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지뢰밭 걷는 이상득

나온지 얼마 안됐는데 ‘또 골인?’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MB시절 ‘상왕’으로 군림했던 이상득 전 의원이 표적이 됐다. 최근 검찰은 포스코 협렵업체의 새로운 비리 정황을 포착했다. 포스코가 MB시절 협력업체인 티엠테크에 일감을 몰아특혜를 줬다는 것. 티엠테크의 실소유자는 이 전 의원의 측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포스코 본사는 물론 MB정권 주요 인사들까지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포스코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가 이 전 의원의 측근이 한때 실소유주로 있던 포스코 협렵업체 티엠테크를 압수수색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티엠테크는 이 전 의원이 현역 의원일 당시 포항지역 사무소장이었던 박모씨가 실소유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박씨가 이 전 의원과 20여 년간 친분을 유지하며 ‘집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원할 것 같던
무소불위 권력
 
검찰은 포스코가 티엠테크에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보고 이 업체에 수사관을 보내 각종 회계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검찰은 티엠테크에 흘러들어 간 돈 일부가 이 전 의원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정치권으로 비자금 유입이 확인된 건 없다”며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개입했는지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티엠테크는 포스코 제철소 설비를 보수·관리하는 업체다. 2008년 12월 설립된 티엠테크는 포스코켐텍과의 거래로 연매출 170억∼180억원을 기록했다. 검찰은 박씨가 2009년 6월에 티엠테크 지분 100%(5만 주)를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박씨가 최대주주에 오른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씨는 포스코그룹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6월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티엠테크의 매출은 100% 포스코켐텍에서 발생하는 구조”라며 “설립 후 기존 거래 업체의 물량을 가져오고 매출 100%를 한 업체와의 거래에서만 수익을 올린다면 특혜 의심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은 이 배경에 이 전 의원이 민원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정 전 회장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공 받은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지난 7일 전해졌다. 
 
MB정권 끝나고 불거진 대형사건마다 거론
이번엔 포스코…끝나지 않은 형님의 시련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2008년부터 1조4000억원을 들여 경북 포항에 신제강공장을 세우려 했으나. 인근 군부대의 반발로 2009년 9월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당시 공정률이 이미 93%에 달해 이대로 공사가 중단되면 1조원대 투자금을 날릴 판이었다. 1년이 넘도록 공사 재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역구 의원이자 MB정권의 최고 실세인 이 전 의원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결국 2011년 2월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서 군사작전에 방해가 안 되게 공장 설계를 일부 변경하는 조건으로 군과 포스코 간의 합의가 이뤄졌다. 신제강공장은 2011년 4월 준공됐고, 포스코는 거액의 손실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측근 박씨가 실소유주인 티엠테크가 일감 100%를 포스코에서 수주하는 등 특혜를 누린 것이 신제강공장 공사 건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일과 7일 박씨를 소환해 “이 전 의원의 지시에 따라 정 전 회장으로부터 협력 업체를 따냈고, 수익금은 이 전 의원을 위해 썼다”는 진술을 받아냈으며, 포스코에서도 정 전 회장이 티엠테크 경영주를 박씨로 바꾸도록 결정한 다수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에게서 “이 전 의원으로부터 티엠테크에 일감을 주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지난 8일 검찰은 이 전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결과 티엠테크와 관련 청탁이 있었으며 이후 티엠테크 하청계약 규모가 대폭 늘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검찰은 외주업체를 따낸 뒤 받은 22억여원의 수익을 이 전 의원의 지역구 관리 비용으로 쓴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이 업체를 소유한 5년6개월 동안 주주 배당과 회사 임직원으로 이름을 올린 가족 앞으로 지급된 급여 등 총 22억여원을 별도로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돈은 이 전 의원의 지역 사무소 조직관리 비용 등으로 쓴 것으로 확인된다고 검찰은 전했다. 제철소 관련 경력이 전무한 박씨가 포스코 외주업체를 따낸 경위, 그 수익금의 사용 경로 등으로 미뤄 박씨가 벌어들인 돈이 사실상 이 전 의원의 정치자금이었다는 게 검찰의 잠정 결론이다. 

불법 정치자금 
징역 살고 나와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박씨의 금품 수수에 직접 관여했는지가 확인되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나아가 정 전 회장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대가성이 확인되면 특가법상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은 이 전 의원을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이 전 의원의 측근이 운영하는 업체에 수백억 원대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전 회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은 또 포스코 관계자들에게서 정 전 회장이 티엠테크에 거액의 일감을 몰아주도록 계열사에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MB정권의 ‘비리 몸통’으로 불린다. 2011년 12월 자신의 비서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 6개에서 수억에 달하는 부정 자금이 드러나자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 전 의원은 솔로몬·미래저축은행과 코오롱그룹으로부터 총 7억575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됐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형이 구속된 사례이다.
 
그 후 2013년 1월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3년이 구형됐다. 그해 1월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에 의해 징역 2년과 추징금 7억5750만원이 선고됐다.
 
7월1일에는 서울고법 형사합의4부(재판장 문용선)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는 징역 3년에 추징금 7억5750만원이 구형됐다. 7월25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에 의한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2월에 추징금 4억5700만원이 선고됐다. 같은 해 9월9일 출소했다. 2014년 6월26일 징역 1년2월에 추징금 4억50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재확정 됐다.
 
측근 일감 몰아주기 압력?
정치자금 확보 정황 포착 
 

이 전 의원은 검찰이 자원비리 관련 경남기업의 성공불융자 횡령 의혹에 대해 수사할 당시 MB정권 초기 신한은행에 전화를 걸어 경남기업을 워크아웃에서 빼라고 청탁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1935년 11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54년에 동지상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14기로 입학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자 자퇴하고 이듬해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61년 27세에 한국 나이롱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1973년 이사, 1975년 상무, 1976년 7월 9일 영업본부장을, 1977년 1월 23일 전무, 1978년 3월 6일 부사장에 올랐다. 1981년에 평화통일자문회의가 출범할 때 상임위원으로 참여했고, 1984년 12월에 코오롱상사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당선된 이후 경북 포항·울릉 지역구에서 내리 6선을 했다. 2008년 이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함께 당내 최대 계파인 친이(친이명박)계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로 인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쇄신파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아왔다. 
 
문제의 티엠테크
민원해결사 노릇?
 

18대 총선 공천 당시인 2008년 3월 공천후보 55명은 이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쇄신파인 정두언 의원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 의한 권력 사유화’ 발언을 통해 이 전 의원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MB정권 시절 각종 비리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파란만장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왕차관’ 박영준도 또?
 
검찰이 포스코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수사 과정에서 2009년 회장 교체 당시 정치권 외압의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은 임기를 1년 이상 남기고 사퇴한 이유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회장직에 물러날 때 박 전 차관 등이 개입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을 불러 이 전 회장에게 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는지 등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MB정권 당시 실세로 통했다. 이런 탓에 온갖 비리에 몸통이 돼 각종 구설수와 검찰 수사선상에 끊임없이 올라왔다.
 
박 전 차관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2002년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선거캠프에 합류하면서 이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게 됐다. 
 
서울시에서는 정무국장을 지냈다.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시점이다. 그는 서울시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전략과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한 ‘S라인’의 핵심이다. 대선 때는 ‘선진국민연대’라는 전국적인 외곽조직을 직접 꾸려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전 차관은 2007년 이 대통령의 당선 후 청와대에 기획조정비서관으로 합류했다. ‘왕비서관’으로 통하던 그는 촛불시위 정국에서 4개월 만에 인사전횡 논란의 중심으로 지목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6개월 만인 2009년 1월 개각에서 그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중용했다. 그는 이 시기 민간인 불법사찰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찰을 주도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등 ‘영포 라인’과 친했다. 최근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사찰 증거 파기를 위해 청와대 최종석 행정관에게서 받은 대포폰에서 박 전 차관과의 통화내역이 확인됐다.
 
그는 2010년 8월부터 지식경제부 제2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원외교가 ‘왕차관’으로 불린 그의 주요 업무였다. 씨앤케이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이 터진 게 이 시기다. 그는 차관에서 물러난 후에는 여의도 진출을 추진했다. 하지만 4·11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대구 중·남구에 출마했지만 5.7% 득표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데 그쳤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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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