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약 점검> ②'먹구름 잔뜩 낀' 안보 공약

밖으로 밖으로만…국방·통일외교 공약이행 ‘0’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하반기 국정 운영을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월1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박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대선공약이행평가’를 토대로 그로부터 현재까지 얼마나 공약이 이행됐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총 4주에 걸쳐 복지·안보·경제·정치 분야로 나눠서 다룰 예정이다. 그 두 번째로 안보분야를 점검해봤다.

지난 15일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분단 70주기’를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연설의 요지는 계속되는 도발에 강경대응하겠지만, 대화와 협력의 문은 열어놓겠다는 것이었다. 집권 2년 동안 북측을 향해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지난 모습과는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에 실린 안보 관련 공약이 주목받는 요즘이다.

북한 도발
안보 공약

‘안보’라는 단어는 주로 북한과의 관계에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안보란 말이 ‘안전보장’을 줄여 이른 것인 만큼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통칭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안보공약을 점검할 때도 비단 국방 분야에 한정하기보다는 대한민국 사회의 안전과 관련된 모든 공약을 점검해 봤다.

위 전제를 반영했을 때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사회안보와 관련된 사항은 큰 목차로 3가지가 된다. ‘국방’ ‘외교통일’ ‘안전한 사회’ 분야가 그것이다. 이 3가지 분야 속에 존재하는 세부 공약은 총 75개, 그중 국방에 속한 공약은 21개, 외교통일은 30개, 안전한 사회는 24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지난 2월16일 집권 3년 차를 맞아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점검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완전 이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공약은 75개 중 19개로 전체 25.3%를 기록했다. 그것보다 못한 수준인 ‘후퇴 이행’은 40개로 전체의 53.3%, 아직 달성하지 못한 ‘미이행’은 16개로 21.3%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6개월여가 지난 지금 얼마나 변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방과 외교통일 분야는 진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경실련이 발표한 지난 216일까지의 결과보다 오히려 퇴보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단 고위급 회담 결과 도출된 ‘8·25 합의문을 남·북 정상이 앞으로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냐에 따라 공약 이행률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약이 이행됐다고 볼 수 있는 안전한 사회 분야에서도 단 2가지만 실현됐을 뿐이다. 이를 적용하면 완전 이행은 기존 19개에서 1개 늘어난 20개(26.7%), 후퇴 이행 또한 1개가 늘어난 41개(54.7%), 미이행은 14개(18.6%)가 된다. 공약 완전 이행률이 지난 6개월 동안 25.3%에서 26.7%로 단 1.4%포인트 상승에 그친 것이다.

25.3%→26.7%
1.4% 상승


공약을 세부적으로 점검해 보면, 국방분야 중 ‘확고한 국방태세 확립’ 영역에 있는 국방예산에 대한 공약과 ‘포괄적 방위역량 강화’ 영역에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에 관한 공약은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방예산 공약의 경우 안보 현실에 맞는 적정 수준의 예산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공약 중 하나다.
 


경실련이 지난 2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국방 예산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재정비 대비 예산은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4년 국방예산은 전년대비 3.5%포인트 상승한 35조7억원으며, 2015년은 5.2%포인트 증가한 37조6억원이었다. 2016년은 국방부가 최근 3년간 중 가장 높은 7.2%포인트 상승한 40조1395억의 국방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상황이다.

6개월간 안보공약 이행률 단 1.4%↑
국방·통일외교 0건, 안전한 사회 2건 이행


그러나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가 추산한 2015년 대한민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1조4351억달러(약 1577조원) 대비 2.55%로 지난 1994년 이후 유지돼 온 GDP 대비 2%대를 유지하는 수치다. 당초 조사결과 정부 예산계획과 군 당국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던 예산이 30조원 넘게 차이가 났던 점을 고려했을 때 공약이 이행됐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경실련의 해석에 반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권관계자는 “적정 수준의 국방예산이란 말 자체가 자의적 해석이 허용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예산만 보고 안보 현실에 맞다 안 맞다를 판단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미이행 상태를 유지했다. 지난 2014년 10월23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을 기존 상태로 무기한 연기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달라진 점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이 외교를 통해 ‘집단적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 논란이 됐다. 만약 관련 법안이 오는 9월27일까지 일본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된다면 일본은 자국에 대한 공격은 물론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도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일본이 능동적으로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북한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정부가 전작권 환수 문제를 무기한 연기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여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방·외교통일
10개 미이행

외교통일 분야도 마찬가지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동북아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공약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단 청와대에서 추진하는 연내 한·중·일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2012년 5월을 끝으로 이행되지 못했던 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자 회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성사된다면 공약의 후퇴 이행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영역은 총 6개 공약 사항 중 4개가 이행되지 못했다.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한다는 공약은 이제 막 국면 전환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 10·4남북공동선언 등 기존 합의에 담긴 내용을 실천한다는 공약은 최근까지 북한의 거절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박 4일 간의 대화를 통해 도출해 낸 8·25 합의가 향후 남·북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양한 대화채널을 개설해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지뢰 도발에 이은 북한의 포격 도발로 임기 내 이행을 장담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극적인 화해 모드로 전환됨에 따라 연내 정상 간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일로, 3자 회담으로 돌파?
말로만 안전한 사회, 실효성 논란 여전


국군포로와 납북자 귀환 사업에 역점을 둔다는 공약은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정부와의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지난 7월24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주최로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29일에는 탈북군인 초청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국군포로분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서 대한민국이 송환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외에도 군사대결 완화→경제공동체 건설→정치적 통합으로 나아간다는 공약은 이제 막 첫걸음을 땐 상황으로 논의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실정이다.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계승·발전한다는 안 또한 최근까지 제자리 상태에 머물러 있다. 북한을 얼마나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이외에도 외교와 관련된 공약 또한 지난 6개월 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특히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를 편찬한다는 공약은 각 국가 간 이견이 크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고바야시 소메이 니혼대 교수는 지난 3일 고려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공동체포럼에 참석해 “과거 민간 차원에서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만들기 사업이나 한·일 역사 공동연구가 실시됐지만 각국의 내셔널리즘을 배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며 그동안의 문제를 지적했다.

반면 안전한 사회 분야에서는 약간의 진전을 보였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 강화’ 영역에 속한 재난관리업무 일원화 시스템 구축은 지난 2014년 11월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는가 하면 ‘재난안전통신망’이 시범사업에 들어가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민안전처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물론 안전통신망 구축에 있어서 부실 규격에 따른 혈세 낭비 논란까지 일고 있다는 점에서 후퇴 이행으로 분류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통합식품안전정보망’을 구축한다는 공약은 기존 미이행에서 이행으로 바뀐 공약이다. 지난 6월30일부터 홈페이지가 공개돼 일반 국민들도 접속 가능하다. 그러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링크가 뜨지 않는 등 접근성에서 개선돼야 할 영역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식 오픈을 했음에도 홍보가 미흡하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안전한 사회
후퇴 이행


안전한 사회 분야의 나머지 공약은 답보상태에 있다. 응급의료에 따른 사고피해를 보상해 주겠다는 취지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대표발의)’은 지난 2013년 1월25일 발의된 이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 집행유예를 금지하겠다는 것과 전문가 증언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은 미이행 상태를 유지했다. 단 최근 여학생을 성추행한 교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한 첫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개선될 소지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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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