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망신살 뻗친 린다 김

수조 주무른 큰손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 로비스트로 군 무기 도입사업에 깊숙이 관여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린다 김. 그가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오히려 폭행과 폭언을 휘둘렀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로비스트로 천문학적인 커미션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 린다 김이 어쩌다 돈도 못 갚는 신세가 됐을까.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던 여성 사업가 린다 김(63)이 카지노 도박자금으로 쓰기 위해 빌린 5000만원을 갚지 않고 채권자를 폭행한 혐의(사기 및 폭행 등)로 고소를 당했다.

지난 16일 언론 보도에 의하면, 화장품 납품업 종사자 정모(32·여)씨는 린다 김에게 이 같은 일을 당했다며 최근 인천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사건이 벌어진 호텔 관할인 인천 중부경찰서에 고소장을 넘겼다. 경찰은 조만간 린다 김을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예정이라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받으러 온 사람
갚지 않고 폭행

“어이. 권 장관. 양아치 짓 하면 안 돼. 이번 무기는 말이야…”

정씨가 호텔 방에 들어서자 화가 난 듯한 목소리의 통화음이 들렸다. 전화를 끊고서 곧바로 다른 사람과 영어로 통화를 이어갔다. 이 중년 여성이 바로 린다 김이었다. 정씨는 린다 김의 고압적인 태도와 분위기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면세점에 화장품 납품을 하는 정씨는 부업으로 관광 가이드 일도 했다. 정씨는 린다 김을 얼마 전 외국인 전용 호텔 카지노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A씨를 통해 소개받았다.

A씨는 정씨에게 “아는 언니(린다 김)가 있는데 유명한 사람이다. 돈을 급하게 써야 한다. 이틀만 5000만원을 빌려주면 이자로 500만원을 준다고 했다”며 급전이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정씨는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15일 A씨의 부탁을 받고 집 보증금을 치를 현금을 들고 인천 영종도의 한 카지노 호텔로 린다 김을 만나러갔다.

린다 김의 통화 내용을 듣고 위압감을 느낀 정씨는 “돈을 빌려 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곧 A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붙잡았다. 그는 강원도 춘천의 땅 계약서를 보여주며 자신이 직접 보증을 서겠다고 했다. 계약서에는 평생 보지 못한 12억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시 A씨를 따라 호텔방에 들어서자 린다 김은 불같이 화를 냈다. 린다 김은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시계가 1억8000만원짜리야. 반지는 15캐럿이고. 미국에서 그랜드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라며 “너 이런 식이면 한국에 못 산다. 좋게좋게 돈 주고 가”라고 말했다. 린다 김은 노트 한 장을 찢어 차용증을 썼다. 차용증에는 ‘5000만원을 차용함에 있어 이를 어길시에 민·형사상에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함’이라고 썼다.

한때 잘나갔던 거물 로비스트
도박하다 돈 날리고 갑질 행패

다시 A씨를 따라 호텔방에 들어서자 린다 김은 불같이 화를 냈다. 린다 김은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시계가 1억8000만원짜리야. 반지는 15캐럿이고. 미국에서 그랜드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라며 “너 이런 식이면 한국에 못 산다. 좋게좋게 돈 주고 가”라고 말했다. 린다 김은 노트 한 장을 찢어 차용증을 썼다. 차용증에는 ‘5000만원을 차용함에 있어 이를 어길시에 민·형사상에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함’이라고 썼다.

정씨는 차용증을 들고 호텔방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지난 12월16일 자정쯤 린다 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린다 김은 정씨에게 다짜고짜 “카지노에서 1억5000만원을 날렸다”며 “5000만원만 더 밀어주면 10억을 주겠다”고 급전을 요구했다. 정씨는 “더 이상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17일 오후 1시. 돈을 돌려받기로 한 시각이 돼 정씨는 영종도 호텔 방에 찾아갔다. 정씨는 “빌려간 5000만원을 달라”는 정씨의 말에 린다 김은 “못 주겠다”고 답했다. 린다 김은 돈을 갚으라는 정씨를 한 차례 밀치고선 뺨을 휘갈긴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는 “왜 때리냐”고 맞서다 겁이 나 호텔 방에서 뛰쳐나와 곧장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인천 중부경찰서 공항지구대 경찰관이 호텔 로비에 도착했고, 사실 확인을 위해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린다 김 대신 로비로 내려온 A씨는 정씨에게 “너 이렇게 하면 돈 못 받는다. 저 언니가 돈 해준다고 하니 경찰관들 빨리 보내”라고 말했다. 정씨는 A씨의 말을 믿고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호텔방서 난동
조만간 소환조사

정씨가 다시 호텔방에 올라가자 린다 김은 적반하장이었다. ‘5000만원을 더 빌려주지 않았으며, 경찰을 불러 자신을 갖고 놀았다’는 것이었다. 린다 김은 “싸가지 없는 놈. 무릎 꿇고 빌면 돈 돌려줄게. 꿇어”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는 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린다 김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정씨는 “이모님, 제발 돈 좀 돌려주세요”라며 “제가 죄송해요. 저한테 정말 큰돈입니다”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린다 김은 며칠 안에 갚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린다 김은 정씨에게 돈을 대신 갚을 사람이라며 지인 연락처를 알려줬다. ‘마포 조박사’ 등 지인 2명은 2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정씨를 사채업자로 몰며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사이 린다 김은 정씨의 문자 메시지와 휴대전화를 수차례 피했다.

정씨는 최근 린다 김의 욕설 등이 담긴 음성 녹취록과 전치 3주 진단서 등을 토대로 인천지검에 사기 및 폭행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검찰은 사건이 벌어진 호텔 관할의 인천 중부 경찰서에 고소장을 넘겼다. 경찰은 조만간 린다 김을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정씨는 지난 16일 <연합뉴스>와 통해에서 “돈을 빌려 가 놓고선 갚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굴욕을 줬다”며 “당시에는 돈 때문에 참았지만 지금은 돈을 돌려받는 것보다도 가해자가 꼭 처벌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린다 김은 “5000만원을 빌리기로 하면서 500만원 선이자를 먼저 떼고 4500만원을 받았다”며 “돈을 빌린 것은 맞지만 중간에 감정이 나빠져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방에서 어깨를 한 차례 때린적은 있지만 무릎을 꿇린 사실은 없고, 정씨에 대해 법적 대응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린다 김의 한국명은 김귀옥으로, 성장 과정이나 경력 등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1953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용단에서 활동하다가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모의 로비스트
장관과의 염문설

1995년 무기 중개업체인 PTT사를 설립했다가 이후 IMCL사로 회사명을 바꾸고, 미국의 E-시스템사와 이스라엘 IAI사의 로비스트로 활약했다. 국내 고위급 인사들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한다.


린다 김은 한 때 ‘미모의 한 여성 로비스트가 한국군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5월 한 언론사에 러브레터가 공개됐다.

‘사랑하는 린다에게.

5.Apr.1996(식목일 휴일 아침). 편지 잘 받았어요(96.4.3)

지난번 서울 방문은 린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 dramatic한 사건이었고 그에 따른 심적 갈등, 혼란을 느꼈던 것을 편지에서 알았어요. So do I. 편지 말미에 린다의 결론, ‘당신을 사랑해요’가 모든 것을 감싸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중략) 당신을 사랑하는 L. I hope to see you soon.’

L은 김영삼 전 대통령 문민정부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이었다. 편지를 보낸 1996년 4월5일 당시 현직 국방부장관이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이다.

이 편지로 이른바 ‘린다 김 로비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 이 사건은 김영삼정부 시절에 국방부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인 백두사업 등의 무기 도입 과정에서 린다 김과 공사를 구분할 수 없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었다.


카지노 자금으로 빌린 5000만원
채권자 뺨 때리고 무릎 꿇려

백두사업은 약 2200억원이 소요되는 대형 국방사업으로, 1996년 린다 김을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응찰업체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는데도 2개월 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해 문제가 생겼다.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기 3개월 전에 당시 이 국방부장관이 정종택 환경부장관의 소개로 린다 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과 변호사,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원 등이 폭넓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 결과 린다 김의 불법 로비는 드러났지만, 이 전 장관과 직접 관련된 혐의는 없었다.

린다 김은 1995∼1997년 공군 중령 등으로부터 2급 군사기밀을 빼내고, 백두사업 총괄팀장에게 1000만 원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2000년 6월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미국으로 출국함으로써 이 사건은 종결됐다.

문민정부 시절 정계·관계 인사들과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없고, 수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는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린다 김 사건으로 처벌받은 적이 없지만, 1996년 10월 경전투 헬기사업과 관련해 대우중공업에서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불거져 그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옷을 벗었다.

린다 김은 몇 년째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종종 방송에도 출연하며, 과거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시절 비화 등을 공개하기도 한다. 지난해 린다 김이 클라라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사건을 언급해 화재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클라라와 이 회장의 ‘협박 논란’에 대해 다뤘다. 당시 방송에서 클라라의 지인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클라라에게 로비스트가 되는 게 어떻겠냐”며 “(클라라에게) 너는 영어도 잘하니까 로비스트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린다 김은 “이 회장과 클라라 그 두 사람만 생각하면 불쾌하고 불편하다”며 “이 회장의 생각이 마음에 안 든다. 영어 잘하고 얼굴 예쁘니까 로비스트 해라? 난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뭐하며 지낼까
근황 알아보니…

린다 김은 “요즘에 정말 예쁘고 톱 탤런트라 하면 기본적으로 영어는 다 한다. 그런 마인드라면 제일 예쁜 사람이 나가면 성공률이 높겠다는 것 아니냐. 근데 미모만 갖고 타협이 되겠냐”며 “경쟁이 붙으면 얼굴 하나로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어 “로비스트들이 하는 일이 (미국에서는) 불법은 아니다. 지극히 합법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돌아가는 무기 시장에 로비스트가 안 끼고 성사된 적이 한 건도 없다. 로비스트가 누구 하나 안 다고, 줄 하나 있다고 무작정 들어와서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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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