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창당하는 천정배

“민심 배반한 야당부터 정리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개혁적 국민당’창당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다만 뚜껑을 열어보니 파격적 인사들은 포함되지 않아 찻잔 속 태풍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년 초까지 창당을 완료키로 한 만큼 향후 두달이 고비일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측은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이하 창당추진위)’출범식을 갖고 창당작업을 본격화했다. 창당추진위는 오는 13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내년 1월 중하순 중앙당 창당작업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찻잔 속 태풍?
깜짝인사 없어

창당추진위는 전국정당을 지향하며 내년 총선 때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으나 현실적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텃밭인 호남민심을 놓고 격돌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천 의원은 이날 출범식에서 “민심은 수명 끝난 정당을 완전히 떠나 희망을 안겨줄 새로운 정치세력을 간절히 원한다”며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희망으로 우뚝 설 것이고, 내후년 대선에서 상생과 협력의 세상을 이끌어갈 새로운 정부를 만들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 의원이 소개한 신당 정책기조는 한국 사회의 독점·특권·부패·차별·폭력을 일소하는 ‘5대 개혁’ 추진으로 집약됐다. 일자리·교육·주거·건강·안정 등 국민생활의 5대 기본을 충실히 채우는 ‘국민기본정당’ 목표도 소개했다.


천 의원측은 출범식에서 신당 작업을 함께할 31명의 창당추진위원도 공개했다. 추진위원장은 천 의원이 직접 맡기로 했다. 이날 공개된 30여명의 추진위원 명단에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윤덕홍 전 교육인적자원부 부총리, 박주현 전 청와대 참여혁신수석비서관, 이주헌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등 전직 정·관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또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과 통상전문가인 한신대 이해영 교수, 전홍준 굿뉴스의료봉사 회장, 박사농부 이동현 미실란 대표, 양미강 한백교회 목사, 장진영 변호사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했다. 장 변호사는 창당추진위 대변인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천 의원이 지난 4·29 보궐선거 당선 직후 “새정치민주연합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지 6개월 만에 신당 진용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참신성 있는 ‘간판급 인사’는 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작업 본격 돌입
발기인대회 열고 내년 1월 중앙당 구성

이 때문에 파급력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또 최근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천 의원의 신당은 1.2%의 지지율을 보이는 데 그쳤단 점도 있고 전현직 정치인들 역시 어느 누구도 신당에 동참하지 않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주장까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축사를 한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앞서 라디오 방송에서 “신당에 대한 고민보다는 야권의 재구성에 대해 고민한다”며 “신당 참여 권유는 몇 차례 받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을 이뤄내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단은 신당 창당 참여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창당까지 천 의원이 추가 영입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김 전 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신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견인되지 않는 많은 야당 지지자를 잘 모아낸다면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아직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많이 어렵긴 하지만 스스로 혁신하고 변화해서 야권의 대표정당이 되기를 바란다”며 일단은 합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호남 지역에서 천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에 대한 지지도가 아직 높지 않은 데다가 무소속 박주선 의원이나 박준영 전 전남지사도 천 의원과 별개로 호남을 기반으로 신당을 추진하고 있어 창당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당 지도체제와 총선 공천문제 등을 둘러싸고 주류와 비주류간 내홍이 격화되고 있어 향후 신당 창당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전국정당 목표
총선에 후보내

천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민심은 국민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새로운 정치세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민심은 새로운 개혁정당을 향해 불타오르고 있다”고 창당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선언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축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패권적 세력이 당을 장악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희망도 잃어간다”며 “상식을 갖추고 있지만 동원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의 꿈을 실현할 개혁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격려했다.
 

천 의원은 출범식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전국 정당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지역을 뜨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면서 현재 지역구인 광주 서을에서 재도전할 것임을 밝혔다.

신당 창당이 야권 분열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지금은 혁명적 파괴가 필요한 시기”라며 “다만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방식은 충분히 경계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야권 연대 가능성은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천 의원은 출범식을 갖고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방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통합 연대 제안에 “당을 해산하고 새롭게 만드는 수준의 변화가 있기 전에는 다시 수권세력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본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천 의원은 신당 창당의 돛을 올렸고, 같은 날 문 대표는 호남 광주 강연에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임시 공동지도부’를 제안하고, 천 의원과의 통합이 가장 이상적인 연대라며 동참을 요청했다.

천 의원은 이날 이와 관련 “문 대표가 나름 하신다고 하시지만 당을 살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문 대표의 제안을 평가절하했다. 또 ‘문-안-박’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그 정도 처방으로 당이 새롭게 수권세력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천 의원은 이어 "저희는 이 상황에서 어떻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수권능력을 갖춘 새로운 정당, 국민정당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신당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천 의원은 이날 창당추진위의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 시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며 “국민정당은 이렇게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는 정당, 탐욕이 아니라 많은 서민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상생과 협력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가락동 시장 현장 방문을 시작으로 현충원과 4·19국립묘지를 잇따라 방문했다.

천 의원은 1954년 전라남도 무안군 암태도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모 슬하에서 암태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목포중학교로 진학하며 가족이 있는 목포로 왔다. 천 의원은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재학 중에 전라남도 학술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공부에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졸업 후 목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천 의원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한 번도 학급 반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천 의원은 1972년 목포고등학교를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대학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수석을 차지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목포 3대 천재’로 불렸다.


호남민심 놓고 
박터지는 격돌

그는 서울대 법과대학 1학년 재학 중에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다시 3학년 때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1976년 졸업과 동시에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8년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수료한다. 주변에서는 우수한 그가 판사나 검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수원에 있는 전투비행단에서 공군 법무관으로 복무한다. 그러던 중 1980년 전두환정권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그는 당시 정권에서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다.

이후 1981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입사했다. 4년간 외환무역 조세관련 국제변호사로 활동한다. 1985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나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남대문합동볍률사무소를 열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자처했다. 이후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국제인권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맡았던 주요 사건은 ‘구로구청 부정 투표함 사건’ ‘임수경·문익환·리영희 방북사건’ ‘정태춘 음반 사전검열 사건’ 등을 맡았다. 특히 가수 정태춘 사건에서 천 의원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음반 사전심의제’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1994년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으로 유명한 경상대학교 교양교재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변론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1993년 그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법무법인 해마루를 창립한다. 1995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내년 4월 총선서 새정치와 경쟁
결과 따라 야권재편 주도할 수도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경기 안산을(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안산을에 출마해 재선됐다. 그해 민주당 수석원내부총무를 지냈다. 그는 자유민주연합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2002년 천 의원은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현역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3년 그는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다. 소위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라 불리는 당내 강경세력으로 지칭됐다. 민주당의 분당과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한 장본인이 천 의원이다. 이듬해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냈지만 그해 말 4대 쟁점법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했다.

2005년 6월 천 의원은 법무부장관에 임명된다. 10월에는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에 관해 검찰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검찰총장의 사퇴를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 시절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을 삭제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제안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소신을 바꿨다는 비판이 있었다.

2012년 천 의원은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서울 송파을 선거에 나섰다. 서울 송파을은 새누리당의 텃밭이다. 그는 46%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석패했다. 이후 천 의원은 호남에서 재기를 노렸다. 2013년 광주에 법무법인 해마루를 열었다. 그는 호남 곳곳을 누비며 호남정치 부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7·30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 때 출사표를 내면서 “경선까지 불사하겠다”며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권은희 의원을 전략공천해 출마를 접어야 했던 아픔을 겪기도 했다.

DJ와 목포 천재 
인권변호사 활동

지난 3월16일 천 의원은 4·29재보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했다. 당시 야권에서는 “탈당에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은 천 의원에게 함께하자며 여러 차례 제안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호남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모임 합류 대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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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