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내린’ 경찰들 성범죄 백태

미성년 성매매 모자라…여경·피해자까지 덮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관의 의무는 범죄 근절이다. 근래 발생하는 성범죄 사건의 피의자들이 현직 경찰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치안율 1위라는 통계가 무색하게 근래 주변에서 일어난 경찰관 관련 범죄를 들여다보면 혀를 찰 노릇이다. 경찰관이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여성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자신이 담당한 성추행 사건 피해 여성을 건드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부하인 여성 경찰관을 강간한 경찰간부를 비롯해 미성년자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경찰관 등 최근 공론화 되고 있는 경찰관들의 성범죄 사건을 살펴본다.

조건만남 맛들인 민중의 지팡이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3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현직 경찰관이 철창행을 면치 못했다. 사건은 이렇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모 경비대소속 김모 경장은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김모(33·여)씨를 만났다.

이후 김 경장은 성매매를 한다며 모텔로 유인한 뒤 김씨에게 13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돈이 아까웠던 걸까. 돌변한 김 경장은 대뜸 경찰관 신분증을 내밀며 위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김씨로부터 돈을 되돌려 받은 김 경장은 인천지방 경찰청으로 김씨를 데려가 조사를 할 것처럼 겁을 준 뒤 부평의 다른 모텔로 데려가 두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이러한 범죄사실로 기소된 김 경장은 경찰의 본분을 망각한 파렴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계속 혐의를 부인했지만 지난달 5일 인천지법 형사13부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관의 임무를 망각하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라면서도 “다만 초범이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경찰관이 일반인을 성추행한 사건은 또 있다. 지난 6월에는 청와대 내부 경비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경찰청 101경비단 소속 순경이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갈수록 태산’ 경찰도 남자 아랫도리가 문제
믿어도 모자랄 판에…도덕적 해이 위험수위

101경비단 소속 순경 서모(27)씨는 지난 6월1일 경비단 숙소 인근 도로변에서 지나가던 여성들을 뒤따라가 특정 신체 부위를 만졌으며, 앞서 다른 여성에게도 성추행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쳤다.

술에 취해 있던 서씨는 대담하게도 피해여성이 사는 원룸 건물까지 따라갔지만, 여성이 한발 먼저 원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서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초 범행일로부터 3일 후인 지난 6 4일에 다른 여성을 상대로 한 차례 더 성추행을 저질렀다. 서씨의 범죄 수법은 심야에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가 여성이 나타나면 모습을 드러내 성추행 하는 것이었다.

서씨는 최초 수사를 맡은 서울청 성폭력수사대에 이어 지역 관할인 서울성북경찰서 형사들까지 투입된 끝에 지난 6월18일 긴급 체포됐다. 이날 서씨는 휴가를 맞아 김해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 소속 부대의 복귀 지시를 받고 돌아오다 서울역에서 붙잡혔다. 서씨는 조사 끝에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믿었는데…수사관의 배신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강간혐의로 긴급 체포된 경찰관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는 ‘제 식구 챙기기’사건도 있었다. 전남순천경찰서 소속 A경위는 자신이 담당한 성추행 피해자인 20대 여성 B씨를 만나 술을 마셨다. 뒤이어 순천에 한 모텔에서 B씨를 성폭행했고, 이러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 응한 A경위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혐의를 극구 부인했지만 피해자인 B씨가 A경위로부터 뺨을 맞았다고 진술했고, 팔에서는 멍 자국이 발견됐다.

경찰은 A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고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검찰은 피해자 진술 중 일관성과 신빙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경찰에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송치하도록 지시했다.

한순간 욕정 후배에 몹쓸짓

법을 지키고 바로잡는 경찰서도 직장 내 성희롱 청정지역은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C경감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후배 여성 경찰관 D씨등과 함께 회식을 했다. 이날 C경감은 만취한 D씨를 보자 치솟는 성적인 욕구를 주체할 수 없었다. 급기야 만취한 D씨를 인근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날 회식자리는 해당 경찰서로 발령받아 첫 출근한 D씨를 환영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경찰 조사에서 C경감은 “모텔에 간 것은 맞지만, D씨는 침대에 재우고 자신은 바닥에서 잤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CCTV 분석과 더불어 당시 술자리에 참석한 동료 경찰관들의 증언을 통해 성폭행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다수 확보했다.

서울중앙지법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5일 C경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지저분한 일이 벌어졌다”며 “성폭력 수사의 주체인 경찰관이 성폭행을 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서 내 직접적인 성폭행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세 치 혀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언어폭력과 성희롱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0월에는 철도특별사법경찰대 고위 간부가 부하 여직원들을 여러 차례 성추행 및 성희롱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성추행·성폭행 다반사
강간범 수사하다 강간

철도특별사법경찰대 간부 K씨는 여직원들의 손, 허리, 어깨 등을 손으로 주무르고 경찰 간부로서 입에 담지 못할 언어적 성희롱을 해 4명의 여직원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K씨는 목에 파스를 붙이고 있는 여직원에게 “잠을 어떻게 잤느냐? 키스 자국 아니냐”며 여직원들을 유린했고, 회식자리에서 껴안으며 “뽀뽀하자”라고 말하는 등의 추태를 보였다.

K씨의 성 추문이 내부에서 회자 되며, 성희롱을 당한 직원이 내부 비공개 인터넷망에 진상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댓글이 폭주하자 K씨 측근들은 ‘간부가 잘못하면 덮어야 한다’ ‘분란 만드는 직원은 징계해야 한다’ ‘남자가 술 한잔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등의 적반하장격 글로 직원들을 회유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이 피해자 4명과 증인 등 참고인을 상대로 집중 내사를 벌이고 있으며, 국무총리 산하 공무원부패척결단에서도 사건이 접수돼 조사와 감사를 벌이고 있다.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을 받던 청와대 경비단 소속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청와대 202경비단 소속 최모(36) 경사는 지난달 27일 인터넷 게임 채팅을 통해 만난 15세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했다. 하지만 '완전 범죄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때마침 미성년자 성매매 관련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부천 경찰에 의해 덜미를 잡혔다.

최 경사는 경찰의 수사대상에 오르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사건 당일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잠적했다. 그로부터 7일 만에 최 경사는 김천의 한 공장 부근 자신의 차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순간 주체하지 못한 욕정에 의해 자신과 가족들, 피해자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 것이다. 경찰은 발견 당시 차 안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초점을 두고 사망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 사건이 이슈화되며 최 경사가 속해있던 202경비단의 불미스러웠던 과거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경비단에서는 지난 5월 소속경찰관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여성을 성폭행하고 성매매 단속반을 사칭해 돈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렇듯 기강해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받은바 있는 202경비단이었기에 서울청의 미온적 태도에 세간의 비난이 들끓었다.

경찰관의 미성년자 성폭행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에는 성범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데 온힘을 다해야 마땅한 학교 담당 경찰관이 미성년자를 강간하는 사건이 있었다.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고교 자퇴생에게 E양을 소개받은 학교 담당 경찰관 김모(43) 경사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E양을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차에 태웠다.

인면수심 범죄 비극적인 결말

순간 이성을 잃은 김 경사는 E양을 덮치기에 이르렀고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수차례 E양을 강간했다.
짐승보다 못한 김 경사의 행각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챈 E양 친구의 신고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유부남 경찰관을 처벌해 달라”고 여성긴급전화 1366 센터에 신고하면서 김 경사의 파렴치한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뒤 김 경사는 E양에게 합의금 300만원을 주고 거짓 진술을 시키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E양의 재진술과 통신수사 및 참고인 조사 등으로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 혐의가 인정돼 지난 9월16일 긴급 체포되며 법의 철퇴를 맞게 됐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1명 덮친’ 대구 발바리 수법 공개

2002년부터 5년 동안 21명의 여성을 성폭행해 대구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발바리’ 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에 덜미를 잡혀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김모(46)씨로 밝혀진 용의자의 수법은 이렇다. 김씨는 상대적으로 방법시설이 취약한 다세대 주택의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또한, 베란다 빨래걸이에 여성 의류가 걸려있는 집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다.

스타킹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범행한 김씨는 피해여성들의 얼굴을 수건이나 이불로 가린 채 강간했으며, 성폭행에 사용한 휴지를 되가져가는 것은 물론 피해여성에게 몸을 씻게 해 범행 흔적을 지우는 등의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번에 2명의 여성을 차례로 성폭행하기도 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에게 변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6살 때 주거침입 절도 등으로 소년원에 들어갔던 김씨는 장기간 가출해 병역의무를 기피하면서 16년간 주민등록 말소상태로 떠돌아다니며 범행했고, 절도 과정에서 성폭행을 하며 성적 쾌감과 성취감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영구미제로 남을뻔한 2002년부터 5년간 이뤄진 범행은 김씨의 다른 범행으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그는 지난해 4월 강도짓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성폭행 피해자들의 신체나 옷 등에서 채취한 타액 등에서 검출된 DNA가 김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발바리' 행각이 드러났다.

김씨의 범행이 드러나면서 피해 사실에 대한 조사를 받던 한 여성은 남편에게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으며, 일부 피해자는 대인기피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여성은 “봄과 여름에 날씨가 더워도 창문을 열지 못하고, 혼자서는 잘 다니지 못해 주머니에 작은 칼을 갖고 다녔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힘들다. 우리를 죄인처럼 살게 한 피고인을 엄벌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충격 속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이 “짐승 같은 이 남성을 사형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범균)는 5일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모(46)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10년간 신상정보 공개·고지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마땅히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중형에 처해야 할 사정이 있음은 충분히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범행이 생명침해나 중대한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면서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궁극의 형벌인 사형은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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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