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영원한 의장님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

50년 정치인생 빛낸 원칙과 소신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인물이 있다. 숙환으로 별세한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이 전 의장은 본인이 대통령을 지내지 않았을 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한국 현대사를 함께 써내려갔다. 그는 50여년 정치 인생을 보내며, 소신과 강단으로 역사에 ‘영원한 의회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다.

제14대, 15대 국회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83) 전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오후 4시31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호흡부전으로 눈을 감았다. 이 전 의장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화통신>을 거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거목 잃었다
정치권 애도

1960년 4·19혁명 뒤 국회에서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될 때, 이 전 의장이 당시 정치부 기자로 의사당 기자석에서 지켜보다가 “자유당 이 도눅놈들아”라고 소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국회속기록에 이름을 올린 사례라고 한다. 이 전 의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당시 사회를 보던 곽상훈 국회 부의장이 기자석을 향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시오’라고 제지해서 국회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는데 나중에 삭제했더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군사정부는 민간인에게 조속히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그와 친분을 맺게 됐다.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의 총애 속에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당시 최연소(31살)로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이 전 의장은 1963년 6대 국회 때 공화당 전국구로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7·10대·11·12·14·15·16대 국회에 각각 당선돼 8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전 의장의 특유한 원칙과 소신으로 그의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치역정을 걸어야 했다. 초선 의원 시절인 1964년 ‘남북가족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대표 발의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용공’ 인사로 몰리기도 했다. 당시 남북을 통틀어 처음 나온 주장이었다.

박정희 인연으로 화려하게 정치입문
31세부터 8선…순탄지 않은 정치역정

제6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66년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비판하다가 이병철과 이맹희에 의해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할 뻔 했다.

제7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69년 정구영 등과 함께 3선 개헌에 반대하며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당시 실력자이던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퇴진을 공개 요구하는 강단을 보여줬다. 이 비서실장과 김 중앙정보부장 경질 등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고 찬성으로 선회했다. 결국 3선 개헌은 변칙 통과되고 직후에 김 정보부장과 이 비서실장은 경질됐다.

하지만 1970년 1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돌아온 이후락이 앙심을 품고 공작을 저질러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8년간 정치 활동의 공백기를 맞는 시련을 겪었다.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한 계기였다.

다행히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행히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대구 중구·서구·북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 당시 부가가치세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979년 3월 국회 개원 때 여당 의원임에도 현 상황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비판했다.


국회의원 8선
국회의장 2번

이를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악의적으로 보고해 이 전 의장을 민주공화당에서 제명시키려 했지만,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의 측근들의 만류로 겨우 없던 일이 됐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에 의해 민주공화당이 강제로 해산 당하자 과거 민주공화당 출신과 유신정우회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국국민당을 창당했다. 제11·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대구 중구·서구·북구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후 김종철이 한국국민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나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최치환을 누르고 한국국민당 총재에 당선됐다. 1987년 한국국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으로 대거 탈당하는 사태를 겪으며, 와해되기 시작했다. 다음해인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달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이후 한국국민당은 신민주공화당에 흡수됐다.

이후 야인으로 있다가 1990년에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3년 재산 공개 파동으로 박준규 전 국회의장직을 사퇴하자 잔여 국회의장 임기를 수행했다.

1993년 14대 의장 재임 시절 청와대로부터 새해 예산안과 정당법,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12월2일까지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요구받았지만 거부했다. 여당으로부터는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기라는 압박까지 받자 이 전 의장은 사직서까지 써놓고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의장 주재로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 예산안은 표결로, 나머지 입법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날치기 시도는 미수에 그쳤고, 여야 합의로 각종 법안도 무난히 통과됐지만 이 전 의장은 이듬해 6월 결국 물러났다.

이 전 의장은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날치기’를 자제한 의장으로 꼽힌다. 그는 1993년 12월 국회의장 시절,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나는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 한 번은 방청석의 국민을 바라보면서 ‘양심의 의사봉’을 친다”고 말하곤 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전국구로 당선됐다. 1997년 이회창의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선출에 반발한 이인제가 신한국당을 탈당하자 그를 따라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몸담았다. 자서전 ‘정치는 가슴으로’ 등을 통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화합을 역설했다.

여당인 공화당 의원으로 시작해 1985년 국민당 총재에 취임하는 등 보수 정당을 이끌다가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당의 산파 역할을 했다.

YS정부 시절
날치기 거부

창당 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국회의장을 지냈다. 2000년 7월에는 교섭단체 구성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의해 운영위원회에서 날치기 처리됐지만 당시 이 전 의장은 본회의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전화해 “이 의장, 날치기를 안 하는 것도 좋으나 법대로 표결해서 다수결 원칙을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으나 “국회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다”며 원칙을 고수했다.


이 시기부터 국회법이 개정되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이만섭은 최초로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다. 이후 2002년 2월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안건 표결 시 반드시 의장석에서 선포 ▲국회의원의 자유투표제 등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해 헌정 사상 첫 무당적 의장이 됐고 현재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이 전 의장은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한명숙 전 대표를 향해서는 “한의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 논란이 일었을 당시 “이명박 정부의 나사가 완전히 빠졌다”고 하기도 했다.

또 정수장학회가 논란이 되자 “정수장학회 이름을 바꾸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그의 쓴소리는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민주화 세력에 미안한 마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때까지 41년간 여야를 거치며 격동의 한국 정치의 현장에 서있던 이 전 의장은 금품수수와 같은 비리 구설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청렴한 정치인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양심봉’최고권력에 쓴소리
임종 전까지 정치 현실 걱정

이 전 의장은 은퇴 당시 “정치인은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야는 “영원한 의회주의자를 잃었다”며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내고 “이만섭 전 의장은 8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을 두 차례나 지냈고, 젊은 시절부터 강단 있고 소신 있는 정치행보로 많은 정치인들에게 귀감을 보였다”며 “언론인으로서 의회주의자로서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의회정치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 온 분”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어 “의회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전 의장의 별세소식은 더욱 애통하다”며 “새누리당은 이 전 의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8선 국회의원으로 두 번이나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면에 드시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 전 의장은 바른 말을 잘하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고, ‘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는 내용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는 등 국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의회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이 전 의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는 오늘 평생 의회주의의 한 길을 걸은 한국정치의 거목을 잃었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정 의장은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너무나 비통한 심정”이라며 “제게는 누구보다 훌륭하고 자애로운 스승 같은 분이었다”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그는 또 “누구보다 꼿꼿하고 올 곧은 참정치를 펼친 이만섭 의장님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굽히지 않은
강골 정치인

노환으로 지난봄에도 입원한 적이 있는 이 전 의장은 지난달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기간에도 자택에 누운 채 조문을 하지 못했으며, 지난 9일 병세가 악화돼 입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씨 등 1남2녀가 있다. 영결식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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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