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시대’ 막전막후

장자승계 없다…형님 제치고 아우가 대권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한·일 롯데 원톱으로 우뚝 올라섰다.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가 확정된 분위기다. 공식적인 후계자로 낙점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잔존한다. ‘신동빈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사실상 롯데그룹의 회장직이나 다름없다. 그룹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셈이다.

신동주·신영자
가만히 있을까?
 
이번 대표 선임으로 신 회장은 한국 롯데뿐 아니라 일본 롯데도 함께 경영하게 됐다. 신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현장 중심 경영 지침에 따라 일본 현장경영도 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5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참석 이사 전원 찬성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 회장은 이날 오후 주요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이번 이사회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신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17일 롯데케미칼 본사를 찾아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일선 현장을 방문하는 등 바쁜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8월 초에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방문해 일본 롯데 대표로서도 행보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롯데는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선임으로 한·일 롯데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그룹의 열쇠를 맡긴 것은 그간 신 회장이 보여준 공격적인 경영 드라이브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3년 기준 한국롯데는 74개 계열사에 매출 83조원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롯데는 37개 계열사에 매출 5조7000억원가량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경영실적의 차이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일본롯데 지주회사 홀딩스 대표이사
한-일 양국 장악…경영권 승계 완료 
 
실적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 공격적인 신 회장의 면모도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로 신 회장은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을 성사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이후 9조원에 달아는 기업을 인수했다. 올해에는 국내 렌터카시장 1위인 KT렌탈을 인수했고, 미국에서는 130여년의 역사를 가진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사들였다. 올해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사상 최고인 7조5000억원에 이른다. 그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이 해임되기 전까지는 일본롯데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맡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신 회장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롯데는 형님(신 전 부회장), 한국롯데는 저로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며 후계 구도가 정리됐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장남과 차남의 관계는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13년부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부딪혔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롯데제과 주식을 매달 사들여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신 회장이 가진 주식과 자신이 가진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을 10억여원 차이로 좁혔다. 한국 내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은 후계구도를 깨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됐다.


형 누른 아우
광폭행보 나서
 
이후 지난해 12월26일 신 전 부회장이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일괄 해임된 데 이어 지난 1월9일 지주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까지 잃으면서 후계구도의 윤곽이 드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실적에 민감한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신 회장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신 회장이 진정한 후계자로 올라서려면 부친의 숙원인 제2롯데월드 사업과 부진에 빠진 일본롯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그룹 지주회사로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요약된다. 신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일본롯데의 경영권 획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일본법인 광윤사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포장재를 만드는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일본롯데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광윤사의 대표이사 신 총괄회장은 지분 절반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남 신 전 부회장과 차남 신 회장도 각각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상장사의 주주를 공개할 의무가 없어 구체적인 지분구조는 알 수 없지만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 차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대세 기울었지만…안심하긴 일러
형제 반발 등 아직 풀 숙제 남아 
 
광윤사는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도 5.45%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이 대부분 대표를 맡고 있는 L투자회사들은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11개로 나눠 갖고 있다. 일본 L투자회사는 롯데알미늄과 롯데리아, 롯데푸드 등 기타 계열사의 주주명단에 올라와 있다.
 
결국 신 회장이 광윤사와 L투자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한·일 롯데의 진정한 수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복누나인 큰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장남과 차남 중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상황이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룹 전체의 지분 구조를 볼 때 후계구도를 100%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과 이복누나인 신 이사장이 갖고 있는 롯데 계열사 지분을 합칠 경우 신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 등의 그룹사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제과의 경우 신 이사장은 3만5873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2.52%다. 6.83%를 보유하고 있는 신 총괄 회장이나 5.34%를 보유하고 있는 신 회장에는 못 미치지만, 3.95%를 보유하고 있는 신 전 부회장과 합치면 적지 않은 규모다.

경영수완 발휘

꾸준히 인정받아
 
롯데쇼핑, 롯데닷컴, 롯데칠성음료, 롯데정보통신에서 신 이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0.47%, 2.66%, 1.3%, 3.51%다. 롯데쇼핑 지분율은 신 회장(13.46), 신 전 부회장(13.45%)과 격차가 크지만 신 회장이 각각 5.71%, 2.3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에서는 격차가 좁아진다.
 
이밖에도 신 이사장은 롯데 오너 일가로서는 유일하게 대홍기획의 지분 6.24%를 갖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이 이끄는 롯데복지장학재단도 롯데제과(8.69%), 롯데칠성음료(6.28%), 롯데푸드(4.1%) 등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경영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신 이사장은 롯데백화점이나 호텔롯데에서 사장직을 맡으며 경영에 직업 관여했지만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로는 롯데복지장학재단의 봉사활동에만 참여하며 롯데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지 말란 법은 없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이 부친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첫 번째 부인인 고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 이사장을 지극히 아꼈고, 현재 신 이사장의 딸인 장선윤씨가 지난 4월 호텔롯데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로 발령 받으면서 경력을 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신 회장이 이끌 롯데를 바라보는 재계의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955년 2월14일 신 총괄회장과 일본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 유치원, 초·중·고등부를 거쳐 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81년 일본 노무자증권에 입사해 런덤 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수년간 금융 실무와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롯데에 발을 들여놓았다.
 
91년에는 침체하는 롯데 오리온즈의 지원조치로서 구단 사장 대행으로 취임하고 팀의 홈구장을 가와사키 구장에서 지바 마린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구단 이름도 롯데 오리온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 고쳤다. 그해 11월에는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했고 95년에는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불러들여 팀을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95년에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롯데그룹 그룹기획조정실 부회장에 올랐다. 2004년부터는 그룹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정책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입사 20년 만인 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 자리에 앉게 됐다.
 
신 회장은 그룹에서 요직을 맡으며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점쳐졌으나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공식 석상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과묵한 성격으로 ‘은둔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잡아타는 일이 없고 해외출장에도 여행가방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는 등 겸손한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 회장은 부친의 현장경영 정신을 물려받아 시간이 날 때면 근처 백화점이나 마트, 편의점 매장을 수시로 돌아보며 현장을 챙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신 회장은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추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 회장이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주력사업인 힉품과 유통뿐 아니라 석유화학, 금융으로 그룹을 확장했고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미도파백화점, 현대석유화학, 우리홈쇼핑, 두산주류BG, AK면세점, 바이더웨이, GS리테일 백화점·마트부문 등 인수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각 계열사들의 외형을 키웠다. M&A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로,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등을 인수했으며 현지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신 회장은 정책본부장 당시 ‘2018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 비전 달성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과 롯데그룹은 나날이 덩치를 키우면서 매출을 올려 매출 기준으로 삼성-현대기아차-SK-LG에 이어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현재 신 회장은 그 여느 때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계 지배구조 개편작업 '관전포인트'
일단 경영승계…그리고 안정적 지배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정점을 찍은 가운데 삼성 외에도 재벌그룹들의 구조개편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재벌그룹들의 가장 큰 화두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삼성 필두로 SK·LG 움직임
부진한 실적 개선에도 효과
 
우선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 삼성의 합병에 눈길이 쏠린 사이 롯데는 조용하게 후계구도 개편을 마무리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을 끝내며 자산규모 31조원의 거대 철강회사를 탄생시켰다. SK는 지난달 그룹 지주회사SK와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옥상옥 회사 SK C&C를 합병해 총자산 13조 규모의 통합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LG 역시 상반기 구본무 회장 장남 구광모 상무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1%포인트 이상 늘렸다. 최대 재벌그룹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영권 승계 내지 총수 일가의 안정적 지배력 확보가 주목적이다. 어려운 대내외 경영환경 속에서 단행된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부진한 실적의 개선에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