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해서라도 관심을 모아야 합니다” 모 프로그램 홍보관계자는 기선제압(?)의 중요성을 말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관심 끌기인 것. 프로그램 홍보는 전략이다. 그 목표는 단 하나,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몇 가지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 선정적인 문구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그 홍보법칙 중 하나다.
‘수영복 벗겨졌다’ 기사에 인터넷 검색 1위 등극
‘선정적’ 보도자료 배포…소속사 “기분 나쁘다”
지난주 걸그룹 애프터스쿨 멤버 리지는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프로그램 촬영 도중 아찔한 노출사고를 낸 것. 리지는 지난 7월 케이블 채널 MBC 에브리원 <플레이걸즈 스쿨> 촬영을 위해 멤버들과 함께 춘천에서 여름철 수상 스포츠를 시원하게 즐겼다. 애프터스쿨 멤버들은 주연을 심판으로 가희, 베카, 나나와 정아, 레이나, 리지가 한 팀을 이뤄 대결을 펼쳤다.
대결에 이은 벌칙으로 바나나보트를 타게 됐다. 문제는 갑작스런 급커브에 바나나보트를 탔던 멤버 셋이 모두 강물에 빠졌고 급기야 리지의 수영복 팬티가 벗겨졌다. 수영복이 벗겨진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은 리지는 당황해 급하게 물속에서 옷을 추스르고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케이블 채널의 홍보가 문제였다. MBC 에브리원이 지난 8월3일 “리지가 <플레이걸즈 스쿨> 녹화 도중 수영복 팬티가 벗겨지는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것. 리지의 수영복 팬티가 벗겨진 것을 홍보 마케팅에 이용한 것이다.
“옷이 살짝 내려갔을 뿐”
이와 관련해 애프터스쿨의 플레디스 측은 불만을 드러냈다. 당시 촬영 현장에 있던 플레디스 관계자는 “바나나 보트를 타다 물에 빠지다 보면 누구나 겉옷이 살짝 내려갈 수 있다”며 “물속에서 옷이 살짝 내려갔을 뿐, 속옷 노출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런데 보트를 타던 도중 리지가 물에 빠지면서 멤버들이 ‘옷이 살짝 내려간 것 같다’고 한 말을 프로그램 제작사에서 홍보성으로 자극적으로 표현했다”며 “19세 미성년자인 여가수에게 속옷이 벗겨졌다는 표현은 너무하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리지는 곤욕을 치렀지만 MBC 에브리원의 ‘노출 마케팅’은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보도자료를 낸 후 언론매체들이 이를 받아쓰면서 ‘리지 노출사고’는 한때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의 은밀한 관음증을 자극한 것이다. ‘벗기는 마케팅’이 욕을 먹으면서도 계속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고 전했다.
사실 케이블 채널의 선정적인 홍보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는 케이블 채널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한 시청률 확보 싸움에 원인이 있다. 수익성을 담보로 한 시청률 확보 경쟁이 케이블 채널의 옐로우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 인터넷을 통해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중들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됐고, 케이블 채널은 바로 이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케이블 채널은 막대한 제작비, 스타급 연예인들의 캐스팅으로 무장한 공중파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선정성’을 생존 전략으로 택한 것.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와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위의 영상을 내보내는 것도 지상파에 쏠려 있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그러나 ‘선정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프로그램의 질이 형편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OCN에서 방송됐던 <메디컬 기방 영화관>은 선정적이지만 고급스런 영상으로 품위를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선정적 소재일지라도 실험적인 측면에서 다가서거나 나름대로의 의미와 통찰을 부여한다면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방송윤리 지켜야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들은 지상파 TV의 기득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선정성’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맹목적인 ‘선정성’ 추구는 결국 프로그램의 존립 근거를 무너뜨리고 시청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더구나 최소한의 방송 윤리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게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 등 케이블 TV 매체의 특수성을 적절히 활용, 실험적인 소재와 독특한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욕구와 취향을 충족시킬 때, 케이블 TV의 진정한 전성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