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vs 친박 장관 ‘정면충돌’ 내막

어차피 2년 후면 끝인데 4년 쉬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장관들에게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도 들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모든 개인 일정은 내려놓고 국가 경제와 개혁을 위해 매진해 달라”며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개인적 행보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박 대통령은 불과 2주 전인 지난 7일에도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경고 메시지
미지근한 반응

청와대 측은 “몇몇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정작 부처 업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같은 사안에 대해 2주 간격으로 두 번씩이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장관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심지어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박 대통령의 첫 번째 경고가 있은 후 1주일 만에 보란 듯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총선 출마는 당연하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자기정치 하지 말라”고 했던 당시 발언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언 이후 유 전 원내대표는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겨났다.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박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총선 출마를 강행할 경우 대대적인 찍어내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박 대통령은 자기 정치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니 장관들이 총선 출마와 관련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찍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번에 내년 총선은 꿈도 꾸지 말라며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의중을 이번에 처음 안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장관들이 당연히 자신과 국가를 위해 희생해줄 것으로 믿었는데 장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이 내각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현재 정치인 출신 장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유일호 국토부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등 5명이나 된다. 내각의 3분의1 가까이가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다. 이들이 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1월14일(선거일 90일)까지 장관직을 사퇴해야 한다. 내각의 30%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면 국정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희생 해라!
희생 못해!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세월호 사고,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성완종 파문, 메르스 사태,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까지 줄줄이 터져 나온 대형악재들로 집권 3년 차까지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장관에 임명되면 업무파악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해 최소 2년 이상 재직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면 박근혜정부의 남은 임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

이미 공무원사회에서는 곧 떠날 장관들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은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시한부장관 밑에서 개혁은 언감생심이다. 장관들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야 하는데 표만 깎이는 개혁작업에 힘을 실어주겠나?”라며 “공무원들도 지금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면 책임져줄 사람도 없는데 차라리 새로운 장관이 오길 기다리자며 복지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내년 총선 포기하면 정계 은퇴 수순
이번만큼은 대통령 시키는 대로 못해


올해만 버티면 바뀔 장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관료들도 느슨해진다. 장관들의 지시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또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지긋지긋한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특히 장관들의 사퇴 러쉬가 내년 1월14일을 앞두고 집중된다면 가뜩이나 예산안 통과 등으로 바쁜 연말에 장관을 교체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을 임명했는데, 대통령과 장관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부족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임기는 겨우 2년 정도 남았는데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나면 4년 가까이를 정치낭인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4년이나 중앙정치에서 떠나 있은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장관들에게는 내년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것은 정계은퇴까지 각오해야 할 중대한 일이다.

게다가 여당은 내년 총선 지역구 후보자를 오픈 프라이머리(※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로 뽑기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관리가 매우 중요해졌다. 박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지역구관리에 한눈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음은 콩밭에
멈춰버린 개혁

지역구관리에 가장 열심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다. 황 부총리는 현재 세종시에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거의 매주 세종시에서 인천까지 올라와 지역구에 있는 교회 예배에 참여할 정도라고 한다.

또 박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총선을 의식해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정부는 정원 감축을 통해 대학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지방대 살리기, 유학생 유치 확대 방안, 재외동포 전용 학과 정원 외 개설 등 대학 구조 개혁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의도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사실상 표가 되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황 부총리가 자기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황 부총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황 부총리의 지역구에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정가에서는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연수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둥이 아빠로 유명한 탤런트 송일국의 출마설도 들린다. 송일국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인기가 대단해 인천에선 ‘박 대통령이 직접 출마해도 송일국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 부총리로서는 벌써부터 지역구관리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 부총리는 지난 15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제2의 유승민 사태 터질까?
대통령-친박 장관 갈등 조마조마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지역구 행보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5월 초 이미 “나는 본래 정치인이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경고 이후에는 “일단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며 뉘앙스가 바뀌었지만 총선 불출마 선언만큼은 하지 않고 있다. 최 부총리는 경제 살리기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어떤 정책을 내놔도 이제 곧 그만둘 사람인데 약발이 먹힐 리가 없다.

경제정책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장관이 바뀐 후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면 떠난 장관이 책임져 주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도, 최저임금위원회도 잇달아 파행을 겪는 이면에는 ‘시한부장관’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는 동안에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에 예산 밀어주기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에서 경산 ‘글로벌 코즈메틱 비즈니스센터’ 건립비용은 보건복지부가 낸 예산안엔 없었으나 기재부가 신규로 10억원 예산을 편성해 국회를 통과했다. 청도 세계코미디 예술제도 예산 심의 때 4억원이 증액됐다. 야권은 ‘초이 예산’이라며 최 부총리를 비판했다.


찍어낼까?
반기들까?

다른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특히 유일호, 유기준 장관은 올해 3월에 임명됐는데 내년 1월까지 재직해도 재직 기간이 10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장관 취임 후 부처업무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을 텐데 남은 기간 동안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 해수부장관의 경우는 내년 1월 전에 사퇴한다면 세월호특위 활동의 마무리도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일각에선 장관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조기 교체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친박 의원들이 총선에서 최대한 많이 살아 돌아와야 후반기 국정 운영이 원활해진다. 빠르면 추석을 전후에 핵심 친박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청와대와 장관들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양측이 정면충돌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기환 정무수석, 총선 불출마

“대통령 위해 결단 내렸다”

친박 장관들이 총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현기환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은 총선 불출마를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무수석은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박 용퇴론에 밀려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이후 현 정무수석은 ‘총선 공천헌금 의혹’에 연루돼 당에서 제명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지난 2013년 복당한 현 정무수석은 그동안 자신의 옛 지역구인 부산 사하갑에서 총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또 한 번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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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