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등대여행 ②부산 가덕도등대

오얏꽃 문양에 새겨진 100년의 역사

부산 최남단에 자리한 가덕도. 이 섬 끝자락에는 무려 100여 년 전부터 불을 밝혀온 가덕도등대가 있다. 1909년 12월 처음 점등한 가덕도등대는 2002년 새 등대가 세워질 때까지 인근 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푸른 바다 위 새하얗게 보존된 외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50호 지정

가덕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게다가 부산과 거제도 양쪽 지역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출발하면 가덕대교와 눌차대교를 지나며, 거제도에서는 거가대교를 건넌 뒤 가 해저터널을 거쳐 들어온다. 이후 천성·대항 방면 도로를 따라 섬 남단으로 내려가는 동안 대항마을과 외양포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외양포마을에서 남쪽 끝으로 이어진 외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길 끝 해안 절벽에 가덕도등대가 있다. 좁고 가파른 길이니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출입 시 방문자마다 신분증을 확인하므로 반드시 챙기자. 출입 제한 지역이라는 무게 때문인지 철망 문을 넘어 등대까지 가는 수백 m가 무척 멀게 느껴진다. 등대가 섬 끝에 자리하기도 했지만, 산 넘고 바다 건너 머나먼 곳까지 찾아든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등대와 첫 만남은 감격스럽다. 사방이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가운데 새하얗게 빛나는 등대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절벽에 자리한
가덕도등대

가덕도등대는 100년이 넘는 역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우아한 외관과 내부 구조가 고스란히 남은 데다 한국과 일본, 서구식 건축양식이 혼합돼 건축학적인 가치가 높다. 정사각형 단층 구조에 약 9m 높이 팔각형 등탑을 세워 불을 밝혔다. 내부에 사무실과 침실, 부엌과 욕실을 갖춰 사람이 거주하도록 만든 점이 특징이다.


가덕도등대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등대 입구에 장식된 오얏꽃 문양 때문이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 안에 국가의 자주권을 염원한 망국의 회한이 담긴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가덕도등대는 2002년 새 등대에게 역할을 물려주었으며, 이듬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등대 아래쪽에는 100주년 기념관이 자리한다. 이곳에 등대 숙박 체험 숙소와 등대기념관이 있다. 가덕도등대 숙박 체험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한다. 숙박 전월 1일부터 8일 사이에 예약할 수 있으며 20일 경 이용자를 선정해 통보한다. 매주 금·토요일 무료 숙박이 가능하다. 100여 년 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가덕도등대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의미 있는 추억이 된다.

등대를 뒤로 외길을 나오면 다시 외양포마을에 닿는다. 원래 대항(大項) 바깥쪽에 있는 잘록한 포구라는 뜻으로 외항포(外項浦)라 불렸지만, 현재 외양포(外洋浦)가 공식 지명으로 사용된다. 외양포마을은 러일전쟁 시기, 일본군 제4사단 휘하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탄약고와 포진지, 벙커 등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마을 뒤편 산길을 조금 오르면 포 자리와 탄약고, 대피소 건물이 모인 일본군 군사시설을 볼 수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일본군의 침략 야욕과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의 고통 어린 외침이 건물 구석구석에 스민 듯, 불어오는 바람마저 스산한 느낌이다.

아픈 역사 담은
외양포마을

세상 모든 것이 변했지만 외양포마을은 아직 그 시기에 사는 양 보인다. 당시 일본군은 이곳에 포대 진지를 구축하면서 주민을 모두 쫓아내고 마을 전체를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현재 마을에 남은 건물은 그때 세운 적산 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소유한 건물이나 재산)이다. 해방되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 헌병 막사며 장교 사택, 무기고 등을 수리해 지금껏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외양포마을은 부지 전체가 해군 소유로, 주민이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수 없다. 적산 가옥이 원형 그대로 남은 건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랜 세월 고향을 지켜온 이들 덕분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면 마을은 폐허가 되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흔적도 세월의 뒤안길에 묻히지 않았을까. 돌아서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묵직하다.

남은 여정을 부산에서 마무리한다면 송도해수욕장에 꼭 들러보자. 지난 6월 송도해수욕장에 길이 104m, 폭 2.3m 구름 산책로가 개장해 눈길을 끈다. 동쪽 해변에 자리한 거북섬을 거점 삼아 설치된 구름 산책로는 높이가 5.5~8m에 달해 바다 위를 산책하는 짜릿함을 누릴 수 있다. 인접한 도로에서 거북섬까지 일반 다리이고, 거북섬에서 바다 쪽으로 구름산책로가 조성되었다.


재밌게도 이 섬의 원래 이름이 송도였다고 한다. 예전에 섬에 소나무가 자라 송도(松島)라 불렸는데, 소나무를 모두 육지로 옮기면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섬이 되었다고. 그 뒤 주변 지역은 ‘송도’로, 정작 이름의 원래 주인이던 섬은 생김새가 거북과 닮았다고 ‘거북섬’이라 불렀다. 섬에서 해변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거북섬을 거쳐 구름산책로에 발을 내디디면 기분마저 새롭다. 전망대까지 걷는 동안 시원한 바닷바람이 가슴속 구석구석 상쾌함을 전해준다. 바다 위 선박과 영도까지 길게 뻗은 남항대교 풍경에 마음이 탁 트인다. 구름산책로 바닥은 중간중간 강화유리와 철망 구조 매직 그레이팅으로 마감했다. 덕분에 발 아래로 바닷물이 출렁이며 파도치는 광경이 생생히 전해진다. 송도해수욕장 구름 산책로는 벌써 입소문을 타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새하얀 외관과 시원하게 펼쳐진 전경 덕분에 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가덕도등대→외양포마을→송도해수욕장 구름 산책로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 가덕도등대→외양포마을→을숙도→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 둘째 날 : 송도해수욕장 구름 산책로→태종대→영도등대→국립해양박물관
관련 웹사이트
· 부산 문화관광 http://tour.busan.go.kr
· 부산지방해양수산청 http://portbusan.go.kr
· 가덕도등대 숙박 체험 신청 https://portbusan.go.kr/facility/facility_03_03.jsp
문의 전화
· 가덕도등대 051-971-9710
· 부산지방해양수산청 051-609-6114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부산역 :
KTX 하루 50~60회(05:15~23:00) 운행, 2시간 40분~3시간 2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남해제2고속도로지선→가락 IC에서 부산신항 방면 우회전→거가대로→서천로→가덕해안로→가덕해안로1325번길→가덕도등대
숙박
· 호텔 퀸(구 퀸모텔) : 서구 충무대로82번길, 051-242-3354
· 아비숑모텔 : 서구 송도해변로, 051-253-1684
· 브이모텔 : 서구 송도해변로, 051-257-2841, www.v-hotel.kr
· 숨게스트하우스 남포점 : 중구 광복로85번길, 070-8837-0700, http://nampo.sumhostel.com
·코모도호텔 부산 : 중구 중구로, 051-466-9101, www.commodore.co.kr
식당
· 소담가마솥돼지국밥 : 돼지국밥, 영도구 태종로, 051-403-1545
· 송도공원 : 소양념갈비, 서구 암남공원로, 051-245-2441, http://songdopark.co.kr
· 구포집 : 추어탕, 중구 보수대로36번길, 051-244-2146
· 성일집 : 곰장어구이, 중구 대교로, 051-463-5888, www.ggom.co.kr
주변 볼거리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태종대, 영도등대, 국립해양박물관, 암남공원, 자갈치시장, 남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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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조국호 답 없는 딜레마

길 잃은 조국호 답 없는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쇄빙선을 자처하던 조국혁신당이 난파 위기에 처했다. 출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받아들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딜레마에 모두가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성 비위 2건과 직장 내 괴롭힘 1건이 접수됐다. 첫 번째 성 비위 사건은 혁신당 상급자 A씨에 의해 약 10개월간 이뤄졌으며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의 유죄 선고가 있던 지난해 12월12일 ‘노래방 회식’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이에 포함된다. 질질 끌더니… 결국 터진 폭탄 두 번째 성 비위 건은 지난 4월 혁신당 당직자 B씨가 당직자 면접을 보던 도중 발생했다.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지난 1월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당 성 비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이다. 지난 5월6일, 사건이 보도되자 당시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당의 제도와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강도 높게 혁신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 대책부터 당내 조직 문화 개선, 그리고 당원들과 국민의 신뢰 회복 방안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와 진상조사 등 후속 조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당에서도 유감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재원 의원은 “오늘(5월9일)까지도 피해자가 요구한 외부 조사기관 지정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재발 방지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즉각적 분리 조치,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전수조사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중앙당은 성 비위 건의 경우 윤리위원회, 괴롭힘 건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조치하겠다고만 했다”고 비판했다. 최근까지도 당의 대처는 미온적이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성추행 및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당을 떠났고 관련해 당의 쇄신을 외쳤던 비대위원장은 제명됐다. 함께 목소리를 내던 운영위원 3명도 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지난 4일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침묵을 끊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당의 이면을 폭로했다. 강 전 대변인은 “동지라고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괴롭힘을 마주했다. 그러나 당은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했다”며 “폭넓은 2차 가해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강 전 대변인에 따르면 당 윤리위와 인사위원회는 가해자와 가까운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고 외부 조사 기구 설치 요구는 한 달이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 해결 과정서 피해자에겐 “너 하나 때문에 열 명이 힘들다” “우리가 네 눈치를 왜 봐야 하느냐”는 등 발언을 해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무위원과 고위 당직자 일부는 SNS에서 피해자와 조력자들을 향해 “당을 흔드는 것들” “배은망덕한 것들” “종파주의자” 등 조롱 섞인 글을 게시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성 비위 폭로…눈물의 기자회견 2차 가해 논란 풍비박산 혁신당 강 전 대변인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귀한 조 비대위원장을 겨냥하며 “사면 이후 당이 제자리를 찾고 바로잡힐 날을 기다렸지만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회견 직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서 “조 비대위원장이 수감된 기간 동안 당원들께서 편지로 (성 비위 사건) 소식을 전했고 나온 후에도 피켓과 문서로 해당 사실을 자세하게 전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당도 입장에 변화가 없었고 조 원장한테서도 여태 다른 입장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 안팎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발생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혁신당 이규원 사무부총장은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최강욱 전 교육연수원장은 “조국을 감옥에 넣어 놓고 그 사소한 문제로 치고받고 싸운다” “혁신당에서 성 비위가 어떻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아는 분이 몇 분이나 될까”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자회견 이후 당의 대처가 문제를 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조 비대위원장의 태도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조 비대위원장은 강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연 당일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큰 상처를 받으신 피해자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피해자 대리인을 통해 저의 공식 일정을 마치는 대로 고통받은 강 전 대변인을 만나 위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제가 좀 더 서둘렀어야 한다는 후회를 한다”고 적었다. 이어 “수감 중 수많은 서신을 받았다. 피해자 대리인이 보내준 자료도 있었다”면서도 “그렇지만 당에서 조사 후 가해자를 제명 조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돌고 돌아 조국 매서운 후폭풍 문제가 된 대목은 “당시 당적 박탈로 비당원 신분이었던 저로서는 당의 공식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비당원인 제가 이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 공당의 체계와 절차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했다”는 부분이다. 당무에 관여할 수 없던 상황이라지만 혁신당의 정체성은 조 비대위원장인 만큼 “권한이 없었다”는 그의 말은 변명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성 비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감 중이던 조 비대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면 이후 일언반구 없이 자기 정치에만 몰두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 비대위원장은 ‘경향TV’ 유튜브에 출연해서는 “성 비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후로 저는 옥중에 있었지 않나. 일체의 당무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처지였다”며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 이어 “석방되고 난 뒤에 바로 여러 일정이 잡혔고, 그 과정에서 저라도 조금 빨리 이분을 만나 소통했으면 어땠을까”라며 “잡힌 일정을 마치면 연락드리고 봬야겠다고 했었는데, 만남이 있기 전에 이런 일이 터져 참 안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자신이 비당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혁신당은 조국의 이름을 걸고 만든 1인 정당에 가깝다”며 “당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을 꾸린 한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옥중에서도 언론과 인터뷰하는 등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성 비위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은 건 비판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보의 위선’이라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면서 혁신당 성 비위 사건은 정치권 전체로 빠르게 번졌고 지도부는 사건에 대해 책임지겠다며 총사퇴했다. 조 비대위원장이 복귀한 지 3주 만에 당이 비대위 체제로 들어서면서 벼랑 끝에 놓인 혁신당을 누가 이끌지 관심이 쏠렸다. 단단히 꼬였다 당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혁신당 의원들은 지난 7일과 8일 연달아 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구성을 논의했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음 날인 9일 다시 의총을 열고 의원 다수의 의견에 따라 비대위원장으로 조 원장을 당무위원회에 추천하기로 결론이 났다. 당초 조 비대위원장의 정계 복귀는 오는 11월 전당대회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었다. 그러나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그 시기가 두 달가량 앞당겨졌고 조 비대위원장의 조기 등판을 놓고 당에서조차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피해자 측에서 조 비대위원장의 등판을 반대했던 만큼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었지만 물리적 시간의 제약 등으로 차선책인 조 비대위원장을 추대한 것이다. 이후 혁신당은 언론 공지를 통해 “반대 의견 중에 피해자 신뢰 문제로 조 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조국 1극 체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조 비대위원장을 향한 비판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우선 조 비대위원장이 예상보다 이르게 정계에 복귀했지만 그를 쇄신의 지표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재등장한 시점도 명분도 무엇 하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반대로 그가 비대위원장 자리를 거부했을 경우 “쇄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당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출소 이후 정치 생명을 회복한 뒤 피해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결국 ‘조국 책임론’에 발목이 잡혔다. 수많은 딜레마 속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당의 키를 쥐었고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나서도 문제, 뒷짐도 문제 대권의 꿈 이렇게 무너지나 국민의힘은 “혁신당의 자진 해산 선언이다. 후안무치한 정당에 내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조 비대위원장은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도 피해자와 조력자들의 요청을 묵살했던 인물”이라며 “강 전 대변인 등 피해자 측에서는 조국 비대위 체제에 대해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지만 피해자보다 ‘조국 수호’에 혈안인 혁신당에 이런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비꼬았다. 이재명정부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박 대변인은 “광복절 특사로 조 위원장을 불러낸 순간부터 이미 ‘조국 복귀 시나리오’는 짜여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국민 앞에 반성은커녕 특사로 면죄부를 주고, 이제는 비대위 등판으로 마무리하려는 이 뻔뻔함을 국민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막상 키를 잡은 조 비대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초반에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지금의 사태가 된 만큼 이제야 진상조사에 나서는 건 무의미하단 지적이다. 조 비대위원장이 정치 1선으로 나오면서 “당이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다 써버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과 차악이라는 선택지만 남은 지금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음 지방선거, 더 나아가 차기 대권에서 사용할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의 원인이었던 조 비대위원장이 또다 른 짐을 짊어지면서 그의 대권 가도가 점점 좁아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뜩이나 가능성이 작았던 더불어민주당-혁신당 간의 합당 논의가 끊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조 비대위원장이 대권 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큰 당에 합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줄줄이 리스크를 안은 상태에서는 민주당도 선뜻 받아주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뒷전인 채 조 비대위원장의 안위만 걱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대위가 들어서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이를 직시하고 반성하기보다 성 비위 사태로 인한 후폭풍과 조 비대위원장의 위상만 걱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분도 타이밍도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옥중에서라도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조 비대위원장이) 현재 어떤 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정치권 전면에 나섰든 원장직을 유지하고 물밑에서 수습하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번 성 비위 사건은 당에 치명타로 이어졌다. 당 전면에 나선 조 비대위원장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뿔뿔이 흩어지는 혁신당 성비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창립 멤버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사퇴를 하거나 당을 떠났다. 먼저 지난 7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핵심 인사로 꼽히던 황현선 사무총장이 사퇴했다. 황 사무총장은 “당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 당원들과 국민께 사과드린다”면서도 당 지도부의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미 밝혔듯이 당 지도부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사 과정과 조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며 “저에 대한 모든 비판과 비난을 모두 감내하겠다”고 밝혔다. 혁신당 창당 당시 공동 창당준비비대위원장을 지내며 조국 비대위원장을 도왔던 은우근 상임고문도 지난 10일 탈당 소식을 알렸다. 은 상임고문은 “혁신당이 이 위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에 대한 철저하고 근원적인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비위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 대리인에 대해 매우 부당한 공격이 시작됐다.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을 위해서나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멈춰 달라”며 “당의 사무처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