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영화처럼 살다간 이맹희

하고 싶은, 묻어둔 이야기가 많은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이 명예회장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비운의 삼성가 장남’으로 재계 오너의 일원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파도를 탔던 그다. 화려한 출생과 비운의 주인공이었던 이 명예회장의 84년을 되돌아봤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그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3남 5녀(이맹희·이창희·이건희·이인희·이숙희·이숙희·이순희·이명희) 중 장남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대구 수창초등학교와 경북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입학은 서울(수송초등학교)에서 했으나 이내 대구로 내려갔다.
 
잘나간 젊은 시절
탄탄대로였는데… 
 
이 명예회장은 광복 이후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도쿄농업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막바지인 1956년 12월1일 손복남 CJ 고문과 결혼했다. 당시 이 둘은 만난 지 한달 만에 혼사를 올렸지만, 이 명예회장은 생전 “빠른 속도로 성사된 결혼이었지만,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결혼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일본 유학을 마친 이 명예회장은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결혼식을 치른 지 두 달 만인 1957년 2월이다. 이 명예회장은 미국에서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황태자’에 울리는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0년 이 명예회장은 한국에 돌아왔다. 그의 첫 직장은 한일은행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한일은행에 입사한지 2년 만인 1962년 안국화재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이 명예회장을 경계한 이병철 회장의 비서진이 이 명예회장을 모함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명예회장과 적대적인 관계였던 이병철 회장의 일부 비서진이 이 명예회장의 그룹 경영 참여를 차단하기 위해 모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일은행에 입행한 이 명예회장이 행장에게 대들고 대부 알선을 해주면서 ‘커미션’을 받는다는 등 근무태도가 불성실하다고 이병철 회장에게 보고됐다. 이에 화가 난 이병철 회장이 이 명예회장을 한일은행에서 나오게 해 안국화재에 들여보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3남5녀 중 장남
대권 내준 비운의 황태자 파란만장한 삶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창업주의 장남으로서 그룹 후계자 과정을 착실히 밟아 나갔다. 그러나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고, 이병철 회장이 열한 살이나 아래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후계 자리를 내주면서 그의 인생은 파도의 연속이 됐다.
 
이 명예회장의 변곡점은 1966년에 찾아왔다.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1966년 5월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 4000만달러까지 들여왔다.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이토록 국가적으로 거대한 파문이 일어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정부가 내걸은 국정 구호가 구악 일소, 즉, 부패척결이었다. 그런데 사카린 사건으로 정권의 모순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당시 삼성에서 중앙일보를 세우고 언론계에 진출할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카린 사건에 대한 경쟁사 언론들의 공격이 따가웠다. 이러한 복합적인 작용으로 사카린 사건은 범국민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됐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한 후 재계 은퇴까지 선언하고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 계기로 이 명예회장은 삼성의 총수에 올랐다. 비록 불미스럽게 총수에 오르긴 했으나, 장남으로서 그의 위상은 변함이 없었다. 이 명예회장은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삼성 참모진에게 “맹희 부사장에게 세 번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내게 가져오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장자 상속의 대원칙에서 삼성의 대권을 받은 이 명예회장의 경영 행보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사카린 사건 후
부친 눈밖에 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다’며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이 명예회장으로서는 부친의 경영 부재가 자신의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오히려 이때가 부친의 눈 밖으로 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됐다.
 
거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있었다. 1969년 이병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려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에게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에는 이병철 회장이 직접 개입됐다는 내용의 투서가 전달된 것. 이른바 ‘청와대 투서사건’이다. 이 투서에는 이병철 회장의 탈세와 비리 내용을 소상히 기록돼 있었다. 이 투서의 작성자로 이 명예회장이 주목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부자 관계는 틀어지고 만다. 이 명예회장은 이 일을 두고 평생을 억울해 했다. 
 
이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 일가에서는 오히려 이 명예회장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다. 결국 이 명예회장은 197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그룹 총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후 1976년 9월쯤 이병철 회장은 암수술 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삼남 이건희 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구두로 유언을 밝혔다.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며 “그 무렵엔 벌써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이병철 회장과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갔다는 점도 회상했다. 그는 “부산의 어느 양심 없는 의사를 찾아가 당시 돈으로 300만원인가를 주고 내가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냈다고 한다”고 적었다.
 
1984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이 명예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브라우닝 6연발 샷건이 있었다. 잠시 뒤 현관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주춤거리며 “삼성 비서실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총을 쏴서 사내들을 별장에서 몰아냈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이를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였다고 회상했다.
 
 
1987년 이 창업주가 작고한 뒤 이 명예회장은 해외로 떠났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동생 건희가 정식으로 삼성의 총수가 된 마당에 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혹시 조금이라도 건희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그것이 바로 삼성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외국에서 영원히 살면서 귀국하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후 5년여 동안 아프리카, 남미,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노력했지만 한 곳에 6개월 이상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갈등,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공개된 것은 지난 1993년 이 명예회장이 <하고 싶은 이야기> <묻어둔 이야기> 등의 책을 내면서다. 이 명예회장은 책 출간 이후 다시 은둔에 들어갔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계열 분리해 나오고 CJ로 이름을 바꿨지만, 이 명예회장은 경영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의 딸이자 직계손녀의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동생에 밀리고 
평생 야인으로
 
이 명예회장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간혹 친자확인 소송 등 양육비 소송 등으로 구설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뿐, 맹희씨의 거취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이 명예회장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과 재산 분쟁으로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2년 이건희 회장은 형을 ‘이맹희씨’라고 지칭하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형을 지칭해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사람, 나를 포함해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했던 사람”이라며 청와대 투서 사건의 배후가 이맹희 명예회장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이 명예회장에게 날 선 비판을 쏟아낸 것은 소송 때문이었다. 지난 2012년 이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 유산을 내놔라”며 소송을 걸었다. 1990년대에 이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 등 자녀들의 유산 분배는 다 끝났으나 뒤늦게 알려진 유산이 따로 있었다. 
 
가족간 사이 틀어지면서 불행
결국 외국서 쓸쓸하게 눈감아
 
이병철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보유했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차명 주식이었다. 2007년 삼성 법무팀 소속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통해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관련 주식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이맹희-이건희 형제 간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세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 명예회장이 7000억원대의 상속재산 분할 청구소송을 걸었다. 아버지의 유산이니 100% 이건희 회장 몫이 아니라며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법정은 이 명예회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1, 2심에서 패했다. 지난해 2월 상고를 포기하면서 상속 소송은 끝났다. 
 
 
항소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이 명예회장은 재판부에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제출하며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것을 방해하고, 삼성이 거래하던 대한통운 물량을 빼는가 하면 재현이 CJ그룹 회장을 미행하고,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이 명예회장의 별세로 형제 간 직접 화해는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지난 14일 이 명예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다. 2012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했지만 암이 재발했고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해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병상에 누워 있다. 이로써 삼성가 2세대의 화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은 입관식과 발인 직전 두 차례에 걸쳐 입관실(시신안치실)을 찾아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지난 17일 이 명예회장의 관을 봉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현 회장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고, 관이 끝내 닫히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크게 오열했다. 이 명예회장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약 17분이 흐른 뒤  입관실을 빠져나와 암병동 입원실로 향했다.

말년엔 가족소송
끝내 갈등 못풀어
 
이재현 회장은 발인식 전날인 19일 밤 11시 30분경에도 다시 장례식 지하 1층에 위치한 시신 안치실을 찾았다. 다음날 있을 발인식에 앞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 것이다. 이재현 회장은 부인과 아들 선호 등 직계가족만 함께한 채 입관실내 시신안치실에 있던 아버지의 관을 수차례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으며, 약 12분이 흐른 뒤 입관실을 빠져나왔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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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