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르게…국민연금 비공개 투자내역

수십조 들어간 베일 싸인 투자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자본시장의 대통령. 5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를 일컫는 말이다. 세계 3대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초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전범기업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금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국민은 내 연금이 어느 곳에 투자됐는지 알기 어렵다. 박근혜정부 들어 기금운용본부는 일부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투자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0조.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연금공단)이 2022년께 운영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기금 규모다. 세계 3대 기금(일본 연금펀드·노르웨이 국부펀드·한국 국민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하는 '큰손'이다.

연금공단이 2014년 12월 작성한 '기금운용 연차보고서'를 보면 1988년 5300억원으로 시작한 국민연금은 2003년 100조원, 2007년 200조원에 이어 2010년 300조원이 넘는 연기금으로 부상했다. 2014년 말 기금적립금 470조원을 돌파한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이미 500조원을 달성했으며, 2020년에 847조원, 2043년에는 2561조원까지 재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3대 기금
1000조 가시화

국민이 납부한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은 단순 저축이 아닌 분산투자 형태로 자산이 보전된다. '기금운용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연금공단은 2014년 말 기준 국민연금 재원 470조원 가운데 45%에 해당하는 212조4000억원을 기금운용 수익금으로 조성했다. 1998년부터 2014년까지 금융 이자, 주주 배당, 투자 회수 등으로 200조원이 넘는 재원을 조달했다는 것이다. 연금공단 측이 밝힌 연평균수익률은 6.21%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사모펀드 등 일반 투자자와 달리 단기적인 이윤만 쫓을 수 없다. 일정 부분 기금운용에 대한 사회적인 책무가 요구된다. 연금재정의 장기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이지 이윤 극대화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연금공단은 연금 가입자와 수급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충실의무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진다. 이를 '신의성실의무'라고 부르는 데 기금운용 관련자들은 오직 가입자와 수급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전문적 판단 하에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돼 있다. 바꿔 말하면 오직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금공단은 최근 국민의 이익에 반한 의사결정과 일본 전범기업 투자로 논란이 됐다. 지난 5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연금 투자실태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의결권 행사 등에 대한 집중 추궁이 이뤄졌다.

대기업 편들고
전범기업 투자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본질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라며 "이 과정에 2000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연금공단은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적극 협조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연금공단은 합병 발표 전 한 달간(5월1일~26일) 거래량 가운데 10%에 달하는 물량을 매도해 주가를 낮추는 데 공헌했다. 합병비율 역시 연금공단이 추산한 1대 0.46에 못 미치는 1대 0.35에 그쳤다. 그럼에도 연금공단은 삼성일가가 삼성물산(통합) 지분 3.02%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앞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주주총회 2주 전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신의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이후 홍 본부장은 자신의 상관이자 인사권자인 최광 이사장과 갈등설이 퍼지면서 연임이 저지됐다.

국연 500조 시대…2022년 1000조 돌파
대기업 오너 경영권 강화용으로 악용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기금운용의 '도덕성'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은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연금공단이 최근 5년간 일본 기업에 16조원을 투자했으며, 이 가운데 4조5000억원은 일본 군수기업과 전범기업, 야스쿠니신사 지원 기업 등에 투자됐다"라고 밝혔다.

인 의원이 밝힌 투자처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 전기 등 21곳이다. 투자 규모는 1조2000억원에 육박했다. 인 의원은 "연금공단이 전범기업 97곳에 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고도 말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지원기업인 돗판인쇄에 30억원가량을 투자한 사실 또한 논란을 야기했다. 돗판인쇄는 2014년판 야스쿠니 달력 27만부를 제작하는 등 우익성향의 회사로 분류된다. 인 의원은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수익률만 따지면 일본만한 시장이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내놓은 국가별 투자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률(13% 내외)이 높은 시장으로 알려졌다. 전범기업의 일본 내 비중 또한 5분의 1에 해당한다는 것이 투자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연금공단이 2013년 하반기부터 공개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 해외주식 투자종목 내역'을 보면 기금운용본부가 10억원 이상의 투자처로 삼은 기업은 2659곳에 이른다. 미쓰비시 등 일본 대기업의 주식도 일정 비율 보유하고 있다. 기금운영 포트폴리오상 2006년 11.6%였던 주식투자 비중은 2014년 29.9%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해외투자 비중은 9.4%에서 21.8%로 확대됐다.

종목별 분류에서 해외주식 투자총액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4856억원)였다. 2위는 오라클(4691억원), 3위는 애플(4359억원)로 모두 미국계 IT기업이 차지했다. 4위는 미국 은행인 웰스파고(4296억원), 5위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가 있는 제약회사 노바르티스(3844억원)였다.

그 다음으로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3698억원), 미국 투자은행 JP모건(3599억원),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존슨(3142억원)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9위를 기록한 업체는 구글(3048억원)로 확인되며, 10위는 비아그라 생산업체로 유명한 제약회사 화이자(3042억원)였다.

이밖에 시티그룹, 네슬레, 페이스북, 인텔, 엑손모빌, AIA, 시스코(미국 보안업체), 뱅크오브아메리카, 사노피(프랑스 제약회사), 아마존 등이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처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미국의 대표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S&P 500 ETF Trust'에도 2659억원(14위)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순위 20위권 밖에 있는 기업들도 P&G, 필립모리스 등 세계적인 기업이다.

미국 일변도
부동산 쉬쉬

일본 도요타(1804억원)는 38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텐센트(2283억원), 바이두(2199억원)가 각각 22∼23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해당 자료는 주식만을 표집으로 했기 때문에 투자 총액으로 간주하는 데 무리가 있다. 해외주식 지역별 보유비중은 북미권이 53.47%, 유럽이 24.19%, 아시아(일본 제외)가 10.43%, 일본이 6.9%, 남미가 1.69%, 아프리카 및 중남미가 0.71%로 나타났다.

연금공단이 채택한 '2014∼2018년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는 국내주식 20% 이상, 해외주식 10% 이상, 국내채권 50% 미만, 해외채권 10% 미만, 대체투자 10% 이상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2014년 기준 대체투자 비중은 9.9%(46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대체투자란 부동산, 인프라, 벤처투자, 사모투자 등을 포함한 고수익 모델을 지칭한다.

기금운용본부는 해외투자 비중을 늘림은 물론 대체투자 비중을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공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좋게 보면 수익성에 특화된 미국식 전문가그룹을 만들자는 것인데 나쁜 예를 들면 미국 내 투자집단은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원흉으로 지탄받는다.


글로벌 '대체투자' 비공개
전범기업·페이퍼컴퍼니 논란

금융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투자 다변화를 위해선 해외투자와 대체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복잡한 투자모형을 설계해 국민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으려는 '비밀주의'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연금공단은 국내대체투자 및 해외대체투자 내역에 대한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말 그대로 중개기관이 '대체' 형태(펀드·신탁 등)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관계상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돈의 용처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연금공단이 '인프라투자' '프로젝트형 부동산투자' 등으로 투자 내역을 명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가령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극동빌딩은 연금공단이 소유하고 있다. 연금공단은 부동산신탁회사 리츠 '지이엔피에스제1호'를 통해 빌딩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가 보도한 연금공단의 프랑스 오파리노 쇼핑센터, 독일 베를린 소니센터 매입은 기대했던 수익률에 한참 못 미쳐 비판받았다. 특히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한 '우회 투자'는 조세회피 문제와 연결됐다.

또 국민연금은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해외 26개 투자회사에 부동산 투자를 맡기며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매년 소요되는 수수료만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지난 2월 '국민연금 운용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해외대체투자 평균 수익률이 3% 내외라고 발표했다. 해외대체투자는 전액 중개기관이 위탁운용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이다.

자원외교 실패에
국민연금 동원설


대체투자의 위험성은 지난 6월 CBS 등이 보도한 하베스트 투자 계획 등에서도 드러난다. 캐나다 하베스트는 이명박정부 당시 한국석유공사가 4조5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정유회사다. 이후 이른바 '깡통' 논란에 휩싸이며 현재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부실 회사에 국민연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발상이었다. 정부 실책을 감추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할 경우 대체투자라면 그 실상에 접근하기 어렵다.

기금운용본부는 대체투자로 서울외각순환 민자도로를 매입한 뒤 통행료를 걷고 있다. 2015년 2분기 기준 지분 5% 이상을 획득한 기업만 215곳에 이른다. 삼성, 현대차그룹, SK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SBS 등의 지분도 함께 갖고 있다.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란 별명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권력이 막강한만큼 그에 따른 감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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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