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험대 오른' 10월 북 도발 시나리오

미사일? 핵? 터지긴 터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북한이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8·25합의 한 달도 못가 나온 '강경 발언'에 우리 정부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노린 '협상용 멘트'로 해석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위한 무력시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핵심 변수는 한반도 밖에 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추진하고 있다. 핵실험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등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14일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군조선의 위성'들이 우리 당 중앙이 결심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지를 박차고 창공 높이 계속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09년과 2012년에도 각각 광명성 2·3호기를 쏘아 올리며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장거리 미사일 발사체'로 간주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초읽기

이날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매체는 <조선중앙통신>의 인터뷰를 인용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일은 10월10일이다.

북한은 우선 개발 중인 발사체가 '인공위성'이라는 입장이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우주 개발은 세계적 추세이며 많은 나라가 통신 및 위치측정, 농작물 수확고 판정, 기상관측, 자원탐사 등 여러 목적으로 위성들을 제작, 발사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위성발사 역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국가과학기술 발전계획에 따르는 평화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도발'로 보고 있다.

지난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이)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 (로켓)발사와 같은 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을 언급한 당일 기자들의 질문에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행위가 북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답했다.

다음날 북한은 "핵무기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연구와 생산에서 연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지난 15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의 핵보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라며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핵무기)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에 따라 우라늄 농축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5MW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됐으며 재정비돼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라고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꺼내면서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간 핵실험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핵실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단골 제제 대상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국이다. 비상임이사국은 핵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결정권이 없다.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협의 급물살
노동당 창건 70주년 앞두고 다시 경색

때문에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은 한반도 밖에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일부 '전쟁론자'들이 주장하는 무력에 의한 대북 제제는 불가능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은 미국의 '허가'가 있어야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결국 국제정세에 따라 외교로 위기를 해소해야 할 운명이다.


우선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다만 임박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분석한 결과 이동식 정비탑에서 움직임이 없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38노스는 "과거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북한이 10월10일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준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서해 동창리 외에 제3의 장소에서 로켓 발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할 부두를 강원도 원산에 새로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장거리 로켓 발사 시점은 여전히 미궁이다. 단 국내외 여론은 북한의 '으름장'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간보기'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앞서 북한은 광명성 2·3호를 발사했을 당시 자신들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중·러
일제히 반대

예를 들어 광명성 2호 때는 "위성 발사 준비가 완료됐으며 곧 위성이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광명성 3호 때는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4월12일부터 16일 사이에 발사된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는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여론을 본 뒤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중국이 북한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언급할 문제가 아니지만 중국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관련 조항에 근거해 안보리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데 같은 입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국제사회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반응을 내놨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국민과 북한 체제가 국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한 결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공언했다.

핵실험 카드
내부 결속용?

북한 입장에서 뼈아픈 것은 중국의 냉담한 반응이다. 경색된 북중관계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양국의 동맹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당장 중국은 오는 25일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언급은 단기적으로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미·중 정상회담의 의제로 묶으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미·중 정상과의 대화 및 체제 보장에 대학 약속이다.

만약 정상회담의 결과가 북한에게 불리하다면 북한으로서는 10월10일과 10월16일 가운데 도발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 10월16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다.


가능성은 10일10일 직전이 더 높다. 북한은 그간 중요한 기념일을 앞두고 로켓을 쏘아 올렸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1주기(12월17일)를 앞두고 각각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노동당 70주년'이란 상징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미사일을 발사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관건은 핵실험의 확률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무력 도발이 가능한지 여부다.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제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실제 이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금껏 북한의 핵실험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해 유엔 안보리가 제제안을 내놓고 북한 외무성이 이에 반박하며 핵실험을 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 2013년 3차 핵실험까지 전개는 같았다.

북한에게 핵실험은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국제사회에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전쟁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압박이 전부다.

변수는 북한이 가진 천연자원 '희토류'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 17일 인도정부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력시위"
정부 선제대응 두고 고민

인도뿐만이 아니다. <연합뉴스-월간 마이더스> 9월호에 따르면 중국은 일찌감치 북한 조선대양총회사와 '대양-중당국제합영집단공사'를 설립하고 장진몰리브덴광산 개발에 착수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철도 개보수 공사 사업권을 따내면서 북한의 광물을 유럽으로 유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즉 북한으로서는 유엔이 금융 등에 제제를 가하더라도 민간 협력을 위장해 경제교류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리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 정보 당국 핵심 관계자는 지난 16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수일 내로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알렸다. 또 이 관계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정만 남았다고 전했다.

핵실험이 어렵다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도발 또한 감행할 여지가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난 14일 미국 현지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 때 다른 형태의 도발을 꾀할 수 있다"라며 "핵과 미사일 등 물리적 수단 외에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차 석좌는 "김 위원장이 사이버 공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은행이나 전력망, 언론사에 대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사이버 테러
NLL 포격 대비

지난 10일 우리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도발 사례는 모두 64차례로 집계됐다. 지상 13회, 해상 47회, 공중 4회로 해상이 가장 많았다.

해상 도발 가운데 군사분계선(MDL) 침범은 8회, 총·포격을 이용한 도발은 5회였다. 지난달 4일 있었던 목함지뢰 도발은 MDL 침범으로 분류된다.

만약 북한이 10월10일을 전후로 한국과 군사적 충돌을 원한다면 그 장소는 지상보다 해상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2010년 2회, 2011년 5회, 2012년 2회, 2013년 9회였지만 2014년에는 13회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 모두 10차례 침범했다.

더구나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의 군사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대응을 시사했다. 경고사격에서 시작한 충돌이 대규모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같은 시기 북한 경비정은 53회, 어선은 115회 NLL을 침범했다.

다만 남북은 10월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 당국은 '한반도 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상봉 준비를 약속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변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다. 박근혜정부는 8·25합의 성사로 국정 지지도 반등에 성공한지 불과 보름 만에 또다시 험난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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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