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43)이광남 숭민그룹 회장

서민 등친 돈 해외로 빼돌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3화는 673억7600만원을 체납한 이광남 숭민그룹(SMK) 회장이다.

지난 2001년 12월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는 '제39회 영화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영화인협회가 주최한 행사에는 신상옥 감독(2006년 타계) 등 국내 영화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보도한 단신 끄트머리에 생소한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이광남 숭민그룹 회장(이하 이광남)은 한국영화인협회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다단계 거물

국내 다단계 사업자 1세대로 통하는 이광남은 1988년 숭민산업을 창업한 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중심으로 다단계 사업을 전국 단위까지 확산시켰다. 지난 2006년 4조원의 피해액과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숭민그룹을 통해 다단계에 발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이광남의 회사는 숭민산업, 산융산업, 숭민그룹, SMK종합유통㈜, 숭민코리아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당국의 타깃이 된 첫 번째 회사는 산융산업이다. 산융산업은 일본 야쿠자조직이 운영하는 '저팬라이프'와 한국 범죄조직 2세대 최모씨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라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이광남은 최씨가 1990년 말 범죄단체 조직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산융산업을 인수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렇지만 회장이 바뀌었을 뿐 저팬라이프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일본인 임원들은 자리를 지켰고, 산융산업 자회사로는 다단계 판매조직 JLK㈜가 설립됐다. 이들 회사는 자석요와 자석목걸이 등 자체 개발한 자기 의료용구를 피라미드식 영업망을 통해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다단계 방식의 영업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


이광남과 야쿠자의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은 200억원에 육박했다. 저팬라이프코리아가 돈을 벌수록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동시에 판매자)의 수도 늘었다. 검찰은 1992년 4월 사기 등 혐의로 이광남을 구속했다.

당시 보도된 내용을 참조하면 이광남은 1580억원 상당의 자석요를 팔았으나 242억원의 매출 신고를 누락한 혐의를 받았다. 또 장당 원가가 20만~45만원에 불과한 자석요를 140만~270만원에 팔아 폭리를 취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이광남은 구속 3개월 만에 풀려났다. 다음해 6월 검찰이 보강수사를 벌여 재구속할 때까지 이광남은 자유롭게 돈을 벌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이광남뿐 아니라 전국 주요 총판 사장과 대리점장 등을 연달아 구속했다. 불법 다단계의 뿌리를 뽑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광남은 재수사가 임박하자 조직 개편을 벌여 추적을 피했다. 언론에 보도된 총판 수는 250개, 대리점 수는 900여개에 달했다.

서울시 52억7300만원 국세청 621억300만원
다단계 1세대…60만명 상대 5700억 사기

법원은 같은 해 7월 이광남에게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숭민산업의 연매출은 2800여억원이었다. 이광남은 이 돈의 51%(1400여억원)를 다시 판매회사에 배분했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렸다.

다단계 피해자가 속출하자 국회는 1995년 다단계 사업자가 제조회사를 겸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JLK는 SMK란 다단계 판매사업부를 따로 만들었다. SMK는 숭민코리아의 약자다. 이들은 '애국 마케팅'에 주력했다. 당시 미국 암웨이사가 국내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SMK는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등의 홍보 전략을 폈다.

SMK는 국내 일부 제조업체와 연계해 사실상 마구잡이식으로 제품을 밀어냈다. 생활용품, 화장품, 전자통신기기, 건강보조식품 등 유통된 품목만 70여종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회사에서 쫓겨난 남편, 아내, 자녀들까지 다단계 시장에 유입됐다.


불법 다단계에 대한 당국의 단속에도 SMK는 숭민코리아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회원 확보에 주력했다. 회사 지분구조상 이들 회사는 모두 이광남 개인 소유였다. 당시 SMK는 대학생 등 20대를 꼬드겨 집단합숙을 시키는 영업방식이 적발되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위기가 닥칠수록 이광남은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2001년 2월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유명 권투선수의 후원자를 자처했고, 여자축구단의 구단주로 활동했다. 이광남은 인도, 일본, 홍콩 등에 잇따라 현지법인을 만들어 국내에서 발생한 수입을 송금했다. 중국 칭따오에 설립한 청도숭민건강용품유한공사(SMI)는 비자금 창구로 의심된다. 이광남은 2002년 2월에도 인도네시아 현지에 60만달러를 투자 목적으로 위장해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5월 이광남은 다단계 판매원에게 직급당 최대 5000만원에 달하는 상품을 강매하는 등 모두 5765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또 이광남은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계열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850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편취한 혐의도 받았다. 아울러 이광남은 70명의 교육사원을 자체 승급시킨 뒤 허위수당을 입금해 통장과 원천징수내역서 등을 떼어주고 판매원을 모집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관리관에 뇌물을 건넨 혐의, 자석요와 동충하초 등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상품을 허위과장 광고한 혐의 등이 더해졌다. 그러나 이광남은 구속 2달 만에 또다시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만을 선고했다.

법원은 불법 다단계 영업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검찰이 공소사실에 추가한 대구 B빌딩 공사 과정에서의 법인세 포탈 혐의만 인정했다. 그 사이 SMK 출신이 설립한 다단계 업체 글로벌자이언트(GTS)는 부산을 중심으로 자석요 등을 판매하며 재기를 노렸다. GTS가 SMK의 후신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GTS는 이광남이 구속된 해에만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2003년 7월 협력업체에게 납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등 자금난을 겪다가 간판을 내렸다. 다음해 2월에는 자석요를 생산하는 숭민사업이 부도 처리됐다. 같은 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MK가 소비자 청약 환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다단계 거물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2004년 3월 이후 이광남은 측근들과 함께 건강식품 제조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이모씨를 앞세워 2009년까지 다단계 회사를 운영했다는 설도 있다. 그가 남긴 숭민산업은 2012년 청산종결된 것으로 간주됐다. 이광남과 아들 이씨는 나란히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솜방망이 처벌

숭민산업은 2004년 6월부터 주민세 등 6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52억7300만원이다. 등기상 이씨가 대표인 숭민산업, 숭민코리아유통, 숭민화성주식회사 등 3개 회사는 모두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 법인에 포함돼 있다. 각각 92억4900만원(법인세 등 30건), 52억9200만원(부가가치세 등 22건), 65억1800만원(근로소득세 등 23건)을 2004년부터 체납했다.

이광남 개인은 '네오스포'라는 업체 사장으로 소개됐다. 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3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463억13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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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