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노숙자들은 지금…

“따뜻한 봄날만 기다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5년의 끄트머리 영등포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 연인 등 올해가 가기 전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훈훈한 마음이 감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틈 외로이 영등포역 바닥에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바닥에 잠들어 있는 사람, 낮부터 술에 취해있는 사람, 심지어 서로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그들은 연말이 훈훈하지 않다. 자신을 괴롭히는 추운 겨울일 뿐더러 하루하루가 더욱 고통스럽다.

영등포 지역의 노숙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150여명, 비공식적으로 6000명에 이른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외로움과 편견·무력감을 첫 번째로 들었다.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3명이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이라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고통

‘무기력’(22명), ‘주위 사람들의 편견’(24명)까지 합치면 심적인 어려움을 토로한 이가 69%에 달했다. ‘배고픔과 추위’라고 답한 이는 28명이었고, ‘건강 악화’를 꼽은 이는 3명에 불과했다.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41명이 ‘직업 훈련’을 꼽았다.

노숙자들의 대부분은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숙박은 길거리에서 자거나 더러는 PC방·만화방·고시원 등을 이용한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5년 이상 노숙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영등포 지역은 잠재적 노숙자들이 무더기로 대기하는 곳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곳에는 일용직 인력시장과 기초수급자 집단이 몰려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시설·노숙 생활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노숙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20만∼40만원. 월수입이 있는 노숙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술값, 담배값이나 경마, PC게임 등으로 탕진한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종교·사회봉사단체 등의 숙식 지원 때문이다. 노숙자가 많은 영등포에 숙식 지원이 집중되다보니 노숙자들의 자활의지가 떨어지는 것.


노숙자들의 범죄도 위험수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영등포역에서 노숙자 두명이 말다툼 끝에 몸싸움을 벌여 이 과정에서 노숙자 이모(61)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미동조차 없는 이씨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난 김모(45)씨는 달아나려 했지만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7분 뒤 경찰의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 응급처치 후 봉합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병원으로 후송하려 했지만 술에 취한 이씨가 이를 거부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이씨가 먼저 욕을 하며 시비를 걸어 왔다”면서 “부모욕을 하는데 누가 참을 수 있겠냐. 때리진 않았지만 밀치긴했다” 는 등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

노숙생활을 하던 남성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상습적으로 훔치다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일 밤, 노숙자 김모(49)씨는 골목길에 주차된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훔치다 꼬리를 잡혔다. 김씨는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영등포구 등을 돌아다니며 27회에 걸쳐 절도를 저질렀다.
 

김씨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생활비 마련 때문이었다. 김씨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 수감됐다 2010년 초 출소했다.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했으나, 노숙이 장기화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시 절도를 시작한 것.

갈 곳 없는 길거리 생활 “추위가 야속”
생계형 범죄 급증…부랑 외국인도 늘어

김씨는 박스포장용 끈으로 화물차 문을 열고 충전드릴, 전동드릴 등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공구를 빼내는 방식으로 약 1400만원 상당의 공구를 훔쳤다. 이렇게 훔친 공구는 3분의 1가격으로 중고거래상에 팔았고, 이 돈으로 여인숙 이용료와 식비 등을 충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모여 있는 영등포역에는 노숙자끼리 다툼이나 사고 등 노숙자 관련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노숙자 중에는 외국인도 섞여 있다. 지난 10일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와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던 외국인 노숙자 토머스씨가 담도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토머스씨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5년 전 영어교육 사업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이후 사업이 기울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노숙자가 됐다. 반포 지하상가 등지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토머스씨는 올해 초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센터의 지원을 받아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오랜 거리 생활로 온 몸에 종양이 생기고 손을 심하게 떠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토머스씨가 숨을 거두자 서울시는 장례식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아직 국적 확인도 정확히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된 영국 여권도 위조된 것으로 판명났다. 여성노숙자가 성폭행·임신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노숙생활 중 성범죄로 인해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거나 원치않는 출산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자녀와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의 안전도 아슬아슬하다. 현재 영등포역 부근 응급쪽방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는 여성 노숙자 최모씨도 7살 아들과 영등포역 대합실이나 영등포공원 등에서 노숙하다 발견됐다. 최씨는 지금도 낮이면 아들과 함께 PC방이나 영등포역 주변을 맴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많이 어눌하다. 최씨는 “딸도 있지만 지인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자와 가정불화 등의 사유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거리노숙인 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노숙인들을 쉼터에 입소시키거나 숙식, 의료서비스 제공, 알콜 재활 등의 자활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노숙인과 아이가 딸린 여성가족 노숙인을 위해서는 여성 및 여성가족쉼터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성거리노숙인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 이들이 목욕, 세탁 등 생활상의 편의시설을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자활에 성공한 노숙자들은 거리·시설 노숙자 뿐 아니라 일용직노동자와 기초수급자를 아우르는 새로운 빈곤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노숙자는 “노숙자들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현 상황을 극복하고픈 욕구가 있다”며“직업훈련 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노숙

노숙자 쉼터인 햇살보금자리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 일을 성취했을 때 그 만족감이 자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들의 달라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벼룩 간을 빼먹지” 노숙자 등쳐 먹은 사기꾼 

일자리 소개와 휴대폰 깡을 미끼로 노숙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각각 개통한 후 그대로 달아난 성인 남성 두 명이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들에게 공동으로 노숙자 두 명을 유인·감금한 혐의도 적용했다. 

지난 6월 A(41)씨는 대전 동구 정동 소재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자에게 접근해 “택배 일을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휴대전화 2대가 필요하다”고 꼬드겨 시가 106만원 상당의 아이폰 한 대를 편취했고, B(35)씨는 같은 달 같은 장소에서 “내 대신 휴대전화를 개통해 주면 그 대가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노숙자를 꾀어낸 후 노숙자가 실제 106만원 상당의 삼성 스마트폰을 개통해 오자 이를 건네받아 그대로 도주했다. 

이에 앞서 A씨와 B씨는 지난해 10월 대전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두 명에게 접근, 숙식제공을 미끼로 대전 중구 모처의 여관으로 유인한 후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를 주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노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태도를 바꿔 욕설을 퍼붓고 몸에 새겨진 문신을 들춰내 위협하는 등으로 노숙자들이 다음날 오전까지 밖에 나오지 못하게 감금하기도 했다. 

대전지법 형사6단독(임민성 재판장)은 사기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공동감금)로 기소된 A씨(41)와 B씨(35)에게 각 징역 6월과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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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