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동탄역 백화점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

짜고 쳤나? ‘오락가락’ 이상한 입찰 "심사위원들은 알고 있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동탄 백화점 부지 입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입찰 과정에서부터 결과까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업계는 LH의 속 시원한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

 

 

LH는 동탄 백화점 부지 입찰에서 롯데쇼핑 컨소시엄(이하 롯데쇼핑)이 현대백화점 컨소시엄(이하 현대백화점)과 STS개발 컨소시엄(이하 STS개발)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지난 7월24일 밝혔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이 약 600억원 가량 더 많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4000억 한입에
밀어주기 지적

업계에서는 공모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에 비해 입찰가를 16.5%나 더 쓰고 탈락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4144억원을 입찰가격으로 제시했다. 동탄 백화점 사업자로 선정된 롯데쇼핑(3557억원)보다 587억원 높은 금액이다.

평가가 끝난 점수표를 보면 의혹은 더 짙어진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항목에서 현대백화점이 모두 일등을 했지만 주관적인 평가 부문에서 전부 꼴찌를 해 심사의 객관성에 물음표가 찍힌 것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했던 항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현대백화점은 입찰가격평가에서 400점 만점에 400점을 기록했으며, 사업수행능력 부문에서 130점 만점에 127점을 기록했다. 객관적 평가의 영역인 가산점에서도 현대백화점은 20점으로 만점을 받았다.

반면, 롯데쇼핑은 입찰가격평가 영역에서 360점을 기록해 현대백화점보다 40점 낮았다. 가산점은 20점을 받아 현대백화점과 같은 점수를 기록했다. 롯데쇼핑의 사업수행능력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대백화점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요약하자면 현대백화점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항목에서 롯데쇼핑을 최소 40점 이상 앞섰다. 1·2점 차이에도 사업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점수 차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은 사업자 선정에서 롯데쇼핑에 밀려 탈락했다. 주관적 평가에서 모두 꼴찌(3위)를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업부지 지정용도가 백화점으로 돼 있어 개발가능 시설은 주상복합 아파트와 백화점으로 제한된다”며 “뛰어난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차별화 할 수 없는 사업구조에서 모두 3위를 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재무계획 부문에서 현대백화점이 3위를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재무계획의 하위 평가 항목인 ▲사업수행능력 ▲토지비 납부 계획은 객관적 평가 영역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백화점은 이 부문에서 총 127점으로 만점(130)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며 1위를 했다. 그러나 재무계획 평가의 주관적 평가 영역인 ▲재원조달계획 ▲사업성분석 및 리스크관리 계획 평가 부문에서는 총 배점 70점 가운데 56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황금부지’ 롯데쇼핑 우선협상자 선정
600억원 더 써낸 현대백 탈락 ‘의문’

결국 재무계획 영역에서 현대백화점은 3위로 밀려났다. 의외인 부분은 재무계획 1위 기업이 STS개발이라는 점이다. STS는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데다 양재 파이시티M&A 입찰에 참여해 사업권을 획득했음에도 사업을 추진하지 않아 사업권을 박탈당한 바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시공사의 광교 파워센터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발주처인 경기도시공사와 소송을 벌이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적자 기업이 재무계획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결과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롯데쇼핑은 주관으로만 평가하는 개발계획(200점 만점)과 관리운영계획(200점 만점)에서 모두 1위를 기록, 현대백화점을 2.4점 차로 역전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특혜 의혹은 심사위원 선정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사업자 선정 입찰 과정에서 주관적 평가 부분은 심사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점수가 크게 갈리기 때문에 입찰 경쟁 시 참여업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동탄 백화점 부지 입찰 때 LH는 불투명한 방법으로 심사위원을 선정했다.
 

시간을 입찰 심사 이틀 전인 지난 7월21일로 돌려보면 당시 LH는 입찰 신청을 받으면서 입찰참여업체를 대상으로 심사관련 안내를 했다. LH는 심사위원 선정과 관련해 입찰참여업체가 심사 하루 전(22일) LH측이 선정한 심사위원 후보군(100명)을 확인하고 기피신청을 할 것을 공지했다. LH는 입찰참여업체의 기피신청 결과에 따라 최종 심사위원 10인을 선정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성적표 놔두고
사람 입맛대로

그러나 22일 LH는 심사위원 선정 과정을 통째로 바꿨다. LH는 심사위원 10인을 선정하기 전 받겠다던 기피신청을 보안유지를 이유로 심사 당일(23일) 오전으로 갑자기 미뤘다. 또, 심사일인 23일 오전에는 기피신청을 포기할 것을 몇 차례에 걸쳐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입찰참여업체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LH는 미리 임의로 선정한 심사위원 10인 가운데 기피신청을 받았다.

결국 입찰참여업체가 기피신청을 하더라도 LH가 원하는 인사 10인으로 심사위원이 구성된 셈이다. 특히, 개발계획 부문의 심의위원 4인 가운데 1인이 개인사정으로 당일 참석이 어려워지자 LH 내부 직원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킨 점은 심사위원 선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공모지침에 따르면 정원의 70% 이상이 섭외됐기 때문에 내부직원을 참여시킬 이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10인의 심사위원 가운데는 2명의 LH 직원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임의로 선정된 10인의 심사위원 선정 과정은 더욱 불투명했다. 통상적으로 공모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입찰업체 관계자나 경찰관이 참관해 공정성을 높인다. 그러나 10인의 심사위원을 선정할 당시 참여한 인사가 LH 내부 직원과 LH와 계약 관계에 있는 변호사가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객관평가 1등…주관평가 꼴등
심사위원들 선정 두고도 뒷말

또한 심사 과정 역시 갑자기 바뀌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당초 심사 장소와 시간을 통보해주기로 했는데 수원의 모 리조트에서 비밀리에 심사를 진행하면서 입찰참여업체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

왜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서 수많은 번복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내부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입찰 과정을 진행했던 실무자조차 납득할 수 없었던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기사 속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롯데쇼핑이 주관적 영역으로만 평가되는 항목에서 모두 1위를 하면서 특혜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다.

최고 입찰가를 쓰고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현대백화점 측은 LH에 심사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LH에 지난달 24일 심사 과정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해 다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LH은 롯데쇼핑 밀어주기 의혹 제기가 늘어나자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LH가 내놓은 해명은 특혜 시비를 완화하기는커녕 더욱 부추겼다. 해명자료를 살펴보면 LH는 롯데쇼핑의 컨소시엄이 그룹사 단독으로 구성돼 있어 안정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며 사업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사 단독구성과 관계된 평가 항목이 존재하지 않아 LH의 해명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특히, 동탄 백화점 부지의 경우 백화점 외에 아파트 952세대를 의무적으로 시공해야 하는데, 아파트 시공경험이 있는 시공사가 포함된 그룹사는 롯데그룹뿐이기 때문에 애당초 롯데그룹을 사업자로 내정해 놓고 심사 평가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쇼핑이 써낸 건축 설계사 가운데 A사의 경우 LH 출신 인사가 다수 참여해 세운 회사”라며 “A사가 이번 특혜 의혹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논란이 확대되면서 의심의 눈초리가 A사로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 키우는 LH
구차한 변명만


LH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밀어주기 논란이 좀 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LH가 동탄 백화점 부지 입찰 과정에서 공모 절차대로 입찰 심사를 진행했으면 해당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LH는 의혹 해명을 위해 성실한 답변해야한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LH 담당자 녹취록 공개
기피신청 변경…“윗분들이 했다”

심사 과정이 여러 번 바뀐 데에는 LH 본사 윗선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본사의 ‘윗분’들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녹취록은 입찰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와 LH 담당자간 대화 내용이다. LH 동탄 백화점 부지 입찰을 담당한 실무자는 당시 기피신청 절차가 바뀐 것과 관련해 “기피신청을 받기로한 수요일(22일) 아침에 그래서(절차가 바뀌어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다”며 “(그 결정은) 윗분들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위원 선정과 심사 과정이 바뀐 것은) 중재안이었다”라며 “본사에서는 더 황당한 얘기(절차 변경 제안)를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녹취록은 내부 직원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절차상의 문제를 방증하면서 향후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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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