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넘치는 지방대 속사정

“유학생 없으면 문 닫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방대가 외국인 유학생들로 넘쳐나고 있다. 학교마다 중국과 동남아 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수백명 이상이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국내 학생만으로는 신입생 확보가 어려워 외국 유학생들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로서는 외국 학생 유치가 당장 시급한 재정 확보와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졸속, 과열 양상으로 이뤄지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15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9만명가량이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충청권 등 지방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은 5만명 정도. 비율로는 55%에 달한다. 외국인 유학생이 500명 이상인 지방대만 해도 모두 26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적은 외국인 유학생을 확보하고 있는 지방대는 셀 수 없이 많다.

정원외 입학
무한 늘리기

전체 지방대 중 외국인 유학생 수 1위를 차지한 부산대에는 56개국에서 온 1579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1487명보다 100여명 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립대뿐만 아니라 지방 사립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3위에 오른 우송대에도 모두 1470명에 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대가 주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방법은 외국에 있는 학교와의 자매결연을 통해서다. 자매대학을 중심으로 국내 학생들을 현지로 유학 보내는 대신 현지 학생들을 교환학생으로 끌어오는 방식이다. 우송대의 경우 23개국 81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또 현지에 대학 관계자들을 직접 파견해 유학·입학설명회를 가지기도 한다. 우송대 국제교류처 관계자는 “유학생 유치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해당 대학만의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우송대의 경우 100%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솔브릿지국제대학 등 학과 특성화가 잘 돼 있는 게 유학생 유치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보다 물가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한국 유학수요가 많은 중국·베트남 등지에는 현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유학설명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동남아 학생들 캠퍼스 북적
재정 확보 목적의 불꽃 유치전

일부 대학은 해외 현지에 자체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기도 한다. 2013년부터 대전·충청 지역에서는 건양대, 대전대, 배재대, 우송대 등이 중국 우한에서 유학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설명회에서는 우한지역 고교 관계자, 한국어전공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전시의 교육 인프라, 유학생 지원정책 등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다.

또 조선대는 중국 월수고, 베트남 쑤언록고·엥고씨리엔고 등과 유학반 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유학반 학생들은 조선대에서 파견한 한국어 강사로부터 언어 교육을 받으며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오게 된다.

호남대 역시 중국 민판실험학교·임천실험고 등과 잇달아 협약을 체결하고 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다.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대학들이 내세운 혜택들이 골칫거리가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등록금 전액 면제나 기숙사 관리비 면제 같은 각종 우대혜택을 제공하다 보니 정작 대학 측에 돌아오는 수익은 없다는 것.


특히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이 절반 수준에 불과한 지방 국립대와 경쟁하기 위해 ‘등록금 반값’ 같은 무리한 혜택을 조건으로 내세운 곳이 허다하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중국, 베트남 등지의 유학생들로부터 등록금 전액을 다 받을 경우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전에 있는 모 대학 입학관계자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판촉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실제로 얻는 수익은 미미한 정도”라고 털어놨다.

지방대들은 시설에도 상당한 투자를 들였다. 청주대의 경우 총 공사비 1106억원을 투입해 외국인 유학생 73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빌리지’라는 기숙사도 만들었다.

2009년부터 사용된 이 건물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센터도 들어서 있다. 우송대는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솔브릿지국제대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단과대를 아예 새로 신설하기도 했다.

학비 50% 감면
파격조건 제시

외국인 유학생들의 증가를 반기는 곳은 대학가 주변상가를 비롯한 지역상권이다. 지역 경제에 돈이 돌고 있기 때문. 특히 학교 주변의 원룸, 하숙집 등은 외국인 유학생 증가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후문이다.

대학가 주변의 유동인구가 수백에서 수천명씩 늘어나면서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학교 주변에서 숙소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은 50%가 넘지 않았다. 1000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을 가진 학교의 경 500∼6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밖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외국인 유학생 전담 유치팀을 꾸려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대전시는 시비 44억을 포함 총 88억원을 투입해 ‘누리관’이라는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곳은 5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 달 10만원 정도를 내고 생활중이다. 대전시 국제교육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전시 관내에 4000여명이 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자비유학생으로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별도로 시비를 배정해 대전 대학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 홍보물도 제작하고 있다. 대전에 있는 한 대학의 입학 관계자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 9만명이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밥값으로 1만원만 쓴다고 해도 하루에 9억, 1년에 3240억원 넘게 지역에 뿌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온 힘을 쏟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보통 지방대들의 수익은 학생들이 매년 학교에 내는 등록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60%에 달해 미국 30%에 비해 2배나 된다. 하지만 해마다 입학원서를 제출하는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의 경우는 신입생 감소로 대학 등록률이 75%를 밑도는 수준이다.

신입생 확보 어려워 해결책
졸속·과열 양상…부작용도

수도권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양호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 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학 실정을 감안할 때 재정위기로 인해 정상적인 대학 운영이 어렵고 생존도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방의 고등학교나 각 지자체에서도 서울 유학을 권장하는 현실에서 외국 유학생들은 지방대학의 공백을 메우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서울 시내에 지방 광역자치단체가 고향 유학생들을 위해 건립한 기숙사만 6개가 있다. 거기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 단위에서 건립한 기숙사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여개에 달한다. 지방 학생들도 지방대에 남기보다는 서울로 진학하길 바라고 있다.

충청지역에서 학생들의 진학지도를 맡고 있는 교사의 말에 따르면 전교생의 40% 정도는 서울지역 대학에 원서를 낸다. 주변 도시에도 대학은 많지만 어차피 집에서 통학이 힘들다면 취업이나 교육여건 등을 생각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즐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지방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목을 매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유학생 정원 늘리기가 국내 학생을 늘리는 것보다 제도적으로 쉽다는 것이다. 국내 학생 정원을 늘리는 것은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정원을 늘릴 때에는 이러한 절차가 필요 없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은 ‘정원 외 정원’에 속하기 때문에 각 대학별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제한 정원을 늘릴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등록금의 30~50% 정도를 깎아주기도 하지만 정원 외 모집인 만큼 유학생을 많이 유치할수록 학교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국제화 필수?
문제는 ‘돈’

일부 대학에서는 지금보다 적극적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글로벌화에도 도움이 되고 적은 노력으로 대학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유학생 비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별별 교수’ 열전

‘교수’란 학습자에게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고,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교육활동을 하는 자를 말한다.

그렇지만 교수라고 다 같은 교수가 아니다. 교수와 강사의 차이점과 교수들의 호칭을 정리해 본다. 먼저 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1년에 1만명 이상의 박사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조교는 교수를 돕기위한 대학원생을 말한다. 교수의 연구나 업무를 보조하는 직책으로 교수하고는 상관이 없다.

교수의 단계는 보통 시간강사로 시작한다. 시간강사는 대학교에 위탁을 받아 일정한 시간만 학생을 가르치는 직위로 특정 대학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이대학 저대학을 맡은 시간에 따라 이동하며 시간수당을 받기 때문에 생활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돈을 받는다. 그래도 교수를 위해서는 일정시간의 강사경력은 필수인데다가 강사경력을 통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그 다음단계가 전임강사다. 교수칭호는 얻지 못했지만 특정학교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장래 해당학교 학과에 교수자리가 비면 그 자리를 이어받아 교수가 될 사람이다. 정식으로 교수가 되면 경력 등에 따라 조교수나 부교수로 나뉜다.

조교수는 강사 등의 경력이 짧을 경우에 임용되며 부교수 이상에 비해 위치가 조금 불안하다. 계약직으로 몇년 계약하는 학교도 있다. 조교수나 부교수의 직위나 대우는 대학마다 상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위가 교수의 대명사인 정교수다.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일정한 경력과 연륜이 생기면 정교수가 되는데 이때쯤 되면 학교나 학과, 학회 등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해당 학문분야를 통해 외부에도 영향력을 가지는 교수들도 많다. 정교수가 은퇴하면 명예교수가 된다.

이 외에 타대학의 교수가 와서 일정기간 강의하는 교환교수나 외부의 관련업무 경력자가 일부시간만 강의하는 겸임교수 등이 별도로 있다. 보통 학교마다 다르지만 부교수 이상이 될 수 있는 대학도 있고 정교수만 가능한 대학도 있다. 교수 중에 행정상 간부직책이 있으며 이를 통틀어 보직교수라고 한다.

이의 첫단계가 전공이나 특정교양분야를 책임지는 주임교수, 학과를 책임지는 학과장, 공과대학과 같은 단과대학이나 전문대의 최고책임자인 학장, 그리고 대학내 주요부서를 담당하는 교무처장이나 입학처장, 학생처장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최고책임자와 2인자인 총장과 부총장이 있다. 요즘은 박사가 많아서 4년제 대학 교수를 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특히 서울이나 지방국립대 같은 곳에서 교수를 하려면 박사를 따고도 수십 대 일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때문에 일각에선 고시보다도 어렵고 험난한 길이라고 한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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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