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어깨 무거운 이영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예상 깨고 깜짝발탁 “적이 없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김수남 검찰총장 체제의 진용이 갖춰졌다. 당초 지난주 중반으로 예상됐던 검찰 고위 인사가 늦어진 데는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기용할 대상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 간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검찰 2인자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이영렬 검사가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구·경북(TK) 출신이 아닌 인사가 임명되기는 4년 만이다.


법무부는 지난 21일 이영렬(57·사법연수원 18기·서울) 대구지검장을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는 등 검찰 고위직 인사를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비 TK(대구·경북) 출신이 임명되기는 4년 만이다. 서울 출신인 이 지검장은 서울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28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9년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김수남 체제
진용 갖춰줘

이 지검장은 26년 검사 생활 동안 매사에 원칙을 중시하는 엄정한 업무처리와 함께 합리적이며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 지검장 임명을 두고 ‘최적임자’라는 평이 쏟아졌던 것도 이 때문. 매끄럽고 빈틈없는 업무처리로 ‘수사건, 기획이건 실무에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 서울남부지검장, 대구지검장 등 검찰의 주요 보직을 거치며 수사와 기획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특히 송광수 전 검찰총장(65·3기) 재임 때 ‘연설문 작성 전담’ 연구관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한다.

이 지검장은 1998년 미국 뉴욕의 한국에너지개발기구(KEDO)에 파견돼 ‘북한에 최장기간 체류한 현직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 때 당시 한 후배 검사는 “다음 정권에서 불이익을 우려한 검사들이 모두 파견 제안을 뿌리쳤지만 이 지검장만 ‘조직이 원하면 따르겠다’며 파견 지시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청와대-법무부-대검 치열한 줄다리기
결국 막판에 이 지검장 쪽으로 정리

이 지검장은 원칙을 중시하는 업무 처리로 ‘뚝심형’ 검사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재직시절에 그는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사건을 수사하며 경찰관이 고문을 당했다는 피의자의 주장을 묵살하고 유치장 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내 관련 경찰관을 구속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대검 중수부 폐지 후 특수수사를 전담하며 검찰 내 2인자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데 대해 올해 대구지검의 수사성과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올해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하며 사상 처음 보이스피싱 조직을 범죄조직으로 기소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 지검장은 사기범 조희팔 수사도 지휘해 왔다. 조희팔 수사와 관련된 범죄수익을 은닉한 조씨의 아들과 내연녀 등 20여명을 재판에 넘기고 최근 중국 공안에 검거된 ‘조희팔 2인자’ 강태용(54)씨를 국내로 송환해 구속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장 재직 때에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정착시켰고 청부 살해 혐의로 김형식 서울시 의원을 기소해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이 지검장은 평소 선후배들을 잘 챙기고, 조직 내에 적이 없을 만큼 소통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올해 대구지검장에 재직할 때에는 후배 부장검사들을 관사로 불러 직접 고기를 삶아주고 각종 요리를 해줬다고 한다. 특히 후배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생 이지원(51) 변호사가 2004년 여검사로는 처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치돼 화제에 오르면서 ‘남매 검사’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영문학을 가르치는 부인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 중인 외아들이 있다.


내부 의외 반응
입김 작용했나

법무부는 고검장·검사장급 고위 간부 43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 차관에는 이창재 서울북부지검장이 승진 임명됐고 김주현 법무부 차관은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이동했다. 김 총장과 총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부정부패 척결 및 내년 총선 관리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6·17기 고검장들과 18기 검사장들을 대거 ‘용퇴’시키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부산·경남(PK) 출신 고위 간부들이 옷을 많이 벗었다. 17기 김경수(경남 진주) 전 대구고검장과 조성욱(부산) 전 대전고검장, 18기 강찬우(경남) 전 수원지검장 등이다. 직전 김진태 검찰총장(진주)도 PK로 분류된다. 이번에 고검장 승진자가 없어 고검장 9자리 중 PK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구·경북(TK)의 경우 최교일(경북 영주), 조영곤(경북 영천), 김수남(대구), 박성재(경북 청도) 지검장까지 4명 연속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비(非) TK 인사에게 내줬다. 하지만 김 총장을 배출한 직후 고검장 1명(김강욱), 검사장 2명(최종원·김영대)의 승진자를 내면서 현상유지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외에 서울·호남 각 3명, 충청 2명의 검사장 승진자를 내며 지역 안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검장의 발탁은 모두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법무부의 인사 발표가 있던 21일, 대검찰청 간부들도 서울중앙지검장 인사에 다소 놀라는 분위기였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 지검장이 고검장으로 승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올지는 오늘 아침까지도 전혀 몰랐다.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뚝심형 검사로 정평
4년 만에 비TK 인사

서울중앙지검장직을 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대검찰청이 각각 치열한 줄다리기를 했던 상황에서 연배가 있으면서도 적이 없는 이 지검장이 막판에 중용,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검장이 청와대 고위급과 친분이 있다는 설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후보군들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각자 계산법이 복잡하다 보니, 제3자에게 득이 되는 ‘어부지리식 인사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찰 동기인 연수원 19기에서 고검장 3명이 나와 검찰 지휘부의 전체 인사구도를 짤 때 우 수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번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는 여느 때보다 물밑 조율이 치열했다. 당초 예정보다 늦어진 건 주요 사정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청와대 측과 김 검찰총장 측 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다가 ‘사시 폐지 4년 유예’ 발표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19기 김진모·윤갑근 검사장 등과 샅바 싸움 끝에 18기 이 지검장 쪽으로 정리됐다는 것이다.

매사 원칙 중시 
수사·기획 강해

검찰 고위간부 진용이 갖춰짐에 따라 김 총장은 전국 단위 수사를 위한 상설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포함해 후속 개혁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부장급 인사에서 ‘김수남 체제의 면모’가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이영렬은]

▲서울(58년생)
▲서울 경복고
▲서울대 법학과
▲부산지검 검사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
▲서울지검 검사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부산지검 부부장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대구지검 공판부장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
▲서울고검 검사
▲수원지검 평택지청장
▲인천지검 2차장
▲남부지검 차장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서울고검 송무부장
▲대전고검 차장
▲전주지검장
▲서울남부지검장
▲대구지검장   


<기사 속 기사> 이상원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이상원 경찰청 차장(57)이 31대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내정됐다. 이 신임 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임명되면서 경찰 고위 간부가 만 57세면 퇴임하던 관행인 ‘조정정년’이 2000년 이후 15년 만에 폐지됐다.

이 청장은 1958년 충북 보은 출신으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경찰간부후보 30기로 임용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장·과학수사센터장·형사과장·수사국장, 은평경찰서장, 대전지방경찰청장, 인천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을 거쳐 경찰 조직 내 2인자 자리로 꼽히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이 청장은 외유내강의 지휘 스타일로 조직 내에서 덕장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일선 경찰서를 두루 거쳐 현장업무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일 경찰에 따르면 정부는 이 청장 외에 부산지방경찰청장에 권기선 경북지방경찰청장, 인천지방경찰청장에 윤종기 충북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에 김종양 경찰청 기획조정관 등 4명을 각각 승진·내정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과 황성찬 경찰대학장은 유임됐다.


이외 치안감급 인사에서는 경무관 10명이 승진한 것을 비롯해 총 25개 직위에 대한 인사가 단행됐다. 이들의 출신지역 및 입직 경로를 살펴보면 치안정감의 경우 출신지역별로는 수도권이 1명 충청권 2명, 호남권 1명, 영남권 2명이며 입직경로별로는 경찰대학 3명, 간부후보 2명, 고시 1명이다.

치안감 승진자의 경우, 지역별로는 수도권 2명, 충청권 2명, 호남권 2명, 영남권 4명이며 입직경로별로는 경찰대학 출신이 6명, 간부후보 3명 고시 1명 이다.

이번 인사에 대해 경찰청은 “업무 성과와 전문성, 도덕성 등에 대한 평가와 검증을 거쳐 적임자를 선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입직경로와 출신 지역 등을 고려하는 한편, 대상자의 경력과 능력 등을 두루 감안해 적재적소 보직 배치를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다. <창>

▲충북 보은(1958년생)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간부후보 30기
▲경남청 수사과장
▲충북 진천서장
▲인천 수사과장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장
▲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기획수사심의관
▲경기청 제2부장
▲경찰청 수사국장
▲대전지방경찰청장
▲경찰청 보안국장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인천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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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