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예계에서 스타와 같이 일하는 로드매니저나 의상담당 같은 스태프들은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최근 유명연예인이 소속된 몇몇 기획사의 매니저들이 월급을 받지 못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매니저들의 연쇄 이동이 이어지고 있다.
유명연예인 매니저 B씨, 커피 전문점 열고 ‘투잡’
신참 매니저 급여 알 수 없어… 박봉에 살인근무
무명의 연예인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매니저는 외모에서부터 연기와 인맥 관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이렇게 스타와 동고동락하는 매니저의 첫 관문은 이른바 ‘로드 매니저’. 화려한 스타의 이면에서 쉬는 날도 없이 운전부터 허드렛일까지를 맡아하는 이들의 처우는 상상 밖이다. 유명연예인 A씨의 매니저 B씨는 최근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급여가 제때 나오지 않기 때문.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그나마 제때 나오지 않아 생활이 어려웠던 B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커피 전문점을 연 것이다. B씨는 “유명연예인 A씨가 소속된 기획사라 ‘급여가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문제가 심각했다. 정해진 월급은 따로 없는데 50만원 정도 받았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뿐만 아니라 48시간 계속 운전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고 말했다.
B씨는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지만 커피 전문점에 더 신경을 쏟는다. B씨는 “처음엔 연예계가 기복이 심해 부업으로 시작한 커피 전문점이었지만 주업과 부업 비중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상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B씨와 함께 일했던 코디네이터 C씨는 “3개월 무보수로 뛰다가 10만원, 15만원, 20만원, 그 다음에 30만원, 1년 정도 가다가 그 다음엔 40만원 올려줬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급여 체계가 없다보니 이들 신참 매니저나 코디들의 월 급여는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천차만별, 심지어 무급으로 일하는 종사자들도 적지 않다. A씨의 소속사 D 대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를 데려오면서 계약금으로 많은 지출을 했고, A씨가 돈을 많이 벌어와도 회사에 들어오는 금액이 없다는 것이다.
‘8대2’ ‘9대1’ ‘10대0’ 등
계약 형태가 문제
소위 스타급 연예인들은 계약금을 받는 것 외에 자신의 출연료 및 CF 모델료 등 수익에 대해 자신이 7할 이상을 갖고 소속사에는 3할 이하로 배분하는 형식으로 소속사 계약을 맺는다. 이른바 ‘7대3’ 계약이다. 하지만 ‘8대2’ ‘9대1’ 뿐 아니라 ‘10대0’ 또 세금까지 소속사에서 부담하는 ‘11대0’의 계약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약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연예기획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과거 매니지먼트 사업에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던 시기에는 거물급 연예인과 계약하면 펀딩이 수월하고 회사 주가상승에도 긍정적 영향을 얻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연예인에게 선지급한 계약금을 연예인의 활동 수입에서 되찾을 수밖에 없다.
계약금 10억원을 주고 ‘8대2’의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을 때 계약금을 환수하려면 해당 연예인은 계약기간 동안 적어도 50억원을 벌어야 한다. 더구나 매니지먼트사 측에서는 연예인 이동을 위한 차량 유지비용 및 식사비 등 부대비용까지 지출되므로 계약금 이상의 수입을 확보해야 ‘본전치기’를 할 수 있다. 게다가 회사를 운영하려면 본전치기 이상을 해야 하는 것이 필수다.
연예계 화려함만 보고 뛰어드는 지원자 많아
실력과 감각 갖춘 매니저로 살아남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하지만 계약기간을 3년으로 잡았을 때 그 기간에 50억원 이상을 벌 수 있는 연예인은 몇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스타급 연예인들은 출연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선택하는 데다 소속사의 출연 권유 등에 대해서도 거부할 수 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이다. 때문에 연예기획사들이 스타급 FA 연예인들의 거액의 계약금에 부담감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D 대표는 “스타한테 주고 나서 회사는 월세도 내야하고, 경비도 내야하고, 다시 스타한테 재투자해야 하니까 남는 돈이 사실 많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예계의 화려함만 보고 연예산업에 뛰어드는 지원자들이 워낙 많다보니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B씨는 “지원자가 워낙 많다보니 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이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중도 탈락하는 종사자들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실력과 감각을 갖춘 매니저로 살아남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D 대표는 “오래 가지 못하고 보통 3개월이 고비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신인 연예인의 육성 및 지속적인 연예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려는 연예기획사들이 늘고 있다.
모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스타급 연예인을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영입해 오는 것보다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신인급을 키우는 게 회사 수익률에서는 더 낫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계약금을 요구하고 전속 계약을 맺은 뒤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연예인은 회사 입장에서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도 “거액의 계약금은 거품일 뿐이고 잘못된 관행이다”며 “기획사도, 연예인도 그런 인식은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원자 많다보니
근로조건 내세우기 힘들어
한류바람을 타고 한창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한국 연예산업, 그러나 스타만을 먹여 살리는 업계의 이 같은 관행이 계속되는 한 우리 연예산업의 토양은 언제나 메마를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연예 관계자는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 잡고, 고칠 것은 고쳐 연예산업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하는 시점인데 산업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이 위기를 넘기고 난 후 다시 원상회복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