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역술인' 소문과 진실

아무 이유없이 사람이 몰렸겠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옛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의 지인 이세민씨가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이씨는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가 만났다는 유력 인사의 면면 등 사건 정황을 살펴보면 어느 한쪽의 말만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학자' 이씨에겐 왜 돈과 사람이 몰린 것일까.

현 정부 비선 실세로 의심 받았던 정윤회씨의 지인 한학자 이세민(본명 이상목)씨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2일 "이씨가 피소된 사기 사건을 형사8부에 배당했다"라고 알렸다. 이씨는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출석해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와 점심식사를 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식사자리 주선?

지난달 21∼22일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이씨는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앞세워 사업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 뒤 모두 1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피소됐다. 이씨를 고소한 여인 최모씨는 고소장에서 "남편 회사가 대기업 협력업체에 선정되는 대가로 이씨에게 투자금을 건넸지만 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지난해 8월 이씨가 주도하는 이른바 '진선미 공동체운동'에 참여했으며, 제자로 인정받아 서울 평창동 이씨의 사무실 겸 자택에 약 1년간 머물렀다.

반면 이씨는 "내가 오히려 폭행 피해자"라며 잇따른 언론 보도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지난달 10일 최씨가 용역업체 직원들과 평창동 집에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자신을 폭행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쌍방 폭행 혐의로 최씨와 이씨를 각각 입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가 연루된 사기 사건은 관련 고소장에 전직 고위관료 등이 거론되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이씨의 지시로 전직 차관급 인사에게 직접 500만원을 건넸고, 이씨를 통해 5000만원을 줬다"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 최씨는 "이씨가 자신과 친한 대기업 조선업체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 협력업체가 될 수 있다고 해 7억5000만원을 건넸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씨는 "평창동 집을 드나든 유력 인사들을 봤을 때 이씨의 영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취지로 거래 동기를 설명했다. 2014년 8월부터 이씨의 집을 드나든 인물로는 전·현직 장·차관급 인사와 대기업 조선업체 부사장, 전직 대통령 아들 등이 지목됐다.

이씨를 찾은 사회 고위층 가운데는 현직 부장검사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2일 “현직 부장검사가 인사철에 직접 이씨를 찾아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맡겼다”라고 보도했다. 해당 부장검사는 “인사 청탁이 아닌 검찰 조직의 발전 방향을 상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최씨 등 사건 관계인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이씨는 헙력업체 알선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단 이씨는 최씨가 자신의 채무를 일부 변제해줬으며, 평창동 집 임대료를 대납해 준 사실을 인정했다.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않는 상황이다. 최씨의 측근은 최씨가 대납한 평창동 집세가 억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TK출신' 이세민 10억대 사기혐의 피소
이희호 양아들 사칭?…알선수재 실형

서울 종로구 평창7길에 있는 이씨의 집은 미국 국적을 가진 A씨가 소유하고 있다. 이씨는 법률상 임차인이다. 이씨는 9월27일 기준 삼각산(북한산)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 자택인지는 불명확하다. 지난 4일 평창동 자택을 찾았을 때 건물 관리인은 "이씨가 병원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사기 사건에 대한 해명은 들을 수 없었다. 삼각산에서 이씨는 '진선미 군자 교육'이란 활동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내용의 글을 자신의 지인에게 발송하고 있다.

정씨는 이씨가 주목한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씨는 앞서 밝힌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정씨와는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나 군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했으며, 통화도 자주 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씨는 최근 앞선 증언과 사뭇 다른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지난달 22일 MBN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정윤회씨와는 2014년 4월 이전에 두 번 정도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고, 사주관상을 보러오는 게 아니라 시대흐름 이런 걸 예리하게 본다고 이야기해 온 거다"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나 식사를 했던' 사이가 '두 번 정도 이야기만 나눈' 사이로 바뀐 것이다.


이씨의 인맥과 관련해서는 온갖 '설'이 난무한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측근의 '입'을 통해 여러 차례 노출됐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내방할 예정이다" "지만(박근혜 동생)이가 나를 신처럼 받든다" "정윤회도 내 말이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 등이다. 얼핏 여권 핵심과의 친분을 과시한 언사로 보이지만 실제 이들과 '접점'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씨가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 총재 자격으로 주최한 '프뉴마터치 코리아'가 작은 단서다. '프뉴마터치 코리아'는 일종의 철학 포럼으로 당시 경희대학교가 후원했다. 공교롭게도 정씨는 경희대 경영대학원 출신이라는 게 정설이다. 또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의 법인 등기일은 2013년 5월8일인데 '프뉴마터치 코리아' 행사일은 2013년 3월10∼12일로 두 달 가량 빠르다. 아울러 '프뉴마터치 코리아'를 기사화한 언론 중 일부는 정부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가 그간 몇몇 정치권 인사를 관리하려 했던 건 사실이다. 정의화 국회의장, 한화갑 전 의원은 각각 이씨와 안면이 있다고 밝혔다. 육영수 여사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주를 봤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1957년생인 이씨는 당시 중학생 내지는 고등학생이었다.

이씨가 이름값을 높이기 시작한 때는 노태우정부 말기로 보인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이씨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김대중정부 탄생 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의 인연으로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씨는 권력의 감시를 받았다. 가토 전 지국장의 변호인은 지난 3월 "이씨가 2000년께 김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양아들로 사칭하며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해 수사선상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씨는 약식기소됐다. 또 이씨는 지난 2006년 한 여성 사업가로부터 경찰관 파면 등 사건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 출입

물론 과거의 전과로 현재의 혐의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이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씨와의 만남이 언론에 보도된 후 '고객'이 줄었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정씨가 총재로 있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는 두 차례 주소지가 바뀌었다. 현재 사무실 소재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1일 기획재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이 제공되는 지정기부금단체 명단을 공고했다. 관련 명단에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가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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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