을 거듭했다.

강간과 살인이 짧은 시간에 이뤄졌고 속옷을 안면 부분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엽기적인 범행 수법을 보인 범인에게 국민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화성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줬고 공포에 떨게 했다. 당연히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며 여론에 떠밀려 경찰은 엄청난 숫자의 용의자를 잡아들였지만 범인을 골라내지는 못했다.

사건 용의자들과 수사 담당자 상당수가 이상하게 죽어가자 이른바 ‘화성 괴담’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던 중년의 차모(38)씨는 1990년 3월 화성시 태안읍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991년 4월에는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던 장모(32)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9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현장 검증 도중 범행을 부인했던 19세 청년은 1997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 7차 사건의 용의자 박모씨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여기에 심령술사의 제보로 붙잡힌 4, 5차 용의자 김모씨도 고문 후유증의 스트레스로 사망하고 유일하게 범인을 잡은 8차 사건에서 범인 추적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일 계급 특진한 최모 순경은 1999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화성 수사본부 관계자 중에서도 최모 치안감, 장모 수사과장, 송모 서장 등은 모두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도한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숨졌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풍수가 좋지 않다고 해서 경찰서 위치를 옮겨보기도 하는 등 별별 수를 다 써봤지만 헛수고였다.

SNS 통해 재수사 청원
경찰 나설까…반응은?

‘비 오는 날 밤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인다’는 괴담이 돌아 붉은 옷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비 오는 날에 외출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비 오는 날에 일어난 사건은 단 2건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과학 수사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사건이 됐고 서서히 제대로 된 과학 수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결국 공소시효까지 끝나버렸다.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은 “화성살인범이 죽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그널>의 여파로 인터넷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사건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 ‘인주 여고생 사건’으로 재구성됐다.

2004년 12월 한국 밀양지역에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밀양지역 유지들의 자식들인 고교생(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 밀성고등학교, 밀양 세종고등학교)들이 여중생 자매를 1년여 동안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형이라는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누리꾼들의 힘으로 사건을 수사한 남부경찰서가 피해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인권위원회 등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 가해자 41명 중 처벌을 받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산지검이 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20명 중 10명이 소년부로 송치됐고 그중 5명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사실상 전과가 남은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재학 중이던 대부분의 고등학교도 가해자들을 징계 조치하지 않았고 2개 학교에서만 ‘3일간 교내 봉사활동’과 같은 가벼운 벌을 내렸을 뿐. 이후 정상적으로 고교를 졸업한 가해자들은 현재 사회인이 돼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시 논란 중심에]
[밀양 집단강간 사건]

반면 피해자는 사건 후 서울로 이사해 전학을 시도했지만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학교로부터 전학을 거부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전학을 허락받아 간신히 다니게 된 어느 고교에는 한 가해자 부모가 아들의 처벌완화를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며 피해자의 교실로 무작정 찾아왔다. 학교에 성폭행 피해자란 사실이 알려질까 늘 두려워하던 피해자는 이 일로 학교를 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 가해자 부모들이 알코올중독 상태인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미끼로 합의를 종용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친권을 근거로 서울에서 정신과 치료 중이던 피해자를 다시 울산에 데려와 가해자 측과 합의할 것을 강요했다.

이처럼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사회적 편견과 법적 무관심 속에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하던 피해자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수사 과정 중 피해자들에게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놨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겁난다’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를 피의자와 직접 대질시켜 범인을 지목시키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실명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경찰의 일련의 대처가 인권 침해 등의 문제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가해 고교생들은 4개 고교에서 결성한 속칭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서클 소속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실제 조사를 받은 41명 외에도 75명이 더 있어서 최대 116명이라는 설이 있다.

밀양 지역 교육감들이 사태를 덮기 위해 경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항간에는 이들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이라서 쉽게 풀려났다는 의혹이 돌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 신상 및 최근 사진’ 등이 나돌고 있다. 한 네티즌이 이들의 최근 근황과 SNS 주소, 학력 및 현재 직업 등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을 올려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정보의 정확성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게시물이 확산되자 일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SNS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해자의 한 친구는 사건 당시 고등학교 때 자신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현재 현직 경찰 신분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흥행을 이어온 <시그널>은 지난 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그널>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물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줬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언급됐던 사건들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회자됐고 이는 곧 장기 미제로 남아 있는 각종 사건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런 국민적인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영화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 네티즌 수사대와 제보 등이 이어지곤 했다. 다만 아쉬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꾸준한 관심 필요]
[적극적 협조 관건]

나중에 같은 주제로 또다시 언급되면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볼 수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관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장기 미제 사건의 경우 특히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생존해있는 경우 관련된 사건이 다시금 언급되는 건 2차 피해를 입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심스러운 접근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 전체에서 SNS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정보를 알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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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