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요즘 가장 핫한 유아인

스크린에 안방극장까지…지금은 ‘아인시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배우 유아인의 행보를 보면 올해 최고의 대세남으로 손색이 없다. 영화 <베테랑>이 대표 흥행작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어 최근에 개봉한 <사도>까지 인기몰이를 하며, 스크린에서 종횡무진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출연으로 안방극장 점령도 예고하고 있다.

 
  
배우 유아인(29)은 올해로 데뷔 11년 차다. 동년배 배우에 비해 연기 좀 하는 기대주로 통했다. 유아인은 이미 5년 전에 방영된 <성균관스캔들>에 출연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모든 면에서 최고의 배우로 꼽혔다. 
 
그런 그가 지난 8월에 개봉한 영화 <베테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재벌 3세 악역 조태오 역을 맡아 최고 스타로 발돋움했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은 연기 변신은 물론 최고의 히트작까지 내놓으며 상종가를 치고 있다. 
 
앞길 창창한 
충무로 블루칩 
 
사실 유아인은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 승승장구한 배우다. 유아인의 행보가 새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는 최근 불황인 영화계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성과 때문이다. 유아인이 첫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 <베테랑>은 13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메가 히트작이 됐다. 
 
유아인의 연기력도 크게 한몫했다. 극중 망나니 재벌가 자제 역을 소화한 유아인의 연기에 모두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특히 극 중 유아인이 내뱉는 대사 중 “지금 내 기분이 그래…어이가 없네”는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대사 중 하나다. 
 

이 대사는 부당한 해고와 밀린 임금을 받으러 자신을 찾아온 배 기사(정웅인)에게 조태오는 액수를 묻고, 돌아온 대답을 들은 조태오가 내뱉는 대사다. “맷돌을 돌려야 하는데 손잡이가 없다, 즉 사소한 것 때문에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어이가 없다’는 표현을 쓴다”며 조태오가 배 기사에게 말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커다란 금액이지만 조태오 앞에선 사소한 게 돼버리고, 그 사소함을 하찮게 생각하는 조태오의 악랄한 캐릭터가 잘 표현된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완벽하게 소화한 유아인을 보며, 관객들은 그의 변신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영화 내내 재벌 3세답게 말끔하게 고급 슈트를 걸치고, 머리를 깨끗하게 빗어넘긴 단정한 모습으로 악행을 일삼는 모습 역시 어색하지 않았다. 영화 내내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의 연기력에 빠져들었다. 
 
또 <베테랑>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영화다. 그동안 유아인은 화제성 높은 드라마에 모습을 보이던 것과 달리 영화를 고를 때는 <깡철이> <완득이> 등 저예산에 가까운 작품을 주로 택했다. 스케일보다 알찬 내용을 내세우는 영화라 캐릭터가 부각돼 배우가 돋보일 순 있었지만 극장가를 장악할 만큼 좋은 성적을 얻지는 못했다. <베테랑>은 유아인을 티켓 파워까지 보장되는 ‘톱스타’로 성장하게 만든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달 16일에 개봉한 영화 <사도>도 지난 1일 누적 관객수 500만명을 돌파했다.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광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이야기다.
 
제대로 악역 맡아 제대로 대박 
천만 <베테랑>으로 최고 대세남 
 
유아인은 <사도>에서 또 한번 연기 변신을 꾀한다. 사도 세자의 광기 어린 연기를 소화하며 평단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추석 시즌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1232만명으로 역대 흥행 8위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도 빠른 기록이라 흥행 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아인이 <베테랑> 이후 <사도>까지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흥행 열풍이 식기도 전에 유아인이 <육룡이 나르샤>로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 양천구 목동 SBS 사옥에서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육룡이 나르샤>는 2011년 SBS 방영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나오게 된 이전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건국되는 과정을 담는다. 
 
1300만 <베테랑>
<사도>까지 대박
 
유아인은 극중에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 역으로 출연한다. 유아인은 기대만큼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갖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한 인물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인간 이방원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유아인은 이방원의 18세부터 32세까지 성인의 모습을 연기한다. 9세부터 11세까지는 아역 배우가 연기한다. 유아인은 “이방원이라는 인물이 청춘의 시기를 지난다. 그렇다고 이방원이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정답이다’ 말할 것도 없다”며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이 시대를 바라볼 것인지 자문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유아인의 연기생활이 내내 평탄했던 건 아니다. 데뷔는 2004년. 대구 경북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오디션을 통과해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2 TV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고아라의 남자친구 역으로 출연했다. 
 
10대의 순수함이 엿보이면서도 반듯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는 외모, 그리고 신인임에도 꽤나 안정적인 연기로 단번에 주목받았다. 이듬해에는 가능성을 인정받아 당시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김종학프로덕션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이때만 해도 당장 스타가 될 수 있을 듯했던 분위기였지만 쉽진 않았다. 이후 <4월의 키스> 등 드라마와 영화 <좋지 아니한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에 출연했지만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외모와 시크한 매력으로 ‘아인빠’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팬카페 회원수만 15만명에 육박한 적도 있다.
 
 
이후 광고 모델, 뮤직비디오, 아역, 단막극 등에 출연했다. <말아톤> 오디션을 봤는데 일정에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했다. 당시 정윤철 감독은 꽤 아쉬웠는지, 이후 다음 작품인 <좋지 아니한가>에 유아인을 캐스팅한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진출한다. 그는 독립영화 등 저예산 영화에 출연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우울한 청춘 종대 역과, <좋지 아니한가> 등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아역배우 이미지를 벗고 영평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꾸준히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해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어진 5년여 정체기는 다행히도 2010년 SBS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만나면서 마무리됐다. 이 드라마에서 유아인은 과묵하고 남성적인 캐릭터 걸오를 연기하며 호응을 얻어 다시 청춘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반올림 이후로 드디어 제대로 된 대표작이었다. 
 
2011년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도완득역을 연기해 원작과 비견될 만큼 완벽하게 선보였다. 김윤석과의 앙상블 역시 호평을 받으며 전국 관객 531만명을 동원하고 올해의 영화상에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2012∼2013년 사이 출연한 드라마에서는 고베를 마셨다.
 
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주인공 강영걸 역으로 출연해 비굴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불운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초반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충격적인 결말로 10% 안팎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안정적인 연기력 
청춘배우로 반짝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으로 출연. 새로운 장옥정을 보여주려고 야심 차게 기획되었지만 착한 장옥정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진 않았다. 아쉽게  시청률 10%대 정도로 마무리됐다. 영화로는 주연작인 영화 <깡철이>가 개봉했다. 전국 관객은 120만명에 그쳤다.  
 
2014년 드라마 <밀회>에 남자주인공 이선재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상대 여배우 김희애와 무려 19살 차이가 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완득이 이후 흥행면에서 뒤지지만, 케이블로는 상당히 높은 5%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영하는 동안 VOD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으며, 일본 중국 등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극 중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라는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유아인은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가진 배우기도 하다. 그는 2006년부터 미니홈페이지 게시판에 본인이 쓴 글을 게시하고 있다. 그는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논리정연할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 그동안 그는 SNS상에서 가감 없이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밝혔다.
 

인기 배우서 실력파 배우로 거듭나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출연 기대↑
 
2009년 영화 <하늘과 바다>에 출연할 때는 제작자로 나선 장나라의 부친 주호성을 정면공격하는 글을 미니홈피에 올렸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제작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중심에 제작자 주호성의 월권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주호성이 불같이 화를 내며 글의 내용을 부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아인이 쓴 글을 단순히 어린 배우의 치기 어린 폭로라고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유아인의 글은 논리정연했고 대담했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아인은 지난 대선 때 투표를 독려하는 등의 글을 잇달아 남기며 ‘개념배우’로 불렸다. 안철수 후보 사퇴 관련 글을 남긴 적도 있었으며, 
 
대선이 치러진 이후 유아인은 술렁였던 SNS에  “이제 48%의 유권자는 51%의 유권자의 결정을 인정해야 한다. 존중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민 가겠다고 떼쓰지 말고 (중략)희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글을 남겼다. 48%를 향해 일침을 날린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에게 진보 우월주의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보수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글을 남겼다. 
 
 
이 외에도 유아인은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 탓에 악플러들의 타겟이 됐다. 이런 탓에 그도 악플러를 도발하는 등 논란이 됐다. 2014년 유아인은 군복무 관련해 서울 경찰 홍보단 오디션에 합격했다. 하지만 당시 연예 사병 폐지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그가 “경찰 홍보단으로 빠진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특히 평소 개념발언을 한 유아인은 악플러들이 공격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이 때 당시 유아인은 트위터에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는 듯 싶어 등 따숩게 가마니 코스프레로 가만히 좀 있을까 (중략) 다이다이 함 뜨까’라며 악플러들을 도발했다. 결국 이 글이 문제가 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경찰 홍보단 최종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다. 
 
글 쓰는 취미
논란 일기도
 
동년배 연기자 중에선 연기력으로 상위권을 인정받고 있다. 드라마 영화 모두 꽤 괜찮은 성적을 보이며 상당히 괜찮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2015년에는 <베테랑>에서 동년배 남배우들 가운데 손꼽히는 악역연기를 선보여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켰다. 사실 유아인 정도의, 이미 남주인공급으로 올라선 젊은 배우가 악역을 자처해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2015년 기준 현재 사도도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어 올해는 유아인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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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