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어깨 무거운 이영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예상 깨고 깜짝발탁 “적이 없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김수남 검찰총장 체제의 진용이 갖춰졌다. 당초 지난주 중반으로 예상됐던 검찰 고위 인사가 늦어진 데는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기용할 대상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 간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검찰 2인자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이영렬 검사가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구·경북(TK) 출신이 아닌 인사가 임명되기는 4년 만이다.


법무부는 지난 21일 이영렬(57·사법연수원 18기·서울) 대구지검장을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는 등 검찰 고위직 인사를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비 TK(대구·경북) 출신이 임명되기는 4년 만이다. 서울 출신인 이 지검장은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28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9년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김수남 체제
진용 갖춰줘

이 지검장은 26년 검사 생활 동안 매사에 원칙을 중시하는 엄정한 업무처리와 함께 합리적이며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 지검장 임명을 두고 ‘최적임자’라는 평이 쏟아졌던 것도 이 때문. 매끄럽고 빈틈없는 업무처리로 ‘수사건, 기획이건 실무에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 서울남부지검장, 대구지검장 등 검찰의 주요 보직을 거치며 수사와 기획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특히 송광수 전 검찰총장(65·3기) 재임 때 ‘연설문 작성 전담’ 연구관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한다.

이 지검장은 1998년 미국 뉴욕의 한국에너지개발기구(KEDO)에 파견돼 ‘북한에 최장기간 체류한 현직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 때 당시 한 후배 검사는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우려한 검사들이 모두 파견 제안을 뿌리쳤지만 이 지검장만 ‘조직이 원하면 따르겠다’며 파견 지시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청와대-법무부-대검 치열한 줄다리기
결국 막판에 이 지검장 쪽으로 정리

이 지검장은 원칙을 중시하는 업무 처리로 ‘뚝심형’ 검사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재직시절에 그는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사건을 수사하며 경찰관이 고문을 당했다는 피의자의 주장을 묵살하고 유치장 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내 관련 경찰관을 구속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대검 중수부 폐지 후 특수수사를 전담하며 검찰 내 2인자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데 대해 올해 대구지검의 수사성과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올해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하며 사상 처음 보이스피싱 조직을 범죄조직으로 기소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 지검장은 사기범 조희팔 수사도 지휘해 왔다. 조희팔 수사와 관련된 범죄수익을 은닉한 조씨의 아들과 내연녀 등 20여명을 재판에 넘기고 최근 중국 공안에 검거된 ‘조희팔 2인자’ 강태용(54)씨를 국내로 송환해 구속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장 재직 때에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정착시켰고 청부 살해 혐의로 김형식 서울시 의원을 기소해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이 지검장은 평소 선후배들을 잘 챙기고, 조직 내에 적이 없을 만큼 소통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올해 대구지검장에 재직할 때에는 후배 부장검사들을 관사로 불러 직접 고기를 삶아주고 각종 요리를 해줬다고 한다. 특히 후배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생 이지원(51) 변호사가 2004년 여검사로는 처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치돼 화제에 오르면서 ‘남매 검사’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영문학을 가르치는 부인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 중인 외아들이 있다.


내부 의외 반응
입김 작용했나

법무부는 고검장·검사장급 고위 간부 43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 차관에는 이창재 서울북부지검장이 승진 임명됐고 김주현 법무부 차관은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이동했다. 김 총장과 총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부정부패 척결 및 내년 총선 관리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6·17기 고검장들과 18기 검사장들을 대거 ‘용퇴’시키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부산·경남(PK) 출신 고위 간부들이 옷을 많이 벗었다. 17기 김경수(경남 진주) 전 대구고검장과 조성욱(부산) 전 대전고검장, 18기 강찬우(경남) 전 수원지검장 등이다. 직전 김진태 검찰총장(진주)도 PK로 분류된다. 이번에 고검장 승진자가 없어 고검장 9자리 중 PK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구·경북(TK)의 경우 최교일(경북 영주), 조영곤(경북 영천), 김수남(대구), 박성재(경북 청도) 지검장까지 4명 연속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비(非) TK 인사에게 내줬다. 하지만 김 총장을 배출한 직후 고검장 1명(김강욱), 검사장 2명(최종원·김영대)의 승진자를 내면서 현상유지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외에 서울·호남 각 3명, 충청 2명의 검사장 승진자를 내며 지역 안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검장의 발탁은 모두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법무부의 인사 발표가 있던 21일, 대검찰청 간부들도 서울중앙지검장 인사에 다소 놀라는 분위기였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 지검장이 고검장으로 승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올지는 오늘 아침까지도 전혀 몰랐다.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뚝심형 검사로 정평
4년 만에 비TK 인사

서울중앙지검장직을 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대검찰청이 각각 치열한 줄다리기를 했던 상황에서 연배가 있으면서도 적이 없는 이 지검장이 막판에 중용,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검장이 청와대 고위급과 친분이 있다는 설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후보군들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각자 계산법이 복잡하다 보니, 제3자에게 득이 되는 ‘어부지리식 인사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동기인 연수원 19기에서 고검장 3명이 나와 검찰 지휘부의 전체 인사구도를 짤 때 우 수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번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는 여느 때보다 물밑 조율이 치열했다. 당초 예정보다 늦어진 건 주요 사정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청와대 측과 김 검찰총장 측 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다가 ‘사시 폐지 4년 유예’ 발표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19기 김진모·윤갑근 검사장 등과 샅바 싸움 끝에 18기 이 지검장 쪽으로 정리됐다는 것이다.

매사 원칙 중시 
수사·기획 강해

검찰 고위간부 진용이 갖춰짐에 따라 김 총장은 전국 단위 수사를 위한 상설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포함해 후속 개혁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부장급 인사에서 ‘김수남 체제의 면모’가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이영렬은]

▲서울(58년생)
▲서울 경복고
▲서울대 법학과
▲부산지검 검사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
▲서울지검 검사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부산지검 부부장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대구지검 공판부장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
▲서울고검 검사
▲수원지검 평택지청장
▲인천지검 2차장
▲남부지검 차장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서울고검 송무부장
▲대전고검 차장
▲전주지검장
▲서울남부지검장
▲대구지검장   


<기사 속 기사> 이상원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이상원 경찰청 차장(57)이 31대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내정됐다. 이 신임 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임명되면서 경찰 고위 간부가 만 57세면 퇴임하던 관행인 ‘조정정년’이 2000년 이후 15년 만에 폐지됐다.

이 청장은 1958년 충북 보은 출신으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경찰간부후보 30기로 임용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장·과학수사센터장·형사과장·수사국장, 은평경찰서장, 대전지방경찰청장, 인천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을 거쳐 경찰 조직 내 2인자 자리로 꼽히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이 청장은 외유내강의 지휘 스타일로 조직 내에서 덕장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일선 경찰서를 두루 거쳐 현장업무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일 경찰에 따르면 정부는 이 청장 외에 부산지방경찰청장에 권기선 경북지방경찰청장, 인천지방경찰청장에 윤종기 충북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에 김종양 경찰청 기획조정관 등 4명을 각각 승진·내정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과 황성찬 경찰대학장은 유임됐다.


이외 치안감급 인사에서는 경무관 10명이 승진한 것을 비롯해 총 25개 직위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이들의 출신지역 및 입직 경로를 살펴보면 치안정감의 경우 출신지역별로는 수도권이 1명 충청권 2명, 호남권 1명, 영남권 2명이며 입직경로별로는 경찰대학 3명, 간부후보 2명, 고시 1명이다.

치안감 승진자의 경우, 지역별로는 수도권 2명, 충청권 2명, 호남권 2명, 영남권 4명이며 입직경로별로는 경찰대학 출신이 6명, 간부후보 3명 고시 1명 이다.

이번 인사에 대해 경찰청은 “업무 성과와 전문성, 도덕성 등에 대한 평가와 검증을 거쳐 적임자를 선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입직경로와 출신 지역 등을 고려하는 한편, 대상자의 경력과 능력 등을 두루 감안해 적재적소 보직 배치를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다. <창>

▲충북 보은(1958년생)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간부후보 30기
▲경남청 수사과장
▲충북 진천서장
▲인천 수사과장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장
▲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기획수사심의관
▲경기청 제2부장
▲경찰청 수사국장
▲대전지방경찰청장
▲경찰청 보안국장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인천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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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