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41)심재수 화곡주공시범재건축주택조합 조합장

'합법과 불법 사이' 교묘히 뒷돈 챙겼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1화는 464억600만원을 체납한 화곡주공시범재건축주택조합 조합장 심재수씨다.



지난 2005년 6월 주요 일간지를 통해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비리 의혹이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이 무혐의 처리했던 이 사건은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팀이 새로운 비리 정황을 밝혀내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시공사와 결탁

당시 화곡주공시범재건축주택조합(이하 재건축조합) 조합장이었던 심재수씨는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심씨는 진정서에서 "수차례 무혐의가 난 사건을 관할서가 아닌 서초경찰서가 한 것은 청탁수사"라고 주장했다. 시공을 맡은 A건설도 즉각 보도자료를 냈다. A건설은 "사업 내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라며 "검찰과 법원을 통해 무혐의 처리된 사안"이라고 힘줘 해명했다.

앞서 심씨에게 조합비를 납부한 몇몇 조합원들은 "심씨와 A건설이 집행한 공사비 중 1200억원이 증발했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A건설은 "수분양자가 분양금 3830억원을 냈고, 이 중 ▲공사도급액 3210억원 ▲부가가치세 267억원 ▲재건축조합 사업비 331억원 ▲기타 선수금 22억원 등이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됐다"라고 반박했다. A건설과 심씨는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들을 상대로 90억원 상당의 재산 가압류를 시도했다.

화곡주공시범아파트 재건축사업은 1993년부터 추진된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이다. 서울시의회 산하 도시정비위원회가 작성한 회의록(1993년 10월자)을 보면 심씨 등 730명은 '고도지구 지정을 철회해 달라'라고 시에 요구했다. 고도제한 완화의 목적은 고층아파트를 짓기 위함으로 해석됐다.

1996년 9월 심씨 등은 재건축조합 설립인가를 취득했다. A건설은 시공사로 선정됐다. 재건축 조합은 1999년 11월 강서구청으로부터 재건축 사업계획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승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2600억원으로 책정됐던 공사비는 조합원도 모르는 사이 3600억원으로 확대 편성됐다.

반면 전체 공급 가구수와 무상지분율은 떨어졌다. 무상지분율은 한마디로 수분양자가 기대할 수 있는 주택 평수다. 예를 들어 32평형 아파트 100채를 짓겠다고 했다가 28평형 아파트 70채만 짓겠다고 계획을 바꾸는 것이다. 실제 무상지분율은 117.2%에서 108.6%로 떨어졌다.


1999년 5월15일 심씨는 조합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재건축 사업 변경안'을 표결에 부쳤다. 조합원 757명 가운데 537명이 찬성했다. 재건축 조합과 A건설은 2000년 본계약을 체결했다. 예정대로 공사는 진행됐다. 2001년 6월3일 동·호수 추첨을 위한 총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의 숨겨진 안건은 '무상지분율 감소'였다.

서울시 57억500만원 
국세청 407억100만원
화곡동 재건축 비리 연루 구속

심씨 측은 이날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에게 '사업시행 동의' 문구가 담긴 '재건축 결의문'을 배포했다. 총회장 입구에서 즉석으로 서명을 받았으며 사전 공지는 없었다. 781명의 조합원 중 764명이 총회에 참석했다. 재적 인원 78명은 서명을 거부했다. 남은 조합원(684명)은 인감을 찍어 결의문을 채택했다.

관련 민법에 따라 '서면결의'는 80% 이상의 찬성을 받았음으로 법적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이 반기를 들었다. 심씨가 조합장으로서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A건설의 편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재건축 결의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심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심씨의 손을 들어줬다. 2005년 4월21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문(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을 보면 2001년 6월3일자 서면결의는 '조합원 의사에 반해 서명·날인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는 유효한 합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가운데 김영란 당시 대법관만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김 대법관의 의견은 "결의문에 대해 찬성·반대 의사표시를 선택할 수 없게 돼 있고, 의안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총회 출석권 및 발언권과 같은 권리를 박탈할 목적으로 서면결의를 시도하는 경우, 조합원 총회를 형해화시키는 경우임이 명백하여 그 서면결의가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였다. 여기서 '형해화'란 형식만 남기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강서구청도 심씨 편을 들었다. 구청은 '조합원 간 해결해야 될 내부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심씨에 반기를 든 이모씨 등 일부 조합원은 "1999년 구청이 재건축을 승인할 때 관련법을 위반했다"라고 주장했다. 주장의 요지는 구청의 첫 승인 당시 조합원 757명 가운데 537명만 찬성했으므로 법적 구성요건인 '80%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씨 등에게 다시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소송(재건축결의 가처분)에서 법원은 '1999년 표결은 무효라고 할 수 있지만 2001년 6월 총회에서 재건축과 관련해 80% 이상의 찬성이 이뤄진 것을 볼 때 새로운 결의가 유효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심씨는 검찰 수사에서도 무혐의로 풀려나는 등 모든 법망을 피해갔다. 같은 기간 심씨는 자신을 공격한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각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는 차질 없이 분양을 완료했다. 심씨는 대법원에서 승소했고, 서울남부지검마저 면죄부를 내렸다. 2005년 초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팀이 인지 수사를 시작하기 전까진 '완전범죄'였다. 수사 착수 사실이 알려지자 A건설이 앞장서 방어했다. 심씨의 '화양연화'는 거기까지였다.

2005년 11월 심씨는 '서울 화곡동 재건축 비리'에 연루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4곳의 재건축조합, 4개 시공사, 2개 시행사, 하청업체 4곳, 감리업체 2곳의 비리를 적발했다. 100여명의 공무원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심씨는 시공사로부터 무상지분율을 낮춰주는 대가로 함바식당 운영권을 받았다. 1억5000만원의 금품을 포함해 심씨가 챙긴 부당이득은 12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서울시 공무원, A건설 현장소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쪼개진 통장에선 수십억원의 비자금이 발견됐다.

줄줄이 구속

하지만 사라진 1000억원의 행방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당시 A건설 측은 언론을 통해 "고도제한에 묶여 있던 재개발 지구의 지반을 다듬는 과정에서 추가 공사비가 쓰였다"라고 해명했다. 심씨에게 매달 지급된 수백만원의 사업비 역시 조합이 자체 결정한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증발된 돈을 포함한 조합비에는 세금이 부과됐다. 물론 A건설은 '세금 폭탄'을 피했다. 화곡주공시범재건축주택조합은 2008년 10월부터 주민세를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과세한 세금은 57억500만원이다. 화곡주공시범재건축주택조합은 2002년부터 법인세를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407억1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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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