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영화처럼 살다간 이맹희

하고 싶은, 묻어둔 이야기가 많은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이 명예회장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비운의 삼성가 장남’으로 재계 오너의 일원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파도를 탔던 그다. 화려한 출생과 비운의 주인공이었던 이 명예회장의 84년을 되돌아봤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그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3남 5녀(이맹희·이창희·이건희·이인희·이숙희·이숙희·이순희·이명희) 중 장남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 대구 수창초등학교와 경북중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입학은 서울(수송초등학교)에서 했으나 이내 대구로 내려갔다.
 
잘나간 젊은 시절
탄탄대로였는데… 
 
이 명예회장은 광복 이후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도쿄농업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막바지인 1956년 12월1일 손복남 CJ 고문과 결혼했다. 당시 이 둘은 만난 지 한달 만에 혼사를 올렸지만, 이 명예회장은 생전 “빠른 속도로 성사된 결혼이었지만,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 결혼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일본 유학을 마친 이 명예회장은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결혼식을 치른 지 두 달 만인 1957년 2월이다. 이 명예회장은 미국에서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황태자’에 울리는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0년 이 명예회장은 한국에 돌아왔다. 그의 첫 직장은 한일은행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한일은행에 입사한지 2년 만인 1962년 안국화재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이 명예회장을 경계한 이병철 회장의 비서진이 이 명예회장을 모함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명예회장과 적대적인 관계였던 이병철 회장의 일부 비서진이 이 명예회장의 그룹 경영 참여를 차단하기 위해 모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일은행에 입행한 이 명예회장이 행장에게 대들고 대부 알선을 해주면서 ‘커미션’을 받는다는 등 근무태도가 불성실하다고 이병철 회장에게 보고됐다. 이에 화가 난 이병철 회장이 이 명예회장을 한일은행에서 나오게 해 안국화재에 들여보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3남5녀 중 장남
대권 내준 비운의 황태자 파란만장한 삶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창업주의 장남으로서 그룹 후계자 과정을 착실히 밟아 나갔다. 그러나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고, 이병철 회장이 열한 살이나 아래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후계 자리를 내주면서 그의 인생은 파도의 연속이 됐다.
 
이 명예회장의 변곡점은 1966년에 찾아왔다.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1966년 5월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 4000만달러까지 들여왔다.
 
사카린 밀수 사건이 이토록 국가적으로 거대한 파문이 일어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정부가 내걸은 국정 구호가 구악 일소, 즉, 부패척결이었다. 그런데 사카린 사건으로 정권의 모순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당시 삼성에서 중앙일보를 세우고 언론계에 진출할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카린 사건에 대한 경쟁사 언론들의 공격이 따가웠다. 이러한 복합적인 작용으로 사카린 사건은 범국민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됐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한 후 재계 은퇴까지 선언하고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 계기로 이 명예회장은 삼성의 총수에 올랐다. 비록 불미스럽게 총수에 오르긴 했으나, 장남으로서 그의 위상은 변함이 없었다. 이 명예회장은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삼성 참모진에게 “맹희 부사장에게 세 번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내게 가져오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장자 상속의 대원칙에서 삼성의 대권을 받은 이 명예회장의 경영 행보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사카린 사건 후
부친 눈밖에 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다’며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이 명예회장으로서는 부친의 경영 부재가 자신의 경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오히려 이때가 부친의 눈 밖으로 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됐다.
 
거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있었다. 1969년 이병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려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에게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에는 이병철 회장이 직접 개입됐다는 내용의 투서가 전달된 것. 이른바 ‘청와대 투서사건’이다. 이 투서에는 이병철 회장의 탈세와 비리 내용을 소상히 기록돼 있었다. 이 투서의 작성자로 이 명예회장이 주목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부자 관계는 틀어지고 만다. 이 명예회장은 이 일을 두고 평생을 억울해 했다. 
 
이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 일가에서는 오히려 이 명예회장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다. 결국 이 명예회장은 197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그룹 총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후 1976년 9월쯤 이병철 회장은 암수술 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삼남 이건희 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구두로 유언을 밝혔다.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며 “그 무렵엔 벌써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이병철 회장과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갔다는 점도 회상했다. 그는 “부산의 어느 양심 없는 의사를 찾아가 당시 돈으로 300만원인가를 주고 내가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냈다고 한다”고 적었다.
 
1984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이 명예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브라우닝 6연발 샷건이 있었다. 잠시 뒤 현관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주춤거리며 “삼성 비서실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총을 쏴서 사내들을 별장에서 몰아냈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이를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였다고 회상했다.
 
 
1987년 이 창업주가 작고한 뒤 이 명예회장은 해외로 떠났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명예회장은 “동생 건희가 정식으로 삼성의 총수가 된 마당에 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혹시 조금이라도 건희가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그것이 바로 삼성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외국에서 영원히 살면서 귀국하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이후 5년여 동안 아프리카, 남미,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노력했지만 한 곳에 6개월 이상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갈등,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공개된 것은 지난 1993년 이 명예회장이 <하고 싶은 이야기> <묻어둔 이야기> 등의 책을 내면서다. 이 명예회장은 책 출간 이후 다시 은둔에 들어갔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계열 분리해 나오고 CJ로 이름을 바꿨지만, 이 명예회장은 경영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의 딸이자 직계손녀의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동생에 밀리고 
평생 야인으로
 
이 명예회장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간혹 친자확인 소송 등 양육비 소송 등으로 구설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뿐, 맹희씨의 거취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이 명예회장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과 재산 분쟁으로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2년 이건희 회장은 형을 ‘이맹희씨’라고 지칭하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형을 지칭해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사람, 나를 포함해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했던 사람”이라며 청와대 투서 사건의 배후가 이맹희 명예회장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이 명예회장에게 날 선 비판을 쏟아낸 것은 소송 때문이었다. 지난 2012년 이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아버지 유산을 내놔라”며 소송을 걸었다. 1990년대에 이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 등 자녀들의 유산 분배는 다 끝났으나 뒤늦게 알려진 유산이 따로 있었다. 
 
가족간 사이 틀어지면서 불행
결국 외국서 쓸쓸하게 눈감아
 
이병철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보유했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차명 주식이었다. 2007년 삼성 법무팀 소속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통해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관련 주식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이맹희-이건희 형제 간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세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 명예회장이 7000억원대의 상속재산 분할 청구소송을 걸었다. 아버지의 유산이니 100% 이건희 회장 몫이 아니라며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법정은 이 명예회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1, 2심에서 패했다. 지난해 2월 상고를 포기하면서 상속 소송은 끝났다. 
 
 
항소심 재판 결심공판에서 이 명예회장은 재판부에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제출하며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것을 방해하고, 삼성이 거래하던 대한통운 물량을 빼는가 하면 재현이 CJ그룹 회장을 미행하고,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이 명예회장의 별세로 형제 간 직접 화해는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지난 14일 이 명예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다. 2012년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했지만 암이 재발했고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해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병상에 누워 있다. 이로써 삼성가 2세대의 화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은 입관식과 발인 직전 두 차례에 걸쳐 입관실(시신안치실)을 찾아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지난 17일 이 명예회장의 관을 봉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현 회장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고, 관이 끝내 닫히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크게 오열했다. 이 명예회장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약 17분이 흐른 뒤  입관실을 빠져나와 암병동 입원실로 향했다.

말년엔 가족소송
끝내 갈등 못풀어
 
이재현 회장은 발인식 전날인 19일 밤 11시 30분경에도 다시 장례식 지하 1층에 위치한 시신 안치실을 찾았다. 다음날 있을 발인식에 앞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 것이다. 이재현 회장은 부인과 아들 선호 등 직계가족만 함께한 채 입관실내 시신안치실에 있던 아버지의 관을 수차례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으며, 약 12분이 흐른 뒤 입관실을 빠져나왔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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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