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3사 신화’ 이순진 신임 합참의장

“대한민국 군인들이여 고개를 들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신임 합참의장으로 이순진 대장이 취임했다. 이 대장은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최초로 합참의장이 됐다. 그동안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군령권을 3사관 출신도 거머쥘 수 있게 됐다. 3사 출신이란 점에서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군 이후 첫 3사 출신 합참의장에 오른 이순진(61) 합참의장은 군내 대표적인 강골 인사로 뚝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162cm의 작은 키지만 다부진 체구와 강한 체력의 소유자로 ‘작은 거인’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현역 군인 중 서열 1위인 합참의장직은 그동안 4년제 육사 출신 대장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해군 출신 최윤희 전 의장에 이어 3사 출신인 이 의장이 임명된 것은 안팎의 눈총을 불식시키고 군내 다양한 인재풀을 강조한 조치로 풀이된다.
 
육사 제친
작은 거인
 
이 의장은 고교를 졸업한 뒤 당시 고졸자 입학도 허용하던(현재는 전문대 이상 학력) 3사에 입학해 1977년 소위로 임관했다. 같은 해 임관한 육사 기수가 33기라는 점에서 현 육군참모총장 김요한(육군34기) 대장보다 먼저 임관한 셈이다. 3사는 2년제라는 점을 감안해 3사 출신들은 4년제 육사 출신들보다 진급이 2년 이상 늦는 등 불이익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 의장은 생도 시절 명예위원장 생도를 맡을 만큼 동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또 엄청난 독서로 ‘공부하는 지휘관’으로 불렸으며, 군 안팎에서 이 의장은 강인한 의지로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관 후 위탁교육을 통해 경북대 교육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학구열이 뛰어났다. 그는 육군대학에서 전술학 교관을 맡는 등 통합 전투력 운영과 지상작전에 대한 식견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다.
 
2작전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전·평시 후방지역 작전수행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미연합 전술토의를 수차례 개최하고, 주한미군사령부와의 연합 훈련을 통해 한·미 연합작전 발전에 공을 세웠다. 육군 제2사단장·수도군당장 등을 역임할 때는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민·관·군 통합방위태세 확립에 기여했다.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최초로 임명
파격적 인사…부하들 신망 두터워
 
지휘관으로선 온화한 리더십으로 덕장으로 알려졌다. 육군 2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제설작업에 투입된 병사들에게 따뜻한 차를 직접 타 운동복 차림으로 격려하고 다녀 병사들이 사단장인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부하 장병 생일에는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고, 지난해 8월 제2작전사령관 취임 후에는 공관에서도 공관병에게는 전화 등 잡무만 맡기고 아내가 직접 식사를 챙기도록 했다. 또 수도군단장 재직 시절에는 신병휴가를 떠나는 이등병의 짐을 관용차에 직접 실어 부대 근처 역까지 데려다준 일화도 있다. 
 
 
소장 시절 3사 출신 동기생이 먼저 중장으로 진급했을 때에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했을 정도로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다는 전언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주류인 육군 내에서 3사 출신임에도 이 의장은 능력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사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 의장의 취임에 일가에서는 “이번 인사가 또 대구고와 TK(대구·경북) 파워가 작용한 게 아닌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경환 1년 선배
윗선 입김 작용?
 
이 의장은 대구고 14회로 최경환 경제부총리(15회 졸업)의 1년 선배다. 이런 탓에 야당은 ’대구고 공화국‘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5일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 부총리의 모교인 대구고 인맥이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며 비판했고,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대구고 공화국‘도 아니고, 특정 고교 출신들이 권력과 모든 것을 장악해서 되겠느냐“고 질타했다.
 
현재 대구고 출신으로 요직에 있는 인사는 임환수 국세청장, 임경구 서울국세청 조사 4국장, 이완수 감사원 사무총장,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연말에 물러나는 현 검찰총장 후임에 역시 대구고를 졸업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의장은 TK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100일과 비교했을 때 집권 후반기가 막 시작된 지금을 비교하면 TK 출신 파워 엘리트수가 급증했다. 고위 공직자 218명 중 22.5%가 TK출신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이 의장은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문회 당시 집중포화를 맡았다. 이 의장은 자신의 석사논문에서 ‘5·16군사 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지칭하고 ‘군사독재 기간을 미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일 이 의장에게서 제출받은 석사 논문 ‘21세기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한국의 민군관계 발전방향’을 확인한 결과 이같이 표현돼 있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2001년 충남대 행정대학원에서 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의장은 논문에서 5·16 쿠데타를 군사혁명이라고 여러 차례 표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기 기간에 대해선 “5·16 군사 혁명 세력에 의해 국가 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수행한 시기”라고 평가하고 “군의 강력한 권위주의가 산업화의 기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를 “박정희 군사독재 기간을 미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의장은 5·16쿠데타 원인이 “기회주의적 처신에 익숙한 민간정치인들의 능력 제한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이어 “군부가 자연스레 정치개입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이후 현재까지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 교과서들은 ‘5·16군사정변’으로 명시하고 있다. 김 의원은 “5·16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군사독재를 미화한 분이 합참의장에 임명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참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의장은 ‘5·16쿠데타’에 대한 답변 회피 등으로 여·야 의원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이 의장의 이런 태도 때문에 청문회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의장의 석사 논문에서 적시한 ‘5·16혁명’을 거론하며 현재 의견을 물었다.
 
 
이 의장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논문을 작성했다”며 답을 피했다. 문 의원이 “지금의 역사적 판단이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 의장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긴 힘들다”며 답을 꺼렸다. 비슷한 대화가 수차례 오가자 문 의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정말 실망스럽다. 무슨 눈치를 보느냐”며 질타했다. 


“5·16은 혁명”
여야 모두 질타
 
뒤이어 유승민·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같은 질의를 했지만, 이 의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은 중요하다”며 빗나간 답만 반복했다. 유 의원은 “주요 직위장병들은 대한민국 정부 공식 입장을 따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이 의장은 입을 다물었다.
 
이어 주 의원은 “공인이 되면 공식적인 국가의 견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침묵을 지키던 이 의장은 “유념하겠다”고 답해, 순간 의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보다 못한 정두언 국방위원장이 직권으로 정회를 선언하고 회의를 중단할 정도였다.  
 
이 의장은 지난 8월4일 일어난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진 8월9일 제2작전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 의장은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발언해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그 시간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비롯해 저도 전날쯤에 확인했는데 사령관 정도 수준의 계급 직책에서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자, 이 의장은 “제가 골프하는 시간에는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인지 시점에 대한 여러 의원들 질문에 같은 답변만 되풀이하던 이 의장은 결국 “상황 전파는 없었다 하더라도 지휘관이 골프를 친 것은 사려깊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구고 나온 TK출신
부적절한 처신 도마
 
이 의장은 자신 소유 주택의 전세 계약 과정에서 임대차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의장이 소유한 서울 동작구 흑석동 모 아파트의 임대인으로서 기존 계약이 연장된 상황에서 세입자에게 전세를 반전세로 하자고 ‘갑질’을 한 일을 추궁했다. 
 
이 의장은 “재계약 시점에 군 생활을 마칠 시기를 예측했을 때 2년 이내 해당 아파트에 입주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전세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임대인(이 의장)이 원하는 시기에 계약을 해지하는 조건으로 합의한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는 임대차보호법에 어긋난 합의사항이다. 
 
임대차보호법은 주거용 건물의 임대차에 관해 민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국민주거생활 안정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계약서를 통해 거주 기간을 명시하지 않고 임대인, 즉 이 의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은 세입자에 대한 갑질이라는 것이다.
 
권 의원은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에서 ‘을’인 세입자는 ‘전세금에 월세를 더 내라’는 갑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후보자는 임대인과 합의 하에 재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답했지만 명백하게 임대차 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 지적했다. 이 의장은 “(세입자) 배려하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연병장에서 이 의장이 제39대 합참의장에 취입했다. 이날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육·해·공군참모총장, 현역 장성과 주한미군 장성, 역대 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이 신임 의장은 취임사를 통해 “북한은 앞으로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며 “적이 또다시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위협하는 경우 얻게되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갑질·골프 질타
청문회 집중포화
 
이 의장은 “지난 8월 북한은 지뢰 및 포격도발을 자행해 우리 군의 대응태세와 의지를 시험했다”며 “이에 우리군은 단호하게 대응해 적의 의도를 무력화시켰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지난 2년간 우리 군을 이끌어온 최윤희 전 의장에 이어 합참의장직을 시작했다.
 
이 의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은 존재 의미가 없다. 또한 고개 숙인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며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자신감과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함께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min1330@ilyosisa.co.kr>
 
 
[이순진은?]
 
▲수도기계화사단 소대장 ▲15사단 38연대 중대장, 50사단 부대훈련장교 및 작전장교 ▲25사단 70연대 대대장 ▲66사단 작전참모 ▲육군대학 전술학처 지상작전·방어 교관 ▲71사단 163연대장 ▲합참 남북군사협력담당관 ▲합참 연습과장 ▲2작전사 교육훈련과장 ▲2군단 참모장 ▲부사관학교장 ▲제2보병사단장 ▲합참 민군심리전부장 ▲수도군단장 ▲항공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