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발' 공포에 묻힌 이슈 넷

국민은 속고 권력은 웃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남·북 간 대치 국면이 진정세에 접어든 가운데 수면 아래로 감춰졌던 현안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보름간 국정원 해킹 파문, 롯데그룹 국적 논란, 선거제도 개편 등 굵직한 이슈들은 뉴스 머리꼭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발 공포에 묻힌 이슈들을 조명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군사 도발 행위에 대해 "응징하겠다"라는 뜻을 밝혔지만 처음부터 선제 타격의 가능성은 없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남한은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북진'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미연합사가 설정한 '데프콘' 단계별 대응을 살펴보면 우리 군은 3단계 '긴장상태'부터 미군의 지휘를 받는다. 독자적인 군사행동은 할 수 없다. 실제 확전은 1단계이며, 우리 군은 정전협정 이후 줄곧 4단계(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북한은 전쟁을 벌일 실력과 명분이 부족했다. 북한의 남침은 사실상 남한의 군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군을 상대로 한 전쟁을 의미했다. 미국을 상대로 싸워 이기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 역시 공개적으로 "(한반도에) 긴장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행동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성명을 냈다. 북한이 미군에 의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상황을 제외하고 중국이 전쟁에 개입할 확률은 없었다.

결국 '전쟁 공포'는 언론이 과장한 '안보몰이'의 결과물이다. 남·북간 대치 국면이 최고조에 이르자 각 언론은 경쟁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부추겼다. 그 사이 심도 있게 다뤄지던 각종 현안은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정부·재벌과 관련된 이슈 역시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의혹이 꼬리를 물었던 '국정원 해킹 파문'도 마찬가지다.

[하나, 국정원 해킹]


지난 19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국정원이 해킹을 시도한 컴퓨터 아이피(IP) 3개를 추가로 파악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안 위원장은 "2013년 7~8월 국정원이 국내 인터넷 KT망을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를 대상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거나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정원이 국내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해킹했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국정원이 해킹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국정원 해킹 파문'은 진실 규명에 필요한 동력을 잃은 모습이다. 검찰은 관련 사건을 접수받은 지 한 달이 넘도록 일손을 놓고 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 중개업체 관계자를 잇달아 검찰에 고발했다.

여당은 '안보'를 앞세워 야당의 의혹 제기를 묵살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지난 21일 "북한이 도발 중이니 (국정원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지 말아 달라"라며 "(향후) 북한이 사이버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사이버사령부가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의혹을 제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둘, 롯데일가 사태]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앞서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자신의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해임했다. 이후 부자 간 폭로전 양상으로 '반롯데' 여론이 확산되자 신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 나타난 신 회장은 서툰 한국말로 사과문을 읽었다. 당시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실제 롯데그룹은 지난 26일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경영투명성 제고 등 4대 중점추진과제를 발표했다.

남북대치 두고 무리한 안보몰이 지적
굵직굵직한 국내 뉴스들 수면 아래로


또 과제를 추진할 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했다. 이날 신 회장은 "겸허한 마음으로 착실히 준비해 롯데를 사랑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기대를 회복해 나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관련한 논란이 완전히 불식됐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롯데그룹은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에 따라 금융계열사 지분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 파급력은 크지 않지만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도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롯데그룹의 '왜색'은 잠재적인 논란의 대상이다. 그룹 총수 일가가 일본어로 대화하고, 일본롯데에서 한국롯데의 이윤을 챙겨가는 구조는 "롯데가 한국기업"이란 신 회장의 해명과 배치된다. 더욱이 롯데그룹은 계열사 롯데푸드, 대홍기획, 롯데리아 등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셋, 선거제도 개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남북이 대치 중인 틈을 타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하는 선거구 획정 기준안을 합의했다. 양당은 국회의원 정수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역구와 비례의원 수는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위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당이 합의한 법안이 통과되면 비례대표 수는 자동적으로 감소한다.

이 경우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양당 체제는 더욱 공고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당 득표보다는 지역 후보자 득표에 더 유리한 선거제도이기 때문이다. 원내 3당인 정의당은 지난 25일 "두 정당의 합의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반발했다. 정의당 심장정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개혁을 당론으로 정한 만큼 책임 있게 임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불리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총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이 투표에서 10%의 지지율을 획득했다면 해당 정당에는 30석이 배분된다.

그러나 한국은 관련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다수 정당에 불리한 제도라는 평가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넷, 못다한 친일청산]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은 지난 27일 1179만5544명의 관객(누적)을 동원해 역대 극장 흥행 순위 9위에 랭크됐다. <암살>은 1933년 경성을 무대로 친일파 암살 작전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그렸다.

<암살>은 상업적인 흥행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신드롬'으로까지 번졌다. 약산 김원봉이 재조명 받기 시작했고, 친일파 청산에 대한 여론이 새롭게 조성됐다.

광복절을 전후로 친일파의 후손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이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올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부친의 친일 행적이 도마에 올랐다.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한 논란도 계속됐다.

하지만 북한발 이슈는 친일파에 대한 관심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게로 돌렸다. 지난 27일 허영일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김 비서를 우호적으로 묘사했다가 지탄을 받고 사퇴했다. 북한이란 '요술봉'에 당해 낼 장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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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