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빛과 그림자'

'검찰 최정예' 여당엔 충견 야당엔 맹견?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특별수사부) 인력이 대폭 확대됐다. 지난 26일 검찰은 "특수부 검사 7명을 충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사실상 특수부에게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수사력이 증강된다는 점은 기대 요인이지만 그 수사력이 어디 쓰일 것인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린다. '검찰 최정예'로 불리는 특수부의 화려한 이면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검찰 내 최정예 조직으로 꼽힌다. 박근혜정부 들어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특수부가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청와대는 정권 최고 스캔들로 비화될 뻔했던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맡겼다. 불거진 혐의만 놓고 보면 '대형사건'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특수부를 투입한 것이다.

가중된 업무
수사력 한계

특수부는 그간 청와대의 '하명수사'를 처리하면서 동시다발적인 대기업 수사를 병행했다. 지난 봄 개시된 포스코그룹에 대한 사정작업도 특수부의 몫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인력으로 하명·고발·인지 사건을 모두 벌리다보니 그 한계가 뚜렷했다. 요란하게 시작한 '포스코 수사'의 경우 그룹 수뇌부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체면을 구긴 특수부다.

언론은 검찰의 수사력에 의문을 표했다. 내부적으로는 정권 차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우려했다고 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검찰은 특수부 인력을 대거 보강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번 개편안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나온 터라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특수부는 4개 부서를 기반으로 총 8팀 체제가 가동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는 특수1∼4부가 있다. 검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팀 체제로 개편되기 이전의 특수부는 다음과 같이 운영됐다.

특수1∼4부에는 각 부서마다 한 명의 부장검사가 있다. 이들 부장검사는 또 한 명의 부부장검사를 지휘한다. 각 부부장검사에 딸린 평검사는 4∼5명 수준이다.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차장검사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 개편에서 각 부서에 부부장검사를 한 명씩 더 투입했다. 부서당 2팀을 만든 셈이다. 이 같은 개편의 이유는 부서 간 인력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필요에 따라 '특정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어 기존 1팀 체제에선 특수1부와 특수2부의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각 부서마다 진행 중인 사건이 달라 맡은 일을 처리하기도 빠듯했다. 하지만 2팀 체제에선 1팀이 빠지더라도 남은 1팀이 공소유지 등을 담당하면 된다. 또 지휘체계의 정점에 있는 차장검사가 특정 사건을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특수1∼4부의 동시 투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인력 대폭 확대…1∼4부 2팀 체제로
사실상 중수부 역할 '기대반 우려반'

특수부가 이처럼 팽창하게 된 원인을 놓고 일각에선 '차기 권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특수부의 '몸집 불리기'는 김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언급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식 수사'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최근 특수부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가 없는 이상 이를 대체할 특수부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결정이 수사력 증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인 특수 수사의 경우 피의자가 지능범일 때가 많은데 우리 입장에선 핵심 증거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검찰이 경찰과 다른 점은 수사에 착수했을 때 증거 확보뿐 아니라 공소 유지까지 내다보고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특수부 출신들은 수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김 총장 재임 시기 단행된 '하방 인사'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을 상위기관인 법무부나 대검에 올리던 관행을 깨고 지방으로 발령 냈다. 대형 수사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칼잡이(특수수사에 정통한 검사를 지칭하는 은어)'들 역시 지방으로 떠났다.

몸집 불리기
중수부 부활?

김 총장의 의도는 중앙과 지방, 특수와 형사 등을 두루 경험해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 평가는 좋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 문화는 '상명하복'과 '엘리트주의'인데 끗발이 안서는 검사가 중앙에 있으니 조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특수통의 공백은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획력과 정보력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수사력 저하가 대다수 국민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검찰 조직에서 중수부는 신화적인 존재다. 수사력만 떼어놓고 보면 근접한 부서가 없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이유였다.

지난 2009년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아직도 검찰 안팎에선 "그때 노무현이를 구속했으면 이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온다.

안대희 전 대법관 등 대부분 특수통이 수장을 꿰찼던 중수부는 공안통의 비약과 함께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선 자금' 수사로 살아있는 권력을 겨눴던 중수부는 이명박정부 들어 권력을 지키는 '충견'으로 변해갔다.

검찰 안팎에선 특수부에 대해 "주인도 물 수 있는 개"라는 표현을 쓴다. 한마디로 맹견이다. 공안부에 대해선 '권력을 바라보는 꽃'이란 말을 주로 쓴다. 이는 해바라기를 가리킨다. 정치 감각이 남다른 공안부와 달리 특수부 출신들은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성향이다. 검사로서의 프라이드(자부심)가 강한 탓이라고 한다.

야당은 이 잡듯이
여당은 티 안나게

그러나 이들은 특수부이기 이전에 검찰에 소속된 검사다. 중수부와 마찬가지로 특수부는 목표 설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다. 한명숙 수사는 특수부가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말'에서 시작됐다. 당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건넸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 '플리바게닝'을 제안하는 등 사건에 의욕을 보였다. 수사팀은 한 전 총리를 기소했을 때만 해도 유죄를 확신했다.


그런데 곽 전 사장은 진술을 바꿨다. 검찰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명숙 수사팀' 관계자는 "곽 전 사장이 한명숙 얘기를 꺼낸 건 자신을 봐달라는 의미였는데 수사팀 입장에서 무작정 봐줄 수는 없었다"라며 "우리보단 야권에서 여러 경로로 회유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선고를 앞둔 검찰은 두 번째 카드를 빼들었다.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한 전 총리가 거액의 수표를 받았다는 이른바 '9억원 수수' 사건이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조차 반대한 이 사건을 특수부는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 전 총리 주변을 샅샅이 털었다.

당시 검찰은 한 전 총리 차량의 하이패스 기록,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은 물론이고, 그가 갔던 식당, 골프장, 백화점 등을 모조리 뒤졌다. 버려진 자필 영수증과 카드 사용기록 등을 모아 증거로 활용했다. 단종된 돈가방을 수소문해 한씨 진술과 맞추는 한편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까지 조회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한씨가 건넨 수표 중 1억원이 한 전 총리의 동생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은 문제의 1억원을 자신의 전세 보증금으로 썼다. 수사팀 관계자는 "나는 속일 수 있지만 '200개의 눈(100여명의 특수부 인력)'을 모두 속일 수는 없다"라며 "밖에서 보기에는 편파 수사로 보여도 증거 없이 아무나 기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약해진 수사력 포스코 한계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여전

지난 5년간 특수부는 조직의 명예를 걸고 한 전 총리와 싸웠다. 궁극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특수부는 한번이라도 검찰의 타깃이 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지만 특수부는 야당과 달리 정권에게 불리한 내용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 든 기억이 가물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재임 시기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 채 전 총장은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투입해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불행히도 채 전 총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지 석 달 만에 옷을 벗었다.

'채동욱호' 검찰은 출범 초기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나름 공정한 수사를 진행했다. 전두환 일가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까지 수사 선상에 올렸다. 특수부에 대한 검찰 안팎의 기대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채 전 총장이 잘려나가고 김 총장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진태호'가 나름 비중 있게 다뤘던 사건은 동양그룹 수사와 강덕수 STX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다. 이들 모두 채 전 총장이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파괴력 면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정윤회 문건' 수사처럼 청와대가 내려준 가이드라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검찰은 올 2월 '부패와의 전쟁'이 선포된 직후 특수1∼4부를 모두 사건에 투입했다.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선창했지만 실제 주문은 더 윗선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후 특수1부는 ▲자원외교 비리와 농협 대출 비리, 특수2부는 ▲포스코 비자금 수사, 특수3부는 ▲방위사업 비리와 KT&G비자금 수사, 특수4부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청와대 하명
지키기 급급

'부패와의 전쟁'은 대부분 지난 정권 당시 있었던 비리를 타깃으로 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물을 보인 수사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KT&G비자금 수사에 그쳤다. 그나마 KT&G비자금 수사는 전임인 채 전 총장 때 시작된 사건이다.

특수부는 이번에도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수사에서는 금품 수수 혐의를 밝혀내는 '신묘함'을 보였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절반이 남은 상황에서 대대적인 사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당장 대기업 L사에 대한 사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쯤 되면 특수부의 인력 보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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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