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20대 총선 '친노 고사작전' 막후

"친노에 안방 내주느니 차라리 새누리 줘불드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내년 총선에선 무조건 '친노XX들' 다 물갈이 해부러야 돼. 차라리 새누리 주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 딱 해불드라고."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호남향우회의 고위 관계자가 사석에서 했다는 말이다. 새정치연합 친노진영을 향한 호남의 민심이반현상이 심상치 않다. 일선 호남향우회 내에서는 회원들의 새정치연합 탈당 러시가 줄을 잇고 있다는 후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이끌고 있는 친노(친노무현)진영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현상이 심상치 않다. 호남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야권 신당은 호남민심의 현주소다.

호남 민심 이반
천하태평 친노

호남은 야권의 텃밭으로 선거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지만 지난해 7·30재보선에서는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최초로 여당 인사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는 등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지난 4·29재보선에서도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사활을 걸었던 광주 재보선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됐다.

천 의원은 특히 ‘새정치연합 심판’이라는 자극적인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펼쳐 당선됐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의 민심이반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호남민심의 이반은 호남 의석을 잃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4·29재보선에선 관악구을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당선됐는데 관악구을은 호남 출신 인구 비중이 높아 수십년간 야권의 텃밭으로 분류됐던 지역이다.

새누리보다 더 미운 친노 "같이 죽자"
내년 총선서 차라리 새누리당 민다?

이처럼 호남의  민심이반 현상은 수도권 선거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은 내년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치러진 지난 4·29재보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시 선거가 성완종 게이트라는 호재를 등에 업고 대부분 야권 텃밭에서 치룬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이 더 크다.


특히 광주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광주 선거는 사실상 친노진영에 대한 호남의 심판이었다. 호남에서는 친노가 호남에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는 불만이 팽배하다. 호남인들은 더 이상 친노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에는 표를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호남의 민심을 얻지 않고는 차기 대선에서도 새정치연합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유력 대권주자가 모두 영남 출신인데다 당권까지 모두 친노가 장악하자 호남에서는 ‘우리가 친노 거수기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 2002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10년 이상 호남이 중앙정치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호남소외론’은 호남신당론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총선 빨간불
야권 공멸?

이처럼 호남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친노진영의 현실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지난 21일 문재인 대표를 겨냥해 “호남민심이반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이날 전남광주지역 기자간담회를 통해 “저는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진다고 생각하는데 지도부는 이대로 가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 대표를 비판했다.
 

안 의원은 “(당 지도부가) 혁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혁신 하자는) 저의 목소리에 대해 간절함으로 응답하지 않고 의도를 따지고 자구를 따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문 대표가) 시간만 끌고 있고 가시적인 활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호남의 친노 제거작전은 이미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국호남향우회의 한 고위관계자가 사석에서 “내년 총선에선 무조건 친노XX들 싹 물갈이 해부러야 돼. 차라리 새누리 주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 딱 해불드라고”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다.

일선 호남향우회 내에서는 회원들의 새정치연합 탈당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야권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박주선 의원, 정동영 전 의원,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은 모두 호남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이 호남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호남의 민심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 친노를 물갈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호남향우회 고위인사도 천정배 의원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재보선에서 이미 여러 차례 포착됐다. 지난해 전남 순천·곡성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호남의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순천·곡성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당선됐을 정도로 이념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지역이다.

혹자는 당시 이정현 후보의 승리가 지역주의의 벽을 허문 결과라고 평가했지만 사실은 친노에 대한 호남인들의 반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당시 새정치연합 재보선 경선에서는 친노인사로 분류되는 서갑원 전 의원이 노관규 후보를 꺾고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자 새정치연합 소속 당원들이 이정현 후보를 돕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부는 아예 이정현 후보 캠프에 참여해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새누리당보다 더 미운 것이 친노라는 것이다.

<일요시사> 역시 지금까지 재보선 현장을 누비며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다. 수도권지역 재보선 경선에서 호남 출신 후보가 친노진영 후보에게 패했는데, 어느날 호남 출신 후보의 선거 사무장이라는 사람이 ‘회사로 돌아가서 보라’며 취재기자에게 서류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회사로 돌아와 확인해보니 친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자료가 잔뜩 담긴 일종의 X-파일이었다. 이미 알려져 있던 내용으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는 자료들이었지만 호남 인사들이 사실상 친노 후보 낙선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친노 후보자는 야권 텃밭으로 분류되던 해당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또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장 광주와 전남, 전북의 5개 선거구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친노 지도부가 비례대표를 줄일 수는 없다며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어 호남인의 배신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호남지역에서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인사들은 “친노진영이 친노계의 비례대표 공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호남을 희생시키려 한다”며 이미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의 민심은 친노진영의 좌장 격인 문 대표에게 확연하게 등을 돌린 모습이다. 문 대표가 당대표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호남지역에서 부정평가가 58%나 나왔다. 반면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27%에 그쳤다.

극에 달한 불만
신당 힘 실릴까?

호남권의 한 인사는 “친노세력들의 가장 큰 문제는 패권주의”라며 “친노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투명한 공천을 하지 않는다. 친노들은 다른 세력은 무조건 배척한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친노인사가 당내 경선을 주도할 때마다 불공정경선 논란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대선경선이다. 당시 문 대표는 압도적인 승리로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대선 후보로 선출됐으나 경선 과정에서 불공정경선 논란으로 일부 당원이 계란 등을 투척하고 몸싸움을 벌이는 등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경선에 참여한 인사들은 하나 같이 문 대표와 친노진영을 비토하고 나섰다.

지난 2·8전당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경선 도중 경선 룰이 변경되는 초유의 사태로 문 대표는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났다. 지난 4·29재보선 관악을 경선 과정에서도 두 여론조사 기관이 동시에 같은 샘플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두 여론조사 간 결과 차이가 무려 15%나 벌어져 논란이 됐었다. 

호남향우회 내 탈당 러시 이어져
신당 추진 세력 호남서 여론몰이


호남권의 한 인사는 “이처럼 불공정 경선이 판치는 상황에서 아무리 노력해봐야 호남은 친노 세력의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좌절감에서 새누리당에게 내년 총선 의석을 바치더라도 친노인사들을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남의 민심이반 현상은 점점 더 구체화 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전북 순창지역 새정치연합 소속 당원 100명이 집단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표와 친노 지도부는 신당 추진 세력이 ‘호남민심을 왜곡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전남도당위원장인 황주홍 의원은 “민심의 왜곡이라는 발언 그 자체가 왜곡이 아닌가 싶다”고 반박했다.

민심 왜곡?
민심 무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호남인사들의 복안은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의석을 뺏기는 한이 있어도 친노인사들을 낙선시켜 ‘친노는 경선에서는 이기고 본선에서는 진다’는 공식을 고착시키려는 전략”일 것 이라며 “하지만 이대로라면 자칫 야권이 공멸할 수도 있다. 친노진영이 패권주의의 빗장을 풀고 호남을 비롯한 비노진영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거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금까지 친노에게 그렇게 속았는데 또 한번 믿어 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 호남의 민심은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는 친노진영의 단순한 약속만으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호남권 인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호남 출신 원로정치인인 권노갑 고문은 지난달 문 대표와 만나 추석 연휴 때 수렴한 호남민심이 심상치 않다며 대표직 사퇴를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사실상 완곡한 거절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노진영과 호남은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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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