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체 추적 ‘문정영농조합 조합원 갈등’ 내막 1탄

“지금 문정동에서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문정동 영농단지에서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문정영농단지의 조합원들에 의해서다. “조합설립 과정에서부터 정관의 변경, 처분총회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인 절차는 하나도 없고 조합장의 막무가내 식의 독단과 일부 동조세력의 서류조작에 의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희생 위에 시대행업체만 배를 채우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송파구 문정동 일대는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도시개발 사업 부지로 선정, 고시하면서 투기열풍이 분 지역이다. 소위 ‘딱지’라고 불리는 토지매입권이 7000만원 상당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일부 거래의 프리미엄은 1억2000만원까지 갔다. 이러한 열풍 끝에 3개 조합이 결성됐다. 각 조합의 사업지는 문정동 8-1블럭, 8-4블럭, 8-5블럭 등이다.

각 사업지마다 크고 작은 문제와 다툼이 만연했지만 문제의 8-4블럭은 “조합장의 전횡에 의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여러 건의 소송으로 비화되면서 심각성이 고조된 상태다.

설립단계부터
서류조작?

모델하우스 공개 이후 상가 및 오피스텔 분양까지 완료된 시점인데도 “조합을 새로 결성해서라도 조합원들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말에 출범한 ‘조합원 권리회복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새해 들어 다수의 조합원들이 가세하는 중이다.

비대위는 늦어도 2월 초순까지 현 조합장의 해임과 시대행사와의 계약파기를 위한 총회를 소집할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조합원들의 합류가 이어지면서 그 동안 소문으로만 돌았던 조합장의 전횡 및 시대행사와의 결탁을 증명할 증거와 증인이 확보되고 있다”면서 “반드시 조합원들의 권리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횡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정동 8-4블럭의 사업주체는 원래 문정영농조합(이하 문정조합)이다. 조합장은 대치동에서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문모(50)씨. 그러나 현재의 사업주체는 시대행사로 선정된 R사다. 문정조합이 SH공사로부터 받은 토지우선매입권을 R사에 양도함으로써 사업주체가 바뀐 것이다. 조합원들은 사업주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조합장의 불법과 전횡이 무수히 자행됐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시각이 단순한 마녀사냥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송파경찰서에 “문정영농조합 설립 당시 조합장의 지시로 25명의 서류와 도장을 위조했다”고 자백한 증인이 나타난 것이 단적인 예다. 이 자백을 예사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향후의 파장 때문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문서위조가 확인될 경우 위조를 지시한 조합장과 이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법적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조합의 불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사업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SH공사의 규정에 따라 문정조합의 사업권이 박탈되는 수순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문정조합 설립 당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자백의 등장은 8-4블럭의 사업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여기에 문 조합장이 조합정관을 손 댄 부분도 SH공사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정관의 기본 기재사항 및 대표자의 직무권한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SH공사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초 SH공사가 8-1, 8-4, 8-5블럭 조합들에게 ‘대표자 직무권한 왜곡금지’를 못 박은 것은 조합관련 사업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조합장의 전횡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문정조합은 이 부분에 손을 댔다.
 

변경된 조합정관 11조를 보면 <조합장 및 임원의 직무> 4항 ‘시대행사 선정권(시대행사와 조합의 공동시행계약체결권)’과 5항 ‘시대행사가 개별조합원에게 지급할 조합원 배당금액의 결정권’을 조합장의 권리에 포함시켜 놨다. SH공사가 금지한 행위를 대놓고 저지른 것이다.

조합 처분총회 전
이미 사업권 넘겨


조합 사업에 있어 시대행사 선정과 배당금 조건에 대한 결정은 특정 개인이 결정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금기 사안이다. 조합원 개개인의 재산권이기 걸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중대한 사안은 총회를 개최해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는 의결을 거쳐야 한다.

조합원들 입에서 “시대행사 선정권, 조합원 배당금액 결정권을 조합장이 갖도록 정관을 변경한 것은 처음부터 조합원들의 권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말이 도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조합원 박모(50)씨는 ‘SH공사 기만설’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장이 SH공사에 조합설립 당시의 정관만 보내고 이후 변경한 정관은 일부러 감추는 방식으로 SH공사를 기만했다”는 얘기다.   

SH공사가 금지하는 정관변경을 강행한 이후의 조합장의 행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시대행업체를 세 번이나 갈아치운 것이다. 조합원 김모(52)씨의 말이다. “처음 데려 온 H사와 두 번째 데려 온 U사는 조합원에게 개인당 9000만원 이상의 현금 보상을 약속했다. 그런데 조합장이 그 계약을 파기하더니 최종적으로 R사와 계약했다. R사의 조합원 보상금액은 7000만원으로 세 업체 중 최악의 조건이다. 이게 정상으로 보이나?”

게다가 시대행사 선정과정에서 낯 뜨거운 추문도 드러났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정모(46)씨의 증언이다.

“문 조합장이 H라는 업체로부터 뒷돈을 몇 억 받기로 한 모양인데 그것을 예전 임원 한 명이 알고 와서는 엄청나게 따진 적이 있다. 그 돈을 혼자 다 먹으려고 사실을 숨겼냐는 항의였다. 조합장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것을 나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봤다.”

이러한 추문은 현재 ‘문 조합장과 R사가 모종의 대가를 주고받기로 결탁한 것이 확실하다’는 조합원의 판단에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 조합원들이 제대로 화가 나게 한 사건이 터졌다. 작년 1월 경 “문 조합장이 조합원들 재산을 멋대로 팔아먹었다”는 말이 돌더니 뒤이어 문 조합장이 R사와 체결한 ‘사업권 양수도 계약서’가 공개된 것이다.

처분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는 후 체결됐어야 할 계약이 사전에 계약서로 작성됐다는 것을 예사로 넘길 사람은 없었다. ‘처분총회 무산 시 배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조합원들을 크게 자극했다.

“말이 안 되지만 시대행사 선정권과 조건협상권이 조합장에게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내 동의 없이 맘대로 처분할 권리가 조합장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동의도 없는데 내 재산, 내 권리를 조합장 맘대로 넘기다니, 그런 게 어디 있나. 배임이고 사기다!”

조합원 김모(61)씨가 “조합원들이 조합장과 R사에게 사기 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리인에게 집 열쇠 맡겼다고 집안 물건을 다 팔아도 된다고 허락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조합원 재산권을 조합장이 독단 매각?
비상대책위 호소에 검찰개입 임박한 듯


사업권 양도 계약서의 유출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조합장을 파면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문 조합장과 그를 따르는 임원들이 “나중에 사후 추인을 받으려 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후 조합장이 개최한 처분총회에 조합원들이 ‘불참 전략’으로 대응한 것이다. 결국 계약서의 추인을 받고자 시도된 처분총회는 세 차례 모두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그런데 지난해 4월10일 열린 네 번째 처분총회는 달랐다.

문 조합장이 “직접 참석 17명, 위임장 제출 130건으로 성원이 됐다”고 선포한 이후 R사에게 사업권을 양도하는 계약서의 추인을 강행한 것이다. 개회선언 이후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처분총회는 현재 불법 논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처분총회 당시의 동영상을 직접 열람해보니 “정상적인 처분총회가 아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갔다. 회의장 안에서는 의사발언 중인 감사가 퇴장당하는가 하면 조합의 총무이사는 입장조차 저지당했다. 위임장을 지참한 몇몇 조합원의 입장이 거부되는 장면에서는 “억울하면 소송해!”라고 소리치는 주최 측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물론 이날 입장 거부된 일부 조합임원과 조합원들이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SH공사로 공문을 보내 “서면동의서에 포함된 인감서류 날자와 동의서 날짜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절차적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처분총회 승인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청은 수용되지 않았다. SH공사가 8-4블럭의 처분총회를 승인한 것이다. 첨부된 서류 중에 1년 전에 발급한 인감증명서가 무수히 나올 것이라는 주장도 SH공사 담당자를 설득해 내지 못했다.

‘추인 자체가 반칙"
"처분총회도 불법?’

조합원과 조합임원 명의의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처분총회가 승인된 배경은 무엇일까. SH공사 담당자는 “인감증명서 발급 날짜까지 모두 확인했으나 이상이 없었다”는 답변을 내놨다. 총무이사 및 운영위원들이 요구한 승인보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 또한 “모든 것을 서류로 심사를 할 뿐 이해 관계자의 말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다”며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SH공사 담당자의 답변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합임원과 운영위원의 사전경고와 서면 요청이 있었던 만큼 제출된 회의록의 검증 또한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위임장이 조작되었다고 나선 조합원도 5명이나 존재했다.
 

조합원들이 “전화 몇 통 돌려봐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을 SH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안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최소 14일 이전에 소집공고를 하도록 한 정관을 위반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조합원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문정조합 총무이사 박순임(46)씨는 “앞서 시도됐다 무산된 3차례의 처분총회 과정에서 동일한 필적의 동의서 수 십 장과 1년 전에 발급된 다수의 인감증명서를 직접 목격했다”며 증언에 힘을 싣고 있다.

조합원 상당수는 문제가 많은 처분총회가 승인된 것은 SH 담당자와 조합장 간 혹은 SH 담당자와 R사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일요시사>가 SH공사 담당자에게 처분총회 관련 서류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불허됐다. “조합원이 와도 보여줄 수 없고, 조합임원이 와도 열람이 안 된다”는 것이다. 감사원이나 검찰, 서울시 등의 개입 없이는 조합원들이 SH공사의 승인과정을 검증할 방법이 만무한 상태다.

시대행사 약속 불이행
조합원들 "역차별 발끈"

처분총회를 둘러싼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R사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모델하우스 공개 이후 실시된 사전청약에서 오피스텔과 상가 대부분이 절찬리에 마감된 것이다. 마감 결과 문정조합원들이 오피스텔이나 상가를 분양받은 케이스가 매우 적었다. 일반분양을 한 탓이다. 조합원들이 “10년 넘게 기다린 조합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다.

“조합장이 제시한 R사의 문건에는 잔금의 상계처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조합원들에게 상가나 오피스텔을 우선해서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거짓말로 판명됐다. 조합원은 손가락 빠는데 R사는 이번 사업으로 200억원의 수익을 본다. 도대체 누가 이 지경을 만들었겠나?”

한 조합원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역차별 발언이 꽤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조합원 둘 이상만 모이면 “조합장이 업체로부터 이익을 나누자는 약속을 받고 엄청난 사기극을 저질렀을 것”이란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군중심리에 의한 조합원들의 막연한 추측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을 보면 터무니없는 마녀사냥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일부 조합원은 문 조합장이 자신과 관련한 여러 소송에서 대형로펌이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딱지 한 장 가진 사람이 얼마나 이익을 본다고 그 비싼 로펌을 고용해서 대응하겠느냐는 것이다.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R사가 조합장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했거나 정산 후 받기로 하고 빌려줬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조합원들의 판단이다.
 

신탁사가 발행한 수익증권이 204명 조합원의 개별 명의가 아닌 문정조합 명의로 통합발행 된 점도 조합원들에게는 야합의 증거(?)로 비춰지고 있다. 조합청산에 들어갈 때까지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조합명의 수익증권이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저지른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조합사무실이 사실상 폐쇄된 것도 의혹 증폭의 요인이 되고 있다. 조합원들이 받은 ‘조합사무실 이전’ 문자를 받아 찾아간 주소지에는 조합사무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건물 구석에 간판 없는 출입문이 하나 있었지만 그나마 잠겨있었다.

현재 조합원들의 시선은 ‘조합장과 R사의 야합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 수준에서 ‘분명히 야합을 했다’는 확신 단계로 이동 중이다. 그러나 정작 의혹의 눈총을 받는 조합장과 R사는 아무런 해명과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에 대해 “어떠한 것도 대답할 말이 없다(조합장)”거나 “귀 신문사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R사)”는 입장만 알려왔다. “반론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문자에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문 조합장과 R사가 취재요청을 회피하는 동안에도 비대위는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세력을 불리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조합원이 조금만 더 모이면 문정조합이 아닌 다른 이름의 조합을 새로 결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3주 이내에 총회를 개최해서 현 조합장의 해임, R사와의 계약 파기, SH공사에 신규조합 신고 등의 수순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조합이 설립 단계부터 처분총회까지 무수한 절차적 하자와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난 만큼 새 조합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조합이 직접 사업을 해야 R사가 도모하고 있는 200억원의 수익이 200여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명분이다.

새 조합 만들어
조합사업 재추진 

한편, 비대위의 행보와 별개로 주목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검찰에 문정영농조합과 관련한 비리제보가 계속 수집되는 만큼 조만간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 감사원 주변에서도 “문정동 사업부지와 관련해서 SH공사에 대한 감사 타이밍을 조율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조만간 문정동 일대에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 예견되는 이유다.

‘조합장 치고 감옥 안 가는 사람이 없다’는 속설이 문정동 일대에 회자되는 가운데 문정단지 조합장이 예외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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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