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관광협회 200억 빌딩 편취 의혹

사라진 9억원 어디로…진실게임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어느 날 눈 떠보니 9억원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종교계 인사 문모씨는 자신의 계좌에서 9억원이 인출된 사실을 한 달이 지나서야 파악했다고 했다. 사라진 돈은 교회 목사, 화랑 대표, 유명 대학교수 등의 계좌로 흘러들었다. 일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 쓰였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서울 인사동의 200억원대 건물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막을 올린 것이다. 문씨 쪽은 "정부 유관단체가 자신들의 건물을 빼앗아갔다"라고 주장한다.

탑골공원과 조계사 사이에 있는 인사동거리에는 지하 4층, 지상 4층 규모의 '인사동 사이에'라는 건물이 있다. 전용면적 2339.54m²(약 700평), 감정가 220억원의 '인사동 사이에'는 지난 2014년 11월25일 '임의경매에 의한 매각'을 통해 한국관광협회중앙회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인사동 사이에
소유권 다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이하 관광협회)는 민간 관광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 사업을 위탁 운영해 온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특수법인이다. 그간 관광협회는 관광업계의 권익향상과 관광산업 선진화를 목표로 ▲연구개발 ▲박람회 유치 ▲관광 활성화 캠페인 ▲관광종사원 국가자격증 발급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올 7월 관광협회는 정부가 국회 추경예산으로 편성한 '관광진흥개발기금 특별융자'를 업계를 대표해 신청 받았다. 규모 4960억원의 특별융자금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관광업계를 지원한다는 명목에서 마련됐다. 앞서 남상만 관광협회 회장은 언론에 배포한 성명을 통해 관광분야 추경예산안 처리를 국회에 촉구한 바 있다.

남 회장은 외식·숙박업계에서 나름의 인지도를 쌓아올린 인물이다. 2003년 서울 명동에 있는 프린스호텔을 인수한 그는 2006년부터 10년째 서울시관광협회 회장과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2009년에는 관광협회 회장에 당선됐고, 2012년 연임에 성공했다. 같은 해 남 회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대상자로 검토된 바 있다.


지난 3월 한 여행 전문지와 인터뷰한 그는 운영 중인 한국관광명품점의 매출을 신장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국관광명품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투자하고, 관광협회가 위탁 운영 중인 전통문화상품 판매업소다. 현재 '인사동 사이에' 1층에는 한국관광명품점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주 모르게
임대차 계약

박근혜정부는 한국관광명품점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55억원을 관광협회에 지원했다. 그런데 관광협회는 '임대보증금'을 이용해 지난해 11월 인사동 건물을 '매입'했다.

문제의 인사동 건물을 둘러싸고 소유권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취재결과 확인됐다. 2013년 12월 관광협회는 보조금 55억원 가운데 일부를 수상한 '임대차계약'에 썼다. 이 가운데 9억원은 공중에 증발했다. 지난달 소유권 다툼의 당사자인 문모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문씨는 '인사동 사이에'를 2012년 3월 매입한 종교계 인사다. 문씨는 채무자인 공창호씨로부터 건물 소유권을 이전 받았다. 고미술상인 공씨는 국세청과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자금 융통이 어려웠던 공씨는 문씨에게 건물 소유권을 넘기면서 채무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씨는 소유권을 받고 공씨에게 사무실을 내줬다. 공씨로부터 임대료를 받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공씨는 결국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 이에 문씨는 "미술품으로 대신 갚으라"라며 퇴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해외에 체류해 국내 사정에 어두웠던 문씨는 공씨에게 한편으로 의지했다고 한다.

'악어와 악어새' 같던 둘 사이는 2014년 1월을 전후로 틀어졌다. 문씨와 남 회장이 2013년 12월 인사동 건물 '임대차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관련 계약 과정에서 문씨와 공씨는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특히 문씨는 "(자신이) 관광협회와 임대차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문씨 측의 진술과 공공기관(법원·구청·금융감독원) 발급 문서, 상호 계약서, 이메일, 기타 증빙자료 등을 토대로 요약한 사건 개요는 이렇다.


'인사동 사이에' 임대차계약서는 2013년 12월10일 작성됐다. 문씨는 남 회장이 서명한 계약서에 날인했다. 본지가 입수한 계약서 사본에 따르면 임차인 남 회장은 인사동 건물 지하 1층, 지상 1~2층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54억원을 같은 달 31일까지 임대인 문씨에게 납부키로 했다. 계약 당일 남 회장이 선납입할 돈(계약금)은 9억원이었다.

작년 220억대 인사동 건물 경매로 사들여
매입 전 고미술상과 수상한 임대차 계약

그런데 문씨는 남 회장과 임대차계약서에 직접 날인하지 않았다. 문씨는 공씨의 아들인 공상구 마이아트옥션 대표에게 인감도장을 넘겼고, 남 회장은 관광협회 홍모 사무국장을 대리인으로 세웠다.

공 대표는 계약 협상 당시 자신 명의의 계좌로 계약금을 수령하고자 했다. 하지만 관광협회는 "임대인 본인 명의의 계좌가 필요하다"라며 문씨가 개설한 통장을 요구했다. 문씨는 이날 오후 공 대표의 연락을 받고 동행인과 함께 우리은행을 찾아 현금 1000원이 든 통장을 개설했다. 신규 계좌가 우리은행 전산망에 등록된 시간은 12월10일 오후 3시27분이다.

그러나 문씨 측은 "이때까지 관광협회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공 대표가 '가계약'을 맺겠다고 했을 뿐 계약금에 대한 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관광협회는 "인감을 들고 왔기 때문에 공 대표를 믿고 계약금을 송금했다"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오후 3시53분 관광협회는 두 차례에 걸쳐 5억원과 4억원을 각각 문씨 계좌로 입금했다.

문씨 측은 "임대인에게 확인 한 번 안 하고 9억원이라는 거액을 송금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라고 물었다. 문씨의 은행거래 내역과 현장 CCTV 기록 등을 살피면 입금된 9억원은 당일 오후 3시59분께 수표로 전액 인출됐다. 수령인은 신원미상의 여성이며, 이날 오후 3시50분께부터 입금시간까지 우리은행 지점 한 창구를 서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 홍보팀은 "내부 절차대로 처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수표 인출해
가족이 현금화

실제 문씨는 올 3월 금융감독원에 우리은행 측의 과실을 묻는 민원을 넣었다. '9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6분 사이에 입금과 출금을 반복했음에도 은행 측이 이를 방기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올 4월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은행 홍보팀 역시 "(인출한 사람이 가져온) 통장과 전표, 인감, 비밀번호가 모두 일치했기 때문에 수표를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타행 관계자는 "입금 직후 갑자기 거액이 인출되는 경우 입금자에게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우리은행 측은 "내부 매뉴얼에 없는 것이라 별도로 확인해보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문제의 9억원은 여러 계좌에 흘러들었다. 30장의 수표를 각각 추적한 결과 계약금은 교회 목사 박모씨, 화랑 대표 김모씨, 유명 대학교수 유모씨 등의 계좌로 흘러갔다. 일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 쓰였다.

이 중 목사 박씨는 공씨의 아내이며, 받은 수표를 수차례 현금화했다. 박씨는 과거 필리핀 선교사업을 추진한 전력이 있다. 박씨는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연락하지 말라"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거액이 입금된 교수 유씨 역시 전화와 문자를 통한 문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사라진 9억원의 행방은 여전히 미궁이다. 단 공씨의 장녀가 1억원가량을 직접 수령한 사실이 계좌추적에서 밝혀졌다. 조심스레 이들 일가가 유용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관련 계약을 성사시킨 공 대표와 연락했지만 회신을 받을 수 없었다.

문제의 9억원은 정부가 건물 임대보증금으로 빌려준 55억원 가운데 일부다. 결과적으로 당시 관광협회는 정부 보조금을 철저한 검증 없이 집행했다. 더구나 관광협회는 법원 경매가 진행되던 '인사동 사이에'에 입주를 시도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급한 사정이 없다면 유찰이 거듭되던 건물에 전세를 놓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관광협회는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다음날인 12월11일 채권단인 푸른상호저축은행에 "임대 계약의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푸른상호저축은행은 계약일보다 앞선 10월22일 임의경매를 법원에 신청했다.

관광협회 사무국 직원은 지난 3일 "전임인 홍 국장이 새로 세들 건물을 찾던 중 공 대표의 지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사동 건물을 소개받았다"라며 "(채권자인) 저축은행과도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계약, 후질의'에 대해선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관광협회는 계약이 체결되자 곧장 내부 인테리어 공사에 착수했다. 처음부터 건물 인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관광협회는 계약서에 별도 항목으로 "임대인이 임차인의 인테리어 공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명시했다.

또 푸른상호저축은행이 지난해 2월 관광협회로 발송한 공문에 따르면 "경매가 완료될 경우 귀 협회의 임대차계약은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설명과 "(인테리어)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관광협회는 1층 영업점에서 취급 제한 품목을 팔다가 지난해 8월 종로구청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종로구청 측은 "우린 규정에 따라 고발했지만 수사기관이 처벌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문씨는 지난해 관광협회 측 직원들과 수차례 만나 '임대차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관광협회 측은 "몰랐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같은 기간 문씨는 공 대표 등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공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중 관광협회는 160억원에 '인사동 사이에'를 단독 낙찰 받았다. 최저 입찰가(140억원)보다 20억원가량 웃돈을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단독 입찰임을 고려하면 수상쩍은 대목이다.

전략적 매입?
보조금 투입!

관광협회의 인사동 건물 매입은 국회와 감사원으로부터 '보조금 유용' 사례로 지적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광협회가 당초 용도와 달리 보조금을 활용해 인사동 건물을 매입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관광협회는 정부 임대보증금과 남 회장 소유 프린스호텔로부터 대출받은 111억원을 더해 '인사동 사이에' 매입자금을 충당했다. 흥미로운 점은 관광협회가 인사동 건물을 매입한 뒤 다시 해당 건물에 108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관련 담보대출금은 프린스호텔에 진 채무를 갚는데 사용됐다. 프린스호텔은 가만히 앉아서 이자를 챙긴 셈이었다. 감사원은 올 1월 공개한 특정감사 결과 발표에서 '보조금법 위반'과 '정관 위반' 사실을 적시했다.

문씨는 공 대표와 남 회장 사이의 사전 공모 여부를 의심한다.  관광협회 사무국과 푸른상호저축은행 관계자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이들은 2013년 11월부터 '인사동 사이에'의 임대차계약과 관련한 견적을 뽑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매와 상관없이 임대보증금을 보장받는 방안도 논의됐다. 아울러 문씨는 "우리가 갖고 있던 부실채권을 관광협회가 대신 사들였다"라며 "우리가 인사동 사이에 매각을 추진하자 건물에 가처분신청도 걸었는데 평범한 임차인이라면 왜 이런 짓을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협회는 "우리가 처음부터 건물을 인수하려고 임대차계약을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도 피해자다. 공 대표 등을 상대로 법적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공 대표와 협상테이블에 앉았던 홍 국장은 회사를 퇴직한 상태로 전해졌다.

문씨 주장의 사실 여하를 떠나 사라진 9억원의 행방은 이번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공씨 등이 이곳저곳을 돌며 '인사'를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 가운데 일부가 의외의 곳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돈이 배달된 직접적인 진술 혹은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angeli@ilyosisa.co.kr>

 

<한국관광협회 200억 빌딩 편취 의혹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 신문 <일요시사>는 지1026호 종합면 및 인터넷 <일요시사> 2015.9.8.자 사건사고면 ‘<단독> 한국관광협회 200억 빌딩 편취 의혹’제목의 기사에서 한국관광협회가 서울 인사동 소재 200억 상당의 건물 소유권을 부당하게 이전받았고, 소유권 이전에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지원받은 55억원의 임대보증금 가운데 일부를 수상한 임대차계약에 썼으며 이 가운데 9억원이 사라졌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한국관광협회는 해당 건물을 정당한 법적 절차에 의해 소유권을 취득했으며 55억원의 임대보증금은 박근혜 정부가 아닌 1999년에 이미 지원받은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 바로잡습니다.

아울러 한국관광협회는 임대차계약에 사용한 계약금 3억원은 정부 관련부서로부터 승인을 받고 집행한 것이며, 약 4억3000만원은 이미 회수하였고 나머지 금액은 회수를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