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몸값 대박난 손흥민

‘400억 사나이’ 밥값은 해야 될텐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손세이셔널’ 손흥민(23)이 마침내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그 동안 한국의 유망주로서 축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손흥민이 올 여름 프리미어리그 이적시장에서 9번째로 비싼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 홋스퍼에 안착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던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핫스퍼로 공식 이적했다. 토트넘은 지난달 28일 구단 트위터로 “23살 공격수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공식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020년까지다. 손흥민의 등번호는 7번”이라고 발표했다. 손흥민은 이적이 확정되면서 EPL에서 뛰는 13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년 계약 입단
등번호 7번 받아
 
영국 <가디언>과 <BBC>는 손흥민의 이적료가 2200만파운드(약 398억원)라고 보도했다. 손흥민이 2013년 6월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팀을 옮길 때 이적료는 1000만유로(약 133억원)였다. 약 2년 만에 몸값이 3배로 뛴 것이다. 손흥민의 이적료로 알려진 2200만파운드는 아시아 선수 이적료 중 역대 최고액이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가 2001년 이탈리아 AS로마에서 파르마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2600만유로(약 346억원)가 최고였다.
 
토트넘은 손흥민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투자하는 것과 함께 팀내 중심 선수임을 뜻하는 등번호 7번을 줬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 시티의 라힘 스털링 등이 7번을 단다. 데이비드 베컴도 현역 시절 7번을 달았고, 박지성도 국가대표로 출전할 때는 대부분 7번을 달고 뛰었다.
 

장지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최근 EPL 구단들의 수입이 늘어나 이적료가 높아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손흥민의 이적료가 놀랍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토트넘이 올 여름 영입한 선수 중에선 최고 이적료다. 거액의 이적료를 부담하고 등번호 7번을 준 것은 손흥민에게 거는 토트넘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입성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액…토트넘 안착
 
토트넘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는 손흥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올 시즌 들어 2무1패로 부진한 출발을 보이고 있는 토트넘은 공격수 해리 케인과 호흡을 맞춰 득점력을 높여줄 파트너로 손흥민 측에 더욱 강하게 구애했고, 손흥민 역시 잉글랜드 무대를 선택하면서 결국 이적이 성사됐다. 
 
토트넘이 큰돈을 쓴 만큼 손흥민은 당장 중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트트넘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해리 캐인은 지난 시즌 21골을 터뜨린 무서운 신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공격 자원이기도 하다. 공격 2선에는 크리스티안 에릭센, 무사 뎀벨레, 나세르 샤들리, 에릭 라멜라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 
 
손흥민이 확실한 주전이라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고 골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장지현 해설위원은 “토트넘에는 알렉스 프리차드와 같은 유망주들이 많다. 손흥민에게 3∼4경기는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손흥민도 새 출발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구단 트위터를 통해 “나는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선수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축구부 코치였던 아버지 밑에서 축구를 배웠다”며 “토트넘 팬들 앞에서 하루빨리 경기를 뛰고 싶다. 팬들의 응원이 내겐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나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과감하고 대담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내 축구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손세이셔널’
그의 활약은?
 
토트넘은 손흥민 띄우기에도 나섰다. 지난달 30일 영국 런던의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2015-20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에버턴의 4라운드 경기 전.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토트넘 관중은 손흥민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아직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은 이적생을 팬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었다. 지난달 15일 올림피크 리옹으로부터 공격수 클린턴 은지예를 영입했을 때에도 이런 이벤트는 없었다. 토트넘이 손흥민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손흥민은 10대 후반부터 상당한 실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의 재능이 일찍 만개한 까닭은 그의 아버지 덕분이다.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가지 지낸 선수 출신이며, 어렸을 때부터 손흥민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쳤다. 손웅정은 손흥민에게 직접 개인기와 탄탄한 기본기를 차근차근 가르쳤다. 손흥민은 “내가 유럽에서 뛸 수 있는 건 절반 이상이 아버지 몫이다”라고 말할 만큼 아버지는 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손정웅은 손흥민에게 승패에 집착과 부담을 버리게 만들고 축구 자체를 즐기게 가르쳤다. 손정웅은 아들이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수 있을 때까지 패스나 여타 다른 기술을 가르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아버지의 남다른 축구 교육 끝에 손흥민은 일찍 남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FC 서울의 유스팀이었던 동북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약 3개월 남짓만 뛰고 중퇴했다. 이후 함부르크SV 유스팀에 1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와 2007∼2009년 이광종호의 일원으로 U-17 월드컵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손흥민은 2009년 U-17 월드컵때 등장해서 엄청난 활약으로 그 재능을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는 대표팀 최다골인 3골을 넣어 대한민국이 8강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분데스리가 1부 리그팀인 함부르크SV가 재빨리 다시 그를 스카우트를 영입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SV 데뷔 이전부터 소속팀 감독과 스태프 모두 엄청난 재능이라고 극찬 받았다. 심지어는 같은 소속팀 동료인 전설적인 축구선수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마치 어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후계자로 삼는 듯한 발언을 몇 차례 했다. 반 니스텔루이는 자신이 젊었을 때 지도해 줄 선배가 없어서 괴로웠다고 했다. 이번엔 자신이 그런 선배가 되어서 재능 있는 손흥민을 지도해 주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첫 시즌인 2010-2011 분데스리가에서 손흥민은 9경기 9골이라는 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재능을 만개했다. 프리시즌 중에는 첼시를 상대로 넣은 골이었다. 당시 최정상급 센터백인 존 테리와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순간적인 스피드로 농락하면서 골을 넣는 장면에 엄지를 추켜세웠다. 첫 풀타임 선발 출전 때도 골을 기록하며, 함부르크SV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0년 성공적으로 함부르크SV와 4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11-2012 시즌을 앞둔 프리시즌에서는 손흥민은 10경기에서 18골을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며 새 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헤르타 베를린과의 리그 2라운드에 첫 출전하여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시즌 중간 함부르크SV는 강등권까지 떨어질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손흥민이 매 경기마다 결정적인 골을 넣으며 팀을 강등권에서 구출하는 데 일조했다.
 
골 넣는 센스 

기복 심한 편
 
2012-2013 시즌에는 리그 33경기 12골 2도움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기량을 자랑했다. 원정경기인 프랑크푸르트 전에서 1:3으로 뒤지던 후반에 시즌 첫 골을 터트렸다. 비록 2:3으로 경기는 졌으나 자신감을 보여줬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1라운드 경기에서는 1:1로 맞서던 전반전에 수비수 한명을 제치고 측면 돌파후 왼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시즌 8호 골이자 역전골을 넣었고, 후반 44분 낮은 크로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9호 골을 넣으면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고, 최고 평점을 받음과 동시에 함부르크SV의 리그 순위 또한 5위까지 끌어올렸다.
 
4월 14일 마인츠 05와의 경기에서 10호, 11호 2골을 몰아쳐 팀의 2:1 승리에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선수로는 차범근, 설기현, 박주영에 이어 네 번째 유럽파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했으며, 특히 빅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푸스발-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는 차범근에 이어 두 번째이다. 뒤이어 어린 나이에 12호 골도 성공시켰다. 
 
손흥민은 시즌이 종료된 후 이적시장이 시작되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토트넘 등이 노렸고 분데스리가에서는 도르트문트, 레버쿠젠이 영입전을 벌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자신이 주전으로 뛸 수 있고 경쟁력이 충분히 있는 팀이라는 조건에 부합했던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을 확정지었다.  
 
2013-2014 시즌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손흥민은 31경기 10골 4도움으로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친정팀 함부르크SV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3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이 해트트릭은 설기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선수가 유럽 리그에서 기록한 것이다.
 

이런 활약으로 평점 만점을 받았으며 MOM (Man Of the Match)에도 선정됐다. 또한 FIFA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37경기 무패행진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신기록을 수립한 FC 바이에른 뮌헨과 더불어 함부르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손흥민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했다. 
 
2014-201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라운드에서 FC 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2, 3호 골로 멀티골을 득점하였으며 팀은 1:2 로 승리하였고 MOM에 선정됐다.
 
13번째 한국선수…기대 한몸에
“먼저 내부 경쟁서 살아남아야”
 
리그 21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통산 2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나 바스 도스트가 4골을 넣는 활약을 하며 4-5로 패배했다. 마인츠와의 리그 경기에서 1골을 성공시켜 리그 11호골이자 시즌 17호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세 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손흥민은 어린 나이임에도 킥이 강하고 정확해 지공과 속공, 박스 안과 바깥을 가리지 않고 득점 루트가 다양하다. 감아차든 발등으로 강하게 차든 자유자재로 킥을 구사하는 편이다. 또한, 킥에서 늘 반 박자 빠른 타이밍을 가져간다. 단순히 반 박자가 빠른 게 아니라 수비수의 행동을 빠르게 파악해서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찬스를 만들 줄 아는 센스가 있다. 찰나의 순간이 중요한 빅리그에서 공격수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재능 중 하나다.
 
드리블 상황에서의 손흥민은, 상대편의 수비 진영 그 자체를 제치고 들어가기보다, 간결하게 한 명 한 명씩 제쳐버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과거 연륜이 부족했던 2012년이나 2013년에는 단순한 드리블 패턴으로 일관하다 상대 수비수에 허무하게 차단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현재는 많이 개선된 모습이다.

단순한 드리블
단점 보완해야
 
장점이 있는 만큼 보완할 점도 있다. 손흥민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기복이다. 함부르크SV와 바이엘 04 레버쿠젠을 거치며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이따금씩 기복 있는 플레이를 드러냈다. 기세를 타면 누구도 막기 힘든 선수지만 조용할 때는 한없이 조용했다. 또한 돌파를 시도할 때는 공만 보다가 수비수들에게로 돌진해 동료의 움직임을 놓치는 경우가 잦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토트넘 어떤 팀?
 
손흥민이 이적한 토트넘 홋스퍼는 133년 역사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이다. 영국 런던 북부의 토트넘을 연고로 1882년 창단했으며 홈구장은 3만6000여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화이트 하트 레인이다.

역시 런던 북부가 연고지인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는 양 구단의 자존심을 건 빅매치로 손꼽힌다. 잉글랜드축구협회컵(FA컵)에서 8차례, 리그컵에서도 4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토트넘이지만 1부 리그 우승 기록은 단 2차례(1950-1951시즌 1960-1961시즌)뿐이다. 프리미어리그가 1992년 출범한 뒤에는 한 번도 정상에 선 적이 없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출범 뒤 2부 리그로 떨어진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이며 언제나 상위권 전력을 구축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20개 팀 가운데 주로 4∼6위에서 안정적인 성적을 냈다. 배경에 유대인 자본이 있어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것으로 알려진 토트넘은 최근 5년간 공격수 영입에 큰 돈을 썼으나 3위 안에 들어보지 못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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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